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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일부 ; 머릿말 - 노평구 ☼☼ "나는 해방 후 하도 답답해서 한 두번 선생이 경인지방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면 당신은 문제 없겠기에 실례지만 이를 권한 일이 있다. 선생은 "거기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오겠느냐"하시며 한마디로 뱉듯이 거절했던 것이다. 나야말로 신앙을 생명으로 생애를 바쳤던 선생에게 이렇게 실례했던 것을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한다." ☼☼
II. 친지와 독자
2008.11.21 10:10

송 선생님을 환송함 - 홍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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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선생님을 환송함

[홍 순 명]


요한은 "신앙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그에게 마음을 향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은 말씀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말씀 자체가 생명이고 빛입니다. 그 생명의 빛은 사람 속에 비칩니다. 말씀은 신적인 일이나 유출된 신성이 아닙니다. 하나님입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또는, 바로 번역하면, 말씀은 하나님을 향해 있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으나 특정한 점에서 하나님입니다. 곧 육신이 되신 말씀인 그리스도, 역사에 모습을 나타내신 그리스도는 말씀이신 점에서 하나님입니다. 그리스도가 스스로 하나님이라 하실 때, 그는 동시에 영원한 생명과 빛을 스스로 창조하는 ''말씀''이라 주장하십니다.

우리가 그에게 마음을 향하는 것은 그의 말씀을 듣고 그에 따르는 것입니다. 양은 도적의 말이 아니라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신앙은 그의 말을 듣고 들은 내용에 찬동하고 거기 머무는 것입니다.

요한은, 믿는 것은 보는 것이라고도 했습니다(요 6:4, 12:44). 그리스도가 빵 다섯 덩이로 오천 명 군중을 먹이셨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굶주림을 채운 사실밖에 그 속에 숨은 뜻을 몰랐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새 현실을 꺼내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알려진 사실을 깊이 보는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을 듣는 신앙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너희들은 듣기는 들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기 속에 갇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도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을 예수는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신앙은 바로 듣고 보고 이해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집니다. 결국 요한의 신앙에는 사랑이 깃들고 있습니다. 사랑은 믿는 것에 대해 내적으로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예수는 포도나무의 비유 에서 "내게 머물라, 나도 네 속에 머물겠다.(요 15:4)"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은 신앙을 충실히 지키는 것입니다. 다시 예수는 "내 사랑 안에 머물라.(요 15:9)"고도 명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은, 형제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 신앙이 있을 때 존재는 생명이 됩니다. 빛이 됩니다. 그 사람은 진리를 알고 그 진리는 그를 자유롭게 합니다.(요 8:31)

송두용 선생님은 말씀을 듣고 보고 이해하고 그 일에 머무르셨습니다. 성서에 나타난 예수의 요구에 대해 정면으로 대응하는 생애를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한 생애를 평가하는 그 이상이나 이하의 기준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말씀은 선생님께 너무나 리얼(real)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말씀을 향해 스스로 고투하고, 긴 대화의 기도를 하시고, 대로 기뻐하면서 감동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인류를 위해 죽을 수는 있으나 거지와 한 방에 살 수 없다고 말한 이가 있으나, 선생님은 살 수 있었습니다. 걱정하면서 돌아간 부자 청년과는 달리 선생님은 재산 때문에 걱정한 일이 없었습니다.

풀무학교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달려오셔서 특유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선생님의 말씀은, 양탄자가 안쪽은 매듭의 불연속 같으나 바깥쪽은 하나의 예술품이듯, 끊어지는 논리적 연결 저편에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생애도 아름다운 쪽은 하나님을 향하셔서, 가족들의 마음아픔까지 개의치 않고 사람쪽에만 좋게 보이려하지 않으셨던 생활 태도를 이 자리에서 생각나게 합니다.

