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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문> 

‘무교회’ 명칭 문제에 대한 소견

 

 얼마 전 무교회의 어른 되시는 한 선생님께서 무교회 기독교에서 '무교회'라는 명칭을 없애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공식 제안을 하셨다는 사실이 전해져서 여름 전국 집회에서도, 또 그 이후에도 그 문제에 대해 의견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후 아직 명확히 제시되어 나온 결론은 없어 나로서는 이제까지와 같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기왕에 제기된 문제이므로 나로서도 공식적인 소견을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여기 그에 대한 의견을 올린다. 

 

 이를 공식 제언하신 선생님은 그 명칭을 떼어야 하는 이유로 성서는 명백히 그리스도의 교회를 언급하고 있고, 또 무교회가 성서적 정신에 있어서는 진정한 교회인데 굳이 '무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치 않고, 그렇게 해서 또 불필요하게 제도 교회 등 다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오해를 살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나도 예전부터 기본적으로 선생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노평구 선생님이 ‘성서연구’지 폐간 후 제자들 몇이서 동인지 형식의 잡지를 출발시킬 때는 잡지 이름에서 ‘무교회신앙잡지’라는 명칭을 뺏고. 또 ‘성서연구’지를 모방한 나의 전도지에도 ‘무교회’ 명칭은 뺏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다음의 몇 가지 이유로서 ‘무교회’ 명칭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다. 

 

첫째, 김교신,송두용,노평구 선생이 무교회인임을 자임했고, 노평구 선생 때에도 명칭문제가 많이 제기 된 것으로 아는데 선생은 일부러 '무교회신앙잡지'라는 명칭을 선명하게 내 걸고 그 명칭을 끝까지 유지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 노선생님에 있어서는 우찌무라 이후 '무교회'라는 명칭으로 전하는 그리스도교가 위의 무교회 명칭을 사용하지 말자고 제언하신 선생님의 의견과 같이 예수의 복음정신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확신이 그 주된 이유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송두용 선생님도 잡지제목에는 쓰지 않았으나 글 내용에는 무교회 기독교임을 선명히 했던 것이다. 

 

둘째, ‘무교회’는 이미 기독교사에서 고유명사가 된지 오래이며 일본 무교회와 함께 우찌무라 간조의 노선을 따르는 것으로 정착되어있다는 점이다. 

 

셋째, ‘무교회’를 대체할 적절한 명칭도 없다는 점이다. 그냥 그리스도교회 라는 주장은 옳을 수 있지만 그것은 모든 교회가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회라 하여 일반명사가 되어있고 ‘그리스도교’라는 제도 교단과 그 산하 ‘그리스도인교회’라는 매우 유사한 명칭의 교회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무교회의 구별되는 정체성을 나타낼 이름은 불가피한 것이다. 

 

넷째, 나는 사실 시간의 문제일 뿐 의식과 조직과 제도로 지탱되는 교회는 그 가장 중요한 생명력이 상실됨으로 해서 점차 소멸되고 허우대, 껍데기만 남아 버려질 것으로 믿는다. 

 

다섯째, ‘무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제도 교회인들에게 불필요하게 이단으로 오해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생각할 수 있는데, 무교회라는 말만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교회인이 안 되는 것도 아니고 평소 이단시했던 제도교회에서 달리 생각할 것으로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 점에서 무교회가 굳이 오해의 여지가 있는 이 명칭을 사용하기보다 그 명칭을 떼고 본질을 분명히 하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은 한 편으로 옳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찌무라, 김교신, 송두용, 노평구 선생 등의 신앙노선을 따른다고 하면 우리가 그 명칭을 사용하든 안하든 관계없이 무교회인으로 자리매김 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명칭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진리 자체를 추구하고 고수하는 일일 것이다.

 

 선생의 뜻은 이해할 점이 있고 앞에서의 언급처럼  나로서도 한 때 무교회 명칭을 꼭 붙여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의 종교의 영적 특성은 결코 의식과 제도에 의한 것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굳어지면서 제도교회를 살리는 것도 무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하게 된다. 무교회는 교회당과 의식과 제도가 예수의 복음 진리를 대표하는 것으로 행세하는 한 남아서 복음의 영적 생명의 특성을 부단히 외쳐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교회라는 신앙공동체에 속하는 존재라 할때 분명 '무교회'라는 명칭은 자연스럽지 않다. 그러나 그 명칭이 없어지는 것은 제도교회들이 에클레시아 본래의 의미로 돌아올때, 기독교를 제도와 조직과 의식으로 인식하지 않고 무교회가 주창하는 영과 진리와 십자가 신앙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만을 추구하고 전하는 것으로 돌아 올 때, 상호 같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무교회 그리스도교의 '무교회' 명칭이 존속될 필요가 없어지고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어서 사용되지 않게 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람 제 51호  권두문

주필 한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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