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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일부 ; 머릿말 - 노평구 ☼☼ "나는 해방 후 하도 답답해서 한 두번 선생이 경인지방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면 당신은 문제 없겠기에 실례지만 이를 권한 일이 있다. 선생은 "거기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오겠느냐"하시며 한마디로 뱉듯이 거절했던 것이다. 나야말로 신앙을 생명으로 생애를 바쳤던 선생에게 이렇게 실례했던 것을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한다." ☼☼
V. 추도회
2008.12.31 00:25

송두용 선생과 시계판 - 주 광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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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용 선생과 시계판 - 주 광 호         

1986년 5월호 '성서신애'에 게재된 '송두용 선생 연보'에는 눈에 거슬리는 두 개의 낱말이 있습니다. 곧 오류학원 '폐교'와 푸른학원 폐교입니다.

제가 바로 폐교의 장본인입니다. 선생님께 대해 무어라 말씀드릴 염치도 없을뿐더러 자격도 없는 자입니다. 8년간 선생님 댁에서 침식을 함께 한 연유에서인지, 추모담을 부탁하기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접촉하신 상대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상대요 또 하나는 집단 상대, 즉 지역 사회와의 관계입니다. 전자는 개인 상대로 전도하셔서 신앙에 눈뜨게 하여 일요 예배에 출석케 하는 모임 식구들입니다. 그러나 후자인 집단, 즉 지역 사회와의 관계는 이와는 성질이 달랐습니다. 물론 선생님으로서는 믿음의 바탕 위에서의 관계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었겠지만, 어쨌든 외견상으로는 신앙과는 관계가 없었던 상대였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에게는 불신의 오탁한 집단인 지역 사회에 몸소 뛰어들어 그 집단을 믿음으로 인도하거나, 불연이면 그 속에서 몇몇이라도 주님 앞으로 인도하려는 전투장이었고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후자의 관계에서 맺어진 사이였고, 죄인을 친구로 하는 선생님의 신앙이 아니었던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난 해의 가을이었습니다.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사회는 데모로 술렁이던 때였습니다. 오류동에서도 자유당 권력하에 폐교된 하나밖에 없었던 중학을 재건하려고 주민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여의치 않으면 데모를 해서라도 중학교 설립을 관철하려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데모만은 반대였습니다.

당시 저는 공군 사관학교에 현역으로 근무하고 있다가, 극심한 각혈(폐결핵)로 휴직하고 집에서 요양하고 있었습니다. 절망의 어두운 나날을 보내던 중에 주민들의 회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 사회 발전과 민주주의 재건을 위하여 버려진 병든 몸이나마 바쳐보려는 어린 소년의 교과서적인 심정으로 회의에 참석했었습니다. 그 때 강단에서 성실하게 회의를 진행하고 계시던 분이 바로 송두용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날부터 여러 차례의 회의 끝에 '오류복지회'가 조직되어 선생님은 회장으로 추대되고, 저는 뜻밖에도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선생님과는 신앙 관계에서가 아니고 오류동의 복지 증진과 학교 재건의 일로 거의 매일 밤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거듭했던 것입니다.

업무 관계로 선생님 댁을 처음 찾았을 때, 한쪽 벽 전면이 서가이고 서가에는 기독교 서적이 채워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보다 더 기이하게 여긴 것은 이 때까지 선생님으로부터 예수에 관해 한 마디도 들은 일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교회의 전도자라면 벌써 만나자마자 예수 믿으라는 성화에 귀찮았을는지도 모르는데, 선생님은 일언 반구도 없었습니다. 죽은 후에 천당에 가려고 믿는 것이 기독교라고, 천박한 지식밖에 없었던 저의 가슴에 오히려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오류복지회를 창립할 때에는 오류동 주민 성년 남자는 거의가 다 모인 성황을 이루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고 회의가 거듭됨에 따라 열기는 고사하고 점점 이해 득실 또는 생업과는 무관한 관계 등으로 흐지부지되어 버리고 열기는 식어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신상철 선생께서, 천막이라도 쳐서 학교를 시작하자는 적극적인 의견을 내셔서 송 선생님과 저는 전적으로 찬동하고 회의에 성의를 보이던 유지분들과 모여 천막 및 교구 구입 자금을 모금하니, 호응하는 분도 있었지만 도망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리하여 오류복지회는 없어지고, 저도 모르는 어떤 손에 의해 당초에는 상상도 못했던 천막 학교로 바뀌고 송 선생님을 위시하여 신상철 선생과 저와 셋이서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송 선생님은 돈이 없어서 중학에 진학을 못 하고 길에서 서성대는 아이들을 모으기 시작하고, 신 선생은 자기 집의 창고를 교실로 꾸미고, 저는 칠판을 만드는 등 개교 준비를 서둘렀습니다.

