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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일부 ; 머릿말 - 노평구 ☼☼ "나는 해방 후 하도 답답해서 한 두번 선생이 경인지방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면 당신은 문제 없겠기에 실례지만 이를 권한 일이 있다. 선생은 "거기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오겠느냐"하시며 한마디로 뱉듯이 거절했던 것이다. 나야말로 신앙을 생명으로 생애를 바쳤던 선생에게 이렇게 실례했던 것을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한다." ☼☼
II. 친지와 독자
2008.11.21 10:17

믿음의 송두용 -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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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송두용

[박 영 호]


다석 유영모(多夕 柳永模)님은 ''성서조선''지를 함께 한 여섯 분과 가깝게 사귀었다. 핏줄의 부자(父子) 형제보다 더 친하였다. 성소조선 사건 때, 일본인 형사나 검사도 성서조선 사건 연루자(송두용, 김교신, 유영모 등)들의 신교(信交)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선망을 금치 못하였다.

송두용 님도 김교신 님, 함석헌 님과 함께 유영모 님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산 날수 셈도 그 하나다. 유영모 님도 송두용 님의 천순(天純)한 신앙 생활에 감동한 바 적지 않았다.

송두용 님이 북한산록 구기동으로 유영모 님을 찾았지만, 유영모 님도 드물지 않게 오류동 송두용 님을 찾았다.

최만년(最晩年)의 유영모 님의 일기에;
1967. 8. 6.
오류동 송댁(宋宅) 갔다가 부용화(芙蓉花) 보다.
1972. 1. 1.
오류동 집회==삼오오오합(參吾晤晤合)
원효로 면성(眠聲)==산지사방 함(散之四方 咸)
"오류동 모임에 나도 참석, 말하니 깨달아 하나,
원효로 잠꼬대로 사방으로 흩어져 꾸짖누나."(박영호 풀이)
이에 유영모 님을 사사(師事)한 한 사람으로, 송두용 님의 영전에 명상(생각)의 향(香)을 피워 올림이 예(禮)를 갖춤이라 믿는다.
다석 유영모 님께서 입천(入天) 전에 하신 말씀에,
"황소를 몰고 가던 농부가 갑자기 불어난 홍수(洪水)에 휩쓸려 소와 함게 물에 빠져 버렸다. 경황 망조(驚惶罔措)한 농부는 얼른 소의 꼬리를 잡았다. 큰 황룡(黃龍)이 등천(登天)하려고 안간힘을 다하여 몸부림치는 듯한 장강(長江)의 탁류는 이들을 단숨에 삼켜버렸다. 그런데 힘이 센 황소는 거센 물살을 헤엄쳐 천신 만고(千辛萬苦) 끝에 강 기슭으로 나왔다. 쇠꼬리를 잡은 소 임자 ㄴ오부는 쇠꼬리를 잡은 채 이미 숨져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죽어서도 쇠꼬리를 놓지 않고 있음에 이럴 수도 있구나 하면서 놀라워하였다." 유영모 님께서 힘 주어 하는 말씀이, "우리도 이 농부처럼 믿음의 생명 줄을 죽기 살기로 붙잡고 놓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죽어도 죽지 않는다."

송두용 님은 믿음의 생명 줄을 붙잡고 믿음만으로 일이관지(一而貫之)하여 생사의 벽을 뚫은 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것이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다. 영달(榮達), 치부(致富)하자는 삶이 아니다. 인생의 목적을 잃고 헤매고 있는 사람들아, 송두용 님을 보라!

내가 송두용 님을 처음 만난 것은(잡지는 더 먼저 보고) 1958년 초겨울이었다. 천안 씨알농장으로 가는 봉명천 다리 위에서 함석헌 님과 함께 오는 송두용 님을 만났다. 함석헌 님이 나를 소개하자 나는 머리 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런데 송두용 님이 불쑥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였다. 뜻밖의 일에 당황한 나는 장갑을 낀 채 손을 내밀고 말았다. 장갑을 낀 채 악수하는 것이 실례인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내 손은 송두용 님의 손에 잡혀 있었다. 이 실례의 실수(失手)로 인하여 송두용 님과의 첫 상면은 잊을 수 없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송구함에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그 때 송두용 님이 다정하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내가 실례를 저지르는 바람에 귀담아 듣지 못하였다. 다만 따사로운 느낌뿐이었다. 지금도 그 여운이 내 몸에 남아 있는 듯하다. 그것은 지금 생각하면 오랫동안 이웃 사랑을 실천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인(仁=사랑)의 맛이라 생각된다. 맹자는, 널리 이웃을 사랑함이 사랑(仁)을 사랑(親)함(汎愛衆而親仁)이라 하였다. 또 맹자는, "사랑(仁)은 사람이다.(人也者人也)"라고 하였다. 이 뜻을 송두용 님의 일생을 살펴보면서 더욱 뚜렷이 알게 됨은 무엇 때문일까? 촌로(村老)의 초라한 얼굴 모습에서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은, 공자의 말과같이 이인위미(里仁爲美)의 송두용 님이기 때문이리라고 믿는다.

왕척직심(枉尺直尋)의 거친 듯한 송두용 님의 언행은 그 바탕(質)이 순박함에서일 것이다. 공자는, 문질빈빈연후에 군자야(文質彬彬然後君子也)라 하였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고, 문승(文勝)보다는 차라리 질승(質勝)이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소위 정통 신앙에서 안연(晏然)할 수 엇어 송두용 님을 잡지 구독 공식 모임 이상으로 더 가까이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데 정통이 어디 있으며 비정통이 어디 있으랴. 홍로(紅爐)에 점설(點雪)처럼 너도 나도 하나님 아버지 품 안에 얼싸안기어 분(分)이 합(合)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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