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용신앙문집. 제1권. 송두용신앙문집간행회. 노평구 유희세 송문호 송석중 이진구. 제 9 부. 성서신애(聖書信愛) II. 1973년 10월부터 1981년 12월까지. 주필(主筆) : 송두용(宋斗用). 성서신애사.
'안전제일'이라면 듣기에 무엇인가 몹시 나약한 것같이 느껴지면서 병자나 어린이, 또는 여성(얕보고 하는 말이 아니다)에게나 해당되는 말로 생각하기 쉽다. 나는 성서의 진리에 따라 민주주의의 원칙과 자연의 질서를 중시하는 뜻에서 병자와 어린이, 또한 여성을 존경할 뿐더러 특히 여성이야말로 약하면서도 무척 강한 존재라고 믿는다. 어쨌든 나는 지금까지 '안전제일'의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인식 못한 것 같아 부끄럽다. '안전제일' 하면 '교통안전' 따위나 생각했으니 말이다. 건널목 또는 네거리, 혹은 수십층 건축물의 작업장에서만 쓰이는 말로만 생각하다니 !
그런데 나는 새해 오늘(1월 6일) 새벽에 문득 '안전제일'이라는 생각이 마음에 떠올랐다. 74살이 되도록(아내는 75살) 살아온 것을 회고하면 인생의 전부가 온통 '안전제일'이었음을 어찌 부정하랴 ? 나는 1904년에 충남 회덕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7살 때에 양자로 서울에 와서 보통(국민)학교, 고등보통(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도쿄에 유학하였다가 그 무서운 관동대진재를 만나 구사일생으로 귀가하였지만, 22살 되던 해 봄에 고도의 신경쇠약증으로 심한 고민과 신음 중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행 10 : 10) 환상(주님의 모습)을 보았는데(행 10 : 17), "성령께서 저(나)더러 말씀하시되"(행 16 : 31)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는 의심이나 누구와 상의도 없이 즉시 믿기로 다짐하고 또다시 도쿄에 갔다. 우선 믿음을, 다음에 지식도 얻기 위해서다.
그 때에 나는 동양의 기독교에서 제1인자요, 사도 바울과 개혁자 루터와 함께 또 한번 부패한 기독교에 새 빛과 생명을 불어넣은 우치무라에게 사숙한 것이다. 1925년에 입신 후 50주년(1975년)을 지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간에 해방과 6·25동란, 4·19 학생의거, 5·16 혁명 등을 겪고 1969년부터 낙도 장봉에서 어린 싹들과 함께 9년째 맞는다.
여기서 나의 하찮은 생애의 짧지 않은 일생을 돌이켜보건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온통 은혜투성이 속에서 살아왔음을 뼈저리게 느낄 뿐더러 하나님의 품이 얼마나 '안전지대'인가를 깊이 깨달으면서, 아버지 품이야말로 우주간에 다시없는 '안전제일'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떠나서 어디에 '안전제일'이 있으랴 ? 예수를 믿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오직 이 길(진리)만이 '안전제일'의 안전지대임을 마음으로 다같이 참평안, 참평화, 참기쁨에 살자는 것이 새해의 나의 소망이다.
('77. 1. 신애. 통권 22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