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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일부 ; 머릿말 - 노평구 ☼☼ "나는 해방 후 하도 답답해서 한 두번 선생이 경인지방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면 당신은 문제 없겠기에 실례지만 이를 권한 일이 있다. 선생은 "거기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오겠느냐"하시며 한마디로 뱉듯이 거절했던 것이다. 나야말로 신앙을 생명으로 생애를 바쳤던 선생에게 이렇게 실례했던 것을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한다." ☼☼
VI. 논고
2008.12.31 00:35

신앙애의 생애(1 of 3) - 주 옥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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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애의 생애(1 of 3) - 주 옥 로         

20세기 초(1904년) 충남에서 태어나시어 나라 잃은 한을 품고 민족의 수난에 시달리던 일제 30여 년,그리고 조국 해방의 감격을 잊기도 전에 6·25 동란 등 피비린내 나는 민족 분단 40여년, 특히 젊은 시절 일본에 건너갔다가 '관동대진재'란 사선을 넘으면서 큰 인물을 만나는 등 격동기의 수난을 몸소 당하신 기구한 운명의 한평생, 그것은 역사적 증인으로서의 비범하고도 전형적 삶이었다.

그리고 이 때는 우리 민족의 음침한 죽음의 골짜기이면서 동시에 개화의 여명기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희망과 참빛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의 구원을, 즉 복음의 사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심을 잊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시의 위대한 애국지사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예수를 믿고 용기를 얻어 일어섰으니 안창호, 이승훈, 이상재 선생 등을 통하여 개신교 100년사가 빛나기 시작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보다 원대한 섭리하에 일본의 우치무라[內村鑑三(내촌감삼)] 선생을 일으키시고 제2의 종교 개혁을 위하여 김교신, 함석헌, 송두용 선생들을 내세워 기독교의 진수인 무교회적 성서 신앙의 60년사를 열게 하셨다.

실은 1965년 선생께서 일본 전도 여행을 가셨을 때 선생을 초청하고 환영하던 마사이케[政池 仁(정지 인)] 선생의 말씀 중에 "송두용 선생의 방일은 다만 무교회뿐만 아니라 기독교사에 특기할 만한 일이다. 한 사람 존 녹스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칼빈의 문하생으로 복음을 받아 가지고 스코틀랜드에 들어간 것이 장로교회의 기원이 되고, 나아가서 퓨리턴이 생기고, 그것이 미국에 건너가 근대 기독교 및 서양 문명을 이루었다. 마찬가지로 우치무라 선생의 문하에서 성서 신앙을 배워간 한국인 중 대표적 인물 김교신 선생은 일찍 하늘의 부르심을 받고, 그밖의 분들은 세상의 사상에 끌려 버리고, 송두용 선생 단 한 분이 이 신앙을 지니고 오늘까지 전도하여 왔으니 한국의 존 녹스와 같은 존재가 아니겠느냐?"라는 뜻의 말씀이 있다.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역사적 과정에서 선생님은 믿음과 사랑이 하나 되는, 믿음만의 믿음을 위하여 자기를 버린 십자가의 사람, 즉 산 증인이라고 나는 믿는다. 특히 그것이 무교회 신앙이란 한 단면에서뿐만 아니라, 성서를 바탕으로 살고자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도 우리 모두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셨으니, 그것은 훈훈한 인간미와 그윽한 믿음의 향기가 스며들었기 때문이리라.

재작년 늦가을 이진구 형과 마지막으로 문병을 갔을 때, 처음에는 반가워하시더니 조금 있으니 괴로우신 표정, 그리고는 무엇인가 전하고 싶으신 듯 안타까운 심기를 느끼셨다. 나는 기도 후 말 없이"만난 것이 기쁘다. 그런데 근래 소문이 좋지 않다. 그만한 일도 해결하지 못하느냐?"라는 뜻인 듯 눈으로 하신 말씀을 간직하고 돌아왔다. 나는 선생이 승천하신 지 근 1년을 지나오면서 느껴진 몇 가지를 적고자 한다.

