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용신앙문집. 제1권. 송두용신앙문집간행회. 노평구 유희세 송문호 송석중 이진구. 제 9 부. 성서신애(聖書信愛) II. 1973년 10월부터 1981년 12월까지. 주필(主筆) : 송두용(宋斗用). 성서신애사.
마태복음 7 장 12 절에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누가복음 6 장 31 절에도 똑같은 말씀이 있으나 '무엇이든지'가 없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황금률'이라고 하는데, 아마 가장 귀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황금률'이라는 표현은 도무지 부적당한 것 같다. 습관상 나도 따르지만 말이다. 요즈음에는 사람들의 마음이 물질에만 치우쳐 인생의 전부를 금전에만 의지하는 세상이고 보니,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오늘에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황금(금전)만능'이라면서 그것이 당연한 듯이 태연자약하니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 ? 결과는 사기, 절도, 강도, 살인 등등 어찌 생지옥이 아니냐 ?
그러기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모든) 악의 뿌리"(딤전 6 : 10)라고 한 바울 사도의 말이야말로 사실이며 진리가 아니냐 ? 누가 감히 부정이나 반대하랴 ? 이 말에 나는 고개가 숙으며 100% 공명(共鳴)하면서 "아멘"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기독교에서는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 '생명의 말씀' 혹은 '복된 소식' '기쁜 소식' 또는 간단히 '복음' '진리' 등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도저히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글서 '황금률'이라고 한 것도 할 수 없이 붙인 이름일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성서 중에서는 '말씀 중의 말씀' '소식 중의 소식' '복음 중의 복음' '진리 중의 진리'가 황금률 이 한 말씀에 요약되었다고 나는 믿고 싶다. 그러니 '황금률'이야말로 얼마나 귀하고 위대하냐 ?
그런데도 왜인지 이상하게도 아니아니, 불행하게도 불신자는 당연한 지도 모르거니와 신자들까지도 대부분이 이 귀하고도 놀라운 진리의 말씀을 얼마나 소홀하게 여기는지 정말 한심한 일이다. 실은 나 자신도 이 말씀에 아니, 이 말씀을 살지 못하며, 살고자 하는 성의(誠意)조차 없으니 무슨 말을 하랴 ? 두려울 뿐이다.
만일 이 말씀에 근거하여 인생을 살기만 한다면 무엇을 더 바랄 것이냐 ? 그러나 우리는 낙심하지 말자.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셨고 예수님은 속죄의 제물이 되셨으니, 그 사랑, 그 은혜가 바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하신 말씀의 실천이며 본보기가 아니냐 ?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그 십자가를 우러러보며 믿고 의지하면서 감사하고 찬송하자 !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 즉 '황금률' 밖에는 인생의 살길이 없기 때문이다.
('77. 9. 신애. 통권 22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