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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선물
                                                                            (2010. 5. 16. 김교신기념강연회에서)
                                                                                                                     손 현 섭

A. 시작하는 말

 

 우리에게는 꽤 많은 기념회가 있다. 먼저 가신 신앙의 선생님들의 이름을 걸고 모이는 강연회이다. 일반 교회에서는 보기드문 일인데 우리는 그분들이 그립기도 하고, 그분들의 신앙을 생각하자고 모이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하늘에 계신 선생님들은 ‘죄인의 괴수인 나의 이름을 걸고 강연하는 모임을 중지해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분들이 남긴 글을 보면 자신을 그저 말할 수 없는 죄인이라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 서서 말하고 있는 나야말로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아프게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B.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구로사키(黑崎幸吉)선생은 “인류에 있어서 최대의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이 문자로 기록되어 성서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천지는 없어지나 주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 천지보다 유구한 이 성서야말로 실로 인류의 최대보물이다.” 라고 신약성서주해 첫머리에서 말하고 있다. (인터넷 웹版 黑崎幸吉 신약정서주해 http://stonepillow.dee.cc) 그런데 이글을 준비하며 읽은 책을 통해 김교신 선생이야말로 이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경이라는 보물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살다간 신앙의 선생님들을 통해 많은 선물도 주셨다. 지상에서 발붙이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위해 "이런 삶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하고 끊임없이 선진들을 보내어 모델을 보여주신 것이 아닐까. 우리 대부분은 김교신 선생을 만날 수 없었지만 그분이 남긴 책과 살아간 생애를 통해 만남이 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때 그때 많은 스승을 예비해 두신다.

 

1. 첫 번째 선물, 성서조선
 김교신 선생의 생애가 남기고 간 첫 번째 선물은 성서조선이다. 그 유명한 창간사에서 김교신 선생은 ‘마음의 전부를 차지하는 그 녀, 조선에게 뜨거운 사랑의 순정을 전하기 위해 정성을 다한 선물, 성서를 드린다.’ 고 밝혔다.
 ‘김교신과 문둥아’ 에 나온 편지 한 토막을 보면 ‘뜨거운 사랑의 순정을 전하기 위한 정성의 선물’ 의 실체를 알 수 있다.
 아 ! 나환자와 함께 울으시는 선섕님, 철없는 소생이 질서 없는 어린 글을 또 올립니다. 보잘 것 없는 소생의 심장에 터져 오르는 감상을 억제할 수 없어 기송하옵나이다. 참담한 불행에서 절망자와 낙망자들이 집거하는 소록도 배후에도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확실함인가, 그리스도의  사랑 그의 신앙 창조의 묘법이 강하게 운동하심인가, 귀 성조지를 대하는 자마다 감사를 아니 올리는 자가 없으며 감격에 넘치는 환희를 아니 띄우는 자가 없나이다, 특별히 감사하옵는 바는 가장 절망되어 연민할 처지에 있는 맹인 형님들이 귀 성조지의 내용을 가문하고 과연 참 진리임을 맛보고 성조지 1부를 구문하기 간원이나, 무산자 중 무산자인 맹인들로서 지대 송금이 극히 어려워 소생에게 바로 말하기가 미안하다고 소생이 친애하는 동생 이군을 통하여 이 말을 전하여 왔습니다. (1935. 5. 21 문신활)
 75년전, 소록도 환우가 김교신 선생께 보낸 편지이다. 적은 무리의 사람들이 성서조선을 돌려읽으며 하나님의 진리를 알아가는 모습, 이책을 자기 것으로 갖고 싶지만 지대가 없어 안타까워하는 모습 등이 눈에 잡힐 듯 다가온다. 그들에게는 한 달에 한 번 뒤늦게 배달되어 오는 성서조선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소록도의 환우들만이 아니었다. 그리스도의 참 진리를 맛보고자 했던 이들에게도 단비와 같은 선물이 되었다.
 어제는 성서조선을 받고 새삼스러이 하나님의 은혜를 한충 더 느꼈습니다. 아니 기쁠 수 없었으며 또 내용 일자 일구가 저로 하여금 ‘옥은 갈릴수록 광채가 난다더니 성서조선의 내용이 꼭 그 모양이로군.' 하고 외치게 했습니다. 1면에서부터 6면까지의 글은 참으로 장관이 아니라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춘몽’ 의 끝에 가서 ‘밭갈이한 소의 땀보다도 더하게’ 라고 함을 읽고는 저는 온 전신이 마치 감전이나 된 것 같으면서 두 눈은 휘둥그레지고 부지중 시선이 지면(紙面)에서 떨어지면서 고개는 번쩍 들리고 엄연한 기운이 주위를 싸도는 것 같았습니다.'아버지여, 도우십소서. 그 선섕님을’ 하고 기도했습니다.(1941. 6. 성조149호 박석현 선생의 편지 )
 몇 십년이 지난 오늘 2010년, 나무꾼같은 나까지도 그분이 쓴 글을 읽고 위로를 받고 있다. 앞으로 한 세기가 훨씬 지난 후에도 하나님께서 김교신 선생을 통해 주고자 했던 ‘정성을 다한 선물’ 을 누군가가 발견하고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되리라 믿는다.
 우리 한국무교회에서 현재 발행되는 잡지가 꽤 여럿이다. 그리스도의 사람, 성서신앙, 성서신애, 성경말씀, 십자가복음, 성경연구, 복음과 신앙, 성서한국 등 얼른 헤아려도 여덟 가지나 된다. 노평구 선생님의 성서연구를 비롯한 이미 폐간된 잡지까지 합치면 더욱 많아진다. 성서조선에서 출발하여 이렇게 많은 책이 나오게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김교신 선생은 잡지를 하면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예수여 ,
 당신을 사랑하기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을진대
 내 입에서 설교를 끊으시옵소서.
 그 나라보다 더 연모하는 생활이 땅위에 있을진대
 한 줄 원고도 이루지 못하게 하옵소서.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함이 절실하옵거든,
 주여 ,
 그 때에 다음달 호의 원고를 쓰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 - 〈 김교신전집〉 제7권, 45쪽. 1939년 3월 14일자 ‘일기’ 에서.

