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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일부 ; 머릿말 - 노평구 ☼☼ "나는 해방 후 하도 답답해서 한 두번 선생이 경인지방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면 당신은 문제 없겠기에 실례지만 이를 권한 일이 있다. 선생은 "거기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오겠느냐"하시며 한마디로 뱉듯이 거절했던 것이다. 나야말로 신앙을 생명으로 생애를 바쳤던 선생에게 이렇게 실례했던 것을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한다." ☼☼
I. 환송예배
2007.05.12 16:27

고별사 - 노평구

조회 수 11008 추천 수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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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별 사 [노 평 구]

I. 환송예배를 중심으로

노평구/함석헌/유달영/박정수/김봉국/유희세/이진구/이진영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국내도 그렇고 크게는 남북 분단이 민족적으로도 소위 정치로써 크게 소란 가운데, 증오와 격돌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가 우리에게 있어서는 해방 후 40년의 계속이고, 일제하 36 년이 그랬고, 이조 500년 또한 그랬습니다. 이조의 망국은 결국이 정치 싸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정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선 인간의 외적 생활, 의식주에 대한 것입니다. 그 권력적 지배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지배하느냐, 누가 더 먹느냐, 누가 못 먹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싸움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너희가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었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송 선생은 이 아귀다툼의 우리의 정치 현실에서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신앙과 복음적인 진리 일변도로 철저히 80평생을 사신 데 선생 생애의 위대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될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선생의 이 위대한 종교적인 생애는 실로 선생 생래의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선생은 청년 시절에 심한 신경쇠약으로 고생했는데, 그것은 인생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선생은 소년 시절에 이미 가정적으로 불교를 접했고 유교의 서당 교육도 거친 모양이나, 결국 병고로 고향을 탈출하다시피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당시 세계적인 종교가로 무교회주의 신앙의 창시자인 우치무라(內村鑑三)의 문하에서 성서와 신앙을 배우면서, 기적적으로 병도 나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도 역시 선생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계셨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때 선생은 한때 동경농업대학에서 수학하며, 우치무라 문하의 김교신, 함석헌 등 6인조 동지의 한 사람으로서 ''성서조선''지를 발족시키고, 학업을 중단, 귀국하여 무교회주의 신앙 운동에 참가했으며, 더욱 해방 후에는 독립적으로 선생 자신이 ''영단'' ''숨은 살림'' ''성서인생'' ''성서신애''지 등을 통해 주로 경인 지방에서 전도 활동을 펴나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선생의 신앙의 특질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선생은 우치무라를 통하여 입신 후 철저히 신구약 성서의 독경과 기도, 특히 세상의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개인 전도와 주일 집회와 더불어 사랑의 실천, 봉사에 전력했던 것입니다. 위에 말한 잡지의 이름에서도 우리는 선생 신앙의 실천적인 면을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소위 우리 기독교의 설익은 자선 사업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선생의 끊임없는 독경과 한없이 깊은 기도의 생활로써 신앙이 인격적으로 무르익어,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진정 믿음으로 발동되는 사랑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아니, 하나님과 더불어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생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청년 시절에 경인 지방에서 농사와 무산 아동 교육에도 주야로 앞장서서 진력했으며, 특히 길가의 거지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가 함께 살았으며, 오늘 여기에 젊었을 때에 나병으로 고생한 이 선생도 나오셨습니다만, 가정을 개방하여 나환자에게도 극진한 사랑을 베풀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해방 후 제가 어느 해 설날 인천 선생 댁을 방문했을 때인데, 이 때는 이미 선생 자신이 가난한 생활에 떨어진 때로, 그 날 선생은 적지 않은 떡을 해다가 이를 고스란히 다 간석동에 있었던 나환자 부락에 보내는 것을 직접 본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제가 알기로는 가정에서는 일절 이에 손을 대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은 영동 갑부 송씨 집안의 후계자로 상당한 재산가였습니다만, 선생의 많은 재산은 결국 이렇게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는 일로 소비된 것으로, 일제 말기 소위 대동아전쟁중에는 선생이 재산 처리를 일반 토지시세에 의하지 않고 관에서 염가로 정한 고시가격으로 고스란히 처분했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선생의 재산은, 이렇게 철저히 성서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소유물로 알고 사리 사욕 없는 사랑에 의해 소비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선생의 세상적으로는 우직할 정도의 신앙의 실천 생활은 후일 자제분들의 반발에 접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직접 저에 대한 일입니다만, 해방 후 제가 화재로 모든 것을 소실하고 부상으로 누워 있을 때 선생이 자신의 옷을 벗어 저에게 갖다 주신 일이 있습니다. 반년 이상 누워 있었던 관계로 옷이 필요 없어서 선생께 돌려드렸습니다만, 선생은 역시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서조선'' 동인으로서의 함석헌 선생은 해방 후 우리의 정치·사회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만, 송 선생은 오로지 초지일관 일편단심 기독교 신앙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고스란히, 선생이 즐겨쓰시던 ''까치끈''이란 말씀 그대로 생애를 바쳤습니다. 응당 종교는 정치 이상의 세계로서, 저는 선생의 이 신앙 생애를 민족 신앙에 대한 위대한 공헌으로 높이 평가하려 합니다.

끝으로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해방 후 6·25의 민족 상잔 후 이북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가 팽배했을 때, 사랑으로 저들에 대한 기도를 주장하고 이를 오늘날까지 실천한 것은 홀로 선생뿐 아니신가 합니다. 그리고 최후 3, 4년 동안의 선생의 긴 병석은 하나님이 이 남북 우리 민족의 죄를 고스란히 선생에게 지운, 의인의 고난과 희생의 거룩한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선생이 좋아했던 은사 우치무라의 ''Independence(독립)''란 영시로써 선생을 하늘에 환송하려고 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황금 이상, 명예 이상,

지식 이상, 생명 이상,

오, 너 독립이여!

오, 너 제왕들이여,

오, 너 지배자들이여,

오, 너 승려들이여,

오, 너 박사들이여,

너희는 폭군들이로다.


오직 진리와 함께,

오직 양심과 함께,

오직 하나님과 함께,

오직 그리스도와 함께,

나는 참 자유하도다.

(''성서연구''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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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찌공주 2018.02.11 08:27

    읽고 감. 공부해야 해서 바빠 이만실례. 윈도우 엣지에서도 열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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