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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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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박쥐 홈]

루터김교신의 "하나님"과 "신앙" - 장문강

I. 여는 말 : 21세기를 위한 개혁자 루터와 김교신

새 세기와 새 천년을 논하는 가운데 인류의 희망과 위기에 대한 전망이 교차하고 있으나, 인간의 판단 기준과 사유를 결정하는 요소로서 이성과 신에 대한 이해가 차지하는 비중은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여전히 많은 현대인들이 이성을 따라 합리적으로 산다고 하고, 많은 종교신자들이 신의 뜻에 따라 살고 있다고 한다. 21세기에도 세계를 지배하며 미국식 세계화를 주도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에서 종교는 기독교가 중심이 되어왔고,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는 신도수가 가파른 상향곡선을 그린 데 이어, 일반인의 개인적 삶의 영역뿐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사회적 영역에 미치는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따라서 21세기의 세계와 우리나라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의 해결과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종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여러 학문 분야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일반적으로 기독교 국가라고 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들은, 세계를 무력으로 점령하여 식민지를 만들고 착취를 하였을 뿐 아니라, 같은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을 노예로 사고 팔며 부리고 죽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식민지를 독립시켰다고 하는 20세기 후반에도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를 침공하거나 민주정부를 전복시키고 독재자를 지원하는 등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제국주의적 또는 패권주의적 정책을 계속 써 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다수 종교인들이 일제에 아부하거나 굴복하거나 야합하였으며, 해방 후에도 독재자들을 위한 조찬 기도회에서 축복을 빌어 준 종교계 원로들이 대변하듯, 정치에 대한 아부, 굴복, 야합의 길을 걸은 종교인들이 적지 않다. 한편, 해석은 여러가지이겠으나, 기독교 신도수가 급증한 시기는 독재가 극심하던 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우리는 이것이 과연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고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는 예수의 가르침(누가복음 6:21. 마태복음 5:44)을 따르는 기독교이며 기독교 국가인가 하는 기독교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의심을 뿌리치기 어려우며, 동시에 종교와 정치의 역할과 관계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참된 기독교의 본질과 바람직한 종교와 정치의 관계와 역할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우리는 카톨릭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치명적이라며 종교개혁을 외친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와,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으로 출발한 프로테스탄트마저 구교로 후퇴했다고 무교회(無敎會)를 외치며 "민족을 거듭나게 하려 한 종교개혁자" 김교신(金敎臣 1901-1945)의 "하나님"과 "신앙"에 대한 이해를 고찰해 봄으로써, 근본과 역사에 대한 성찰로 오늘의 종교와 정치에 대한 반성과 바람직한 역할 정립에 대한 시사점을 얻어 보고자 한다.


II. 루터의 "하나님"과 "신앙"

1. 보름스 국회의 루터

칼라일은 루터가 1521년 4월 17일 보름스 국회에 출두한 시점에서 그 이후 모든 문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하면서, "근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이자 "근대 유럽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장면"을 이렇게 그렸다.

젊은 황제 칼(Karl) 5세가 독일의 모든 제후들, 로마 교황의 사절들, 영계(靈界)와 속계(俗界)의 고관들과 함께 거기에 모였습니다. 루터는 출두하여, [자신의 주장을] 취소할 것인지 말 것인지 스스로 대답하게 됩니다. 세상의 영화와 권력은 저 편에 앉아 있고; 그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위해 한 사람이, 가난한 광부 한스 루터의 아들이 서 있습니다.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름스에 기왓장만큼 많은 악마가 있어도 나는 가겠다"고 한 루터가 황제와 제후와 교회의 대표자들 앞에서 주장한 것은 다음의 유명한 발언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나의 글에 대해 성서와 명확한 이성으로써 유죄임을 입증하지 않는 한(나는 교황이나 공의회 자체의 권위를 믿지 않는다. 그들은 자주 잘못을 범하며, 서로 모순이라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취소할 수 없고 취소하지도 않겠다.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다.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성서에 근거해서 자신의 확신을 표명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루터에 대해서 칼라일은 "하나님의 세계는 허울(semblances)이 아니라 진실 위에 서 있다. 인생은 진실이다. 거짓이 아니다"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외치는 사람이라면서, 교황에게 대해서도 하나님의 진리 위에 서서 논박했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교회(God's church)는 허울이 아니다. 천국과 지옥도 허울이 아니다... 가난한 독일 수도사인 내가 여러분들 모두보다 강하다. 나는 홀로, 친구도 없이 서 있지만, 하나님의 진리(God's Truth) 위에 서 있다. 교황의 관, 삼중관(三重冠)을 쓰고, 보물과 무기, 영계와 속계의 위협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들은 악마의 거짓(the Devil's Lie) 위에 서 있다. 결코 강하지 못하다!
이와 같이 루터가 당시 절대 권력을 갖고 있던 교황과 황제와 제후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루터가 하나님을 절대 신앙하는 가운데 자신은 하나님의 진리 위에 서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루터의 확신과 용기의 원동력인 루터의 "하나님"과 "신앙"은, 현대인의 신 개념과 큰 대조를 이루고 있다.

2. 현대인의 신(神)

현대인들이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이신론(理神論, deism)에 의하면, 신은 이 세상을 처음 움직이게 하고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입을 하지 않는다. 신은 인간에게 세상을 맡긴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몽주의와 산업사회 그리고 자본주의가 원하는 신이다. 그들은 세상에 계속 개입하는 신을 견딜 수가 없었다. "상인이나 사업가의 일을 방해하지 않는 신"은 현대 자본주의의 온갖 폐해에 대해서도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현대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우리 인간들로부터 멀리 떼어놓고자 하는 "속세적인 관념"에 불과하다.

