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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일부 ; 머릿말 - 노평구 ☼☼ "나는 해방 후 하도 답답해서 한 두번 선생이 경인지방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면 당신은 문제 없겠기에 실례지만 이를 권한 일이 있다. 선생은 "거기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오겠느냐"하시며 한마디로 뱉듯이 거절했던 것이다. 나야말로 신앙을 생명으로 생애를 바쳤던 선생에게 이렇게 실례했던 것을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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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행위
1988. 4. 10. 송두용 선생 기념 강연회에서 말씀한 것 - 정 태 시
         

사람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복음에 접하게 된다. 하늘 나라의 향기 가득한 지란방(芝蘭房)에서 송두용 선생을 통해서 맺어진 박정수 할머니를 비롯한 믿음의 가족들과 만남의 자리를 같이하니 새삼 감사한 생각을 금할 길이 없다.

나는 1940년 정릉리 김교신 선생 댁에서 열렸던 성서 집회에서 송 선생을 처음 대했다. 나는 예배당에 병설된 유치원에 하루 이틀 다니다가 유교 사상에 철저하던 아버지의 호통으로 발을 끊게 되었고, 그 후 홀로되신 어머니가 천주교에 귀의하시면서 간곡하게 성당에 다니기를 권고하셨었다. 마음이 내키지 않던 나를 어머니의 주선으로 신부와 대담케 하셨다. 로마서 13장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씀이 일본 헌병의 권력도 포함되어 적은 말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하여 나는 자리를 차고 일어났었다.

그 후 '성서조선'지를 구독하고 그 동인이었던 송두용 선생을 포함한 세 선생의 인격에 접하면서 기독교 신앙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므로 송두용선생과 그 친구 되시는 분에 대하여 내가 지고 있는 사랑의 부채는 무한대하다. 선생의 신앙을 '믿음만의 믿음'이라고 한다. 그러면 실천, 행동, 행위가 없어도 구원은 오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고, 그것이 극단적으로 나가면 복음이 아닌 행위주의에 빠지게 된다.

마태복음 5장 22절에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라는 말씀이 있고.

또 마태복음 5장 44절에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되어 있다.

이러한 보통 인간에게 실현하기 어려운 말씀은 예수 같은 분이니까 하는 말씀이지 인간으로 어떻게 그대로 실행할 수가 있을까 하면서 우리는 적당히 살아간다. 그러나 마태복음 7장 24절 이하에는 이런 말씀이 있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로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그 집을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리라."

복음의 행위, 이렇게 양립되는 듯한 개념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이지만,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 상에서 죽음을 우러러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죄악에서 속량되었다는 복음에 진정 도달했다면, 우리는 예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야 하고,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송 선생의 생애를 통해서 볼 때 육적인 가족보다도 영적인 가족과 더 가까이 살다 가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사모님의 신앙의 성장 과정이 또한 그러한 선생님의 믿음만의 믿음의 생애를 간증하고 가신 게 아닌가.

선생 입신 50주년 모임이  YMCA 강당에서 열렸을 때 일본에서는 선생의 가장 친밀한 믿음의 친구 마사이케[政池 仁(정지 인)]선생이 내한하셨었다. 모임 전날 두 분은 기쁨에 넘쳐서 밤 늦도록 어깨동무를 하고 종로 일대를 휩쓸고 다니다가 마사이케 선생이 심한 독감으로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여 모임에 참석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폐회 직전에 참석을 하신 마사이케 선생은 귓속말로 노 선생에게 말씀을 전해서 통역 아닌 통역으로 축하의 뜻을 표했다. 논물겹도록 정겨운 광경이었다. 모임이 끝나고 감화회가 시작되었을 때 송 선생을 비롯한 믿음의 선배들의 뜻을 이어받은 행동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의견들이 나왔다. 일심회(一心會)는 그 소산의 하나이다. 송 선생이 하시던 복음 전도는 이진구 선생에 의해 오류동 집회와 '성서신애'지로 이어가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한다. '송두용 전기'가 어떠한 형태로든지 출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우치무라[內村鑑三(내촌감삼)] 2대 제자들과 같은 동경대학 출신의 엘리트가 희랍어 히브리어를 구사하며 전도하던 전성기를 거쳐서 3대 4대로 내려오면서 대중화 또는 노쇄화 되어 간다고 하는 말도 들린다. 하여간 혼란이 극심한 우리 사회에서 송 선생 같은 생애를 보는 것은 삼복 염천에 한 줄기 소나기가 무더위를 씻어 내려가는 듯한 상쾌한 감동을 안겨 준다.
(전 공주교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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