 

 지난해 이진구 선생님으로부터 ‘성서신애’ 지 편집을 맡아 하라는 말씀을 들었다.‘성서신애’ 가 어떤 잡지인가. 너무나 막중한 책임에 주저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선생님께서 발행인이 되어주시고, 권두문을 맡아주시기로 하여 단순히 워드작업과 편집 작업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따르게 되었지만 지금도 떨리는 마음으로 한 달 한 달 이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이 작은 잡지가 어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을 전달해주는 도구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2. 두 번째 선물, 하나님이 섭리하였던 생애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한 사람의 삶을 조망하는 전기를 읽을 때 우리는 그 속에서 불가항력적인 움직임을 보게 된다. 특히 그리스도인으로 살다 가신 분들의 일생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이끌어 갔는지, 왜 그러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는지, 하나님이 그분의 인생여정을 어떻게 간섭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로마서 9장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선택을 받았거나 아니면 오히려 강퍅하게 된 인물들의 사례가 나온다. 야곱과 에서는 태어나기도 전에,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그 길을 정하셨다. 우리의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모세와 대적했던 바로왕을 강퍅하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었다. 이 지구상에 태어났다가 가는 인생들은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다. 그냥 왔다가 가버리는 허무한 인생이 아니라 아무리 작은 자라도 그의 삶은 하나님의 장대한 계획이 성취되어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일본유학에서 돌아온 조선의 젊은이 여섯이 있었다. 그들은 거기서 그리스도인 선생 우찌무라 간조를 만나 참 진리를 맛보았다. 그 진리에 대한 열정은 작은 잡지를 만드는 데 의기투합 하였다. 그들 은 겨우 20대의 아직 어린 청년들이었다. 그러나 창간사를 읽을 때 마다 이것이 스물여섯 새파란 젊은이가 쓴 것인가 놀라게 된다. 하나님은 이 젊은이들의 작은 시작을 섭리하셨다.
 최근 우찌무라선생의 불경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우찌무라 선생은 처음부터 불복을 작정하고 천황칙어 봉독식에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주재하는 자가 ‘예배’ 라고 하니 예수를 믿는 자로서 최경례를 하지 않고 내려온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칙어에 예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후 두세 주간 유행성 독감과 폐렴으로 앓아 눕게 된다. 우찌무라 선생이 병중에 있는 동안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고, 곁국 파면당하고 말았다. 이 모든 소동이 선생의 병 중에 일어 났다.
 혹시나 굴복할 수 있는 여지조차 없애려고 선생을 앓아눕게 만들어 버린 분이 하나님이시리라. 물론 선생은 이를 철회할 분이 아니었다, 불경사건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겨 어느 해 강연중에는 그때 일을 시범까지 보인 적도 있었다. 우찌무라 선생도 우리들처럼 연약한 성정을 가진 분이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이끄는 위대한 사명을 감당하였다.
 이렇게 우리 앞의 선생님들이 살아간 생애를 통하여 볼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였구나.' 하는 감동이다. 그런데 선지자란 화려한 모습으로 오는 것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부르셨던 많은 선지자들과 예언자들, 사사들의 면 면을 보면 민족의 지도자로서 손색이 없는 영웅적 카리스마를 가진 분들도 많았지만 평범한 보통사람의 면모를 가진 사람도 많았다. 누구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러했다.
