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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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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2010. 7. 25송두용기념강연회 말씀)
                                                                                                       홍 정 표


 “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 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 아모스 4 : 12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 7: 21- 23 )

 

 여호와께서 민족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셸라) (시편 87:6)

 

 아모스는 유다왕 웃시야의 통치기간(B.C. 767-740/39)과 이스라엘王 여로보암 2세의 통치기간(B.C. 782/81-753)에 살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6km 떨어진 남왕국의 한 성읍인 드고아 출신이었다. 예언자들이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계급출신도 아닌, 그는 무화과를 가꾸는 일을 하면서 양떼들을 돌보는 목자, 농부였다. 부름을 받을 때까지 종교적인 직책을 위해 전문적인 준비를 한 일이 없는 평신도였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처음으로 북왕국의 작은 도성들이 번영하게 되었고,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던 바알 숭배의 풍기 문란한 영향을 받아 전례가 없는 퇴폐풍조로 사회 전반이 부패와 타락의 나락으로 나가떨어진 모습을 보고 아모스는 크게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의 예언이 발생하게 된 동기와 이유였다.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는 말은 하나님께서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시되 언제 어느 순간에 갑작스럽게 심판하실런지 알 수 없으므로 두려운 마음으로 준비하라는 말이다.
 아모스 선지자가 이렇게 갑작스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역으로 말하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회개의 시간이 거의 없으므로 지금 당장이라도 회개하여 임박한 심판을 피하지 않으면 안됨을 교훈하는 것이다.
 실로 깨어 근신하지 않는자에게는 주의 심판날이 도적같이 임하리라는 사실 (살전 5:2) 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 자신들 또한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 하라. 오늘 내게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리자. 이루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징계를 전제하는 말이기 때문에 최후의 통첩과도 같은 경고이다(T. E McComisky).
 송두용 선생님의 일대기나 그 분의 신앙저작을 분석하러 여기에 나오지 않았다. 이제 가신 한 분 어른을 추억하면서 이 자리에 함께 한 여러분들, 이 글을 읽으실 독자 한 분, 한 분에게 송 선생님의 동년배, 후학들의 회고담을 소개하고 미흡한 이 사람의 얘기로 끝을 맺으려 한다.

 


 동년배, 후학들의 회고담


 함석헌 님이 보신 친구 송두용

 '50년 동안 송형과 사귀어 오며 느끼는 것은 이 사람은 언제 보나 이 골목의 어딘지 친구들 같은 점이 늘 있는 점이다. 송 선생은 변덕이람 참 변덕이 있는 분인데, 그래서 직업을 몇 번을 바꿨고(정말로는 직업을 못 가졌다고 해야 옳겠지만), 이사를 몇 십번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날껏 그 믿음만은 변치 않고 일관해 왔습니다. 이것은 언젠가 그 자신이 그렇게 고백하는 것을 들은 일도 있습니다. 나 같은 사람(함 선생 자신)은 스스로 그렇게 생각 아니 합니다마는, 적어도 남이 보기에는 몇 번은 변했습니다. 다섯 번 변했다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송두용 형은 이미 동경서부터 오늘까지 일직선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젠가 쓰카모도 선생이 “신앙이란 놓치지 않는 것이오” 하신 말이 있어 나도 그것을 이 날것 잊지 않고 가르침으로 삼고 있습니다만, 송 형이야 말로 놓치지 않는 분입니다. 나는 늘 생각하는 일이지만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직업적 전문 전도자는 있어도 기독교 인물이 없는 것이 흠입니다. 기독교 인물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신앙을 현실생활 속에 실현하는 것입니다. 송 형이 목사가 되자면 얼마든지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당히 잘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사 되지 않은 데에 송 형이 용한 점이 있습니다. ' ( ‘믿음만의 섕애’ p360-361) '


 믿음의 한 길
 송 선배 부부는 예수 믿기 전부터 천성이 그렇게 착한 분들 같습니다. 송 선배는 내촌감삼의 제자들 중에서도 아주 이색적인 존재입 니다.
 대개는 학형의 고고한 타입들입니다. 스승의 타입, 예언자적 권위의 타입들입니다. 그런데 송 선배는 한결같이 봉사자입니다. 숨어시 뒷받침하는 타입입니다.‘숨은 살림’ 이라는 잡지의 이름이 가장 송 선배의 바탕을 잘 드러낸 것으로 생각 됩니다.(同 p 365 유달영)


