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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2 23:32

■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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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이 책의 저자 야나이하라 다다오(失內原史雄)는 근대 일본이 낳은 탁월한 기독교 신자인 동시에, 우수한 사회 과학자요, 일본 제국주의 비판을 포함한 예언적 평론가다. 그의 학문적 달성에 대해서는 중앙 공론(中央公論)사 창립 80주년 기념으로 제정한 근대 일본의 형성자 각계 인사 100 인 중 대지식인 10 명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고 있다.

1893년 에히메께(愛媛縣)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제일 고등학교 재학 중 그의 청년기의 사상과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을 만난다. 니도이나조(新疫部稻造)는 당시 교장으로서 기독교적 입장에서 일본 교육계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뒤에 동경 대학 교수와 국제연맹 사무국 차장을 지낸 당대의 유명한 기독교 사상가이다. 한편 우찌무라간조(內村鑑三)의 성서 연구회에도 이때 입문하였는데, 평생 변함없는 경애의 마음으로 시사하였다. 동경 대학 법학대를 졸업하고, 스미도모(住友) 벳시(別子) 광업소에 취직했으나, 곧 모교 경제학부에 조교수로 초청되어 영국, 독일, 불란서, 미국 등 구미 여러 나라에 유학, 30세 때 귀국하여 교수가 되고, 식민 정책의 강좌를 담당했다.

그의 학문은 종래의 식민 정책이 현실 정치의 여러 측면에서의 법률적 제도적 기술 위주로 그 이해득실(利害得失)을 싸고 주관적 단편적 정책 제언을 개진한 인습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던 데 대해, 식민 정책을 객관적, 과학적 분석 위에 서는 하나의 엄정한 사회 과학으로, 체계화하는 거창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의 일반적 연구, 식민사와 식민 학설의 연구와 함께 제국주의의 이론적 연구, 식민지 체제의 문제, 즉 본국과 식민지 간의 종속 관계, 식민지 민족주의 문제에 걸쳐 큰 스케일의 연구 과정을 진행시켰다. 「식민 및 식민 정책」, 「식민 정책의 신기조」, 「인구 문제」, 「제국주의 하의 대만」, 「만주 문제」 「남양 군도의 연구」, 「민족과 평화」, 「민족과 국가」, 「제국주의 하의 인도」 등 학문적 업적에서 우수하게 평가되는 노작들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학문적 업적은 단지 그의 천부적 재능과 정력의 활동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930-40년대는 일본 제국주의가 내외에서 창궐하고 자기 세력권 내에서 비판자의 존재를 불허하도록 맹위(猛威)를 떨친 시기였다. 그는 대만, 한국, 만주, 남양, 화태 등지를 다니며, 일본 제국주의와 그 식민 정책의 실태를 조사하고 면밀한 과학적 분석을 했으나, 그런 현실 분석을 통하여 명백한 진리, 곧 실로 어떻게 일본 제국주의와 그 식민 정책이 잘못에 찬 것인가를, 또 그 권력으로 피압박 민족을 박해하는 것이 과학적 연구에서 보아 어떻게 정의와 지식에 어긋났는가를 학문적 입장에서 주장한 것이다. 그에 있어서는 사회 과학은 그가 믿는 기독교를 굳게 지지하는 것이고 그 반대가 아닌 것으로 인식되었다. 곧 그는, 로일전쟁(露日戰爭)이래 전쟁을 반대한 우찌무라의 흐름을 따른 기독자로서 제국주의를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사랑하는 조국 일본이 타민족을 지배 예속시키고, 침략 전쟁을 확대하고, 안으로 자유와 민주 정치가 억압되는 것을 그대로 지나칠 수 없었다. 그의 학문은 그의 기독교 신앙과 그에 입각한 전쟁 반대, 평화 사상과 합치했다. 이것은 그의 과학적 저서인 「식민 및 식민 정책」을 다음 말로 맺은 것으로도 엿볼 수 있다. “학대받은 자의 해방, 가라앉은 자의 향상, 그리고 자주독립자의 평화적 결합, 인류는 과거에도 바랐고, 오늘도 바라고, 장래에도 이를 바랄 것이다. 희망! 그리고 신앙! 나는 믿는다. 평화의 보장은 굳센 하나님의 아들, 불후(不朽)의 사랑에 있는 것을.”

