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Social Fairness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조회 수 18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권두문>


최순실 사태의 신앙적 관점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갖가지 불법적 국정농단 사태에서 거의 모든 국민들이 대통령에 대해 느끼고 있다는 충격과 허탈감에 대해 나로서 생각을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아니 참담해서 생각 자체를 하기 싫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제 이 사건은 이미 벌어진 일, 엎질러진 물이어서 진상이 제대로 밝혀져 대통령을 포함, 관련된 사람들이 상응하는 책임을 지고 사법적 정의라도 제대로 세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 같은 것도, 아니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해방 이후 국가 최고 권력층에서 행해진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 소감이 없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여기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까지 된 원인과 역시 신앙적 관점에서 이를 계기로 향상을 위한 근본적 대책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났다고 해서 분노들을 표출하고 있는 듯한데,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 더 외적인 감정 이상 이를 계기로 좀 내면으로도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 근본에서 문제를 생각해보는 일이 더 중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 나는 우선 부득이 이 사태의 직접적 원인들이라 생각되는 몇 분야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사이비 종교의 번성, 국민의식 수준  
 지금 나라를 흔들어 놓고 있는 이 사달의 최초 발단은 70년대 당시 대통령의 영애였던 박근혜양이 목사를 가장하고 ‘영세교’라는 종교를 설립하며 스스로 교주가 되었다는 최태민이라는 한 사이비 종교인의 영향 하에 들어가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여러 증언과 기록들에 의해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최씨는 결국 교묘하게 대통령의 영애에게 접근하는데 성공하여 그녀를 이용, 호가호위(孤假虎威)하며 갖가지 이권에 개입, 거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근혜양은 당시 정보기관의 경고도, 시일이 지나면서 위험을 느낀 동생들의 간청도, 다 물리치고 최씨를 옹호하며 그를 멀리하라는 권고에 화를 내며 오로지 그와 그의 가족에게 의탁해 왔고 최씨의 사후에는 이제는 그의 영적 후계자라는 딸과 단순한 인간적 친밀관계 이상 깊은 정신적 유대관계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박대통령이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일련의 행동들을 취한 의문은 최씨 일가와의 이러한 관계를 기본적 관점으로 하여 보지 않으면 결코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보도와 증언들을 들으면서 얼핏 예전 한 영상에서 모 사이비 종교집단에 현혹된 딸을 찾아온 어머니에게 딸이 귀가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구원받으려면 가족들도 모두 자기처럼 그곳을 다녀야 한다고 쏘아부치던 모습이 연상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여기서 새삼 참으로 개탄스러운 것은 이 문명시대에도 우리 사회는 이런저런 명칭과 모양으로 등장하여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는 독버섯 같은 사이비 종교배들의 사기에 왜 그토록 취약한가 하는 점이었다. 얼마 전에는 구원파의 실질적 교주라는 유병언이라는 사람의 반사회적 행태들이 몰고 온 결과로 온 나라에 씻을 수 없는 참상을 겪게 하더니 이제는 또 최태민의 '누룩’이 결국 나라를 온통 요동치게 하는 중요한 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왜 유달리 이렇게 사이비 종교가 번성하는가? 기독교 계통만 해도 6-70년대 문선명의 통일교, 박태선의 천부교, 이로부터 독립해 나온 조희성의 영생교, 정명석의 JMS, 안상홍의 증인회, 박옥수의 구원파, 이만희의 신천지, 이재록의 만민중앙교회 등등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어려운데 이들의 추종자들은 왜 그리도 많은가? 특히 근래 무서운 속도로 번성하고 있다는 이만희의 신천지는 이들이 또 언젠가 무슨 일을 내지 않을까 조마조마 할 정도다.
 이들은 예외 없이 세속적 권세와 물욕을 채우기 위해 종교를 빙자하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것으로 주장하여 혹세무민하고 이따금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는 일이 보도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썩은 생선에 파리 떼 모여들 듯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국민 성격은 지성 면보다 감성 면이 두드러져 동양 3국 중 무속신앙, 기복 신앙이 유달리 많고 기독교가 인구비례 인접 다른 나라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일정부분 그런 민족 성격에 기인한다는 견해들도 있어왔고 그에 대해서는 부정보다는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일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쪽으로 해석하여 그렇고, 이 문명사회에서 종교의 사이비성 그 건전성 여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거기에 머물러 있고 그런 것을 추구하기까지 하는 것은 성격상의 감성의 문제, 혹은 소박한 종교성의 문제가 아니라, 학력 여하에 관계없이, 그저 무지몽매의 문제, 저급한 의식수준의 문제일 뿐이다. 어떻게 대학까지 나온 현대여성이 사이비 여부를 판단 못하고 설사 한 때 거기에 빠져 부화뇌동했다고 해도 대통령이 되어서까지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그 점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사이비 종교 특히 사이비 기독교의 번성의 큰 원인은 실례이나 기본적으로 그 토양이 되는 많은 국민들이 국가의 경제, 과학의 발전 정도, 사회의 문명정도와 관계없이, 아직도 저급한 종교성, 낮은 민도(民度)상태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바이다. 혹 사이비 기독교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나 앞에 든 사이비 집단들은 차치하고 기존 제도교회들, 특히 대형교회들이 대형이 된 주 이유가 순수 예수의 복음 그자체를 추구한 결과일 것인가,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인가, 비율적으로 어느 편이 많겠는가를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