 후세에 남길 최대 유물
 “내촌 선생은 ‘후세에 남길 최대의 유물’ 에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돈을 많이 벌어 남겨 놓고 가는 일은 좋은 유물이 될 것이다. 또 좋은 사업을 시작해서 오래 가도록 계속하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아니면 사상이나 학문의 독창적인 것을 남기어 놓는 것도 후세에 두고두고 사람들의 가치 구조에 혁명을 일으키게 될 것이므로 훌륭한 유물’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런 것 은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 방면에 특히 소질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아니 된다고 하면서 누구나 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값진 최대의 유물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생을 용감하고 고상하게 살아가는 일이라고 하였다. " 송 선생께서 그 일을 앞장서서 본을 보여 주셨다. 송 선생께서는 그 긴 세월을 돈을 버시기 보다는 있는 돈은 다 남을 위하여 써 버리셨으며, 사업을 하신 것이 없지 않으나 신문에 크게 보도 될 만한 것은 아니셨다. 또한 믿음을 전파하시고 좋은 글을 쓰셨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만으로 우리가 오늘 선생님을 존경해서 여기 모여 온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선생께서는 50년 신앙 생애가 믿음 하나로 꿰어 뜨려져 있어, 이 이외의 것은 아낌없이 베어 내고 잘라 내어 버리고 살아오신 까닭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서 이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선생이 걸으신 길을 더듬으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것은 과연 까닭이 있는 일이다. 그것은 선생께서 지나오신 생애가 바로 후세에 남길 최대 유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同 p369 정태시)


 호자필호인자 (好者必好人子)를 실감
 “성서는 단 한 절도 모른다. 항차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 까닭이 없고 해서 송 형님의 생애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형님의 깨끗한 생애를 축하하는 이 자리에 오기 위해서 목욕을 세 번이나 하고 왔다, 처음 서울에 올라 왔을 때에는 명륜등에 30 간도 더 되는 집, 그 후 인천에서 건어물 가게, 다시 오류동의 농가, 오늘은 그나마도 아무 것도 없는 알몸, 정말 너무 한 것만 같다.
 잘 되든지 못 되든지 오직 하나님 뜻대로만 되십사하고 기도한 그 대로의 일생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한국에서 송 형님 처럼 예수 믿는 사람이 단 몇 사람만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가 자연 이 모양으로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이제 와서는 깨달을 만도 하고, 더욱이 오늘 이 자리에는 전국 각지에서와 심지어 일본에서까지 손님들이 참석했다는 사실을 보고
 ‘호자필호인자’(好者必好人子)를 실감한다. " (同 p398 조기항)


 신앙 선배님들이 승천하심에
 ‘근래에 우리 곁에서 신앙 선배님들이 속속 승천하시게 되어 남은 우리들이 정신을 가다듬어 그리스도를 우러르고 힘을 구하여 우리에게 분부하신 복음의 사명을 깨달아 선배님들의 바톤을 이어받아 전진하여야 할 때임이 느껴진다.' (同 p103 국희종)


 먼저 가신 분들
 2010년 7월 현재 내촌의 제자 六 인은 이제 모두 돌아가셨다.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을 위시하여 송 선생님의 신앙 50주년 기념 추억 문집에 글을 올려주신 분 가운데 여러분들이 떠나가셨다. 함석헌, 송두용, 이찬갑, 박정수, 배계복, 김봉국, 유달영, 노평구, 안정자, 조세장, 장기려, 정태시, 고병려, 박석현, 최태사, 이기백, 양계석, 주옥로, 유원상, 이병렬, 국희종, 노연태, 오승태, 문정길, 김애은, 송인호, 송기영, 김복희 … (편집자 주)


 송두용 선섕과 일본 무교회
 ‘우치무라 선생이 “옳은 것은 기도하면 들어 주신다” 라고 하셨는데 나 역시 송 선생님을 통하여 우치무라 선생에게서 직접 배우신, 기도는 들어 주신다’ 라는 신앙을 배웠다. 또 송 선생은 우치무라 선생에게 처음으로 사사(師事)한 한국인으로서 최후까지 전도와 신앙을 버리지 않은 특기(特記)해야 할 ‘선하고 충실한 종’ 이었다고 생각한다. (同 p208 ‘使徒’ 지 주간 合田初太郎)