종교를 기반으로 했다지만, 국익을 교묘하게 결합시킨 "미국 종교" 또는 "공민 종교"(civil religion)는 온 우주의 전 인류의 하나님을 특정 국가의 이기주의에 봉사하는 신으로 격하시켰다. "기복주의", "황금만능주의"와 "물신숭배"는 정의와 진리의 하나님을 특정 개인이나 소수 집단의 이익을 위한 무당의 수준으로 타락시켰다.

이론과 실천을 분리하는 "시민사회에 동화된 그리스도교"(Verbürgerlichtes Christentum)는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을 죽인 종잇장에 매어 있는 추상적 존재로 거세시켰다.

이러한 현대인의 하나님 관념과 종교로는 루터의 사상을 이해할 수도 없고, 루터의 확신과 용기에 이를 수도 없다. 루터처럼 절대 권력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목숨을 걸고 진리를 주장하기는커녕, 자신의 조그만 이해관계가 손상될까봐 벌벌 떨며 스스로 도피하거나 굴종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적지 않은 현대인의 초라한 모습이다. 루터와 현대인이 하나님의 성격 즉 신성(神性)에 대해서 갖는 이해의 차이는 이렇게 실천과 삶에서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3. 루터의 "하나님"

루터가 믿은 하나님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인간적 차원과 사유를 초월하는 존재라는 것을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만큼 작은 것은 없다. 하나님은 훨씬 더 작다. 하나님만큼 큰 것은 없다. 하나님은 훨씬 더 크다. 하나님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가 이름을 붙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초월해서 밖에 계신 존재이다.

하나님은 육체를 초월하고, 정신을 초월하고 우리가 말하고 듣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한다.

루터가 파악한 하나님의 신성은, 하나님은 살아서 항상 역사(役事)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신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 역사(歷史)의 방관자가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 밖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순간에 모든 일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 루터가 이해한 하나님은 "이 세상의 일에 능동적으로, 결정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입한다." 이렇게 루터의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제후든 황제든 교황이든 겁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루터는 이러한 하나님의 무기는 뜻밖에도 약함에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존재의 힘이란 무엇인가? 약함, 고난, 십자가, 박해 : 이것들이 하나님의 무기이다.
그러나 루터의 하나님은 전능하다. 하나님이 자신의 의지를 이행할 힘이 없으면, 하나님이 아니다. 루터가 이해한 하나님은, 돌을 물로, 모래를 음식으로, 가난을 부로, 죽음을 생명으로, 치욕을 영광으로, 나쁜 짓을 좋은 것으로, 적을 친구로 변화시킬 수 있다. 하나님이 할 수 없는 일이나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은 없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필요 없고, 어떠한 전제도 필요 없다.
나는 하나님의 전능을,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많은 일들을 하시지 않는 능력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실재적 능력이라고 한다.
루터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관할한다. 이 땅 위에 일어나는 일치고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지 않는 것은 없다. 하나님은 "내부의 추진하는 힘"으로서 모든 것을 추진한다.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이 역사하는 것은 우선 자연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이 뜻하지 않으면 나뭇잎 하나도 떨어지지 않는다.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역사 없이는 어느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는 명백하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는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한다. 루터의 하나님은 인류 역사의 흐름을 통제한다. 하나님은 세상에 모든 권위를 세우고 모든 통치자들을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 간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지 않으면, 통치자들은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다. 하나님은 미래를 지배한다. 루터는, 하나님만이 미래에 무엇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고, 우리에게 계시할 수 있다고 한다.

루터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과 선으로 이끄는 인격적 하나님이다. 루터는 사색에 의한 철학이나 신학의 추상적 관념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보았다. 루터의 하나님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며, 비인격적인 운명도 아니며, 숙명론의 무관심한 신도 아니었다.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은 항상 우리 인간들을 사랑과 선으로 대하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항상 역사한다는 것이 루터가 강조하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었다.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는 오직 하나님만 있으면 된다. 인간에게는 "오직 하나님만 필요하다"는 것이 루터의 확신이었다.

4. 루터의 "신앙"

따라서, 이러한 인격적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루터에게 "종교'란 "인간과 하나님의 인격적 관계" 즉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관계를 의미한다. 루터에게 종교적 삶의 전체는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에 근거하고 있다. 루터는 이 인격적 관계, 나-너의 관계(I-thou relation)를 "신앙"이라고 불렀다.

루터는, 신앙이란 하나님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았다. 이 선물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를 붙잡는 하나님의 은혜의 현존이다. 루터는 신앙이란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것을, 즉 신앙의 수용적 성격을 강조했다. 루터에게 신앙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직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요,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이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신앙이란, "우리가 거기서 나와서 거기로 다시 돌아가는 능력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하나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요컨대 루터에게 신앙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줄 때, 그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루터는 이러한 참된 신앙을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승인하는 "역사적 신앙"(fides historica)과 명확히 구별했다.

루터는 죄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보았다. 즉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단절에서 죄를 정의했다. 루터는 "죄"란 단어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고 했다. 따라서 죄란 하나님에 대한 불신(不信)을 의미했고, 불신이란 모든 죄의 근본이었다. 그러므로 불신은 "죄 전체"인 동시에 "진정한 의미의 죄"이다. 루터는 신앙과 불신을 비교해서, "신앙 외에 의롭게 하는 것이 없고, 불신 외에 죄있게 만드는 것이 없다"고 하였고, "주요한 의가 신앙이므로, 주요한 악이 불신"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루터의 하나님의 신성(神性)과 신앙 이해는, "인간에게 영원한 행복을 제공하기 위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객관적, 양적, 상대적 관계의 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루터에게 그리스도교는 객관적이 아니라 인격적이었으며, 양적이 아니라 질적이었으며,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이었다. 따라서 루터가 제기한 이의는 카톨릭 교회 체제 전체에 대한 위협이었고, 파문과 목숨의 위협으로 이어지는 종교개혁으로 연결되었다.