 

*공무원, 언론들의 의식수준
 이 사건에서 우리를 또 한탄스럽게 하는 것은 이 지경에 이르도록 그동안의 공무원들의 침묵, 직무유기다. 하수인들은 그렇다 치고 잘못된 낌새를 분명히 알아차렸던 사람들도, 무슨 재단, 무슨 센터 등의 허가 등의 과정에서 도저히 납득 안 되는 업무 지시를 받았던 사람들도, 국정농단의 과정에서 억울하게 쫓겨났던 사람들까지 공무원 중에서는 국가를 위해서 폭로하고 불의에 항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검찰 등의 사정기관도 있으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권력의 부패문제에 관한한 그저 윗선의 눈치보고, 덮고 보는 권력의 하수인노릇 외에 무엇을 했나? 그 많은 이러한 관련 공무원들 중 두셋이라도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안위만 계산하지 않고, 일찍 경종을 울려주었으면 그만큼 일찍 농단은 중단 되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수십년씩 국가의 녹을 먹었던 사람들이 국가가 중심에서부터 곪아 들어가 만신창이 되는 때 오직 몸을 사리고 있었던 셈이었다. 국가의 엘리트라는 사람들의 높은 도덕성은 차치하고 기본적 국민의식도 갖추지 못한 것, 공무원으로서의 그들의 국가 국민의식의 저급성 외에 다른 것이 생각되지 않는다.

 언론은 어떤가? 요새 언론들 특히 종편 방송들의 최순실 사태 취급을 보면 실로 제 세상 만난 듯하다. 이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모든 면에서 권력을 옹호하던 자들이 한 종편방송이 태블릿 PC 발견과 그 안의 내용 폭로로 권력이 코너에 몰리자 이제는 또 일제히 태도를 바꾸고, 그동안 권력층을 옹호하는데 앞장섰던 패널이라는 사람들도 태도를 일변, 권력을 질타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그것을 애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나 내게는 그저 사극 드라마에서나 보던 시류를 따라 변하는 간신배들이 떠오를 뿐이었다. 다른 두 종편들도 그렇지만 저들 중 적어도 이 나라 최대 신문임과 애국 보수임을 자임하는 언론사의 계열방송은 그동안 대체로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를 일찍부터 알고 자료를 축적해놓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일찍 보도해 국가의 불행을 조금이라도 일찍 막았어야 했다. 설사 확실하지 않았더라도 계속 추적해서 보도를 했어야 했다. 아마 이런저런 계산을 하고 있다가 여론이 권력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돌아가자 그제서야 저런 행태를 보이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고 그러므로 저들이 정권의 부정을 고발하는 언론으로 보이기보다는 나라가 이 모양으로 되는데 저들도 공범이라는 생각 외에 달리 생각되지 않는다.
 언론이 6"'70년대 정권을 감시하고 국민의식을 일깨웠던 시절이 있기는 했으나 이제는 오직 보수 진보로 나뉘어 각 진영의 기관지 정도로 전락한 나머지 국민을 일깨우는 언론이라기보다는 보아야 할 것을 못보고 들어야 할 것을 못 듣게 하여 국민을 오히려 깜깜이’로 만드는데 이바지하는 정의감의 몰각을 대하기 일쑤이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사람들이 권력과 결탁하고 스스로 권력이 되어 위세를 부리는 행태, 이는 또한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라 하는데, 저들 또한 누구보다 사회의 엘리트라 자임할지 모르나 이러한 사실들에서 그들의 인격들은 내게는 저급성 외에 다른 것이 생각되지 않는다. 실로 연전의 세월호 사태 때도 그렇고, 생각할수록 근본을 따져보면 이 사태는 내게는 넓은 의미에서 결국은 우리의 낮은 국민의식 수준, 도덕성이 결여된 인격의 문제로 밖에 달리 생각되지 않는다.