 믿음의 아버지 송 선섕님께
 제가 l8세 때 입신하여 오류동 모임에 나가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 만이 나의 구주이심을 알게 되고, 날 위해 주께서 희생의 속건 제물이 되셔 나로 하여금 전적으로 주(主)로 신봉하고, 경외하게 역사해 주셨음을 간증합니다.(同 p135 한석만)


 송두용 선섕님 1주기 추도사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틀 전 베다니의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욕을 먹으면서 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임을 향한 일편단심’을 예수는 칭찬하시면서,“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것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막 14: 9)" 라고 말씀하셨다. 송두용 선생님의 생애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한마디로 이 향유를 부은 여인과 같은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이 아닐까? 송두용 선생님의 일편단심은 곧 무교회 신앙이었다.
 무교회는 지금 도무지 인기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송두용 선생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전해지리라” 하고 아멘.(同 p231 유희세)


 송두용 선생님의 입신동기
 "1925년 이른 봄의 일이다 (이 때 선생님은 21세였다). 나는 외적으로 내적으로 모두 병들었었다. 외적으로는 고도의 신경 쇠약이, 내적으로는 몹시 타락하여 양심은 마비되고 영혼은 사경에 가까웠다. 대체로 인생을 낙관하는 나도 절망과 비관함을 면치 못하였다. 암흑은 밤낮없이 나를 둘러싸고 죽음의 사자는 끈임 없이 나를 추종한다. 육체의 질병, 영혼의 타락, 어찌 번민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몹시 울었다. 그리고 힘껏 외쳤다.‘오호라, 나는 괴로운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할 자 누구뇨? ' 바로 이 때다.
 구원은 의외의 방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쁨과 감사가 넘쳤다. 이 생명의 벗이야말로 나사렛 목수 예수였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심을 명백히 인식하였음으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다. 내가 믿게 된 것은 나의 영혼 깊은 속에서 성령의 빛이 비쳐, 믿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게 하신 주님의 역사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괴수인 나를 무조건 용납하시고 구원하셨다. 구원 받을 수 있는 아무 조건도 공로도 없는 나를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속죄가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와 지극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나는 영원의 생명을 얻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주신 생명의 종자를 우치무라 선생으로 하여금 물주고 거름 주게 하셨다. 과연 하나님의 섭리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 (同 p18-20 유희세)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
                                      호이벨쓰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은 무엇인가?
 즐거운 마음으로 나이를 먹고
 활동하고 싶지만 쉬고
 말하고 싶지만 침묵하고
 실망하기 쉬운 때 희망을 갖고
 순종하며 조용히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젊은이가 힘껏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고도
 질투하지 않고
 사람을 위해 일하기보다 겸허히 사람의 돌봄을 받고
 약해서 더 이상 남을 위해 일할 수 없어도
 친절하고 유화한 것.
 노년의 짐은 하나님의 선물

 

 낡은 마음에 이로써 광을 낸다.
 참 고향에 가기 위해
 나를 이 세상에 연결시키는 사슬의
 고리를 하나씩 벗기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
 이리하여 ,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그것을 겸손히 승낙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최후로 가장 좋은 일을 남겨주신다.
 그것은 기도다.
 손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최후까지 합장을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 위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끝마치면, 임종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오라, 내 벗이여, 내가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고 (흥순명)

 

 꾸밈 없는 신앙의 투사
 송 선생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한 신앙 때문에 가족과 현세에서의 안락과 명예를 희생의 제물로 바치고, 선생님 자신도 제물의 향기가 뻗처올라간 그곳으로 금의환향하셨다. 희생 없이 무슨 선행이든 이루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미래에 언젠가는 한국에도 이토록 신앙 일변도로 희생의 삶을 살다 가신 말(斗)씀(用)의(同 p400 박영호 님의 말씀풀이에서) 사도가 있었음을 우주가 알 날이 있을 것이요, 그리하여 그런 신앙의 거성(巨星)을 한국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그의 죄를 대속해 주신 그리스도 예수님께 영광을 세세토록 돌리게 될 것이다.(同 p49- 50 김유곤)


