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환송예배

저 대신 상주노릇 해 주신 친구 - 함석헌

by 늦깎이 posted May 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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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대신 상주노릇 해 주신 친구

함 석 헌


이제 말씀하신 대로 ''성서조선''을 시작한 여섯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아마 이제 우리 아는 대로는 제가 혼자 남았고 양인성 씨는 잘 모르겠습니다. 북한에 계셨으니까 살아 계신지 세상을 떠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동경에서 만났고, 그 때 제가 갔을 때에는 벌써 송 선생은 김교신, 그 밖에 유석동, 정상훈과 함께 먼저 내촌 선생의 집회에 나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후에 가서 서로 알게 되었고, 이제 신앙 말씀 하셨는데, 그의 신앙이 참 단순한 신앙인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무슨 제물이라든지 그런데에 도무지 생각이 없으신 것, 살림 나실 때에는 아주 부유하셨고 잘 모르기는 하지만 양반 집안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회덕 송씨라고 하면, "나 회덕 사오."하면 세상에서 다시 말할 필요가 없으리만치 그렇게 유명한 집안인데, 그런 양반 집안이라든지 하는 그런 티를 조금도 나타내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앙을 말씀할 때 보면, 그야말로 이제 노 선생의 말씀같이 단순한 신앙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늘 자기더러 말씀하라면 이것저것 한가지로 한 곬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하셨지만, 직업은 그렇게 말할 수 있으나 신앙만은 이때까지 변치 않고 지켜 오신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그러니만큼 자기 마음 속에 ''이것은 잘못됐다.''고 느끼는 일이있으면 그것을 거리낌없이 충고해 주곤 했습니다. 아마 ''성서조선'' 여섯 사람 중에 저만 내놓고는 대개 좀 의견이 달라서 때로는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체 저는 못생긴 사람이니까 그저 가만히 있는 거지요. 그런데 한번은 김교신 씨 댁에서 김교신 씨와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곧다면 곧이곧대로이신 분입니다.

재산은, 내용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서울에 제가 처음 와 보니까 큰 집에 사셨는데 차차 집이 작아졌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기 소유라곤 아무것도 없이 사셨습니다. 나는 특별히 잊을 수 없는 한 가지 일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40년이었는데, 제가 1938년에 오산학교에서 10년간 교원 노릇하던 일을 그만두고 2년간 지난 다음에, 평양 시외에 누가 정말식 고등학교를 하던 것을 넘겨준다고 해서 그것을 맡아가지고 나갔던 일이 있었습니다. ''송산 농사학원''이라고 했는데 거기에 가서 있는 동안에 무슨 일이 생겨서(제가 직접 관계되는 일은 아니고 그 학교를 창립했던 이가 동경에 가서 사건이 생겼는데) 거기에 연루되어 경찰에 가서 1년 동안 유치장에 들어간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저의 아버지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제가 장남인 줄 알면서도 아무리 일본 사람들이지만 인정상 그럴 수가 없겠는데 당국에 아무리 진정을 해도 보내 주지 않아서, 종래 임종을 못 했을 뿐더러 돌아가신 후에도 상주 노릇도 못 했습니다. 그 때에 서울에서 용천까지 천리길을 김교신과 이분이 같이 와서 저를 대신해서 상주노릇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 일은 보통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그런 일도 있고 해서 언제든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세월은 이렇게 어려워져서 38。선을 넘어서 올 때에도 저는 시골에서 자랐으니까 친구도 별로 없어, 전수히 송 형을 목표로 의지하고 내려와서 오류동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수고를 많이 끼쳤습니다. 그런데 후에라도 아무런 보답도 못 한 것을 여러분 앞에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의리상으로 그럴 수가 없는데, 바삐 지내다보니 지난 해 미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곧 가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못 했습니다. 이곳에 둘째 아드님이 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미국에 있을 때 거기서 묵고 왔는데, 전번에 미국 갈 때에는 마지막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잠깐 뵙고 갔습니다. 요 전번에는 생각에는 있으면서 머뭇대다가 그냥 갔기 때문에, 이번에 돌아오는 길에는 누구보다도 먼저 찾아 뵙는다는 것이 이일 저일로, 물론 내 의지가 약해서 그냥 있다가 그저께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생각하고 앉았노라니까, 갑자기 송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와서 놀랐습니다. ''내가 참 잘못했군.''하고 바로 달려왔습니다만, 그 때는 벌써 다 수의를 입히시고 그런 때니까 다시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제 노 선생 말씀과 같이 신앙을 지키는 사람이 참으로 드뭅니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가 전체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내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너나 할것없이 고난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때에 참 믿던 한 분이 가신 것은 우리들에게 가슴아픈 일입니다. 가신 그 분은 성경에도 있는 대로, 그러한 분을 이 세상에서 감당할 자격이 없어서, 그런 이를 오래 둘 수 없어서 하나님께서 일찍 데려가신다는 그런 말대로 그렇게 믿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 남은 사람으로 생각할 때에는, 더구나 저 같은 것은 나이가 다만 3년이라도 위인데, 먼저 가신 것을 생각하면 슬픈 마음 한없이 많이 듭니다. 모처럼 살아 계신 동안에 우리에게 보여 주신 그 본을, 신앙으로 살아가는 그 모범을 피차에 지켜가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 나라뿐만 아니라 전인류들이 다시 하나님 내버리고 돌아섰던 그 길에서 돌아오는, 무슨 그런 일이 있기 위해서 그 믿음을 지켜가기를 우리는 다시 한 번 약속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