이러한 그의 자세가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권력가에 그대로 용납될 리가 없다. disk이하라는 중앙 공론, 개조, 이상 등 잡지에 논문을 집필했는데, 이는 “이들이 순수한 학습 잡지가 아니고, 세상 대상이니까, 내 사상적 입장을 학습 잡지보다 선명히 나타낼 자유가 있고, 또 그 피리요도 있어서”였다. 그러나 중앙 공론(1937년 9월호)에 게재된 ‘국가의 이상’은 야나이하라 필화 사건(筆禍事件)의 계기가 된다. 이 글에서 그는 국가의 이상은 대내적으로 정의, 대외적으로 평화에 있다고 구약 이사야를 들어 일본의 대륙 정책을 비판하고, 국내의 언론, 사상, 탄압에 대하여 항의하고 만주 사변을 불의(不義)의 싸움으로 단정, 일본의 반성을 촉구한 것이 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되어 동지는 폐간되고 야나이하라는 동경 대학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동대를 사직한 이후 전부터 내던 개인 신앙 월간지 「통신」을 「가신(嘉信)」으로 개제 발간하고, 대학생 상대의 고전 독서회인 토요 강좌를 속개하였다. 44년에는 「가신」지 마저 폐간되었다. 그는 「가신」지의 폐간은 군국주의 일본의 패망을 예언하는 것으로 경고했다. 마침내 1년 뒤 종전이 되었다. 다대한 인명을 잃고 숱한 피가 흘려진 뒤 현상 몰각(現相沒却)의 이상론, 국익 배치의 비애국적 언동도 배척되었던 그가 가장 현시적 애국자요 진리의 옹호자임이 전쟁 결말과 함께 명백히 된 것이다. 종전과 함께 그는 표면적으로는 동대 교수로 복직, 국제 경제론의 강좌를 맡고 사회과학 연구소장, 일본 학사원, 학술원 회장 역임과 함께 2-3대 동대 총장을 역임하였으나, 그의 관심은 “불의, 교만“의 옛 일본의 패망을 계기로 새 일본의 민주화, 복음화, 평화에 집중되었다. 대학의 학문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대학의 소요로 국회에 소환되었을 때도 대학은 국민 건강을 위해 페스트를 연구하듯 모든 사상을 연구해야 한다, 학문의 자유의 보장은 개개의 특수한 문제보다 일반적 원리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증언했다. 일본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그에 의해 자유와 책임 관념을 얻고 모든 동포를, 특히 약자에 대해 형제로 대할 수 있는 휴머니즘의 근원으로서 바른 신관(神觀)을 제공하는 소박 강건한 기독교 정신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총장직의 격무(激務) 가운데서도 계속 집회를 주재하고 월간 신앙지를 1961년 별세 때까지 간행한 것도 복음이야말로 진정한 일본의 민주, 평화, 자유, 독립의 척추로 믿은 때문이었다.

그의 서거는 광범한 계층의 애도를 받았다. 미망된 권력자와 그를 추수하는 사이비 학자 등 진리에 거스르는 세력에 대한 의연한 저항의 자세와, 섬나라 국민에게 보기 드문 활달, 진실, 겸손한 인격, 근처에서 흡수한 유럽 사상의 일본적 변용으로 현실과 신앙을 종합하는 대형 지식인의 면모는 앞으로도 일본의 정신적 형성에 계속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67년에는 암파(岩波)에서 학술 연구와 성서 연구를 포함한 방대한 저작집 29권이 발간되었다.

disk이하라는 한국과도 국경을 넘은 깊은 선린의 관계가 있었다. 동대를 졸업하고 나서 민간인으로 한국에 와 ”일본인과 한국인의 간격을 메우고자“ 일하려 했으나 가족에 대한 의무를 의식하여 단념하기도 했다. 식민지 통치 밑에 있는 한국인이 받는 불의에 대해, 그는 저서와 개인잡지 「가신」으로 지탄하고, 건전한 정책 방향을 제시하였으며, 압제를 받고 있는 동포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저서 「식민 정책의 신기조」 중 「조선의 산미 증식(産米增殖) 계획에 대해」, 「조선 통치의 방침」은 한국에 대한 무단 총독 정치와 경제 착취를 비판하고 장래 독립 국가를 목표로 하는 조선 민족 중심의 경제 정책 및 자주적 지위의 용인과 조선 의회 개설을 주장했다. 이 글이 발표되던 때가 우연히 신간회(新幹會) 발족과 때를 같이한 점에서, 어떤 내적 관계를 추측하는 이도 있다. 그 뒤로도 그는 일본의 언어 정책, 기독교 탄압, 동화 정책을 비판했다.”조선인 학동이 조선인 교사에 의해 일어로 일본 역사를 배우는 소학 교육을 참관하고 심중 낙루(落淚)를 불금했다“고도 했다.