 

첫째 : 모두가 은혜의 삶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 볼 때 구원의 근거가 사람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편에, 즉 절대적인 은혜, 그리고 조건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있다고 강조하신다. 선생의 기념 문집에 보면 "신앙 생활이란 언제 어느 곳에서나 그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와 찬미가 따르기 마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수육(受肉)도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신 새 생명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일이요, 인간의 힘으로는 전혀 불가능하다. 믿음은 곧 은혜니 인간 백반사 모두가 은혜라."라고 시 아닌 시로 찬미하셨다.
"인생도 우주도 일체가 은혜로다.
사는 일, 죽는 일, 먹는 일, 굶는 일,
웃는 일, 우는 일, 모두가 은혜로다.
생각할수록 지나고 보면 더욱 더
온통 모두가 은혜 아닌 것 하나 없다.
은혜에는 잘못도 부족도 없고,
슬픔도 아픔도 미움도 다 가셔 버린다.
진정한 은혜에는 죽음도 멸망도 없고,
오직 사랑·구원·평안·기쁨·감사요, 찬미요,
완성이 영원 무궁하도다.
내게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오직 은혜 하나뿐이니, 그 은혜는 새로운 가치를 재 창조해 주시리."
예수의 고난의 극치인 십자가에서의 죽음까지도 부활이란 새 생명의 은혜로 바꾸어 주셨으니 이는 우리 모두에게 신생과 승리의 길을 열어 주심이니, 신앙 생활이란 하나님의 은혜 위에 은혜이다. 은혜의 근원이신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고, 또 그렇게 사셨다(마 5:44, 눅 6:27,28, 23:34 참조). 또 스데반도(행 7:60), 바울도(딤후 4:16), 베드로(벧전 3:9), 그리고 송두용 선생도 그러했다고 나는 믿는다.

자신의 실패가 은혜에 의하여 성공으로 변했다는 글이 있다(성서 신애 189호). 또 자신의 인생 자체가 실패라고 전제하시고, 해방 다음 해 오류동 성서 모임을 하다가 교회인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교회 설립에 협조하고 교회에 나가 성서 말씀을 전했더니, 잠시 후 무교회란 이유로 그 교회를 떠나야만 했던 것이 첫 번째 실패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피차 속일 수도 없고 속여서도 안 된다고 끝맺으셨다.

다음에는 '성서신애' 지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못 하시게 되면서 당시(1973년) 쟁쟁한 여섯 분들에게 동인지로 맡기셨는데, 많은 사람이 환호성을 올렸고 나 자신도 쾌재를 불렀으나 얼마 못 가서 두 번째의 실패라고 고백하신 바 있다.

돌이켜보면 '성서조선'에서나 '성서신애'지의 경우에 있어서나 똑같이 한국 최고의 인격과 학식, 더구나 저명한 신앙 인사들이 동인지로 하고자 했으나 얼마 못 가서 갈팡질팡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기뻐하시고 허락하신 분이 설령 부족하다고 해도 전 책임을 지고 전력 투구함만 못하다는 값비싼 진리를 이제라도 배워야 할 것이다. 그 분 말씀대로 분명히 기독교는 십자가교요, 동시에 독립교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독립하는 것이 무교회 신앙이다. 진리와 독립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독립 없이 참신앙은 어렵다. 1980년부터 '성서신애'지를 이진구 형 개인지로 책임을 지고 완전 독립한 문서 전도자로 나섰을 때, 선생은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의와 합의로 '성서 신애' 지에서 송두용은 물러서고 이진구는 새로 맡는 것으로 믿고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마지막 이 글을 쓴다."고 하셨다. 얼마나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순리인가!

또한 선생의 승천을 계기로 유희세 형은 "송두용 선생을 하늘에 보내 드리고 나서 저는 이 이상 송 선생이 시작하신 '성서신애'의 동인으로 붙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을 하고, 선생이 남겨주신 위대한 신앙 유산을 계승하여 우리가 제각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대로 최선을 다하여 전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고 '우리 성경'을 내고자자 합니다."라고 했다.

이는 참으로 뜻 깊은 일이며 은사님에 대한 최선의 선물이요, 우리 민족에게 내려 주시는 크나큰 은사라고 믿고 감사한다. 우리 모두가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하나님에게서 받은 천직과 사명에 충실할 것이다. 나는 이찬갑 선생과 풀무학원을 개교하면서 먼 훗날에 우리가 늙어서 가르칠 수 없게 되거든 우리 고장의 충무공을 본받아 문지기나 청소부로 백의종군하자고 말하면서 웃은 일이 있었다. 베에토벤의 제5교향곡의 가장 낮은 소리, 그것이 음악의 묘미를 살리는 심오한 소리라고 들었다.

