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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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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문>
內村 선생의 로마서 9장 애국관련 말씀 소감


 우찌무라 선생의 로마서 강의 중 9장의 애국관련 말씀을 읽으면서 나름으로 기독교인의 애국의 문제를 다시 좀 생각했다.
 선생은 여기서 바울의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다" 등의 말씀을 인용, "자기의 구원에만 열중하고 동포의 불신을 근심하지 않거나 또 동포의 구원을 위하여 열정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아직 신앙이 천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기독교인의 애국의 특성을,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그 사랑에 격려되어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사람을 사랑하고 전 인류를 사랑하게 된 결과로서 저절로 솟아오르는 나라와 동포에 대한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나는 선생의 이 애국관 자체에는 동의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 인류를 사랑하게 된 결과'로부터 나온 애국애족은 국수주의, 배타주의적 애국관과는 거리가 먼 하나님의 인류애 차원 안에서의 나라 사랑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전부터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애국의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무방하겠으나 그것을 강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조심스러워 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왔다. 왜냐하면 사용하는 이가 어떤 의미로 사용하든 '애국'이라는 개념 속에는 불가불 어느 정도 자민족 중심사상이 배어있는 것이고 기독교의 전도 대상인 세상의 일반 의식에 그것은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애국론은 대개 자신의 출생을 섭리적 관점에서 도출해낸 결론일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왜 나를 다른 국가, 다른 민족이 아닌 이 국가, 이 민족 안에 태어나게 하셨는가를 생각하고 그러면 아마 자연스럽게 가까이 있는 내 민족, 내 나라를 위하여 일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일반 직업이든, 구원의 복음사역이든 특정 민족으로 태어난 것이 반드시 자기 민족을 위해 일하도록 섭리 하셨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은 개인의 소명의식의 문제일 뿐이며 다른 민족을 위해 일생을 헌신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화 되는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가 내지 민족사랑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족 사랑처럼 본능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뛰어넘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성서는 그리스도인에게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믿는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마태12:48-50)"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사랑이 이 인간적인 가족애까지 넘어 하나님 차원에 굳게 서있기 때문인 것이다. "국가에 대한 최대의 충성은 진리에 충성하는 것이다."는 말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말씀, 복음의 정신에 닿아 있는 것이다.

 로마서 9장 이하의 전체 유대인 구원론에서 이방인의 사도 바울은 자신의 동족, 유대인들의 불신과 그로 인한 구원의 문제를 고민하는 중에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성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의 궁극적 구원에 대한 믿음에 도달했던 것 같다. 여기 그의 자민족의 불신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속에 깊이 동포애가 배어있고 그들도 구원되기를 갈망하는 간곡한 기도도 읽힌다. 그리고 그러한 심정은 사람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또 바울이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고 하는 말씀에 나타난 바와 같이 모두에게 전도의 채무(債務)의식을 느낄 정도로 모든 민족의 구원을 갈망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바울은 특별히 자기 민족이라서 그렇다고만 볼 수 없고 자신의 혈육 아닌 다른 민족에 대해서도 같은 바램을 가졌을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점도 있다.

 아무튼 우찌무라 선생은 여기서 어느 로마서 주해서보다 '그리스도인의 애국'이라는 테마를 잡아 길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선생 자신이 군국주의 시대에 특히 신앙을 따르려다가 '국적(國賊)'으로까지 몰려 고난을 겪었던 데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점이 있다. 당시 일본의 누구 못지않게 애국심이 강했던 선생에게 비애국자라는 비난에 더하여 '국적'으로까지 몰린 것은 당시의 천황숭배, 군국주의 아래 애국의 가치가 유달리 강조되던 사회분위기에서 세상의 사이비 에국에게 자신의 참된 애국이 박해당하는 것이 특히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선생은 이로마서 주해에서 "애국의 마음에 불타 동포의 구제와 일본나라의 교화를 위하여 일생을 바치려고 결심했던 것이다"고 밝히면서, 바울을 비롯하여 구약의 예언자들, 그리고 루터,밀턴,크롬웰 등의 신앙인들의 애국, 무엇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면서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예수께서 '뜨거운 눈물'을 흘렸는지는 본문에 없으므로 알 수 없으나 예수의 한탄을 그렇게 느낀 우찌무라선생의 나라사랑의 마음이 그 말씀 속에 들어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선생이 참된 기독교인은 기본적으로 참된 애국자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씀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말씀 자체로서 틀린 것은 아니나 이것은 또한 당시의 시대상황을 감안하고 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우찌무라와 같이 시대와 상황이 애국 문제의 부각을 필요로 하는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은 자기 가족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정상적인 인물이라면 본능적인 측면이 있는 것이다.
 근래 자국 우선주의, 자국 중심주의가 점차 애국의 이름으로 세계정치의 추세가 되어가는 경향이고 이에 그 나라 대다수 국민들도 그러한 정치 지도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한꺼풀 벗겨보면 결국 타기해야 할 이기주의인 것이고 이기주의는 개인이든, 국가든, 이성상실을 수반하는 것이고, 그래서 이웃간, 나라간 우애와 평화가 사라져버리는 상태를 그 특징으로 하는 것이다.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시대를 초월하여 정말 강조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생을 통하여 명심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은 조국애, 민족애가 아니라 인간애인 것이다. 글로벌화 하는 세계에서 특히 그런 것이다.
 혹 인류가 민족으로, 국가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형형색색의 꽃들이 조화를 이루어 더욱 아름다운 것처럼 각 국가 민족의 특색에 의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섭리가 아니냐는 주장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 민족이 그 다양성에 의해서 신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하는 것은 이교사상일지는 모르나 성서의 교훈은 아니다. 성서는 오직 한 가지, 국가나 민족의 구별과는 아무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구원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국가와 민족을 초월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되어 하늘에 소망을 두는 순간 그의 마음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자매가 있을 뿐 국경과 민족의 경계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있으면서도 요한이 보여주는 다음의 비전 안에 사는 자인 것이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 21:1)

 

그리스도의 사람 제 46호  2-5페이지    주필 한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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