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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람
2017.12.09 14:44

루터의 신앙싸움의 칼 - 그리스도의 사람 제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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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문〉

루터의 신앙싸움의 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며 .... "(히 4:12)

 

 기독교 역사에서 이단논쟁 등 왜곡되어가는 기독교가 바로 세워지는 것은 언제나 그 중심에 성경 바로 세우기가 있었지만 기독교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처 유럽 역사, 나아가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일신시켜 놓았다고 평가되는 루터의 저 위대한 종교개혁도 따져보면 이 성경 바로세우기, 혹은 성경 제자리에 갖다 놓기에 불과했다는 생각이다. 그는 유럽을 장악한 막강한 양대 권력인 가톨릭의 교황 레오 10세의 프랑스를 제외한 서유럽 전체를 장악하고 있던 정치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와 싸울 때 그의 무기는 성서 한 권이었던 것이다. 이 거사에 독일 귀족들의 힘을 빌렸다고 하지만 그들을 움직이도록 명분을 제공한 것은 어쨌든 루터가 지적, 선포하는 성서의 말씀이며 그것에 대한 호응이었던 것이다.

 종교개혁이라 하지만 그것을 촉발시킨 루터의 95개조 논제는 면죄부(免罪符)를 판매하는 교황청의 처사가 과연 성경에 부합되는지 한 번 따져보자는는 작은 이의제기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반응에서,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것을, 그 권세가 전 유럽에 떨쳐 있고 그 권위가 하늘을 찌를 듯 스스로 높이 올라앉은 교황은 참지 못하고, 감히 일개 신부가 기어오른다고 욱박지르듯,진정한 성서의 힘이 아닌 성서의 권위를 가장한 인간의 강압으로 제압하려 함으로써 스스로 문제를 키워 결국 보름스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던 것이다. 이때 이 싸움에서 비교 상대가 안 되어 보이는 루터에게는 교황이 가지지 못한 무기, 곧 성경이 있었던 것이다. 교황청 도서관의 장식품으로서의 성서가아니라 비텐베르크 대학 도서관의 루터의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진리의 보고로서의 성경이.

 교황은 추기경들을 동원하고 충성스런 가톨릭 옹호자인 황제를 움직여 루터를 매장하고 여의치 않으면 제거하려는 의도로 보름스 종교재판을 열어 루터를 소환했다. 그러나 진리의 관점에서 보름스 공의회의 재판정에 소환된 것은 루터가 아니라 교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서와 명확한 이성에 의해 유죄임을 입증하지 않는 한 나는 어떤 것도 취소할 수 없고 취소하지도 않겠다”고 선언한 루터에게 교황의 대리자는 그의 유죄임을 입증하지 못하고 오직 권력에 의해 한결같이 우격다짐식으로 루터의 입막음만을 시도하려다 실패하는 것으로 재판은 끝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유무죄를 다투는 성서의 법정에서 유죄임이 입증된 것은 실질적으로 교황주의이며 그 정점에 있던 교황이었던 것이다.

 “성경을 해석하거나 어떤 특정한 해석을 확증하는 것이 교황만의 권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것을 뒷받침할 성경의 증거를 한 획도 들 수 없는 악한 조작이다. 그리고 그들이 성 베드로에게 열쇠가 주어졌을 때 그러한 권세를 받았다고 주장한다면 그 열쇠는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고 전체 기독교 공동체에 주어졌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의 하나인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이라는 글 중 한 부분이다. 그는 여기서 그때까지 기독교계에서 의문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져 온 교황의 독점적 성서 해석권을 문제 삼으면서 그런 논리는 단 한 줄의 성서적 근거도 뒷받침 받을 수 없는, 악마적으로 조작한 주장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시겠다고 했을 때(마 16: 19) 성서해석 권세도 주신 것이라고 강변한다면 그 열쇠는 교황만이 아닌 모든 기독교 공동체에 다 주신 것임이 분명하다며 교황청의 성서 왜곡을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 뿐 아니고 루터는 당시 자신을 파문한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낸 공개장에서도 교황을 향해, “성서 해석권을 귀하에게만 돌리는 사람들은 오류를 범한 것이다”고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권력에게 대담하게 직격했던 것이다.