겉으로 나타난 선생님의 사업은 전도, 농사, 교육의 일이었습니다만, 모두가 믿음과 사랑을 동심원으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푸른학원에서 배우던 학생 하나가 풀무에 와서, 풀무도 괜찮지만 ''푸른''만은 어림도 없다, 푸른에서는 송 선생님이 학생 하나를 붙잡고 몇 시간이고 얘기를 하시는데, 처음에는 학생 이야기를 다 긍정하고 들어 주시다가 나중에는 어느 사이엔가 선생님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들에게 풀무에서 사소한 문제라도 있으면 먼길을 배를 타고 기차를 달려 찾아오셨습니다. 부모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그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같이 느끼게 하는 선생님의 사랑의 정을 느끼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너나가 없는 세계, 이것은 선생님이 매우 강조하시던 말씀입니다. 오류동 모임에 그 세계가 있습니다. 그 세계는 선생님이 파악하신 성서적 생활로 선생님의 마음 속에 살아있었으며, 모임 식구의 믿음이 연합하여 이루어진 세계입니다. 저는 이 평신도 공동체가 은혜에 의하여 자라고 성숙하는 의미가 크다고 믿습니다.

선생님은 여러 해 침묵 가운데 계셨습니다. 미소만 띠실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욥 같은, 듣기만 하는 상태뿐 아니라 그토록 해 오신 말도 하실 필요가 없으신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호이벨쓰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썼는데, 그것은 선생님의 만년에 가장 잘 해당되는 것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은 무엇인가?
즐거운 마음으로 나이를 먹고
활동하고 싶지만 쉬고
말하고 싶지만 침묵하고
실망하기 쉬운 때 희망을 갖고
순종하며 조용히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젊은이가 힘껏 하나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보고도
질투하지 않고
사람을 위해 일하기 보다 겸허히 사람의 돌봄을 받고
약해서 더 이상 남을 위해 일할 수 없어도
친절하고 유화한 것.

노년의 짐은 하나님의 선물
낡은 마음에 이로써 마지막 광을 낸다.
참고향에 가기 위해
나를 이 세상에 연결시키는 사슬의
고리를 하나씩 벗기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일
이리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그것을 겸손히 승락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최후로 가장 좋은 일을 남겨주신다.
그것은 기도다.
손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최후까지 합장을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 위에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끝마치면, 임종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다.
"오라, 내 벗이여, 내가 너를 버리지 않으리라."고

이제 선생님을 보내면서 저는 지금으로부터 12년 전(1974년) 이찬갑 선생님이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나셨을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회상합니다.

선생님은 그 자리가 인생을 개선하고 승리한 것을 축하하는 뜻에서, 고별이 아니라 환송식이라고 하시고, "비록 우리는 그가 남기고 간 육신을 흙 속에 넣으나, 그의 영혼은 지금 흙을 넘어서 찬송을 부를 줄 안다. 우리도 그에 화답해서 찬송을 부르며 감사와 기쁨으로 이 끝일을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또 선생님은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리스도 때문에 행복하였다. 그로써 그는 구원을 얻었다. 그리스도가 걸어간 대로 그는 걸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정말 너무나 어림없다. 그러나 하나님을 본 이는 이렇게 살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을 감사한다" 이 말씀 하나하나를 선생님의 영 앞에서 깊은 감개를 가지고 복창하는 심경입니다. 말이 아닌 생활로써 신앙의 길을 보여주신 선생님이 안계신 이 세상은 오류동 쪽 큰 귀퉁이가 마음 속에서 비워진 것 같지만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선생님같이, 말씀이신 하나님을 바로 듣고 보고 이해하고 머물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제 자유로우신 몸으로 선생님과는 동갑이시고 몇 차례 진리에 대한 사랑 때문에 다투시기도 했던 이찬갑 선생과도 만나 박장대소하시고, 먼저 가신 김애은 여사와도 손을 잡고 하늘에서 오류동 모임을 가지시겠지요. 국경도 민족도 없는 그곳에서 우치무라, 마사이케 선생과 지난 이야기도 나누시리라 믿습니다. 또 하관 때 자녀의 한 분이 선생님은 이제부터 가족 가운데 사시기 시작한다고 하신 말을 기쁘게 들으셨을 것입니다.

(풀무농업기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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