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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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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문〉

   재림론: 재림신앙은 희망고문인가?

    (계시록 강의 종료소감 관련)

 ‘희망고문’이란 “거짓된 희망으로 오히려 괴로움을 주는 행위”라고 정의된다. 거짓은 아니라 해도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듯도 하여 포기하지 못하고 그저 무한정 기다라면서 보내는 괴로움을 고문에 비유한 것이다. 과연 그런 희망이라면 그것은 그를 살리는 활력소가 아니라 서서히 그의 심신을 피폐하게 하여 죽게 만드는 고문도구가 될 것이다. 기독교의 중요 교의(敎義)인 재림신앙에 대해서도 이 용어를 쓰는 것을 가끔 보게 된다. 불신 세상은 그렇다 치고,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재림자체를 부정하거나 고대의 유물 정도로 치부하며 그 소망을 희망고문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그러면서 종종 사무엘 베케트(Samuel B. Beckett)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난해한 희곡이 그것을 잘 표현한 문학작품으로 인용하기도 한다. 주인공들의 무의미한 기다림을 그 특징으로 하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무한정 기다리지만 결코 오지 않는 ‘고도(Godot)’의 예가 기독교의 재림신앙을 빗댄 것이라는 해석이 가장 널리 인정되는 듯하다. ‘고도’라는 명칭 자체가 신(God)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재림신앙은 희망고문인가?
 나는 지난 해 말경 무교회 모임 이외의 한 기독교 모임 요청으로 2년 여에 걸친 요한계시록 강의를 끝냈다. 계시록은 저자 요한의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 예언으로 시작해서(1:7) 그리스도 자신의 재림 약속(22:20)과 그리스도인을 대표하여 계시 받은 저자 요한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재림에 대한 소망으로 맺는다. 계시록이 강대한 로마제국의 극심한 핍박 하에서 신앙을 지키려는 초대교회의 격렬한 신앙싸움을 격려하기 위한 하늘의 메시지라 할 때 그리스도가 계시록이라는 긴 격려의 메시지의 결론으로서 재림을 약속하고 계시 받은 요한이 이를 간곡한 소망으로 기원한 것은 바울의 재림 소망과 함께 기독교에서, 특히 초대교회에서, 재림이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크기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나는 그 강의를 마치면서 다음의 요지로 크게 두 가지를 말씀했다.

 첫째, “계시록을 읽을 때 지나치게 신비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공부한 바와 같이 계시록의 대부분의 묘사는 상징으로 된 것이고 상징은 기독교 역사의 특별한 시기에 그 시대 상황에 따라 다니엘서나 에스겔서, 기타 유대 묵시문학들에서 볼 수 있는 표현방식으로 대부분 기존의 성서의 진리를 표현한 것입니다. 상징을 문자 그대로 읽으려는 데서 이전부터 우리 기독교계에서 많이 나타나는 비성서적인 이상한 해석들이 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신비를 생각하려면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역사에 들어오신 사건, 그것이 최대의 신비입니다. 그러므로 신비에 관심 있으면 계시록의 상징표현들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더욱 깊이 생각하고 되새기는 것이 건전한 기독교 신앙에 진정 유익할 것입니다"

 둘째, “여기 요한의 재림 소망은 기본적으로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집약된 기원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살인,슬픔, 전쟁, 고통 등 현 질서를 하나님의 창조의 본뜻에서 왜곡되어버린 질서로 봅니다. 그리고 성서는 그러한 왜곡된 질서의 궁극적 해결은 보다 나은 세상을 창조하려는 인간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의 모든 과정을 당신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다스리시는 분의 재림으로 성취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재림을 약속함으로써 경건한 신자들은 그것을 소망하고 믿어온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신약에서만도 재림관련 언급은 직간접 418 회에 이르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즉 재림 문제를 제외해 놓고 성서를, 기독교를, 생각할 수는 없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믿음으로 그것을 받거나 원시 유물로 버리거나 택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단, 재림의 시기 문제는 복음서에서 ‘예기치 않은 때’라고만 막연하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 깨어있는 삶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여기서도 그리스도가 ‘속히 오겠다(22:20)고 약속 했지만 그 목적과 중심점은 복음서들과 다르지 않게 믿음에 굳게 서서 깨어 대비하는 생활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 ‘속히 오겠다’는 말씀에서는 우리는 재림의 시기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깨어있는 삶 여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는 무엇보다 그들이 처한 극한 고난 상황이 아마도 그들에게 재림에 매달리게 한 측면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기독교사에서 종종 오도된 신비주의에 경도된 인물들 중에 독단적 방식으로 날짜를 계산, 예언하여 혹세무민하는 일이 발생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히 잘못된 재림관에서, 특히 그 시기의 오해에서 연유된 것이지 재림 교의 자체에 있지 않다. “그 날과 그 때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는 것, 시기문제의 근본은 이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처럼 알리려고 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인간을 위한 목적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재림과 종말의 시기를 가까운 시기 내로, 늦어도 자신의 세대 안으로, 오해하고 목을 느리고 기다리면서 나날을 지새울 때 재림의 기대는 과연 소망이 아니라 고문이 될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재림은 없어도 무방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되는 필수적 요청이기도 한 것이다. “구름을 타고 오신다”(계 1:7; 마 24:30)든가 하는 재림방법을 들어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그에 대해서는 내게는 대부분의 주석자들의 견해처럼 다니엘의 환상(단 7: 13)에서 유래되어 이후 유대사상에서 널리 믿어지던 묵시사상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여서 기본적으로는 모르는 일이기는 하나 사실상 그런 방법으로 오실 것으로는 거의 생각되지 않으며 재림방식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재림에 대해서는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 24:30), 또는 “ ....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 11)는 천사로 보이는 존재의 말씀 등을 들어 온 인류가 알도록 공개리에 오실 것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인데 이 경우 ‘구름을 타고’ 외에도 ‘하늘에서 내려오심’ 등, 묵시사상의 문자적 해석에서 나온 것이어서 실제로 어떤 모습으로 오실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단정보다 여백으로 남겨두는 것이 바른 자세일 것이다.

 우리가 재림에 대해 견지해야 할 중요한 포인트는 재림의 사실이며, 그것은 구원의 완성으로서 요구된다는 것이 일관된 신약 전체의 증언이라는 점이다. 믿는 자로서는 세부적인 것들은 맡기는 것이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하여 하나님의 구원은 완성된다고 하는 성서의 증언들을 믿고 하나님의 창조의 본뜻이 완성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림의 소망은 결코 기다리다 지치고 절망하는 고통일 수 없다. 그것은 건전하고 바른 신앙을 이끌어 갈 중요한 동력이며 죽음까지도 이기는 힘이다.
 재림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실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메시아가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오셨던 것처럼. 그러나 오시는 시기나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오시는 일 자체가 중요하다. 오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완결되는 일이 중요하다. 믿는 자의 궁극적 소망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원컨대 이 지극히 더디 믿는 자에게도 그 소망을 안고 가게 하시기를!

 

그리스도의 사람 제 52호   한병덕 주필   권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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