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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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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문〉


1 . 일본의 ‘전쟁 가능국가’로의 회귀를 보며


 일본 총리 아베씨가 이끄는 연립여당이 일본을 이제까지의 전쟁포기국가로부터 집단 자위권 행사를 허용하고 자위대의 해외 활동 범위를 대폭 확대하여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드는 11개 안보 법안을 일본의 많은 양심의 소리들을 무시하고 기어이 여당 단독 표결로 입법화 첫 단계를 통과했고, 이를 반대하는 시민 수 만 명의 데모 뉴스를 보면서 인간이 욕심에 지배되는 한 악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반복되는 되는 것이라는 진리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중의원이 여당의 압도적 다수이므로 이후 최종 통과는 명약관화일 것이다. 그 법안에 반대하는 일본의 양심들이 많아 설사 일본 보수주의를 등에 업은 막강한 아베 정부라 해도 쉽게 처리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들을 비웃듯 일사천리로 처리하며 평화헌법의 중요한 정신을 무력화시켜버린 것으로보인다.
 그들은 안보법이 ‘집단 자위권’을 위한 것으로 방어목적이 주된 것이라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러나 패권주의라 해도 국가방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마 오래된 버전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일본을 경제대국에 걸맞게 군사적으로도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대열로 만들겠다는 야심의 발로일 것이다. 2차 대전 때 동양을 지배하던 군국주의 패권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저들 보수우익들의 오랜 꿈이 이렇게 해서 실현되고 있지 않나 생각되었다. 국민 일부의 반대가 있다고는 하나 곧 잦아들 것이라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일찍이 그틀의 지배욕 때문에 옆에서 역사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그들의 식민지배까지 겪은 고통의 경험을 가진 우리의 많은 의식 있는 사람들 안에서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를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아베씨의 저런 성향을 알면서도 압도적 지지를 보내 뒷받침 하는 것이 대다수 일본 국민이며 우리로서는 이를 바라보는 것 외에 별 도리가 없는 것을.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일본이 저 전쟁포기의 평화헌법의 정신을 언제까지나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일 것이다. 시기의 문제일 뿐 그것은 정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충분히 가변적인 가치요 그야말로 이상일 뿐이며 일본 아닌 어느 나라도 그 점 동일할 것이다. 인간사회에 항구적으로 지켜지는 이상이 어디 있겠는가! 해 아래 불변적인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흔히 같은 2차 대전의 개전국인 동시에 같은 패전국이면서도 유대인들을 비롯한 피해 입은 국민들에 대한 독일의 철저히 뉘우치는 겸손한 태도와 평화지향주의를 일본의 그것들과 대비하기를 좋아한다. 과연 현재까지는 그들은 적어도 정치지도자들 차원에서는 일관되게 일본과 비교되는 점이 없지 않고 어느 정도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내게는 독일도 현재처럼 모든 일이 비교적  잘 되어가고, 유럽에서 최강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을 때의 얘기지 만일 일본 옆의 중국의 급속한 부상처럼, 이제까지 그다지 위협으로 느끼지 않았던 나라가 강대해져서 자신을 능가하고 그래서 자신들의 지위가 밀리고 삶이 팍팍해지기 시작하고, 국민들 사이에서 차츰 국수주의적 경향이 세를 얻어가는 경우에도 독일이, 그 정치권이, 계속 이제까지와 같은 기조를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을까  내게는 결코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인류역사가 개인과 민족의 면에서는 이기주의요 국가로서는 패권주의 역사로 간주한다. 