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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3 03:48

무교회 신앙의 성격-송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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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이 전] [다 음]


『무교회 신앙의 성격』

송 두 용            

"하나님은 사랑"(요일 4:8,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인자(예수)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너희도) 거저 주라."(마 10:8)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얼마든지 있다. 예수께서는 "네 이웃(사람)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레 19:18)고 한 구약의 가르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라하."(마 5:44)고 명령하신 것이다. 그뿐이랴? 이 밖에도 예수님의 이러한 교훈의 말씀은 얼마든지 있다. 이것이 기독교이며 예수의 가르치심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인류의 구주이신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생명을 버리신 것이다. 과연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무교회주의의 창시자이며 나의 은사인 일본사람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내촌감삼)]는 아무리 보아도 성경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가르치심과는 거리가 있으며 매우 다른 것이 있는 것같이 보이며 생각된다. 그는 우선 자기의 성서연구회에 모이는 사람들에게서 회비를 받았다. 그리고 도대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제쳐 놓고서 우리들의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무슨 학문이나 과학지식인 것처럼 연구하는 데만 힘썼다는 그 일 자체부터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보다 도무지 재미없는 일인지도 알 수 없다. 모임시간에 지각하는 것을 엄금하며 늦게 될 때는 차라리 나오지 말라는 정도이며, 모임에 참석하려면 선생의 허가를 받을뿐더러 마치 입학시험과 같은 절차를 밟아야 하니, 과연 이것도 기독교이며 성경에 합치되는지, 하나님 듯에 어긋나지는 아니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만 정도만은 아니다. 우에키[植木(식목)]라고 하는 진실한 청년이 우치무라 선생의 모임에 다니는 선배의 소개장을 받아 가지고 모임에 참석하고자 하여 선생의 허락을 받으려고 선생을 찾아가니 마침 문간에 "성서지연구(우치무라 선생께서 주필 하신 성서 잡지)를 1년 이상 읽지 않은 자는 모임에 나오는 것을 허가하지 아니한다."고 써 붙인 것이 있었는데, 선생은 그것을 가리키면서 "지금 나는 내가 만든 규칙을 내가 곧 깨뜨릴 수 없으니 만일 군이 내 모임에 꼭 오고 싶으면 1년 후라도 반드시 올 것이요 만일 그래서 오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니 1년만 기다리라······." 이렇게 말씀하여서 거절을 당한 일이 있다고, 우치무라 선생께서 승천하신 후에, 우에키 씨가 발간하는 '만세반석'이라는 잡지에 실린 것을 추억문집을 옮겨 쓴 것을 읽어서 감개무량한 바가 있다. 나는 이와 비슷한 일화를 얼마든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을 모조리 말할 필요도 없고 여유도 없으니 한 예를 말한 것뿐이다. 나는 행인지 불행인지 거절은 당하지 않았으나 역시 선생께서 친히 몇 가지 질문을 하신 후에 입회허가를 받았으며, 또 선생을 만나는 일을 위하여서는 오래된 회원의 소개는 물론이고 몇 달 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우에키 씨는 실망하지 않고 영원의 생명에 대한 가르침을 받기 위하여 1년쯤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1년을 참고 기다려서 선생의 문하에서 배워 훌륭한 전도인이 되어 먼저 말한 잡지를 발행하였으나, 전도하는 일에 무리한 탓인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은 아까운 일이다.