 독일 사회에 폭발적 관심을 불러오며 루터 생존시에는 95개조 논제보다 훨씬 더 널리 알려졌다는 위 논문에서 교황청의 ‘3대 방패막’(세속권세의 무시, 성서의 최종 해석권, 공의회의 유일 소집권)이라 하면서 루터가 조목조목 비판한 내용들은 교황과의 싸움에서 독일민족의 애국심을 유발시켜 귀족들을 끌어들이려 했다는 평가가 있다. 그런 점이 엿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때 루터의 논리를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기본적으로 성서에 의존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는 독일 민족의 애국심을 끌어들이기에 앞서 성서를 말한 것이었다. 교황청의 오래 굳어진 잘못된 성서해석을, 그럼에도 자타 사실로 믿어 버리고 거기에 권위를 부여하여 진리가 가려진채 인간적 권위로 덮여있던 것들을 제끼고, 제대로 된 성서 말씀을 드러낸 것이었다.

 교황청은 팔모로 생각해도 당치않은 성서해석에 의해 베드로의 수위권을 계승한다는 소위 교황 수위권(首位權)이라는 것을 앞세워 그들의 비성서적 행태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이 권위를 앞세워 성서 해석의 최종적 권위는 교황에게 있다는 논리로 비리를 더욱 공고히 했던 것이다. 이렇게 되어서 또 당대의 유명 지식 계급인 성직자, 신학자들 중 설사 그것이 비성서적임을 알고 있다고 해도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황의 대리자의 면벌부 선전에 미혹되어 별 의심 없이 그것을 구입했던 것도 교황의 그 권위의 인정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교황의 이런 비성서적 행태에 목숨을 걸고 ‘NO’를 외치고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여 독일 국민들에게 읽게 하면서 교황의 수위권의 허구도, 교황 무오설의 허구도 드러내고, 성서에 근거하지 않는 권위를 부정하여 전 유럽을 변혁시킨 종교개혁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의의를 “권위에 대한 믿음을 믿음에 대한 권위로 바꾼 것”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 ‘믿음에 대한 권위’란 바로 교황들을 대대로, “가장 높은 구름위에 올려 아침의 아들 계명성"(사 14:14)이 되게 한 천년 묵은, 교황청의 덮여있던 성경이 아니라, 루터가 그것을 펴서 발견한 진리의 권위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성서는 실로 루터가 가진 유일한 무기, 천년의 허구를 헤집어 진리를 드러낸 좌우에 날선 칼이며, 골리앗을 무너뜨린 다윗의 물맷돌이었던 것이다.

 루터가 성경에 근거해 기치를 든 ‘신앙만의 신앙주의’에 대해 일부에서는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있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새로울 것 없는 교리로서, 어거스틴 때부터 기독교의 움직일 수 없는 핵심 진리로 주장되어 왔던 것이다. 성경을 제대로 보려고 하고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요구에 비추어 자신의 의지라는 것의 한계를 알게 된 사람은 인정하는 것이다. 적어도 구원문제에 있어 자기는 무력자라는 것, 바울의 표현대로 하면 ‘곤고한 자’라는 것, 루터의 표현으로 하면 ‘거지’라는 것, 그러므로 자신은 철저히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자라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 실존의 엄중한 사실이라면 당시에 가톨릭 기독교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믿음+행위라는 구원의 요건은 비성서적인 교리가 되는 것이며,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이고 인간은 오직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뿐이라면 구원에 있어 '신앙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리는 자세인 것이다.

  루터 신학사상을 흔히 세 가지로 압축하여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라 하는데 이 셋을 다시 압축한다면 결국 ‘오직 성경’이라는 하나의 명제로 모아진다. 이 안에 그 둘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오직 믿음’의 교훈도, ‘오직 은혜’의 교훈도, 성서가 증거하고 성서 자체에 토대해서 나온 명제로서 성경은 이 두 진리의 절대 근거가 되는 것이다.

 성경은 루터가 목숨을 건 싸움의 목적이요 동시에 그로 이기게 한 싸움의 도구인 활력을 주는 좌우에 날선 칼이었다. 그 진리는 루터시대뿐 아니라 현재도, 이후로도, 계속 왜곡의 위협을 받으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지켜내도록 도전이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무기는 루터가 의존한 성서 그 자체일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람 제46호  권두문  주필 한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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