5. 루터의 "안페히퉁(Anfechtung)"

틸리히는, "루터의 하나님 개념은 인간과 그리스도교 사상의 역사 전체에서 가장 힘찬 개념의 하나"라면서, 루터가 대표하는 입장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관점에서만 보고 평가하려는 예언자적 태도라고 하였다. 이러한 예언자적인 하나님의 신성 이해는 루터가 안페히퉁(Anfechtung)을 통해 하나님과 철저한 실존적인 만남을 체험했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루터는 시편 119편에서 전 시편에 제시된 세 가지 법칙 즉 "다윗의 법칙"(David's Rules)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기도, 명상, 안페히퉁"(Oratio, Meditatio, Tentatio; Prayer, Meditation, Anfechtung)을 들었다. 루터는 안페히퉁이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시금석"이라고 하였다.

이것[안페히퉁]은, 모든 지혜를 초월하는 지혜인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옳으며, 얼마나 진실이며, 얼마나 달콤하며,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얼마나 힘이 있으며, 얼마나 위로를 주는가를 당신이 알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또한 경험하도록 당신을 가르치는 시금석이다.
루터는 안페히퉁을 통해 자신도 하나님의 말씀을 깊게 깨닫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자마자, 악마가 그대를 괴롭힐 것이고, 그대를 진정한 박사로 만들 것이고, 그의 안페히퉁(Anfechtungen)으로 그대를 가르쳐 하나님의 말씀을 추구하고 사랑하게 할 것이다. 나 자신... 나의 교황주의자들에게, 그들이 악마의 분노를 통해 나를 그토록 때리고, 억압하고 괴롭혔던 것에 깊이 신세지고 있다. 말하자면, 교황주의자들은 나를 상당히 훌륭한 신학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준 대가로 획득한 명예, 승리, 대성공을 나는 그들에게 기꺼이 주었다. 그것이 그들이 원하는 바였기 때문이다.
루터는 안페히퉁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경험했다. "이미 현 생애에서 연옥의 고통을 내적으로 경험했던 것"이다. 루터는 자신의 이 실존적 체험을 1518년에쓴 "95개조 논제 해설"(Explanations of the Ninety-Five Thesis)에서 서술하고 있다.
나 자신은 실상 매우 짧은 시기에 걸쳐 이 형벌들을 자주 겪었다고 주장했던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형벌들은 매우 크고 마치 지옥과 같은 것이어서 어떤 혀도 적절히 표현할 수 없으며 어떤 펜도 기술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스스로 그 형벌들을 체험하지 않은 자는 그것들을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그 형벌들은 너무 커서 만일 반 시간 동안만 지속된다면, 심지어 1시간의 10분의 1만 지속된다 해도 그는 전적으로 멸절했을 것이며 그의 모든 뼈가 재로 화했을 것이다. 그러한 때에 하나님은 무시무시하게 진노하신 것처럼 보이며, 그와 함께 모든 창조물도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이 순간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의 모든 뼈가 세어지고 그의 영혼의 구석구석은 거대한 고통과 공포와 떨림, 그리고 슬픔으로 가득차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은 영원히 계속된다.
루터의 안페히퉁 이해는 중세의 기도 관행, 하나님의 요구에 합당할 만큼 선한지에 대한 걱정, 임박한 죽음에 대한 공포, 구원의 선택을 받았는지 아닌지 두려운 불확실성 등으로부터 유래한 여러 상이한 경험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안페히퉁은 중세말 수많은 사람들도 경험했다. 이 안페히퉁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나 자기 가족들을 위해서 면죄부를 사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안페히퉁의 경험으로 보일는지 모르나,루터는 면죄부 매입이 아닌 면죄부 부정(否定)의 길로 갔다. 루터의 독특성은 "안페히퉁의 종류가 아니라 그가 이러한 시련을 경험한 강도(强度)와, 그 안페히퉁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신학적인 숙고(熟考)"에 있었던 것이다.

6. 하나님의 수위권(首位權)과 성서

근본적으로 안페히퉁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가치라는 문제, 즉, 어떻게 내가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이 문제는 중세 말기 신학에서 주장한 "행위로 얻는 의"(works-righteousness)와 관련되어 있다. 이 행위로 얻는 의는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으므로 십계명의 첫 계명을 지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루터는 이 행위로 얻는 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자신이 체험한 철저한 안페히퉁을 통해 결국 이 인간에 의한 의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얻는 의"(righteousness of faith)를 주장하게 되었다. 동시에 누구보다도 더 강력하고 진실하게 이러한 은혜와 전능의 하나님에게 하나님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즉 수위권(首位權)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루터의 하나님의 수위권 주장을 슈바르쯔는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루터는 모든 신학적인 사변을 혐오했다. 그런 것들은 의심과 불확실성으로 이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루터는, 먼저 인간과 인간의 가능성을 보고 난 다음에야 하나님을 형이상학적 미봉책으로서 보는 것을 부정했다. 루터의 사상에서는 하나님이 첫 번째 위치에 계신다. "그분으로부터 우리가 유래하고 그분께로 우리가 가는" 하나님, 그분 없이는 우리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는 하나님, 그러한 하나님이 우리편에 계실 때, 오직 그때만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첫 번째 자리(首位權)를 드리는 것이 루터의 사상의 전체를 관통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신성과 수위권(Gottes Gottheit)을 주장하는 루터에게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적인 범주"요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루터는 하나님의 명령을, 명령을 준수함으로써 조금이라도 행복을 가져오게 하는 상대적인 명령이 아니고, 하나님의 의지를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를 요구하는 절대적 명령으로 보았다. 동시에 루터는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으로 보았다. 루터는 성령과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이 성서의 저자라고 믿었고, "성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하여 증거하시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따라서 루터에게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모든 것의 기준이요 중심인 동시에 절대적인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자 하는 사람은 성서를 읽어라.
이것이 루터의 확고부동한 주장이었다.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하였기 때문에, 루터는 보름스의 정치와 종교의 절대 권력자들 앞에서, 자신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자신의 글에 대해 "성서와 명확한 이성"으로써 유죄임을 입증하지 않는 한, 어떤 것도 취소하지 않겠다며 단호한 선언을 한 후에,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하며 하나님에 대해 호소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루터의 성서관과 함께 우리는, 루터의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인 동시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루터의 하나님은 세상과 떨어져 멀리 있지도 않았고, 홀로 말없이 있지도 않았다. 루터는, 우리가 성서의 말씀을 읽을 때는, "하나님이 그것을 말씀하고 계심을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III. 김교신의 "하나님"과 "신앙"

