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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일부 ; 머릿말 - 노평구 ☼☼ "나는 해방 후 하도 답답해서 한 두번 선생이 경인지방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면 당신은 문제 없겠기에 실례지만 이를 권한 일이 있다. 선생은 "거기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오겠느냐"하시며 한마디로 뱉듯이 거절했던 것이다. 나야말로 신앙을 생명으로 생애를 바쳤던 선생에게 이렇게 실례했던 것을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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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용 선생님 2주기 기념회에 참석하고 - 주 연 숙         

오류동 하면 송 선생님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송 선생님 떠나신지 2주년, 오늘따라 따사로운 봄 볕이 온 누리에 내려 쪼인다. 선생님이 떠나시던 날도 이러했는데 은혜인 듯, 감사하며 이 자리에 앉으니 감회가 깊어진다. 이곳은 종로 YMCA 나의 정든 방, 추억이 담긴 방이 아닌가.

노 선생님께서 반생을 다 바쳐서 성서의 진리를 외치셨고 우리 적은 무리는 그 말씀을 들으며 주일이면 Y 집회에 가는 것이 나의 전부였는데, 1987년 10월 25일 이 자리에서 종강 만찬회를 열었고 눈물을 머금고 떠나야 했던 이곳을 158일만에 다시 오니 모든 지난 날들이 아쉽고, 송 선생님의 생존시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식순에 따라 이 선생님 사회로 찬송과 기도, 유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송 선생님의 하시던 말씀이 나의 귓전에 울리는 듯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라" "자랑하지 말라" "교만하지 말라" "차든지 덥든지 하라. 뜨뜻 미지근하지 말라" "인간적인 것 다 필요 없어" "하나님은 오로지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되시느냐,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만 되시느냐? 아니다, 저 북한 공산당원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던 송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노 선생님께서 단상에 서시더니 우뢰와 같은 말씀이 시작되면서 발을 꽝꽝 구르시면서 호통을 치신다.

"여러분은 모두 송 선생을 성자인 것처럼 칭찬만 하지 마시오. 잘못하면 우상화될까 두렵단 말이오." 하며 호통치시더니 끝에는 역시 칭찬이 나오셨다. 사실이고 진실이니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나의 기억에 떠오르는 한 가지 신앙적 교훈을 받은 일을 적어 볼까 한다. 1965년 초여름이었다. 내가 서울에 와서 신접살이를 시작하고 남편이 처음 쉬게 된 주일날 우선 송 선생님께 인사드리기로 약속, 주일날이니 일ㅉ기 가서 예배를 참석하고 인사드려야 하겠기로 집에서 일찍 나갔는데 잠깐 들른다고 이발소에 들어간 사람에게 황금같이 귀한 시간을 다 빼앗기고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던 나는 서둘러 오류동에 가서 선생님 댁에 물어물어 찾아가니 공군 부대 옆에 시골집 같은 허술한 집이었다.

그런데 시간은 사정없이 흘러 예배는 물론 끝났고 점심 식사도 끝이 난 모양이었다. 몇분 자매님들과 송 선생님 내외분께서 말씀을 나누고 계셨다. 나는 예배에 늦어 참석하지 못한 것이 죄송스러워서 쩔쩔맸다. 선생님께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눈을 지긋이 감으시고 이맛살을 찌푸리시며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말씀으로 꾸중만 실컷 치시고 선생님 방으로 가셨다. 사모님과 몇 분 자매님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나오려니까 점심 때가 훨씬 지나 배도 고프지만 나는 선생님을 알고 그 뜻을 짐작하기에 '인간적 체면 따위는 필요치 않아. 주일인데 일찍 와서 예배에 참석할 일이지.' 하시는 뜻임을 이해하지만 함께 간 사람에게는 미안하기도 했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 댁에 찾아가서 재미는 없었지만 그도 나와 변명을 이해하고 수긍해 주어서 다행이었다.

선생님 댁에 남아 있었던 어느 교수님 사모님께서 역전 어느 제과점에 들어가서 빵을 사 주셔서 감사했다. 덕분에 믿음의 자매 한 분과 같이 사귀게 된 셈이다. 그 후에는 어쩌다 함께 가면 반겨 주시고 "아이를 늦게 낳았다고 귀엽게만 키우지 마라, 떠받들지 마라." 하시면서 딸을 교훈하시듯 친근하게 대해 주셨다. 노년에는 전에 냉전하시고 무섭게만 보이던 선생님의 모습이 변하여 온화하시고 어린아이같이 부드럽고 친절히 대해 주시던 선생님! 몸소 보여주신 신앙을 조금씩 깨닫고 따라가려고 생각한다. 주여 도와주소서. 아멘
1988. 5. 10. (서울,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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