 김교신 선생의 생애에서도 그런 면을 찾아볼 수 있다. 1938년 일기에서 한 에피소드를 보았다. 김교신 선생 내외는 고향 함흥에 가셨다가 서울로 되돌아오시는 어머니를 마중하러 청량리역에 갔다. 그때 차표를 파는 매표원이 불친절하고, 불성실하여 선생과 싸움이 일어났는데, 말다툼 끝에 김교신 선생은 매표구의 유리창을 맨주먹으로 부수었다. 청량리역에서는 매표원이 잘못하여 일어난 일이어서 유리값을 변상하라는 요구도 없던 일로 하고, 입장료도 받지 않았다. 그때 일을 김교신 선생은 ” 예수의 성전확청과 같은 이 사건을 보고 일반 승객들이 심히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청량리 역원들의 횡포, 태만은 지금 시작된 일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심지어 청색 제복을 입은 철도 품팔이꾼까지 나에게 접근하여 찬사를 말하면서 나의 행동을 지지했다.” 라고 썼다.
 이 글은 불의를 참지 못하는 강직함을 보여주는 일화인데 한편으로는 급한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 김교신 선생의 일기에서 그분도 우리처럼 땅 위에 발을 딛고 살아갔다는 것에 위로를 얻는다. 선생의 일생에 깃들인 하나님의 섭리가 참으로 위대하다. 선생을 보내신 이는 하나님이며, 오늘 우리는 이를 다시 감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김선생에게 화려한 이름과 권력을 주시지는 않았다. 어쩌면 너무나 젊은 나이에 쓰러져갔기에 안타까움마저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한편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애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겨울, 심장수술을 받으신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시고 다녔는데 병원마다 노인들로 가득했다. 어느 때보다 아름다워야 할 인생의 마지막을 고통으로 보내는 것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때 아내가 오오시마도모오 (大島智夫)선생이 쓴 글을 소개해주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라 (에비나 편지 2010년 2월호)
 예수는 제자들에게 예수의 제자라는 증거를 매일 한 발 한 발 십자가를 지고 예수와 함께 고난의 길을 걷는 것으로 요구하신다. 우리는 주위의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왜 이런 고난을 주실까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분에게 동정의 말을 하려다가 그것이 그분의 via dolorosa 1) 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동정은 존경으로 바뀐다.
 나는 신앙의 은사 쓰카모토 선생의 마지막 10여년이 참으로 비참한 고독과 외로운 병상생활이었던 것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생각조차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선생이 성서지식 72호 10쪽에 이미 “나의 생애 마지막은 고뇌고민의 절정인 골고다 언덕이 기다리고 있다” 고 썼음을 보았다. 그래서 그러한 최후를 맞았으며, 그 기간은 선생의 ‘십자가의 길’ , via doloros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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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via dolorosa. ‘비아’ 는 길,‘돌로로사’ 는 고난의, 즉 고난의 길.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으신 80여m의 골고다 언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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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이 고통을 겪을 때 그것이 그분만의 via dolomsa 라는 걸 깨달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아니라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말씀이었다. 그것을 깨달으면 주변의 모든 신앙의 식구들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선물이 된다.