그뿐인가? 우치무라 선생은누구나 다 무섭다고 말한다. 선생은 가끔 무슨 중대한 신앙문제 즉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 "인간의 구원은 예수의 십자가에만 의한 것이다." 같은 것을 말씀하시면 반드시 "나는 이렇게 믿는다. 만일 여러분 중에 이것을 믿을 수 없는 이가 있거든 할 수 없이 작별하자. 지금 이 자리를 떠나주기 바란다. 설령 이 모임에 나 혼자만 남아도 할 수 없다."고 덧붙여 말씀하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신자들이 조심하여 모험을 피하는 것은 이상하다. 신앙은 모험이다. 하나님이 계시고 아니 계신 것은 아무도 증명 못 한다. 계시다고 믿고 모험하는 것이다. 해볼 만한 모험이다······'라고. 혹은 "사람이 언제까지나 늙지 않으려거든 자기보다도 강한 적을 가져야 한다"고. 과연 사자나 독수리같이 무서운 사람인지도 알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선생의 성격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선생이 만일 예수를 믿지 않았다면 설령 강하고 무섭다 하더라도 내용이 다를 것만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우치무라의 믿음은 신본주의이며, 십자가 중심이었다. 선생은 "기독교는 십자가교이다."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십자가는 좁은 문이요 협착한 길이다(마 7:13~14). 주님께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또는 병든 딸을 고쳐주심 바라고 발 앞에 엎드려 간구하는 이방 여인에게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던짐이 옳지 않다."고 하는 폭언 비슷한 말씀을 하신 일도 있다(마 7:6, 15:24~25). 얼마나 몰인정한, 아니 무자비한 태도이며 말씀인가? 그렇다, 참은 마치 얼음과 같이 차디찬 것이며 사랑은 마치 불꽃처럼 뜨거운 것이다. 누가 쉽사리 감당할 자이냐?

나는 이제 우치무라 선생의 언행이나 생활에 대하여 구구한 설명을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내가 우치무라의 선전자가 아니며 그의 숭배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참으로 나는 그런 것을 원하지 아니한다. 아닌게 아니라 선생이 떠나신 지 30년도 되지 않아서(금년이 29주년이다) 그의 비석을 세우는 자가 많은 모양인데, 대개 그런 사람은 선생의 생전에 반대하거나 배척하던 사람이 많은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 선생에게서 배웠으나 선생보다 훌륭한 이도 있는 듯하니 매우 고마운 일이나, 그렇다고 선생을 무시하거나 이반하는 것은 찬동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 같은 것은 선생보다 앞서기는커녕 아직까지 선생을 이해조차 못하는 형편이니 한심하며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내가 어떻게 선생의 비석인들 세울 수 있으랴? 그러므로 나는 심히 부족하면서도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그러한 우치무라 선생에게서 배운 덕택으로(2년 남짓 짧은 기간이지만) 일신 이후로 오늘날까지 34년 동안 아무 것도 보람있는 생활은 못하였으나 다만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속죄신앙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이다.

끝으로 우리가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우리 나라에는 모든 것이 그런 것같이 이제는 무교회주의까지 가짜가 백주에 횡행하여 마치 교회측에 무슨 교회니 무슨 장로니 무슨 증인이니 하고 어수선한 것같이 우리들을 괴롭히며 짓밟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한없이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랴! 원래부터 기독교는 박해 속에서 자라온 것이니만큼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나 오해와 미움을 몀치 못하는 것이니, 차라리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지 결코 불행도 슬픔도 아닌 것이다. 주님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바울도 루터도 그 밖의 참 신자는 반드시 세상에서 오해받고 미움받고 결국 쫓겨나고야 마는 것이다.

우치무라 선생의 생애도 또한 그것밖에 무엇이 있으랴? 국가와 동포에게는 역적, 반역자, 교회와 신자에게는 이단자, 반동분자, 가정과 친척에게는 거리끼는 자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연보와 자금문제로 추태를 연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회비제로 하였고, 시간 엄수로 진실을 길렀으며, 입회 허가하는 일로 마귀의 훼방을 막았고, 성경연구로 우상숭배와 광신자를 물리친 것이다. 그는 철학, 과학, 역사 등의 지식과 상식을 토대로 하여 보다 건전한 신앙을 오직 예수의 십자가라는 영원한 반석 위에 세운 것이다. 그의 무교회주의는 성경본위의 복음주의인 신앙만의 기독교일 뿐이다.

('59. 3. 성서인생 43호, 문집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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