 세 번째로 떠나신 송 선섕님
 송 선생님은 세 번째로 저의 가슴에 허전함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첫 번째는 장봉, 두 번째는 미국으로, 세 번째는 하늘나라로, 이제는 이 세상에서 영영 안 계신가하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헌 집에서 새 집으로, 고통의 육에서 부활의 영체로 하늘나라에서 자유롭게 기쁨과 즐거움으로 찬송을 부르시며,‘누구든지 이곳에 오려거든 세상 것 다 버리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오라’ , 하시며… 잠시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을 하늘나라로 띄울 수 없으니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적어 본 것입니다.(同 p139 주연숙)


 믿음을 배우는 것은 수영과 같다
 ‘송 선생님의 말씀 중에, 믿음을 배우는 것은 수영과 같다. 수영을 배울 때 물에 몸을 맡기고 머리부터 푹 담그고 몸을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몸이 저절로 뜨게 되어 수영을 할 수 있게 된다. 신앙도 발버둥치지 말고 가만히 전부를 맡기고 있으면 믿을 수 있게 된다고 가르쳐 주셨다. 실제로 그렇게 했더니 믿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 죽든 살든 맡겨야 할 것이라고 배웠다.' (同 p30 성 명주)


 무서웠던 송두용 선섕님!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그간의 기억들을 추려 모은다. ''44년생인 내 나이, 스무 살이 채 되기 전이었으니 몇 십 년 훨씬 전이던가,‘성서연구지’ 를 통해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시골뜨기인 내가 성서연구지 주필 노평구 선생님께 엽서 100장을 시골에서 우송하면서 절반은 송두용 선생님께 전해 달라고 주문하였다. 며칠 후 송 선생님으로부터 벼락같은 질책과 욕설(? )이 뒤섞인 답장이 날아왔다. 〃 어떤 놈이 어른들에게 그따위(?) 것으로, 서울 노선생님 댁과 오류동의 거리가 어딘데 심부름을 시켜? 고약하고 발칙한 놈!" 이라고, 그리고 욕설은 더 게속되었던 것 같다.
 대구 시골뜨기였던 내가 서울의 크기를 헤아리게 된 것은 그다음 상경 이후였으니, 이 엽서건의 답장은 두고두고 내게서 땀을 흘리게 한 기억이 되었다.
 이날 이때까지 내 엽서 100매를 받아 50매를 송 선생님께 전해 주신 노평구 선생님께서는 한 마디 말씀이 없으셨으니, 나는 그 때부터 두 분 선생님을 두렵게 모시는 사람이 되었다.
 한번은 고교 졸업 후 금방, 진학을 못하고 있을 때였는데 오류동 송 선생님 댁을 상경 길에, 그것도 빈손으로 방문하였다. 나의 빈손 방문을 아신 선생께서 노갈 일성, "젊은 놈이 어른께 빈손으로 달랑 달랑 다녀? 어른은 사탕 한 봉지라도 가지고 오는 것을 좋아한다." 라고 하시며 오류역 앞 빵집으로 나를 끌고 가서는 빵을 많이 주문 하신 뒤에 흔자서 실컷(?) 잡수시고 날보고 먹으라고 하셨다. 나와 송 선생님의 만남은 이렇게 무서운(?) 야단으로 시작되었고, 그 때 나는 어린 마음에도 선생님께서는 가식이 없는, 참으로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하신 분이구나 하는 느낌이 더욱 컸었다.
 뵐 때마다 야단과 질책의 연속이었지만 그것이 내겐 선생님의 매력인 양 나는 한없이 끌려들기만 하였다.
 선생님의 승천 소식을 들은 날, 여든이 넘으신 송 선생님 사모님께서 영결 예배 때에 〃나는 예로부터 눈물이 적었던 사람이다. 눈은 보자는 눈이지 울기 위한 눈이 아니라고 생각되었으나, 선생님이 떠나고 나신 지금은 보기 위한 눈이 아닌 그리운 이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눈으로 바뀌었다. 또 이제야 비로소 과부 사정을 겨우 알 것 같다." (여든을 넘겨 함께 사시다가 송 선생님을 떠나 보내신지가 겨우 몇 시간 전인데)라고 하신 말씀은 참 가슴에 남는 말씀이 되었다. 더 자주 뵈옵지 못했으니 아쉬운 마음이 그지없다. 때로 궁동 아드님 댁 2충 창가에서 오래 서 계신 선생님을 보고 사모님께서는 "허구한 날 이렇게 자주 선생님께서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 같아 보였고, 오래 아무도 오지 않으먼 짜증을 내신다.