단말마적 일제의 압박 밑에 신음하는 많은 동포가 그의 언론과 싸움, 그리고 독립문통으로 격려와 힘을 얻었다. 이 지성(李志成) 씨에게는 ”내 맘은 일시 일각(一時一刻)이라도 조선 반도를 떠나 본 적이 없다. 그곳에 있는 젊은이들아, 낙심하지 말고 씩씩하라. 뜨거운 기도를 보낸다.“고 써보냈다.

1940년에는 내한하여 8-9월 두 달에 걸쳐 부산, 대구, 대전, 목포, 수원, 인천, 종로 기독 청년회, 평양, 함흥, 나진, 청진, 원산 등 전국을 다니며 기독교 강연을 했다. 강연 중 숙소는 감시를 피해 친지 관리집에 체재하고, 어느 때는 주최측 임자가 경찰에 소환되고 형사가 여관에 오는 등 긴장의 연속이었다. 종로 기독청년회에서의 강연은 기독교의 핵심 주제를 다룬 로마서였다. 그는 일제 밑에 놓인 한국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한국 자신의 위대한 종교 신앙의 확립 이외엔 없다고 하고 정치적 저해에 집착 말고 예술, 사상, 종교 등 정신면을 살릴 것을 부탁하였다. 특히 한국은 정치적 현실이 일제로 봉쇄된 만큼, 일본의 정치 관심으로 치명적 손실을 입고 있느데 비해 정신면에 일본 이상의 발전이 있기를 기대하였다.

한국에 대한 이런 사랑이 해방 되었을 때 고당(古堂) 조 만식(曺晩植)으로 하여금 일제로부터 해방된 기쁨과 함께 떠오르는 것은 일본의 진정한 애국자인 야나이하라 교수의 심중을 생각하고 한없는 슬픔을 느낀다고 말하게 한 것이다. (야나이하라 전집 8권 월보 소재 노 평구[盧平久]글)

한국 동란 때는 「가신」지에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지금은 어느 낯선 산하(山河)를 헤매는가, 나는 보낸다, 한잔의 물, 한 켤레의 신을, 무고한 형제가 전쟁터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천사여, 그의 영을 하늘에 영접하라“는 내용의 통곡의 시를 실었다. 독자 김 종길(金鍾吉)씨에게는 ”한국민은 큰 시련을 만나고 있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 사는 국민은 반드시 부흥하리라 믿습니다“고 위로의 글을 써보냈다.

참으로 그는 정의와 평화에 토대를 둔 이상의 일본을 사랑하는 참 일본인이면서 그 정의와 평화의 정신에 입각하여 우리의 참 이웃이 되었고, 정치 경제면의 이해만이 전면으로 클로즈업되어 온 두 나라의 불행한 역사적 관계에서 진정한 선린의 정신과 실천을 제시해 준 사람이다.



이 책의 원본은 1940년에 같은 제목으로 암파신서(岩波新書)로 출판되었고, 1947년 종전 후 속편이 간행되었다. 이 책은 그 중 니도베, 우찌무라 등 일본인은 빼고 시대 순으로 한 권에 모은 것이다.



이사야도 모르고 청년 시절을 보내는 불행한 이들이 있다고 민족의 어느 스승이 한탄하였다. 그 만큼 이사야는 난해한, 과거에 속하는 인물이 아니라 시대를 넘어 인생과 사회의 근본 문제에 신선한 해답을 주는 위대한 영혼이요, 영원한 시효를 갖는 메시지의 전달자다. 괴테 말대로 인지(人智)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본질적으로 인간은 동일하다. 특히 요즈음 같이 어려운 때 일수록 인간 성장의 모형과 시대를 사는 용기와 새 사회 건설의 초석을 이사야를 위시하여 여러 인물의 사상, 신앙, 인격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위인은 그를 따라사는데 비례하여 이해된다고 한다. 그 점에서 저자의 기백과 진실로 일관한 생애는 여기 수록된 인물에 대한 좋은 설명과 주해자가 되리라 믿는다.

참고로 야나이하라의 저서 중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가 고 영춘(高永春)씨 역으로 설우사(雪友社) 문고로 국내에서 발간되었음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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