1. 참 한국인, 참 그리스도인 김교신

후에 일본 도쿄(東京)대학 총장을 역임한 '야나이하라'는 김교신이 해방을 못 보고 갑자기 돌아간 1945년, 김교신의 애국과 신앙의 일생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나다니엘이 "참 이스라엘 사람"으로 불리운 것처럼 김교신 씨는 참 조선인이었다. 씨는 조선을 사랑하고 조선민족을 사랑하고 조선말을 사랑했다. 그러나 씨의 민족에는 고루한 배타적인 민족주의와는 달랐다. 씨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 신생한 조선인이었다... 씨는 그리스도에 있어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으로 자신의 애국을 삼았다. 미국식의 천박한 기독교가 아니고, 불신앙의 소련 공산주의도 아니고, 더욱 세속적인 민족운동도 아니고, 권력자에 대한 영합, 협조도 아니고, 순수한 무교회의 복음신앙에 의해 조선인의 영혼을 신생시키고 이를 자유와 평화와 정의 백성되게 하기 위해 씨는 그 귀한 일생을 바친 것이었다.
교육학자 김정환은 김교신의 개성과 업적을, "한국인으로서의 철저한 자각 위에서 복음을 체험한 민족적 기독교의 이념이요, 교회 밖에서 순수한 신앙을 키우며 지키려 했던 '무교회' 이념이요, 그리고 이웃과 고난을 더불어 나누는 복음의 토착화, 생활화요, 그 오욕의 역사를 영광의 역사로 돌려놓기 위한, 섭리의 역사에의 참여 이념이었다"고 지적하면서, "김교신이야말로 한국의 흙으로 빚어져 한국의 흙을 살찌우다가 한국의 흙으로 돌아간 참 한국인"이었으며, "그의 삶과 믿음의 논리"는 "민족적·민중적·토착적 기독교"라고 했다.

한편, 교회사가 민경배는, 김교신의 "찬연히 빛난 그의 민족신앙의 얼"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강직한 마음과 맑은 신앙, 엄격한 계율적 생활과 수도사적 청빈함이 몸매에 넘치던, 예레미야와 같은 눈물의 애국 신앙가 김교신, 그는 민족 교회사의 먼 앞날에까지 구름 기둥처럼 높이 희게 솟아 그 노정을 동행해 갈 것이다. 민족 신앙의 삶과 민족 정신의 도덕적 이상, 그리고 닳도록 몸을 담고 싶은 나라 사랑의 눈길로 함께 갈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같은 기독교를 믿는다는 윤치호와 같은 지식인이 좌절하고 자기를 파괴시켜 가던 시기에, "거의 죽음과 파멸을 자초하는 일이었던" 창씨개명 거부와 신사참배 반대를 끝까지 할 수 있었을까? 끝내는 자신이 주필로서 발행하던 "성서조선"의 폐간과 함께 구속되어 일본 경찰의 취조를 받을 때, 어떻게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는 반드시 망국신민서사(亡國臣民誓詞)가 될 것이다. 이것은 두고 보면 알 것"이라고 당당히 대답하며 1년의 옥고를 비롯한 온갖 혹독한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 어떻게 "애국과 신앙이 일제말의 시련을 극복하는 꽃다운 신앙의 향기를 영원히 우리 민족 교회사에" 남길 수 있었을까?

2. 김교신의 "하나님"

