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Social Fairness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조회 수 318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세월호 참사를 돌아보며
- 참사 후 100일에-

 

 

1. 참사를 돌아보며


 우리는 지난 4월 16일 악몽이었으면 하며 되 뇌이고 또 되 뇌였던 현실을 겪었다. 대형 여객선이 침몰하여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인 승객 300여명이 산채로 밝은 대낮에 바닷물 속에 잠겨가는 것을 수 많은 국민들이 빤히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다 속수무책으로 수장시켜버렸다. 이를 일컬어 혹자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그 비극성에 있어 가장 충격적인 사고"라, 혹은 "전시(戰時)가 아닌 상황에서 한 사회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라 비탄해 했고, 또 어떤 이는, "바다 속으로 침몰한 것은 세월호가 아니라 대한민국호다"고 개탄했으며, 또 다른 이는, "이 참혹한 사건이 일으킨 충격은 너무 커서 한동안 우리의 현실감을 박탈해버렸다. 비탄이 하늘과 땅을 덮어 나라를 거의 신화적인 비극의 세계로 바꿔놓았다"고 한탄했다. 진정 그 절망, 그 좌절, 그 충격은 온 나라를 한동안 정신적 공황상태로 몰아 넣었다. 정말 결코 되 뇌어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이제 그 참극 후 100일, 이를 되 뇌이는 것은 깊은 상처를 헤집어 놓는 고통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문제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믿는 자라면 이 참극에 대한 나름의 신앙적 판단은 필수라는 생각 때문이다. 신앙적 관점에서 이 참극은 우리에 대한 의심의 여지없는 하나님의 징벌이다. 그러면 우리가 왜 이토록 가혹한 징벌을 당했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매를 드신 분에 대한 우리의 필수적 반응이어야 하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그 해답을 찾아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 저 희생된 아이들에 대한 남은 자들의 작은 도리이기도 하다.

 

 

2. 참극의 원인: 이 사회의 총체적 부실


 이 비극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인재로, 이 나라의 총체적 부실이 초래한 참극이라는데 이견이 없는 듯하다. 정부시스템에서부터 선박관리, 운항, 위기대응체계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제대로 작동된 것이 없이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속살을 드러낸 사건이라고들 한다. 인간의 생명보다 재물에만 눈이 멀어 폐선 직전의 배를 들여와 무리하게 구조 변경하여 배의 복원력을 상실케한 인격파탄의 기업인, 기울어지기 쉽게 배를 망가뜨렸는데도 증축허가를 내주고, 과적을 눈감아 출항을 허용하며 원칙과 안전을 도외시한 관계기관들, 아이들에게는 위험하니 요동하지 말고 선실에 조용히 기다리라 방송해 놓고 자기들은 다급해지니 선실에는 대피하라는 방송도 안하고 탈출하기 급급했던, 최소한의 직업윤리마저 팽개친 선원들, 배가 기울었다는 소식을 한참이나 몰랐고, 침몰 현장에서는 제 발로 탈출한 사람들 말고는 단 한 사람도 구해내지 못했고 적극적인 구조를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는 해양경찰, 구조 지휘와 지원은커녕 희생자 수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기만 했다는 정부부처들, 청와대....
 이에서 드러나는 저 금전만능주의, 저 고질적인 민관유착, 저 무책임.... 이 참사를 통해 드러나는 우리의 자화상은 이것이 결코 특정한 몇몇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며, 우리 사회 전반의 가치요, 의식(意識)으로 자리 잡은 망조(亡兆)현상임을 부인할래야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3. 우리가 보여야 할 자세, 가야 할 길

 

 그렇다. 그 사건은 어느 한 곳의 부패가 아니라 이 나라 요소요소가 내적으로 썩은 총채적 부패의  외적 표출이었다. 속에서 끓고 끓다가 솟구치는 화산 마그마의 분출처럼, 혹은 악종의 종기처럼, 표면은 멀쩡하게 보였지만 그 아래는 썩어 고여 오는 고름이 피부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터져 나온 형국이었다.
 그 참담함!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온 가슴이 저려온다. 구조될 줄 믿고 '가만히 있어라'는 방송에 순응한 학생들, 물살이 이미 배 안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에서도 농담까지 하며 구조될 줄 믿고 기다리던 천진한 아이들을 우리는 물속에 가라앉혔다.

아! 이 숨막히도록 충격적인 비극이 진정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했다.

 그런데 세상은 이 충격에 놀라고, 그 사고 책임자들을 찾아 처벌하고 제도를 보완하면 그것으로 해결될 줄 알지 그 근본에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가를 모른다. 사회전반에 만연된 도덕성의 부패, 거기에 기인된 참된 인간가치의 왜곡을 못 본다.
 근본 원인을 못 보니 근본대책을 세우는 일이 난망이다. 세상 제도적으로는 철저한 대책을 세우겠다고 대통령으로부터 결의가 대단한데 제발 그 일은 그 일대로 이뤄지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솔직히 그것마저도 제대로 될지, 사고 이후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회의심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설사 그 계획이 이루어졌다 해도 개개인의 의식 자체가 변하지 않는 제도적 개혁만으로는 결국 "도로세월호이전"이 되는 것은 명확관화다. 이래서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은 그 전과 후로 갈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옳은 말이며 뼈저리게 거듭나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상 내적 변화,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는 문제인데 무슨 동력으로 그렇게 할까?

