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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일부 ; 머릿말 - 노평구 ☼☼ "나는 해방 후 하도 답답해서 한 두번 선생이 경인지방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면 당신은 문제 없겠기에 실례지만 이를 권한 일이 있다. 선생은 "거기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오겠느냐"하시며 한마디로 뱉듯이 거절했던 것이다. 나야말로 신앙을 생명으로 생애를 바쳤던 선생에게 이렇게 실례했던 것을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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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용 선생님 (2)
- 1 주기 추도회 추도사 -    유 희 세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 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3 / 12:13,14)." 이것이 나의 깨달은 바요, 느낀 것의 전부다.

나는 한 고비를 넘겼다. 그 후 나는 이제야말로 농촌으로 들어갈 생각이 났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어떤 형제가 농민을 교육하는 기관의 시설을 만들어 농민을 교육하는 일을 같이 하자고 하였다. 나는 그 시설 준비하는 일에 열중하여 다음해(1949년) 5월까지 여덟 달 동안을 지내 왔다.그러나 그 일은 처음에 나하고 상의한 것관느 점점 달라져 가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나는 그 일에서 손을 떼기로 하였다.

쓴 잔을 마시고 정처 없이 광야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런데 가다가 멈춘 곳이 어떤 섬, 어떤 산골짜기었다. 과연 뜻밖의 일이었다. 나는 새간을 싣고 가족을 데리고, 배를 타고 섬을 향하였다. 자유와 독립을 찾아서, 때는 1949년 6월6일이었다. 나는 섬사람이 되었다. 하늘은 맑고 바람도 시원하였다. 나는 기뻤다. 감사하였다. 만족하였다. 호미를 들고 밭 매는 일이 퍽 재미있었다. 달밤에 모기불을 피워 놓고 동네 젊은이들과 같이 이야기하는 일은 각별한 취미였다.

그러는 동안에 한겨울을 지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모르게 어떤 커다란 힘이 나를 섬에서 몰아내려는 것만같이 느껴졌다. 모든 일은 모두 나의 책임이면서도 나로서는 아무 도리도 없으니 그저 뜻대로 하옵소서 할 것뿐이었다. 그런 판에 몇 친구가 나를 서울로 끌었다. 또 어떤 친구는 나를 전도의 길로 몰아 넣으려고 힘썼다. 나는 작정했다. 모든 것을 박차고 내가 지금까지 '바벨론'이라 부르면서 저주하던 이 나라의 수도인 서울로 가려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 먼저 서울로 떠난 것이 1950년 1월 1일이었다. 어떤 고마운 친구들이 나에게 분에 넘치는 집 한 채를 이바지하므로 그저 허둥지두하고 서울로 세간을 옮긴 것이 1950년 3월 3일이다. 이렇게 하여 나는 열 달 만에 섬을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서울이 어디라고, 또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내일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분만 믿고 따라갈 뿐이다. 나는 오류동을 떠난 지 2년 남짓하게 되었다. 앞으로도 헤매는 살림이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선생은 서울로 다시 들어오신 지 석 달 만에 6·25동란이 터져 다시 피난길을 떠나게 되십니다.

선생님이 손을 대신 일들 중에서 1930년에 시작하였다가 해방과 동시에 정부에 인계한 오류학원, 1937년에 김천에 있던 선생의 농지를 소작인들에게 분배 처분 하신 일, 1937년에 시작했다가 2년 후에 폐점하신 시계점 경영, 1960년대의 부천교도소 전도, 1961년에 시작하셨다가 3년 만에 폐교하신 중등 과정 오류학원의 경영, 1969년에 맡으셨다가 1982년에 폐교하신 장봉섬 푸른학원의 경영 등등은 선생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 주는 일들일 것입니다. 낙도 잡옵섬에 계실 때에는 일본의 마사이케 선생, 스즈키 교장 선생이 멀리위문 오시기도 하였습니다. 1930년 우치무라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송 선생이 쓰신 추도문을 읽어 보면, 송 선생은 영동에서 시골 물방앗간지기를 하고 계셨다고 합니다.