 

둘째 : 믿음 만의 믿음

하나님과 인간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믿음, 즉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선생의 생애를 통하여 '믿음만의 믿음'으로 표현해 주셨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만으로 신생하는 체험이기에 이 말씀에는 여러 가지 깊은 사연이 담겨져 있다.

1942년 3월 소위 '성서조선 사건'이 일어났다. 이 때는 전쟁이 한창 이어서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대단했다. 형무소 생활을 만 1년 한후 다음 해 3월 말 전원이 석방된 이래 1945년 8월에 제2차대전이 끝났다. 그 해 4월에 김교신 선생은 승천하셨다. 납작해진 무교회 신앙의 신생을 위하여 선생은 1946년 1월부터 새롭게 '영단(靈斷)'지를 내셨고, 1946년 11월에 노평구 선생의 '성서연구'지가 발간되었다. 그러나 6·25 동란으로 다시 중단했다가 1955년 6월에 본격적으로 '성서인생'을 재발간하셨으니, 그 때 이래 두 잡지가 무교회 신앙을 위한 문서 전도의 쌍벽을 이루었고 실로 근래에 이르기까지 가정 모임을 비롯하여 전도 생활 50년에 이르렀다고 하시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며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진실로 이 한 가지를 위하여 전 생애, 전 재산 그리고 전 가족을 내던졌다고 해도 크게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순종, 결단, 그리고 죽도록 충성하는 능력을 누가 주셨을까?

인류 구언과 세계 평화, 속죄 본위의 복음 신앙을 강조하신 '성서신애' 제1호 권두문에 '절대와 상대' 란 글이 있다. "하나님은 절대요, 인간은 상대다. 따라서 하나님께 속한 것은 모두가 절대요 사람에게 속한 땅의 것은 모두가 상대다. 절대는 오직 하나뿐이요 상대는 얼마든지 있다. 하나님만이 참과 사랑과 힘과 생명이시다. 물론 사람에게도 참과 사랑과 힘과 생명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그림자요 흉내일 뿐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진짜요, 인간은 가짜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없이 가진 것 모두가 거짓뿐이니 결국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만, 하나님 속에서만, 모든 것이 참으로 살아날 수가 있다." 이것이 선생이 체득하고 파악한 하나님의 본질과 인간의 정체라는 결론이다.

'성서인생'에서 '성서신앙'으로 다시 제호를 바꾸면서 "기독교 경전인 성서가 가르치는 믿음을 펴려는 전도, 즉 성서가 전하는 신앙을 말하는 것이 나의 이상이요 목표다. 신앙이 중심이 되고 본위가 되는 순수한 복음을 전하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그리고 높고 깊고 참되게 다루고 해결하기 위함이다."라고 하셨다. 결국 성서는 신앙만의 신앙을 위한 책이라고 강조하셨다.

인도의 썬다싱은 "나는 하나님 그 자체를 구한다. 하나님의 은사를 구하지 않는다. 나무를 구하고 그 열매를 구하지 않는다. 나무가 우리들의 것이 된다면 자연히 그 열매도 우리들의 것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거지와같이 너무도 여러 가지를 구하게 된다. 없어지는 것마다 구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물보다도 선물을 주시는 실재자 하나님을 구하자. 생명을 구하지 말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구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씀은 한없이 깊이 있는 신앙의 본질을 쉽게 말해 준다. 무한히 높고 넓은 세계의 실재자를 생각하게 한다.

싲자가의 복음 신앙을 제일로 하고 신앙만의 신앙에 철저하다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사도 바울이 갖은 고난과 박해를 받았고, 루터가 파문을 당했고, 우치무라(內村鑑三)가 국적으로 몰리고, 김교신 선생이나 송두용 선생이 옥고를 치르고 숱한 고생을 감수한 것도 바로 이 믿음만의 믿음으로 살고 죽고자 했기 때문이다. [「셋째 : 기도하는 새벽」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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