곧 그 역사는 죄악사이다. 그렇게 보면 국가나 개인이나 그가 선한 얼굴을 내보일 때는 별 신경 쓸 도전이 없고 편안하고 주위의 부러움을 살 때이다. 그러나 표면적 선한 얼굴은 그때까지 만이다. 상황이 변하고 고난이 찾아오면, 아니 고난이 예상되기만 해도, 그 선한 얼굴은 달라질 수 있다. 점 어떤 개인도, 국가라 해도 같을 것이다. 독일정부도 그렇게 되면 분명 근래의 일본정부처럼 보수 국가주의자들이 세를 얻을 것이다. 고난의 상황이 지속되면 단번에 제2의 히틀러는 나오지 않는다해도 몇 단계를 거치면서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국가주의, 우월주의, 패권주의라는 이기심에 잡혀있는 영혼 안에는 평화’나 ‘공존’이라는 가치는 본질상 존재하지 않는 개념인 것이다. 앞선 지도자들이 어쨌든 소비에트연방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장악하고 있던 동유럽 국가들을 내려놓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강한 러시아를 외치며 우크라이나 내전을 부추기고 크림반도를 합병시키는 러시아 강경파 지도자 푸틴의 행태를 어떻게 볼까  더욱이 러시아 국민들의 80%가 그의 그러한 정책을 지지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엄연한 독립국이었던 티베트를 강제 장악하고 설득력 떨어지는 논리로 그 국민과 세계 양심들의 독립요구를 한결같이 힘으로 탄압,묵살하는 중국의 행태는 또 어떤가. 
  욕망이 강하면 그 앞에서는 인류가 소중한 것으로 지켜온 모든 가치는 외면된다. 겉으로는 지키는 척 할지 모르나 속은 딴판이다. 역사의 교훈도 우이독경이고 염치도 몰수된다. 그런 영혼에게 지배적인 가치는 오로지 욕망의 성취다. 평화와 공존을 말하면서도 욕망과 이기주의 앞에서는 그것들은 항상 구두선(口頭輝)이다. 그때 ‘애국’은 또 그들 국민 대다수로부터 지지를 얻는 추동력이다. 그것은 소수의 양심을 잠재울 수 있는 편리한, 성서의 이른 바 ‘고르반’(마15:5)이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들이나 군인들에 의한 독재와 탄압과 침략과 심지어 살육의 굴곡진 세계 역사에서 자국민들에게 ‘애국’으로 포장시켜 나타내지 않은 것이 있었을까. 
 일본 아베정부의 안보법 강행, ‘전쟁가능국가'로의 회귀 강행에서 우리는 무엇을 볼까  우리 사회의 대체적인 반응은 비판과 우려감인 듯하다. 근세의 뼈아픈 고통을 겪었거나 알고 있는 이들에게 그것은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좀 다른 의미로서 놀랍지 않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단지 믿음의 재확인이었다. 본질상 인간의 죄성에 토대하는 인간사회의 폐단들, 이기심, 우월주의, 반평화, 분쟁등 ... , 각종 욕망과 그것들이 실행되는 외형과 방법은 시대에 따라, 상황이나 문화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그것들을 실행하는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는 것, 아니 변할 수 없다는 믿음의 재확인이였다.
 그리고 역시 남 비판할 것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아담 이후 인간에, 사회에, 국가에, 내재된 보편성향이다. 그런 이기심, 그런 죄성은 우리의 역사, 현대사, 아니 작금의 우리 사회, 정치, 경제, 문화등 전 분야에서, 아니 주위를 볼 것 없이 가장 확실하게, 나 자신에게서 본다. “칼을 처서 보습을 만드는” 정신(사 2:4)은 과연 우리 내면에서 스스로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성 외부에서 오는것이다.
 하나님 없는 영혼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는가  무슨 항존적 가치가 거기서 유지되겠는가  어찌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찔레에서 포도를 기대하겠는가 (녹 6:44).