 

 3. 세 번째 선물, 조선에 주었던 사랑
 로마서 9장을 읽으면 첫부분에서 바울의 지극한 민족사랑을 볼 수 있다.“내게 큰 근심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한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것이다." 큰 근심과 고통의 원인은 동족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는 것에 있었다· ‘내가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동족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오기를 바라는 애끓는 심정을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분이 김교신 선생이었다. 옹진 근교의 한 광산에 견학갔을 때 갱내 막다른 골목에서 캄캄한 굴속에 착암기를 잡고 서있는 l5, 6세 가량의 소년의 모습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이후로는 견학에 관심이 없고, 소년이 마치 자기 동생, 자기 아들만 같아 하염 없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을 위해 슬피 우셨다. 군중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한 직후 그 도시를 바라보며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으리요! " 하고 탄식하며 우셨던 것이다.(눅 19: 42)
 나는 얼마전 DMZ 안에 있는 대성동초등학교에서 근무했다. 날마다 들판 저끝에서 휘날리는 인공기를 볼 때마다 참으로 뭐라 말할 수 없는 비애감을 가지곤 했다. 한 해는 직원들과 개성을 방문했는데 그들의 사는 모습이 참으로 가슴 아팠다. 깨진 유리창 뒤에서 커튼으로 몸을 가린 채 몰래 내다보는 눈들, 남루한 웃차림의 아이들, 고단해 보이는 살림살이 등. 무엇보다 생기가 없는 사람들의 표정이 안타까웠다.
 북한에는 아직도 40만의 그리스도인이 있으며, 그중 10만은 수용소에 있으리라 한다.(노컷뉴스 09. 2) 아직 남아있는 수가 7,000이 아니라 40만이라니 놀라운 일이다. 첩보작전 하듯 장소를 옮기며 예배를 보는데 한국의 기독교 라디오방송이나 심지어 핸드폰을 이용해 예배를 보기도 한다.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이라 하지 않았던가.
 대성동에서 북한의 선전마을 기정동을 바라보면서 저 마을 어딘가에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었다. 나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곳곳에 남아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그분들이 자유롭게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C. 끝맺는 말

 

 이글을 쓰기 위해 김교신 선생과 관련된 여러 책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민족에게, 특히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에게 ‘김교신이라는 참 크나큰 선물’ 을 주셨구나 하는 점이었다. 그렇게 큰 선물을 우리 민족에게 주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 그 중 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나는 지금 부족한대로 교직을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김교신 선생이 학교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지도했는지, 직원들과 어떤 인간관계를 맺으며 지냈는지, 또한 가정에서 어떤 아들로 아버지로 살았는지, 무엇보다 어떻게 하나님과 동행하였는지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 짧은 44년 인생을 사셨지만 실제로는 잠자는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그 몇 배를 사신 것이나 같다는 맏씀을 들었던 것 같다. 김교신 선생의 삶을 동경하며 형편없는 그리스도인이지만 말석에서라도 주의 가르침대로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여기 모인 모든 분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 무교회는 상대적으로 적은 무리이다. 그래서 더 욱더 함께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기도해 주면 좋겠다.

 

p37 (351)~45 (359)
성서신애 제346호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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