요컨대, 송건호가 지적하듯이, "사대주의가 도도히 흐르는 기독교계에서 그처럼 기독교의 민족화를 위해 헌신한 사람은 없고, 그토록 독실하게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교회와 서양 선교사를 외면하고 오로지 하나님과 성경만을 의지한 기독교인은 없었다." 어떻게 김교신은 그럴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해결의 단초는, 김교신의 신앙의 동지이자 벗으로서 같이 시련을 이겨낸 송두용의 증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김교신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김교신은 신앙의 사람이다" 또는 "김교신은 믿음만으로 산 사람이다" 혹은 "김교신은 하나님 외에 아무도 또 아무 것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김교신의 하나님은, 루터의 하나님과 같이, 인간의 차원과 사유를 초월하는 존재이다.
하나님은 극력으로 공평을 행하시기를 기뻐하시면서 또한 일방으로 심술궂은 일 하시기를 다반사로 아시는 듯하다. 무릇 공평이라는 관념과는 정반대의 행사를 거리낌 없이 허용하실 뿐더러 자진 여행(勵行)하셔서[힘써 하셔서] 자칭 경건한 자라, 독신자라는 무리들로 하여금 그 좁은 염통이 터지게 하시며 그 작은 심장이 찢어지게 만들어 비로소 하나님의 무한대하게 위대하심을 나타내시며 인간의 용렬함을 참회케 하여[,] 단일단으로 영성을 향상시키는 교육에 열중하시는 듯하다.
김교신의 하나님은 일률로 추리할 수 있는 일 개 법칙이 아니며, "죽은 이법의 신이 아니요, 살아 계신 분"이며, "목석과 같은 감각을 초탈한 존재가 아니요, 증애의 정이 농후"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지공무사"한 것이 아니라 "불공평"하다.
지공무사하게 보여서 쾌심한[유쾌한] 때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요, 불공평하게 보여서 답답한 때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공평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좋으나, 불공평한 하나님을 찬송해 내는 믿음은 더욱 좋은 믿음이다.
이와 같이 김교신의 하나님은 루터의 하나님과 같이, 살아서 항상 역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김교신은 루터와 같이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김교신의 하나님은, 실제 역사의 현장에서 자연법칙을 초월하는 전능으로 모든 것을 관할하는 하나님이다.
우승열패의 자연법칙만이 행하여 진다면, 애급의 바로 왕권과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의 영화는 영원히 융성하여야 할 것이었다. 마는[그러나] [하나님께서] "교만한 눈은 낮추신다"[이사야 40:4]. 진시황제의 만리장성도 다만 석괴(石壞)[돌덩이]에 지나지 못하였고, 독일 국민의 교만을 상징하던 카이젤의 수염도 드디어 하늘을 거슬러 자라지 못할 것을 깨달았다. 독일의 육군과 러시아의 기병보다 더 강한 능력이 존재함을 생각만 하여도 떨리는 사실이다.
이렇듯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이 세상 모든 것을 관할한다는 것은, 김교신에게는 이미 인생과 역사의 실험실에서 시험이 끝난 "시험제(試驗濟)의 법칙"이다.
소법칙 위에 대법칙을 발견하는 데서 진리를 배우는 기쁨을 느끼는 바이요, [시편의] 시인과 같이 하나님께 향한 신뢰와 찬송이 약동함을 금할 수 없는 고로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작업하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의 손을 쳐다보면서 세상을 관망하고자 하노라. 불안한 마음으로써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실로 시험제(試驗濟)의 법칙을 재연할 것뿐이다. "교만한 눈은 낮추시느니라"[시편 18:27]고, 누가 능히 낮아지지 아니할 자인고?
이러한 하나님의 인격적인 사랑을, "강한 민족정신을 가진 요시찰인물"로 일본 제국주의 경찰의 탄압을 받던 김교신은 노래하고 있다.
신도에게는 시련이 없지 않다. 때로는 더 많은 듯하다. 그러나 그 시련은 "세상 사람들도 당하는 것" 아닌 것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시련을 내려서 우리를 거꾸러뜨리기를 즐겨하시지 않는다. 우리에게 시련이 과중할 때에는 반드시 피할 길을 예비하여 주신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의 빈틈없으신 사랑을! 무릇 시련에서 피함을 입은 자는 찬송하리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섭리를!(고린도 전서 10:13)

3. 김교신의 "신앙"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산 김교신에게 신앙이란 단순한 말과 행동, 또는 종교의 형식과 의식이 아니라, 삶의 중심과 표준을 바꾸는 것이었다.

믿음이란 그저 말로나 외모의 행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요, 자기의 전 생명을 그리스도에게 넘겨주는 일이다. 종래 자기 표준, 인간 중심으로 살던 것을 그리스도 표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일이다. 자기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로 사는 일이다... 모든 교회 법규를 다 지키고 외양의 행동을 선히 하여도 "나"를 하나님께 바치지 않는 이상 신앙은 아니다... 영혼이 구원 얻기 위하여, 인격이 높아지기 위하여, 가 영생하기 위하여, 가족, 민족이 살기 위하여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아무리 열심이 있고 경건이 있어도 신앙이 아니다.[밑줄: 원문의 방점]
따라서 신앙이란,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묵묵히 믿고 대망하며 의지하는 것이라는 것을 김교신은 자신의 삶으로써 보여 주고 있다.
참말 나의 영혼의 본색은 부르짖어 외치는데 있지 않고 잠잠하게 주를 대망하는 일에만 있도다. 사업도 아니요, 운동도 아니다. 열성도 아니요, 분발도 아니다. 실패도 두려울 것이 없고, 미약함도 염려할 것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진정을 쏟아 부을 것"이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다. 무위무능(無爲無能) 오직 묵묵히 하나님을 바라보니 거기는 나의 소망의 출처로다. 나의 구원과 나의 영화도 거기만 있도다. 한없이 너그러운 안식의 자리, 반석의 성, 어기가 나의 신앙의 본전(本殿)이로다.
동시에 김교신은 신앙이란, 하나님이 아닌 어떤 인간, 조직, 권력, 금력, 전통 등,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믿고 서는 것임을 루터 등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 있다.
지구상에 오직 홀로 남은 때에도 신앙하는 것이 신앙이다. 홀로 설 때에라야 참 신앙이다. 아브라함은 홀로 믿었다. 노아는 독신자(篤信者)들의 단체 속에서 신앙을 부지한 것이 아니었다. 루터는 시국의 대세를 살피어 하나님을 믿는 척한 것이 아니었다. 전세계 대 1 인으로 저는 신앙한 자다. 알지 못하거니와 우리는 이 각오가 있는가. 없는가?
루터와 같이 신앙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파악한 김교신은 죄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파악한다.
죄란 살인강도를 가리킴이 아니요, 하나님을 거역하고 사람이 자기 중심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김교신의 신앙은,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계승한 무교회주의로 나타난다.
교회만능을 주창하는 자,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고 단언하는 자, 즉 "교회주의자"에 대하여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프로테스트한 것, 구원은 교회 소속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라고 정정한 것이 루터의 프로테스탄트주의요, 또한 내촌감삼(內村鑑三)선생의 무교회주의이다. 그러므로 로마 천주교회가 교회주의에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루터의 "프로테스탄티즘"이 생길 필요가 없었고, 신교교회가 교회지상주의로 기형화하지 않았더라면 무교회주의가 생길 필요가 없었다. 무교회주의는 일명 "전적 기독교"(全的 基督敎)이다.
김교신은 자신이 무교회주의를 주장함으로써 받은 "조롱과 핍박과 손실은 뼈에 맺힌 것"이라고 했다. 김교신은 "일찌기 무교회주의의 경기가 좋아서 저마다 무교회, 무교회하던 시대"에는 "무교회 간판 철거의 제의"란 글도 발표한 일이 있지만, "무교회주의의 시세가 크게 불리하여" 전향하듯" 하는 사람이 있는 시대에는 "나는 무교회주의자이다"라는 글로 선명히 자신의 신앙을 증언했다[밑줄: 원문의 방점]. 이것이 그의 무교회주의가 "진정한 기독교"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임을 다른 "순수한 무교회 신자"의 글로써 밝힌다.
나의 무교회란 것은 극히 광의로, 도 정신적으로 해(解)한다. 신구약 성서를 관통한 정신, 그리스도, 바울, 루터의 정신, 기독교의 정신, 과연 우주에 꽉 찬 정기라고 해한다. 나에게는 무교회주의란 것은 진정한 기독교를 의미하는 것이요, 무교회주의자란 것은 진정한 크리스천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회의 유무, 세계의 유무 등은 하등 관계 없다. 무교회주의란 곧 복음, 무교회주의자 곧 신자이다.
따라서 세상의 오해나 비방과는 달리, 무교회주의란, "교회를 타파하며, 교회와 대립 항쟁하는 것과 같은 일을 사명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는 것이 무교회주의의 사명이다. 이 복음을 명백히 하는 결과, 자연히 할례와 교회와 성직이 무용하게 되는 것이지, 그 타도와 해소를 목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본말전도요, 최대의 곡해다. 무교회주의는 환언하면 그리스도의 정신이요, 세인이 생각하는 이상 훨씬 적극적이요, 고귀 심원한 정신이다. 이는 기독교라고 부르는 이외에 적당한 칭호가 없다.[밑줄: 원문의 방점]