 

 
2. 기독교인들 앞에 던져진 IS 문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IS)가 세계 도처에서 연속되는 테러로세상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치안이 안전하다고 알려진 강대국들도 최근 이들의 자폭테러 앞에는 거의 속수무책, 그 방비에 온통 국력을 동원하면서 불안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듯하며, 우리의 경우도 그들의 테러 대상국 명단에 올라있다 하여 정부가 ‘테러방지법’까지 발의하며 국회통과를 요청하고 있다는 뉴스다.
 기왕에도 ‘하마스’라는 단체가 주로 이스라엘을, ‘알카에다’라는 단체가 서방국가 중에도 미국을 주 대상으로 테러를 감행하여 전 세계를 두렵게 했지만 이 IS라는 조직은 그 인원과 자금력과 무기와 중동내의 지배영역에 있어, 그리고 살해 대상이 중동, 서방세계는 물론 러시아인, 중국인, 일본인까지 가히 범세계적이고 그 살해방식의 잔혹성에 있어서는, 가히 인간이기를 포기한 전무후무한 광기라 할 정도다.

 

 그러므로 이제 전 세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들의 행태를 어느 한 지역의 문제로 치부하며 방치하고서는 중동은 물론 서양과 동양,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어느 하루도 평안을 누리는 지역은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이 테러집단 문제의 해결의 관건은 결국 좀 더 넓은 의미의 저 해묵은 골칫거리인 ‘중동문제’의 해결로 돌아가며 그래서 이것은 아무리 머리 아프고 싫어도 부딪쳐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한편 그런 줄 알면서도 또한 그 실현은 거의 비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이에 세계는 물론 우리의 언론들에서도 연일 이 테러단체에 대한 소식과 분석기사들을 내놓으며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언론매체는 중동문제 전문가들의 종합된 의견이라며 그 기자의 기명 칼럼으로 “중동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6가지 이유”라는 제목의 분석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그 기사에 의하면 “현재 IS 문제는 저토록 현존하는 세계의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음에도 그 해결은 어려울 전망이라며 매듭이 한 두 개면 풀 수 있지만 종교적, 인종적, 지역적, 경제적 모순과 갈등이 서로 중첩되고 얽혀있어 이의 해결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이었다. 그 주요 근거 6가지를 그 기사는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었다.


1. 기독교 대 이슬람교
 11세기 말부터 거의 200년간 8회에 걸쳐 감행된 원정 전쟁인 십자군전쟁의 과정에서 벌어진 무차별적 약탈과 주민 학살의 한(恨)은 700년이 넘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2. 지배자(백인) 대 피지배자(아랍인)
 '십자군전쟁’에서 기독교를 믿는 백인들에게 당한 이슬람 세력은 20세기 들어 영국과 프랑스가 아랍지역의 지배자가 되면서 이들에게 또다시 지배를 받는 신세가 되고, 현 국경도 대개 서유럽 열강이 정한 것으로 아랍 민족의 자존심에 또다시 큰 상처를 남겼다.
3. 이스라엘 대 범 아랍(이란 포함)
 영국은 회교도들도 성지로 여기는 예루살럼에 이스라엘국을 건국시켜 중동분쟁의 씨앗을 뿌렸고 여기에 미국이 수십 년 동안 이스라엘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어 사태가 해결되기 어렵다.
4. 친미국가(왕정) 대 반미국가(공화정)
 세계 최강 미국은 중동이 러시아 인근이고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이며, 막대한 석유 이권유지와 미국 정, 재계의 유태인 영향으로 결코 그곳을 포기할 수 없다.
5. 수니파 대 시아파
 이슬람교 신자 사이에도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어 갈등 요인이 ‘시한폭탄’처럼 늘 잠재해 있다.
6. 글로벌 스탠더드 대 反문명
 일부다처제, 여성들에 대한 극심한 차별, ‘정교일치’ 체제 등 이슬람 문화, 정치의 특징들은 미국과 서유럽 기독교인의 시각에서는 세계사적 조류와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反문명’으로 인식돼 무시와 멸시의 대상이 되기 쉬우며 서구인들의 이런 태도와 반감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무한 보복을 일으키는 악순환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서구 기독교 문명과 중동 이슬람 문명은 한마디로 ‘물과 기름’이라 할 만큼 공통 요소가 거의 없다.