선생의 생애에서 가장 충격적인 일들을 헤아린다면 ; 8·15를 앞두고 김교신 선생이 먼저 하늘로 가신 일, 6·25 직후에 안학수 선생이 순교로 하늘로 가신 일, 4·19의 연장선상에서 이찬갑 선생이 하늘로 가신 이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새의 생애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추려 본다면 : 이미 말씀드린 1975년의 신앙 50년 기념회와 1925년의 입신의 감격에 이어서 '다시 동경에!'라고 하는 지상 명령을 들 수가 있고, 그 외에도 선생님은 뭐라고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1921년의 사모님과 만남, 1939년 겨울 성서 강습회에서의 박정수 선생과의 만남, 1965년의 일본 전도 여행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선생님의 일본 전도 여행 중 나고야에서 강연하신 기록이 있습니다. '복음에 의한 양민족의 친선'이라는 제목으로 에베소서 3장 13절 이하를 해석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3절을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맞춰 보면, 당신들은 전에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들이야 어떻든 현재 작은 이 나하고 여러분의 사이는 이제는 그리스도예수 안에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이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입니다. 다른 여하한 거스로도 화평은 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화평이며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원수진 마음을 헐어 주십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시고 그로써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계명은 율법은 물론 구약을 가리키리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들의 형편을 말한다면 정치, 경제, 기타의 절충(한일 회담 같은 것도 벌써 10여 녀이지만 도무지 되지 않습니다.)도 사람끼리는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십자가의 구속으로 화해한 것이니까, 모두가 폐기된 것입니다. 이제는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따로따로인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또 하나의 새사람으로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신 것입니다. 먼 데 있는 여러분에게 평안을 전하고, 둘 다 하나의 하나님의 성령으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사랑하기 위하여, 화해하기 위하여, 일치하기 위하여 이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즉 우리의 화평은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저는 저의 가슴 속에 새겨져 있는 선생님의 영원한 모습 중에서 두셋만을 말씀드리고 이 자리에서 내려가겠습니다. 하나는 충남 홍성 풀무골에서 동계 성서 강습회가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노평구 선생이 그 때 십계명 강의를 하고 계셨습니다. 여러 날 계속된 그 모임 중에 송두용 선생은 비교적 늦게 도착 하셨습니다. 송 선생이 도착한 순간 회원 일동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던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누구의 얼굴에도 희색이 만면하였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5 : 9)"

또 하나는 1960년 5월 선생님의 순회 전도 여행 중에 대전에 들렀을 때의 모습입니다. 오정리에서 모임이 끝나고 해산할 때였던 것 같은데, 집으로 돌아가는 우리를 전송하러 밖에 나오셨던 선생님, 두 손으로 한 지팡이를 짚고 한밭벌 약간 높은 언덕에 서서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우리를 지켜보시고 섰던 선생님.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롬 10:15)"

또 하나는 1965년 10월 1일 제가 성경을 배우겠노라고 동경으로 떠날 때입니다. 김포공항에서 저는 비행기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비행기가 떠날 때까지 전송객들이 비행기를 지켜볼 수가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 노평구 선생님은 크게 손을 흔들고 송두용 선생님은 큰 소리를 지르며 저를 환송해 주셨습니다.

"떳떳하게 잘하고 오라!" 아, 무한한 여원한 함축이 있는 선생님의 그 말씀!

또 하나는 1955년 8월 덕적도에서 하계 성서 집회가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토론 시간에 송 선생님과 노 선생님 사이에 논쟁이 붙었습니다. 논쟁은 격화되어 '컵이라도 날아가지 않나.' 하는 험악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무교회 성서 집회에는 생전 처음 참석했던 청년 박노훈 씨는 깜짝 놀랐다고 후에 제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기독교도 다 있나?' 드런데 토론 시간이 지나고 휴식 시간이 되었을 때 두 분 선생님은 언제 싸웠던가 하는 듯이 담소, 폭소, 대소하였습니다. 박노훈 청년은 그 날 송두용 선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여 그와같이 싸우다가 그와같이 달라질 수 있겠습니까?" 그 때 송 선생님은 박노훈 청년에게 분명히 일러 주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무교회야!"라고. 이 한 마디에 박노훈 씨의 그 후의 생애가 결정되었습니다.

지금부터 60년 전에 망망 대해를 향하여 한국 무교회라는 한 척의 배가 출범하였습니다. 그 첫시간부터 그 배의 선원이었던 송두용 선생, 선생님은 지금부터 1 년 전에 하늘로 개선하기까지, 그리고 개선하신 이후인 지금은 더욱 더 선생님과 한 배를 탄 우리들에게 "이 배의 사공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외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이틀 전 베다니의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예수의 제자들에게 욕을 먹으면서예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인의 임을 향한 일편단심을 예수는 칭찬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막 14: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송두용 선생님의 생애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한 마디로 이 향유를 부은 여인과 같은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이 아닙니까? 송두용 선생님의 일편 단심은 곧 무교회 신앙이었습니다. 무교회는 지금 도무지 인기가 없습니다.그러나 우리에게 예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송두용 선생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전해지리라."라고. 아멘.
(서울, '우리 성경'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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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V. 추도회 송두용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 백 충 현 늦깎이 2008.12.31 5427
4 V. 추도회 송두용 선생님 2주기 기념회에 참석하고 - 주 연 숙 늦깎이 2008.12.31 6151
3 VI. 논고 신앙애의 생애(1 of 3) - 주 옥 로 늦깎이 2008.12.31 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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