*신앙적 관점에서
 그러면 어떻게 할까?
 먼저 눈을 근본으로 돌려 근본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너 나 없이 분노한다. “이게 나라냐7"고. 나는 답변하고 싶다. “그래 이게 나라다. 우리의 나라, 우리의 민낯이다”라고. 그러면 이 무당이 득세하는 나라로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해서,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서한 대통령이 전혀 국민의 의뢰를 받지 않은 여인과 한통속이 되어 앞장 서 헌법을 유린했다 해서, 국민의 공복인 공무원들은 그저 그들의 단순 하수인 노릇이나 했고, 혹은 직무를 유기했다 해서, 그리고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를 깨우치며 이끌도록 사명을 부여받아 사회의 목탁(木釋)이라 불리는 언론은 거의가 사명을 저버리고 스스로 거대 권력으로 부패하여 어느 구석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어 보이는 나라라 해서 우리는 이것을 버릴까?
 결코 그럴 수는 없다. 우리는 이를 계기로 맨 바닥에서라도 일어나야 한다. 그러면 수많은 민중의 시위에 의해서? 정치적 제도를 개선함으로써? 그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러한 일들이 근본적 해결책이 아님은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굴곡진 역사가 잘 보여준다.
 29일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시위대가 청계천 광장에서 20만이 모였다며 비춰주는 TV화면들을 보면서 놀랐다. 주여! “공법을 강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라고 했던 아모스의 외침이 절로 되뇌어졌다. 그런데 조용히 근본에서 이 문제를 생각하면 그런 일 만으로는, 혹은 제도의 변경만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4.19 혁명 후가 그렇고 6월 민주항쟁 후 어댔는가? 정치적 의미의 민주화가 다소 이루어졌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이었는가? 왜 이전이나 지금이나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의 정의의 수준은 변함없이 늘상 이 모양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역시 초점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국민 각자의 의식이 깨어나는 일이 필수다. 진정한 의미에서 각자의 도덕의식, 정의의식을 높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일이 터질 때마다 잠깐 타올랐다 꺼져버리는 조건반사식 울분으로는 이런 상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역시 제대로 된 사람이 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사기관은 그 임무로서, 정치인들도 그들의 직무에서 최선의 방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대미문의 사건이라면 그럴수록 법과 제도의 문제 이상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면서 동시에 진정한 개선을 위해 메시지이기도 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국민의 정신적 성장, 특히 건전한 종교관, 정의감과 도덕성, 정직성의 향상으로 나가는 기회가 되도록해야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신자들은 예레미야처럼, 이사야처럼,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그분을 붙들고 그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 세대에, 내 자손의 세대에, 내 자손의 자손 세대에 소수라도 깨어있는 사람들이 가장 중심으로 힘써야 할 만고불변의 근본책임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람 제45호   주필 한병덕

  • scomsa 2016.12.18 10:47

     마음이 다급해서 올린 본문의 잘못된 철자를 이제 수정했습니다.
    이런 글이 없다면 나라도 올리고 싶었던 내용입니다.
     감정으로 판단하는 사고력으로 고생하는 영혼을 정직하게 지적하고, 용감하게 욕먹는 글들이 있어야합니다.
     속여주면 좋아하는 영혼이 버려지고 마는 우리환경이 된것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키엘케고르와 우리 신앙 키에르케고르의 인생 3단계론과 우리의 신앙 scomsa 2007.09.09
109 그리스도의 사람 ‘신앙과 행위’ 관련 내가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 재론-그리스도의 사람 제53호 scomsa 2019.06.07
108 그리스도의 사람 재림론- 재림신앙은 희망고문인가 -그리스도의 사람 제 52호 scomsa 2019.02.01
107 그리스도의 사람 ‘무교회’ 명칭 문제에 대한 소견-그리스도의 사람 제 51호 scomsa 2018.11.12
106 그리스도의 사람 바울의 속죄론 비판에서 느끼는 것 -그리스도의 사람 제50호 scomsa 2018.08.13
105 그리스도의 사람 다시 부활절에 - 그리스도의 사람 제 49호 scomsa 2018.05.20
104 그리스도의 사람 루터의 신앙싸움의 칼 - 그리스도의 사람 제48호 scomsa 2017.12.09
103 기타글들 건강한 인간이 부르는 영원한 긍정의 노래 file scomsa 2017.07.04
102 그리스도의 사람 송두용 선생의 신앙특성 - 그리스도의 사람 제 47호 scomsa 2017.08.05
101 그리스도의 사람 內村 선생의 로마서 9장 애국관련 말씀 소감 - 그리스도의 사람 제 46호 scomsa 2017.04.07
» 그리스도의 사람 최순실 사태의 신앙적 관점 - 그리스도의 사람 제45호 1 scomsa 2016.12.17
99 그리스도의 사람 세계의 우려스러운 과거 회귀 조짐 - 그리스도의 사람 제44호 권두문2 scomsa 2016.08.04
98 그리스도의 사람 한국 기독교의 소생의 길-복음의 본질 회복 - 제44호 권두문1 scomsa 2016.08.04
97 그리스도의 사람 일본의 ‘전쟁 가능국가’로의 회귀 외 - 그리스도의 사람 제42호 scomsa 2016.01.01
96 그리스도의 사람 비판적 넋두리 - 그리스도의 사람 제41호 scomsa 2015.08.03
95 기타글들 내가 아는 것이 진리인가? file scomsa 2009.03.22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allbaro.net since 2007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