   <SBS 권종오>

 

 결국 전문가들의 진단은 이 문제를 근본으로 들어가 단순화하면 결국 시초는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뿌리 깊은 종교 갈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 해결 역시 반드시 그 원인으로 돌아가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매듭들은 아무리 복잡해도 최초 엉킨 곳을 찾아 차근하게 풀어가는 것이 첩경이기 때문이다. 현재 강대국들은 저들을 소탕하기 위해 합력하여 군사적 힘을 활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 IS는 유달리 완강하다고는 하지만 종국에는 소멸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동문제는 특히 그 지역의 종교가 거의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기 때문에 어느 특정 테러집단을 무력으로 소멸시켰다고 해서 결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IS가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고,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알카에다가 쇠퇴할 즈음 IS가 발생했고 그 가지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으로, 이집트, 리비아, 말리의 여러 테러단체 등으로 분화, 확산되는 것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동문제는 어찌 보면 의외로 단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서구사회의 머리 좋은 인물들이 해결 못하는 것은 단순한 것을 오히려 복잡하게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즉, 들고 있는 것을 내려놓고 문제를 보지 않고 계속 쥐고 있으면서 문제를 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기독교 문명대 이슬람 문명의 대립이 기본적으로 중동 문제의 중심에 있다고 한다면, 그러면, 기독교편에서는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돌아가서 그 관점에서 문제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때 진정한 기독교정신은 협상에서의 주고받기와도 다르다. 인간의 생각을 물려놓고, 공평을 떠 올리지 말고, 이해손실이라는 계산을 내려놓고, 무엇이 성서적 정신, 예수의 정신인가에서 문제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애의 정신이 다른 무엇보다 크게 보여야 한다. 중동이 주는 석유이권, 그곳의 지정학적 여건이 주는 영향력의 상실에 대한 우려, 회교의 득세에 대한 우려도 일단 다 내려놓고 오직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돌아가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협상의 진정한 상대는 어떤 타인이 아니고 회교도이기에 앞서 나 자신이어야 한다. 나를 이겨야 한다. 그렇게 보면 너무 복잡하게 얽힌 것으로 보이는 중동문제는 문제 자체가 얽힌 것이 아니라 사실은 해결에 임하려는 당사자들의 마음이 얽힌 것이다. 이해득실의 계산이 그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얽어매고 있기 때문에 자기주장만 되풀이 하다가 어렵다고 방치하여 문제는 현재와 같이 악화일로를 걷고 해결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의 눈에 단순하게 보이는 것이 머리 좋은 사람의 마음에 복잡하고 어렵게 보이는 것은 대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를 단순히 이상이라 생각할 때, 계산으로 따지고 의표에 솟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때 그 해결은 불가능한 것이고 과연 가장 풀기 어려운 난제 중 난제로 계속 남고 ‘테러 보복’의 악순환은 반복되거나 피차 돌이킬 수 없는 비참으로 끝날지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께서는 지금 전 인류에게, 특히 해결의 가장 큰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에게, 하나의 도전거리를 던지고 계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날로 흉포화해가는 IS를 통해서 날로 중동문제의 해결을 옥죄고 계신 것은 아닐까?   곧, 중동문제의 해결은 기독교 문명을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과연 기독교인인지 그 증거를 보이라고 제시하신 시험대가 아닐까?   세계 도처에서 악을 저지르고 있는 자들은 반드시 상응하는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엄숙한 정의다. 그러나 세계의 기독교인들에게는, 특히 기독교국이라는 서구 열강은 지금, 저 “붉은 말을 탄자"(계 6:4)를 넘어뜨릴 방안으로 기독교인 됨을 보이라는 하나님의 엄숙한 요구를 받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리스도의 사람 제42호   주필 한병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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