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Social Fairness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조회 수 179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권두문>
1 . 한국 기독교의 소생의 길-복음의 본질 회복


 감리교계통 한 기독교대학 신학과 교수들을 주축으로 “미래교회의 성장 동력"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발표된 내용 중  그 동력은 '복음의 본질 회복'이라고 결론을 내렸다는 기사를 읽고 공감했다. 또한 한국기독교의 폐단들로서 "교회건축에 목메고, 예배는 바알 종교화 되고 있으며 신앙고백과 삶은 분리되었다"는 진단에도 동의할 수 있었다.
 근래 세계적인 이슬람교의 확장과 종교다원주의 사상의 득세, 우리의 대학 인문계 빈사(瀕死)현상이 보여주는 물질주의, 과학만능주의의 압도에 의한 정신면의 퇴조, 남녀노소를 불문한 더러운 향락풍조의 만연, 개인의 자유와 인권, 사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적인 기독교국가라는 나라들에서조차도 비성경적인 소위 '동성결혼' 합법화의 점증하는 추세를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의 진리의 복음의 쇠퇴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 복음자체는 그 진리성에 의해 설 것이지만 하나님 없는 개인과 사회는 필연적으로 심화될 병리현상이 우려되고, 그러므로 나 같은 것도 이따금 인간사회에서의 기독교의 장래 추이에 갚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연초에는 또 기독교 뉴스에, “한국교회의 성장 동력이 멈췄다 마이너스 성장만 안 해도 본전이다’(기독교 한국신문 1. 21일 자)"는 제목의 성장을 우려하는 기사도 있었다.
 내용인즉, 그 결과로서 우선, 신학생들이 특히 졸업을 해도 갈 곳이 없어, 이를테면 지방의 중형정도만 되는 교회에서 부목사를 한 명 청빙할 경우에도 경쟁률이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대 일에 이르며, 그러다보니 교회를 세습받는 자와, 아무리 개인적 능력이 뛰어나도 목회자로 진출하여 성공하는데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사람 등, 교회 안에서도 소위 ‘수저 계급’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요지였다.

 글을 읽으며 기독교의 현저한 퇴조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 한국의 경우는 아직 세계의 전통적인 여타기독교 국가들 보다는 쇠퇴현상이 훨씬 덜 한 것으로 생각되는데도 저렇게 되는 것은 그동안 기독교가 일종의 직업화, 사업화되어 무분별하게 확대되었다가 축소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현상이 아닐까 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교회 성장’이란 대체로 기복신앙의 성장이며, 종종 삯군목자들의 성직을 빙자한 부와, 교권주의 등의 활용수단이 되어 왔을 뿐 진정한 복음전파의 면에서는 오히려 폐단이 되어왔고, 되고 있음은 듣고 또한 목도하는 현실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복음이 기복주의, 물질주의, 세속주의를 이기고 제대로 된 모습으로 명맥이나마 유지되려면 저런 폐단의 토양이 되는 저 ‘교회교’ 신자들의 숫자부터 대폭 감소되는 것이 삯군과 예비삯군들의 숫자를 감소시켜 그나마 이 땅에 순수한 주 예수의 복음이 그루터기라도 남아있는데 중요하다는 생각이어서 실례이나 나는 우리 기독교계의 교인수 감소를 간절히 염원하고있다.


 이제 우리 한국 기독교의 ‘성장’은 제발, 양으로서가 아니라 질로서 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어차피 알곡과 가라지가 섞인 ‘혼합된 단체’라면서 계속 양적 확대에 매달리는 것은 이제까지의 우리 기독교계 현실이 증명하는바 텅 빈, 아니 속은 썩은 허우대만 키울 뿐이다. 그리고 전도자가 교회는 혼합된 단체이므로 자신들로서는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먼저 순수한 예수의 복음 선포에만 모든 것을 걸고, 그리스도의 남은 십자가를 메고, 혼신의 힘을 다 할 때 비로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말이다. 수에 집착하여 가라지를 들끓게 만들고 알곡마저 가라지 되게 하는, 지탄받는 왜곡된 복음을 전파하면서는 결코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이제 우리 기독교계에서 중심이 되어야 할 화두는 교회성장담론이 아니라 복음의 소생(蘇生)담론이고 본질회복 담론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소생은 목회자나 평신도나, 기독교에서 복음의 본질 외에 다른 것을 추구하려 하지 않는데, 곧 복음을 어떤 목적에 이용하지 않는데 있고, 오직 신앙만의 신앙을 전하고 그 신앙을 생활로서 살아내는데 있다. 한국 기독교의 미래는, 아니 시대와 민족과 문화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온 세상의 기독교의 미래는, 기본적으로 이 복음의 본질에 굳게 서 있느냐의 여부에만 달려 있다고 믿어 그렇게 되어가는 것을 보고싶다.
  그런 의미에서 가톨릭에서 배척받은 저명한 가톨릭 신학자 한스큉이 그의 교회론에서, “교회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 자신의 기준으로 삼을 때에만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한 말은 기독교는 언제나 복음진리 그 자체를 추구할 때만 길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 지언(至言)이다.


그리스도의 사람 제44호 권두문1 - 주필 한병덕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키엘케고르와 우리 신앙 키에르케고르의 인생 3단계론과 우리의 신앙 scomsa 2007.09.09
110 그리스도의 사람 홍해의 기적사건;재확인되는 인류구원의 확실성-그리스도의 사람 제54호 scomsa 2019.08.28
109 그리스도의 사람 ‘신앙과 행위’ 관련 내가 믿는 그리스도교 신앙 재론-그리스도의 사람 제53호 scomsa 2019.06.07
108 그리스도의 사람 재림론- 재림신앙은 희망고문인가 -그리스도의 사람 제 52호 scomsa 2019.02.01
107 그리스도의 사람 ‘무교회’ 명칭 문제에 대한 소견-그리스도의 사람 제 51호 scomsa 2018.11.12
106 그리스도의 사람 바울의 속죄론 비판에서 느끼는 것 -그리스도의 사람 제50호 scomsa 2018.08.13
105 그리스도의 사람 다시 부활절에 - 그리스도의 사람 제 49호 scomsa 2018.05.20
104 그리스도의 사람 루터의 신앙싸움의 칼 - 그리스도의 사람 제48호 scomsa 2017.12.09
103 기타글들 건강한 인간이 부르는 영원한 긍정의 노래 file scomsa 2017.07.04
102 그리스도의 사람 송두용 선생의 신앙특성 - 그리스도의 사람 제 47호 scomsa 2017.08.05
101 그리스도의 사람 內村 선생의 로마서 9장 애국관련 말씀 소감 - 그리스도의 사람 제 46호 scomsa 2017.04.07
100 그리스도의 사람 최순실 사태의 신앙적 관점 - 그리스도의 사람 제45호 1 scomsa 2016.12.17
99 그리스도의 사람 세계의 우려스러운 과거 회귀 조짐 - 그리스도의 사람 제44호 권두문2 scomsa 2016.08.04
» 그리스도의 사람 한국 기독교의 소생의 길-복음의 본질 회복 - 제44호 권두문1 scomsa 2016.08.04
97 그리스도의 사람 일본의 ‘전쟁 가능국가’로의 회귀 외 - 그리스도의 사람 제42호 scomsa 2016.01.01
96 그리스도의 사람 비판적 넋두리 - 그리스도의 사람 제41호 scomsa 2015.08.03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allbaro.net since 2007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