4. 김교신의 "호소"

이렇게 하나님과 신앙을 이해하고 믿고 실천하던 김교신에게 현실의 기독교와 사회는 너무나 참된 신앙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오늘날의 신자"에는 "저희 중에 자기 죄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가 없고, "불신자가 누리는 세상 영화에서 털끝만한 것도 빼지 않고 다 누린 후, 천당에 가서 불신자는 못 가지는 복락을 또 한가지 더 얻자"는 "욕심의 변태"에 빠져 있지만, "말마다 하나님의 일"을 찾고 있다.

오늘날의 신자는 말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일은 어떤 것인가?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유치원을 하는 것이다. 농촌사업을 하는 것이다. 하기 이동 성경학교를 하는 것이요, 청년회, 하령회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하기 위하여 불신자에게도 기부를 청하고 남의 보조를 받고 운동을 하고 교섭을 하고 선전을 한다. 거기도 수완이 있어야 하고 책략이 있어야 하고 우량한 성적을 말하는 높은 숫자의 보고서가 있어야 한다.
또한, 전도를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본질에서 불신인, 자기 중심주의와 자기 교파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신자는 전도를 열심히 한다.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 불쌍한 영혼은 끌려서 어디로 가나? 하나님께로 가나, 예수께로 가나? 아니, "우리 장로교"로 가고, "우리 감리교"로 간다. 때로는 좌우편에서 끌어 그 가련한 양은 갈팡질팡하는 수도 있다. 그것을 없애기 위하여 구역의 설정이 있다. 저기는 네 구역, 여기는 내 구역... 예수가 그 구역을 분배하였을까?
김교신이 볼 때, 교회의 신앙은 죽었다. "그 정통이란 것은 생명 없는 형식의 껍질이요, 그 진보적이라는 것은 세속주의다. 이제 교회는 결코 그리스도의 지체도 아니요, 세상의 소금도 아니요, 외로운 영혼의 파난처조차도 되지 못한다. 한 수양소요 한 문화기관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일"이다.
기독교는 그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 다른 종교는 몰라도 적어도 기독교만은 형식에 떨어지고 세속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바로 그 형식의 종교와 세속주의를 박멸하기 위하여서가 아니었던가? 이제 다시 그와 영합하는 것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일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를 생명으로 아는 자가 아니면 안 된다. 그에게 절대 복종하고 절대 신뢰하는 자가 아니면 안 된다.
따라서 오늘날 신자는 전도나 선교나 사업 이전에 자신이 먼저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김교신의 호소였다.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의 신자는 그 거짓 신앙에서 뛰어나와야 한다. 그 나 표준의 태도를 버리고 그 문화주의 살림을 폐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에게 돌리는 하나님 중심의 믿음에 돌아와야 한다. 불신자에게 회개를 권하기 전에 저 자신이 먼저 회개할 필요가 있다... 형식주의, 문화주의의 거짓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한, 오늘날의 신자는 역시 천국문을 가로막아 서는 자다. 아아 무서운 일이여! 저희는 속히 이 무서운 자리를 떠나야 한다.


