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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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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문> 

 

  출애굽기 홍해의 기적사건에서 느끼는 소감: 

    재확인되는 인류구원의 확실성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렁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출 14:16→17) 

 

 종로 성경공부 모임에서 강의 중인 출애굽기 공부가 7윌로써 홍해의 기적사건(출 14:15-30)을 막 끝내고 15장의 홍해의 구원사건 찬미가인 ‘모세의 노래’에 들어왔다. 이로써 7:14에서 애굽에 첫 재앙을 내림으로써 시작된 이스라엘인들을 위한 구원 작전은 마침내 구약에서서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구원한 가장 극적인 사건으로 평가되는 이 홍해의 기적에 의해 완결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인들은 당연히 찬미가로써 이를 경탄, 감사, 기념할 일이겠으나 내게는 이 사건에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인류구원의 의지를 깊이 재확인시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먼저, 홍해기적 사건의 주석학적 측면에서는 ‘홍해’는 실제로는 바다가 아니라 수에즈만 위의 큰 호수였다거나, 그 사건 자체는 역사에 전혀 기록이 없는 신화라거나, 물 가운데 도보가 드러난 것은 신의 기적이 아니라 마침 초강력 동풍이 불어 물을 밀어붙여 일어난 자연적인 물의 쏠림현상이었다 등등의 의견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이 짧은 글에서는 고대 성경 기록에 의례 나타나는 그러한 견해들과 반론들은 생략하고자 한다. 이 글의 목적이 그 사건의 사실성 여부를 가려보자는데 있지 않고 성서기자가 전하는 그 사건에 암시된 신앙적 교훈을 생각해보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사건이 주는 메시지의 중심은 역시 궁극적인 인류구원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하나님은 홍해사건 전 그 사건을 예언하시면서 모세에게, “내가 그(바로)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출 14:4)고 하셨다. 즉 흥해의 기적사건에 의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바로와 그의 군대의 몰락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고, 애굽인들에게는 여호와를 깨닫게 하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 목적들은 얼핏 별개로 보이지만 성서적 관점에서 성서의 다른 구절들과 함께 생각하면 이들은 모두 궁극적으로 인류의 구원으로 모아지고, 구원과 별 관계없어 보이지만 결국 그것을 가리키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는 점이다. 

 

 먼저, 이스라엘인들의 구원인데 참으로 극적이었다. 이들은 모세의 인도 아래 그들의 집단 거주지라 할 수 있는 ‘고센’ 지역 ‘라암셋’을 빠져나와 애굽의 접경지역인 시나이 사막 가까이까지 나아오는 데는 순탄했다. 그런데 홍해 가까이 진출하여 일단 장막을 치고 휴식을 취하면서 국경을 넘어가려고 모색할 때에 출애굽을 허락했던 바로가 수많은 병가(兵車) 부대를 이끌고 추격해오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이스라엘인들은 순식간에 일대 공포의 수라장으로 변한 것이었다. 이스라엘로서는 보행하는 사람들이어서 급히 도망한다고 해도 곧 따라잡힐 것이었지만 앞에 홍해에 가로막혀 진퇴양난,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그 공포와 충격은 가히 상상하기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탈출을 위해서는 바다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절망 상황에서 그들은 말하자면 실제로 바다로 들어감으로써 전원 구원 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인들의 놀라움과 감격은 ‘모세의 노래’에서도 엿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와 관련 주해자 스튜어트가, “만일 하나님이 이스라엘인들과 애굽인들에게 이런 일을 하실 수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이스라엘이 약속된 땅에 정착하게 하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영원히 지배하실 모든 계획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말한대로(D. K. Stuart, Exodus, p. 337), 이 사건에서 무엇보다 하나님편의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의지와 약속의 신실성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바다를 갈라 길을 만드시는 경천동지(驚天動地)의 사건을 통해서까지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는 이스라엘의 구원이 그 자체의 목적 이상 인류구원의 예표라 할 때, 성서의 이러한 일련의 사 건들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구원의 의지를 확신시키는 메시지라는 생각에 우리는 상도(想到)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 이 사건을 통한 두 번째 목적으로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기 위함’이라고 했다. 전원 죽임을 당한 애굽군대로부터 영광을 그것도 깊이 보면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없고 인간을 위한 것, 곧 인간의 구원과 연관된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에게서 얻느냐 못 얻느냐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항상 찬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인간이 찬미하지 않아도 온 우주가 이미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시 19: 1). 

 창조주께서 영광을 얻으려 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창조주를 잊은 인간에게 창조주를 찬미하는 자가 되게 하겠다는 말씀에 다름 아니다. 아기 예수가 탄생했을 때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노래했다고 했다(녹 2: 14). 즉 그리스도에 의한 인간구원의 의의를 “하나님께는 영광 인간에게는 평화”로 선포한 것이었다. 주해자 반즈(Barnes)는 여기서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표현을 ‘하나님께 찬미(Praise to God)’로 해석했다. 과연 계시록이 계시하는 천상의 장면들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하늘에서의 일은 어린양과 하나님에 대한 찬미가 그들의 일상으로 생각될 정도로 빈번하다(계7:9-10; 14:2-3; 19:1-2,6-7).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하나님께서 인간으로부터 영광을 얻으시겠다는 것도 결코 하나님이 인간에게 높임을 받겠다는 말씀이라 볼 수 없고 깊이 보면 인간에게 필수적인 문제 곧 자기 창조주의 찬미자가 되게, 즉 믿는 자가 되게 하겠다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인간 구원의 뜻과 연결되는 말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 홍해의 기적의 목적 세 번째로는 ‘애굽인들에게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겠다’인데 얼핏 인간 구원과 무관한 듯 보이지만 역시 궁극적으로 인간의 구원과 직결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내가 여호와인줄 알게 하겠다’는 말씀은 애굽의 모든 신들이 있으나 참된 유일신은 이스라옐익 여호와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주목할 사실은 이 말씀은 단지 애굽인들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인들에게도 똑같이 하시고 있다는 사실이다(출 10:2). 그러면 구원사의 관점에서 선민(이스라엘인)과 이방인(애굽인)을 합한 것이 인류라 할 때 하나님은 그 말씀으로써 인류를 향해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아야 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닌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인류 구원사적 관점에서는 그것은 애굽인 따로 이스라엘인 따로가 아니라 온 인류에게 선포하는 말씀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사야는 구원의 날에 성취될 인류의 비전에 대해 이렇게 선포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 (사 19:24-25절). 이를 신약과 함께 생각하면 은혜의 시대에는 이스라엘 바벨론 애굽이 따로 없으며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온 인류에게 미친다는 이사야의 비전이였다. 

 그리고 ‘내가 여호와인줄 알게 하겠다는 말씀은 호세아를 통해 이스라엘에 선포된 말씀에서 그 올바른 의미를 볼 수 있다. 즉 “얘굽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했다.(호 13:4) 

 이렇게 해서 흥해의 기적 사건을 앞두고 모세에게 하신 “애굽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겠다’는 예언의 말씀도 나는 궁극적인 인류 구원의 측면에서 분명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즉 온 인류는 오직 여호와만이 자기의 구원자인 것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으로 역시 인간의 구원에 관한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스도의 사람 제54호 주필 한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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