선생님은 신 선생과 두 분이서 학교 건립을 위해 만날 때마다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저는 믿지 않으니 선생님은 기도에 참여시키지 않으시고 곁에서 구경만 하게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믿음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기도가 실생활과 직결되고 모든 일의 바탕이 되고 추진력도 기도에서 나온다는, 저로서는 엄청나고 새로운 사실을 처음 구경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천막 학교도 중하지만 그보다도 서가에 꽂혀 있는 기독교 서적에 마음이 더욱 쏠리게 되고, 책을 보겠다고 하니 선생님은 쾌히 승락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던 얼마 후에 성경책을 사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 때의 기쁨은 말할 수 없었고, 성경을 그 날부터 난생 처음 본격적으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1961년 2월 8일 드디어 모집한 열 두 명의 학생과 많은 내빈을 모신 가운데, 선생님은 저의 불신을 염려하셨음인지 신 선생과 더부어 셋이서 공동으로 날인하여 끝까지 오류학원을 지켜 나가겠다는 맹세를 선생님이 낭독하여 선서하고, 오류학원은 개교되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신 선생 댁에서 수업을 하였습니다만, 몇 달 지나 5·16 군사혁명이 발발하여 그나마도 데모로 불안하던 시국은 앞을 점칠 수 없는 난국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신 선생은 손을 떼고 말았으니, 학교를 손 선생님 댁으로 옮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은 저와의 관계를 시계에 비유하여 예배 시간에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시계판이고 저는 시계 바늘이라는 것입니다. 시계판이 없으면 바늘이 아무리 열심히 움직여도 시간을 알 수 없고, 또 시계판 자체가 움직여도 시계는 제구실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계판은 자기 의사나 능력이 없습니다. 고정된 위치에서 빛의 굴절 없는 반사로 시간을 가리킬 뿐입니다. 실지로 처음 선생님을 뵈울 때는 무식하고 무능한 촌로의 한 분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참 말하고 보면 저도 모르게 어려워지고 머리가 숙여지곤 했습니다. 저 자신의 교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에게는 철학도, 사상도, 학문도, 아니, 성경도 믿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은 무엇입니까? 선생님은 시계판처럼 정지되었고, 그 속은 비어 있었습니다. 오직 시계판에 빛이 비쳐 그 위에 새겨진 글이 뚜렷이 보이듯이 선생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받아들여지고, 굴절 없이 반사하여 우리에게 분명한 말씀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셨을 뿐입니다. 햇빛을 받아들여 자기 나름대로 반사하여 무지개색을 내는 프리즘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갈 2:20)"라고 하신 '나'가 곧 시계판인 선생님의 정체였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선생님의 전부였습니다.

시계 바늘은 어떠합니까? 그것은 인공적인 태엽의 힘으로 움직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저로서는 쥐꼬리보다 못한 철학, 사상, 학문과 입문 정도도 못 되는 지식의 힘을 바탕으로 이상론적인 공상 속에서 오류학원에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이 힘은 3년도 못 가서 소진되었습니다. 닥쳐 오는 생활 불안과 경제적 유혹 앞에 그만 무릎을 꿇고 개교의 선서도 아랑곳없이 시계 바늘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너는 관념적이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저는 속으로 '관념이 왜 나쁜가? 근대 서구 문명도 종교 개혁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고대 희랍으로 돌아가자는 문예 부흥과 더불어 성취된 것이 아닌가? 관념이 전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담.' 하고 내심 불평도 하였습니다만, 선생님의 말씀대로 관념적 우상의 힘은 3 년도 못 가고 자빠졌습니다. 그러나 시계판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은 채 그대로 변함이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오류학원은 폐교되고 말았습니다.

푸른 학원도 비슷한 맥락에서 폐교되었습니다. 이렇게 선생님께 누만 끼친 저는 작년 소천 약 100 일 전인 1월 4일 세배차 방문한 것이 이 세상에서의 최후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의 육은 이미 욕창으로 썩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영은 샘물과같이 영롱하고 맑았습니다. 문득, '아버지께서 주신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자기 비위에 맞추어 탕진하는 아들이 탕자요, 아버지 은혜로 회개하여 빈 마음으로 돌아와 아버지께서 주시는 옷을 입고, 반지를 끼고, 신을 신고, 배불리 먹는 등 받기만 하여 감사하는 아들이 돌아온 탕자다.'라는 생각이 떠올라 선생님을 붙잡고 "이제부터 아버지라고 부르게 해 주옵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선생님은 큰 소리로 "아멘, 아멘."하시면서 입을 내밀었습니다. 저는 정신 없이 마구 입을 맞추었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무한히 감사했고 기뻤습니다.

지금은 하나님 아버지를 부를 때 아버지는 그 속에 항상 같이 계십니다. 선생님은 하늘나라를 보여 주고 계십니다. 저는 이북에 부모님을 두고 온 이산 가족의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성령을 충만하게 내려 주시는 한 죽음이 두렵기보다도 죽어서 선생님과 다시 만나는 기쁨, 곧 이산 가족이 만나는 희망과 설레임이 가슴을 메웁니다.

"마라나타, 주여, 오시옵소서. 아멘."

 

※ 1987년 4월 11일 송두용 선생 1주기 추도 예배에서 말씀한 것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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