“고 하셨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많은 내 친구들, 가까운 이들을 선생님께 데리고 가서 소개하곤 하였다. 김복희(대학 동창)씨는 여러 해를 무던히도 선생님을 따르며, 때로 샘이 날 정도로 선생님과의 내왕이 잦았는데, 몇 해 전 쯤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비엔나에 선교사로 간 장성덕 목사, 근무하는 학교 강경상, 마상국 교사 등등, 자주도 선생님께 소개드렸는데, 나에게는 그리도 욕을 하시고 질책을 잘하신 선생께서 내 친구들에게는 언제나 깍듯한 예의로 대해 주셨다. 선생님께서 장봉 푸른 학원에 계셨을 적에 ‘성서연구 주관 하계 성서 집회’ 가 그 곳에서 열렸다. 그 때 국악예고에 근무할 때여서 내 학급 아이들 15명 가까이가 참석하게 되어 무던히 큰 무리가 되었는데도 두 분 선생님께서는 손녀들같이 그 미운(?) 아이들을 하나같이 예쁘게 다독거려 주셨고, 온갖 맛있는 것을 일부러 구해 많이도 먹여 주셨다.
(그 다음 다음 해인가 그 아이들 중 한명이 ‘미스 코리아 진(眞)' 에 뽑히기도 했다) . 송두용 선생님만큼 속속들이 따스한 인정을 펴 보이신 분도 드물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그도 저도 못 하여 줄곧 말씀 못 하신 채 누워 계셨고, 말씀은 주로 눈빛으로 하셨다. 그토록 연약하신 중에서도 악수하실 때에는 으스러질 듯이 힘 있게 잡아 흔드심은 더욱 철저히 살아가라고 격려하심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나는 선생님의 눈빛만 보아도 감히 이야기가 통했다고 느껴진다.
 미국에 사셨던 석진영 선생이 오랜만에 서울을 찾으셔서 쫓기는 시간 관계로 송 선생님을 뵙지 못하고 떠나 가시려던 날, 기어이 땅에서는 마지막 대면이 될지도 모르는 선생님을 뵙고 가셔야 한다고 말씀드렸고, 다음날 선생님을 뵈옵고 가셨다고 들었다.
 최근 선생님을 뵈면 10분이고 15분이고 그냥 전혀 눈을 움직이지 않으신 채 주시해 오는 데는 심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선생님의 그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감히 안다고 생각하기에 더한 두려움에 빠졌다.“이놈아! 나는 네 생활을 잘 알아! 돼지처럼 처먹고 사는 일에 코가 빠져 점점 흐릿하여져 가고, 이전에 그 쇳소리 나게 카랑카랑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삶은 무우처럼 멋대가리 없는 놈이 되었느냐?
 우리는, 스승 앞에서 네놈처럼 그렇게 엉터리로 엉성하게는 살지 않았어. 내가 지금 누워 꼼짝 못 하고 있으니 더욱 갑갑하다. 그렇지만 않다면 당장이라도 일어나 네놈의 면상을, 튀통수를 쥐어박았을 것을! 이놈아! 크리스천이 어찌 네놈처럼 그렇게 무기력하게 지친 생활로 허덕이며 사는 것 보았느냐? 예전의 네 모습은 어디로 갔느냐, 이놈아! 이 우라질 놈아! 나는 그 질시, 질타하시는 듯한 눈 빛을 오래 대하고 보면 속이 괴롭고 고통스러워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없고 하여 일어서곤 하였다.
 집에 돌아오면 집사람에게 〃나는 선생님이 무서워 이젠 오류동에 갈 수가 없어 “ 라고 말하고도 또 때가 이울면 두려워하면서도 다시 가서 뵈옵곤 하였다.
 그 두려움의 심도가 더욱 깊었으니 내가 갈수록 부질없는 생활의 나락으로 떨어져서인가 아니면 선생님의 영안이 하나님께 가까워져서 그런가, 아무래도 두 쪽 다 옳았다고 여겨진다.
 정말 괴롭고 무서워서도 선생님을 다시 뵐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돌아가셔서 나 자신 질시의 그 눈빛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기까지 하였으니, 나는 스승을 가진 자가 아니요 오히려 스승을 저버린, 배역하고 팔아먹는 가롯 유다가 아니었던가 하는 고통을 갖게 된다.
 내가 사모님께 선생님이 무서워서도 자주 와 뵙지 못했다고 했더니,“이 바보야, 뭐가 무서워. 할아버지가 얼마나 네 생각을 하셨는데.” 라고 하셨을 때에는 한없는 서글픔이 가슴에 밀려온다.
 내가 결흔한 후로는 집사람을 그리도 아껴 주셨고, 종종 미국 L.A.에 사시는 외사촌 최도찬 형네 가족 얘기도 많이 해주셨다.
 그렇게까지 꿰뚫어보면서 질책을 가해 주셨을 때가 나는 행복하였는데, 언제쯤 나도 철이 들어 사람 구실을 하게 될까? 선생님의 온 갖 모습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同 p57 흥정표)