IV. 맺는 말


위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루터와 김교신의 하나님과 신앙에 대한 이해는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루터가 이해하고 믿은 하나님을 김교신도 믿었으며, 수많은 종교인들이 굴복, 아부, 야합을 하였지만, 김교신은 일본 제국주의의 잔인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의 지조를 지켰다. 루터가 종교개혁 정신으로 보름스 국회에서 용기 있는 선언을 한 것이나, 김교신이 일제와 대결하며 애국과 신앙의 길을 끝까지 걸은 것은 모두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그 원동력을 찾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루터의 종교개혁 신앙과 김교신의 무교회 신앙에 비추어 볼 때, 현대의 기독교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이미 많이 일탈하고 말았음을 볼 수 있으며, 이 점에서 종교와 관련된 많은 문제점의 근본 원인도 찾아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지도할 때의 제1조는 참으로 "정숙하며 침묵(靜默)하라"는 것이었다. 신앙이 적다고 걱정 말고, 성령을 받았노라고 날뛰지 말고, 사업이 부진하다고 비탄하지 말고, 시대가 초고속도로 변해 달라진다고 놀라지 말고, 우선 "정숙하며 침묵"하여 앙망(仰望)하라. 그리하면 구원이 이슬같이 임함을 볼 것이요, 강성(强盛)의 능력이 샘같이 솟아오름을 깨달을 것이다.[밑줄: 원문의 방점]
이것이 일제가 폐간시킨 『성서조선』 1942년 3월호에서 김교신이 주장한 "강성해 지는 길(强盛之道)"이었다. 이러한 김교신과 루터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미국과 같은 서방 선진국에서 어느 정도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정책에 영향을 줄 정도는 되지 못해 온 것 같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강해지기보다는 자신의 무력과 돈과 세력에 의해 강해지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다른 인간을 노예로 부릴 정도로 착취했지만, 하나님 앞의 정의에 관한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제기되거나 정치가를 제약할 정도가 된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오히려 국민들의 환호와 지지 속에서 선진국의 "기독교인" 정치가는 "기독교" 국가의 제국주의적 정책을 지구촌 형제들의 희생 위에서 시행해 나갈 수가 있었다. 이러는 가운데 인류는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공멸의 위기를 논하고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하나님과 성서에 돌아감으로써 중세 유럽의 종교적, 정치적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다. 루터의 종교개혁 정신을 오늘에 되살린 김교신과 루터는, 중세 유럽인과 동일한 인간 실존의 문제를 갖고 있는 현대 인류의 위기를 돌파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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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정환, 『김교신 : 그 삶과 믿음과 소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4), 9.
2) Thomas Carlyle, On Heroes, Hero-Worship and the Heroic in History, Geoffrey Cumberlege pub.(London, N.Y., Toronto: Oxford Univ. Press. 1950), 176-7.
3) Ibid. p.176.
4) Ibid.
5) 루터가 이 발언을 한 날은 1521년 4월 18일이다. 이 발언 후 보름스 의회는 루터를 제국에서 추방하며 법의 보호를 박탈해 버렸다. 그러나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에 은신하면서 독일어로 신약 성서를 번역하였다. 비텐베르크에 소요가 일어나자 목숨을 걸고 비텐베르크로 돌아가 반란을 반대하는 활동을 하였다. Owen Chadwick, The Reformation (London et al.: Penguin Books, 1972), 56-9.
6) Wrede Adolf ed., Deutsche Reichstagsakten, vol.2. (Gotha: Friedrich Andreas Perthes, 1896), 555. [Richard Marius, Martin Luther: The Christian between God and Death (Cambridge, Mass.: Belknap Press of Havard Univ. Press, 1999), 294.]
7) 칼라일은 루터를 "우상을 파괴한 예언자이자, 사람들을 진실로 되돌려 놓은 사람"으로 평하고 있다. Carlyle, op. cit., p.175.
8) Ibid., p.176.
9) Paul Tillich,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From Its Judaic and Hellenistic Origins to Existentialism. Carl E. Braaten ed.(N.Y.: Simon and Schuster, 1968), 265.
10) 김종서, "청교도 신앙과 미국의 공민(公民)종교," 『미국: 초강국의 빛과 그늘』, 『신동아』1996년 1월호 별책 부록, 90.
11) 신광철, "기복주의," 『역사비평』, 47(1999, 여름), 350-60.
12) 장상환, "물신숭배," 앞의 책, 320-37.
13) Hans Scholl, Reformation und Politik (Stuttgart, Berlin Köln, Mainz: Verlag W. Kohlhammer, 1976), 128.
14) Hans Schwarz, Martin Luther: Einführung in Leben und Werk(Stuttgart: Quell Verlag, 1995), 98.
15) WA 26,339.
16) WA 23,137.
17) Tillich, op. cit., p.248.
18) Schwarz, op. cit., S.99.
19) WA 3,301.
20) Schwarz, op. cit., S.98.
21) WA 23,718.
22) Schwarz, op. cit., S.101.
23) Ibid., SS.104-5.
24) Tillich, op. cit., p.228.
25) 루터의 하나님과 인간의 이 관계는 인격적 관계이므로, 지옥에서도 가능하다. 여기서 지옥이란 장소가 아니고 상태를 의미한다. Ibid., p.233.
26) Ibid., p.229.
27) "nihil facere sed tantum recipere, doing nothing but only receiving"
28) "the acceptance of being accepted"
29) "the power itself out of which we come and to which we go"
30) 틸리히는 이것을 "모든 구체적 내용을 상실하더라도, 삶을 삶으로서, 존재를 존재로서 절대적으로 긍정하는 것으로 여전히 존재하는" "절대적 신앙"(absolute faith)이라고 했다. Ibid., p.247.
31) Ibid., p.246.
32) Ibid., p.245.
33) Ibid., p.228.
34) Ibid., p.247.
35) Ibid., p.238.
36) 루터는 라틴어 tentatio를 독일어로 번역할 때 Versuchung을 쓰지 않고 Anfechtung을 썼다. Anfechtung은 "영적 시련"(spiritual temptation)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나,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의문과 고민"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 오는 전술적인 교묘한 공격에 의하여 일어나는 고민," "창조주로부터의 격리감"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고, 루터의 신앙과 직결된 독특한 개념이기 때문에 우리말이나 영어에는 개념상 일치하는 단어가 없다. 영어 저술에서도 Anfechtung을 그대로 쓰는 예가 많고, 국내 문헌에서도 "안페히퉁"이라고 하는 예가 많아 그대로 따랐다. 지원상, "'십자가 신학'과 Anfechtung 이해," 『루터 선집』7,607-10. 임도건, 『종교개혁의 역사와 신학』(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143-59. Berhard Lohse, Martin Luther: Eine Einfürhung in sein Leben und sein Werk(München: Verlag C. H. Beck, 1980). Trans. Robert C. Schultz. Martin Luther: An Introduction to His Life and Work (Edinburgh: Fortress Press, 1986), 23-7.