 

 여기서 나는 다시 사람을 죽여서 새 사람으로 살려낼 수 있는 기독교를, 그리스도의 권능을, 생각하게 된다. 한 나라, 한 사회가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우선, 한 구석에서부터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민족이 세움을 입기 위한, 아니 생존하기 위한 필수 요건이다.
 이 전무후무한 참극의 신앙적 의미를 생각할 때 나는 하나님의 진노 앞에 자신을 드려 인간의 살길을 여신 그리스도밖에, 우리가 그분께 이 문제를 가져가서 그의 긍휼에 의존하고 거기서 해결책을 찾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만이 답이라고 생각된다. 이 나라 기독교의 중병상태만을 생각하면 비관적일 수 있으나 하나님의 긍휼에 있어서는 어디에나 '남은 자 7천인'은 있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신앙인 각자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야훼 앞에 선 아브라함의 자세(창18:23-32)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저 아이들은 우리의 잘못 때문에 희생되었고 더욱 신앙적 관점에서느 분명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희생된 점이 있다고 믿는다. 어른이 아니고 어린 학생들이 집단 희생되어 슬픔이 그 유가족에 국한되지 않고 그 비극성이 온 국민을 트라우마 상태로 몰아넣어 극대화된 의미를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는 진정 하나님 앞에서 그 의미를 바로 파악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심판받았다는 사실을 뼈 속 깊이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참사에서 "너희가 어떻게 응답할 것이냐?" 고 묻는 메시지를 못 들으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믿는다.
 물론 법적으로는 먼저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희생자들과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의 도리이며 신앙적으로는 부족한대로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도 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했다고 해도 그것이 근본에 닿는 일은 아니다. 근본은 하나임 앞에서 이 문제를 보는 것이고 그러면 그분 앞에서 그 책임은 결국 '우리'로 귀결된다. 그러면 또, '너'의 모습에만 시선을 집중하고오염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를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제대로 된 자세라고 생각한다. 저 아이들의 희생을 '나'를 치는 회초리로 받지 않고 '나'를 제외하고 '너'만 응시, 비난할 때 우리에게는 역시 희망이 없다고 믿는다.
 그점에서 구약 요나서의 니느웨 시민의 반응(욘3:5-10)은 한 사회가, 한 나라가, 하나님의 경고를 받을 때 어떻게 응답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귀감이다. 그 이야기가 수 천 년 전의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 시민들에게서 일어난 실제 사건이었든, 고대 한 작가의 신앙적 교훈을 위한 저술이었든, 오늘 우리의 이 엄중한 현실에서는 실제적 요청이요, 반드시 따라야 할 전범(典範)이다.

 

권두문 p2~6

 

그리스도의 사람 제 38호  주필 한병덕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키엘케고르와 우리 신앙 키에르케고르의 인생 3단계론과 우리의 신앙 scomsa 2007.09.09
96 그리스도의 사람 비판적 넋두리 - 그리스도의 사람 제41호 scomsa 2015.08.03
95 기타글들 내가 아는 것이 진리인가? file scomsa 2009.03.22
94 기타글들 청춘 인문학 특강 '내가 빛의 입자라면?' scomsa 2015.07.11
93 성서신애등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 성서신애 406호 scomsa 2015.07.10
92 성서신애등 하나님이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 - 성서신애 제404호 scomsa 2015.05.06
91 그리스도의 사람 고난주간에 - 그리스도의 사람 제40호 scomsa 2015.04.30
90 그리스도의 사람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 그리스도의 사람 제39호 scomsa 2015.01.05
» 그리스도의 사람 세월호 참사를 돌아본다 - 그리스도의 사람 제38호 scomsa 2014.09.08
88 성서신애등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나 - 성서신애 393호(2014년 6월) - p 2 - scomsa 2014.06.04
87 그리스도의 사람 바벨탑 사건이 주는 중요 교훈: 인류구원의 필요성-한병덕 scomsa 2014.05.03
86 그리스도의 사람 2013년 전국 겨울집회(2014/1/3-5일)청강록-한병덕 scomsa 2014.05.03
85 그리스도의 사람 다시 기독교인의 부활을 생각함 - 그리스도의 사람 제37호〈권두문〉 scomsa 2014.05.02
84 그리스도의 사람 사회 이혼율 증가에 대한 소감 - 그리스도의 사람 제36호 file scomsa 2014.01.10
83 그리스도의 사람 북한 핵 문제와 한국이 가야할 길 - 그리스도의 사람 제34호 scomsa 2013.07.24
82 성서신애등 성서공부의 중요성2- 한병덕 - 성서신애 제378호 p12 - p27 scomsa 2013.07.24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allbaro.net since 2007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