 푸른 할아버지를 닮지 않고서는...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다 (마태 7: 21) . 많은 분들이 푸른 할아버지(송 선생님)를 ‘아버지’ 혹은 ‘선생님’ 이라고 부르고있다. 마치 2천 년 전 이스라옐사람틀이 예수님을 ‘주’ 또는 ‘선생님’ 이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 분들이 할아버지를 닮지 않고는, 할아버지께서 사시던 것같이 살지 않고서는 그 호칭들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同 p151 배은선)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울어도 못하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믿으면 하겠네. 찬송가 343 장의 앞절 가사이다.
 성서신애 2010년 7월호 p46에는 내촌선생 초기강습회의 ‘쯔노하즈 12인조’ 로 칭하는 앞길이 양양한 제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불같은 기독자의 열정으로 똘똘 뭉친 초기 이들 12명중 일곱 정도가 신앙을 버리고 배교자가 되고 말았다’ 고 소개되고 있다 (성서신애 제 346호, 내촌의 제자들: 김복례) .
 마가 5: 25-34절에 예수의 옷에 손을 대고 혈루증을 고친 기사가 나온다.
 많은 이들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숱한 이적의 현장을 목격하였고 그 분을 존경하고 그 분의 말씀을 믿고 따라다닌 이야기다. 그 때나 지금이나 예수님을 흠모하며 따르고 연구하고 추종하는 이들이 많다.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에 다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가 있다고 했다. 송두용 선생님의 입신 동기에 보면 울어도, 참아도, 힐써도 해결이 아니된 고뇌의 흔적이 보인다. 내 죄에 대한 깊은 죄책감과 절망감으로 울어보지 못하고, 참아보지 못하고, 힐써보지도 못하고 믿을 수 있을까? 한국 교회의 병폐가 여기에 있다고 여겨진다. 너무도 쉽게 믿음을 고백하게 하고 약식 세례형식을 거치면서 신자로 대량생산(?)한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보라. 혈루증 환자는 예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을 줄 알고 그리하였다. 예수를 따라 다녔던 자들, 표적과 기사에 매료된 자들, 온갖 소문으로 예수에 대한 지식이 많았던 자들 중에 그 여인만이 예수의 옷 가를 만져서 해결(병고침)을 보았다. 제자들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예수는 아셨다. 예수님과 1:1, 단독으로 만났다.
 이스라엘아 ( 여러분들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아모스 4:12).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여호와께서 민족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 - 셀라-(시편 87:6)
 본인은 30 여 년 전 사기를 크게 당하여(대구에서 갖고 온 집을 다 날림) 감당키 어려운 긴긴 시간을 고통 중에 지나보냈다. 나 역시 예수님을 오랫등안 따라 다녔다가 어느 날 주님의 옷 가에 손을 댔다. 십자가의 은총을 체험하였고 다메섹 도상의 사도 바울을, 내촌 선생의 신생을, 송두용의 입신을 감히(?) 공유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다. 하나님께선 27, 8년간의 간절한 기도에 크나큰 선물로 마침내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께선 이 못난 죄인을 구원해 주셨다. 힘든 세월을 통해 주님께 매달리게 해 주셨고, 겸하여 넘친 축복으로 당신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셨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여 평안할찌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후 l3 : 11).

 

 

p24(394)~37 (407)
성서신애 제347호 (201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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