37) 그리취(Eric Gritsch)는 루터의 성서해석에 영향을 끼친 문화적 배경으로서, 루터 자신이 겪은 안페히퉁, 카톨릭 교회, 국가, 인문주의자들, 터키인의 위협, 유대인 등을 들고, 당시 문화와 루터의 해석 사이의 관계를 역사적, 해석학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Eric W. Gritsch, "The Cultural Context of Luther's Interpretation," Interpretation 3(1983.7). "루터 성서해석의 문화적 배경," 『기독교사상』305(1983.11), 88-100.
38) LW 34,285-7.
39) LW 34,286-7.
40) 로제(Bernhard Lohse)는 안페히퉁이야말로 루터가 수도원에 들어간 "진짜 이유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서, "이러한 루터의 안페히퉁 개념은 그의 사고에서 전형적이며, 일부는 신학적이고 일부는 개인적인 많은 관념과 문제들을 결합하고 있다"고 한다. Lohse, op. cit., p.23.
41) LW 34,287.
42) Lohse, op. cit., p.25.
43) 이것은 고린도 후서 12:2의 인용으로서, 루터 자신의 이야기임을 말하는 것이다.
44) 『루터 선집』5,126.LW 31,129.
45) Lohse, op. cit., pp.23-4.
46) Ibid., p.23.
47) LW 26,4-5.
48) "von dem und zu dem wir sind"
49) "Das Ringen um die Gottheit Gottes" "Gottes Gottheit"는 루터가 로마서 1:20과 골로새서 2:9에서 발견한 개념으로서, 루터의 신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로제(Berhard Lohse)와 알트하우스(Paul Althaus)의 루터 관련 서적을 영역한 슐쯔(Robert C. Schultz)는 "God is God"으로 번역하였고, 와츤(Philip Watson)은 자신의 루터 신학 연구서 제목을 Let God be God (Philadelphia: Muhlenbert, 1948)으로 하였다. 여기서는 문맥과 관련하여 위와 같이 번역하였다. Althaus, Die Theologie Martin Luthers, Trans. Schultz, The Theology of Martin Luther, 105, n.1.
50) Schwarz, op. cit., S.18.
51) Tillich, op. cit., p.230.
52) Walter von Loewenich, Martin Luther: Der Mann und das Werk (München: Paul List Verlag, 1982), Trans. Lawrence W. Denef, Martin Luther: The Man and His Work (Minneapolis: Augsburg Publishing House, 1986), 74.
53) Tillich, op. cit., p.230.
54) Ibid., p.243.
55) WA 43,6.
56) WA 50,282.
57) WA 54,263.
58) Adolf, Loc. cit. [Marius, Loc.cit.]
59) 이와 관련하여 루터는, "하나님이 스스로 감추시어 우리에게 알리기를 원치 아니하는 영역은 우리가 관심을 가질 영역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LW 33,139. 이에 대해 그리취는,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지 않을 때,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그런 사변의 사치"를 그리스도인들은 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는 하나님의 좋은 소식, 즉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낸 복음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Gritsch, op. cit., pp.95-6.
60) Luther's Works, Companion Volume(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68), p.48. [김선희, "루터와 하나님의 말씀," 『神學과 信仰』9(1998), 150.]
61) 야나이하라, "金敎臣 氏를 추억함," 노평구 편, 『김교신과 한국 : 신앙, 교육, 애국의 생애』(서울 : 지경사, 1975), 116.
62) 김정환, 『김교신 : 그 삶과 믿음과 소망』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4), 9.
63)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개정판,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88), 364.
64) 민경배, "김교신과 민족 기독교," 『나라사랑 : 김교신 선생 특집호』, 1974, 제17집, 61.
65) 양현혜, 『윤치호와 김교신 : 근대조선에 있어서 민족적 아이덴티티와 기독교』(서울: 한울, 1994), 7.
66) 송두용, "김교신과 한국의 무교회," 『김교신과 한국 : 신앙, 교육, 애국의 생애』, 27.
67) 류달영, "애국자로서의 김교신," 『나라사랑 : 김교신 선생 특집호』, 1974, 제17집, 27-28.
68)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365.
69) 송건호, 『한국현대인물사론 : 민족운동의 사상과 지도노선』(서울: 한길사, 1992), 276.
70) 송두용, "김교신과 한국의 무교회," 28.
71) 김교신, "불공평한 하나님," (1938. 7), 『김교신전집』 제1권 『신앙과 인생』 상권, 재판(서울: 도서출판 경지사, 1975), 29.
72) 앞의 책, 같은 쪽.
73) 앞의 책, 30.
74) 김교신, "시험제(試驗濟)의 법칙"(1933. 10), 앞의 책, 33.
75) 앞의 책, 34.
76) 이주헌, "교회 밖에서 믿음을 찾다," 『발굴 한국 현대사 인물 I』(서울: 한겨레신문사, 1991), 241-2.
77) 김교신, "신실하신 하나님"(1940. 12), 『김교신전집』 제1권, 32.
78) 김교신,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오라"(1935.12), 앞의 책, 283.
79) 김교신, "나의 신앙의 본색"(1934.8), 앞의 책, 150.
80) 김교신, "지도와 신앙"(1932.7), 앞의 책, 138.
81) 김교신,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오라"(1935.12), 앞의 책, 284.
82) 김교신, "무교회 간판 철거의 제의"(1937.5), 앞의 책, 330.
83) 김교신, "내촌감삼(內村鑑三)론에 답하여(1940. 5), 앞의 책, 330.
84) 김교신, "나는 무교회주의자이다"(1941. 8), 앞의 책, 311.
85) 김교신, "우리의 무교회"(1937.6), 앞의 책, 303.
86) 앞의 책, 303-304.
87) 앞의 책, 304.
88) 앞의 책, 같은 쪽.
89) 김교신,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돌아오라"(1935. 12), 앞의 책, 282.
90) 앞의 책, 같은 쪽.
91) 앞의 책, 282-3.
92) 앞의 책, 283.
93) 앞의 책, 같은 쪽.
94) 앞의 책, 284.
95) 김교신, '强盛之道"(1942. 3), 『김교신전집』 제2권 『신앙과 인생』 하권,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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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연 구
제 5 호
편집책임 주 광 호

성 경 연 구 사
2000년 9·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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