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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국적을 둔 자
다까하시 ·사부로
[高 橋 三 郞]

2003. 6. 1




우리들의 국적은 하늘에 있다. 거기서 구세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우리는 기다리며 바라고 있다.
(빌립보 서 3:20)
(일본성서협회 1954년 개역판에서 중역)



1


여러분의 기도에 힘입어, 오늘 이와 같이 예배를 함께 드릴 수 있음을 감사하며 저의 마음이 차고 넘칩니다. 아까 사회자께서 읽어주신 빌립보서 3장 20절 말씀에서 신공동역에서는 '본국'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국적'이라는 번역말이 적절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차차 설명드리겠습니다.
'국적'이라는 말은 신약성경 안에서는 여기서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폴리테우마(politeuma[원어 생략])라는 원어입니다만 이 특이한 말을 어째서 바울이 여기서 썼는지, 어째서 '국적'을 문제삼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 우선 그가 그리스도 신앙에 인도되기에 이른 그 이전의 바울(사울)의 모습을 보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율법의 열심에 불타고 있던 바리새인으로서의 과거를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팔일만에 할례를 받은 자, 이스라엘 민족에 속하는 자, 베냐민 족 출신, 히브리사람 중의 히브리사람, 율법으로는 바리새 사람, 열심으로 말한다면 교회의 박해자, 율법에 의해 대하여는 험잡을 데 없는 사람이다.(빌립보서 3:5~6)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유명한 고백입니다. 예전의 바울이 얼마나 열렬한 애국자였느냐 하는 그 정황이 여기에 생생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유대교도로서의 긍지 높은 귀속의식(歸屬意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을 때 자기의 전존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바리새인으로서의 과거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와 더불어서, 유대교도로서의 귀속의식까지도 뿌리째 뽑혀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지상(至上)의 가치로서 지켜온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가 붕괴되어 버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는 모든 것을 잃었으나, 그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생각하고 있다.(빌립보 3:8)
고까지 단언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의"와 "신앙으로 말미암은 의"라는 내면적인 대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전의 율법공동체와 결별하였다는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의 입신(入信)은 공동체에 대한 귀속의식(즉 민족적 아이덴티티)에 대한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사정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앞에서 본 "국적"이라는 말에 앞서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취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적하여 걷고 있는 사람이 많다. 나는 저들에 관하여 때때로 당신들에게 이야기했지만 지금도 또 눈물을 흘리면서 이야기한다. 저들의 종국은 멸망이다. 저들은 그 배가 저들의 하나님이며, 그 부끄러움이 저들의 영광이며 저들의 생각은 땅위의 일인 것이다. (빌립보 3:18~19)
(이 마지막 부분은 신공동역쪽이 좋습니다. "저들은 배를 하나님으로 삼고, 부끄러움을 자랑으로 여기며, 이 세상일 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신공동역)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대적하여 걷고 있는 사람"이란,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유대교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한 때는 믿음을 같이하는 동신(同信)의 친구로 지내던 사람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하고 멸망에로 전락해 가고 있는 모습에 그는 비탄의 심정으로 눈물짓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 자신은 이 율법공동체와 결별하고, "하늘에 국적을 둔 자"로서의 발걸음을 걷고 있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맥에서 "국적"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를 이제 우리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말이냐 하면 바울은 이제 "천국의 백성"이 된 것이며, 구주이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앙공동체의 모습이 여기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2


바울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복음신앙의 근간(根幹)으로 하였기 때문에 유대교도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유대인으로서의 긍지를 내던져 버리고 이방세계에 대한 전도에 몸을 던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동로자들의 전도활동을 통하여 그리스도 신앙으로 인도된 사람들은 2중의 공격을 당하는 위험 앞에 서야 했습니다. 그들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숭앙받아 온 이방신들에게 무릎꿇어 경배하기를 거절하였으므로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이단자로서 배척을 받았으며, 또한 황제예배도 거부하였으므로 국가로부터도 박해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궁지에 내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의 수효가 착실하게 늘어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박해 속에서 어째서 신도의 수가 증가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근저에는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었다는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노예라고 일컬어지고 있던 사람들을 저들의 사굄안에 포용해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 새로운 삶의 자세들이 새로운 생명을 낳아갔던 것입니다. 하 지 만 이 것 은 오 늘 말 씀 드 릴 주 제 는 아 닙 니 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귀속할만한 땅위의 나라는 없었지만 신도의 공동체즉 '교회'로서, 사랑의 교제를 지켜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국가와 아무 보잘것이 없는 신도 공동체로서의 교회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성립되어 있었을까요? 정치적으로는 물론 교회는 국가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신도들은 국가의 정치권력보다 우월하는 초월적 지배자를 하늘에 우러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정황이 골로새서가 말하는 다음의 증언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아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에 앞서서 나신 분이시다. 만물은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이나 보이지 않는 것들, 지위도 주권도 지배도 권위도 모두 아들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체의 것들은 아들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아들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그는 만물보다도 먼저 계시며 만물은 그의 안에서 성립되어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그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시다. 그는 근원자이시며 죽은자 가운데서 맨 먼저 나신 분이시다. 그것은 그분 자신이 모든 일에 있어서 첫째 사람이 되시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그의 뜻으로 말미암아 아들 안에 모든 충만한 덕을 깃들게 하시고 또한 그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평화를 만드시며, 만물 즉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모두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해시켜 주신 것이다." (골로새서 1:15~20)
이것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입니다만 거기에 모든 것이,
"아들 안에서 창조되었고"
"아들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아들을 위해 창조되었다."
라고 세 번 반복하여 고백함으로써 모든 것이 그 존재의 근거를 아들 예수님께 두고 있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로마 제국의 황제와 그 지배 권력도 이 아들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표명한 것입니다. "지위도 주권도 지배도 권위도" 등등 모든 영적 존재가 열거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은 종교적 세계에서의 아들의 탁월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도 보입니다만, 사실은 그 배후에 숨겨진 형식에 있어서, 이것은 교회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절대적 지배를 고백하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이같은 신앙고백을 공유했던 당시의 그리스도 신도들은 학대받는 약자이면서도 신앙적 귀속의식에서는 로마의 지배를 넘어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발걸음을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놀라운 귀속의식은 신도들의 내적 자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윽고 눈에 보이는 현실로서 구체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리스도 신도는 그 후 300년에 이르는 박해를 견디어야 했습니다만, 313년에는 금교령(禁敎令)이 해제되고 392년에는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帝國)의 국교가 되어 드디어는 로마 교황이 국왕보다 우월한 권위를 보유하는 존재가 되었던 것입니다. 왕들은 대관식에서 로마 교황으로부터 왕관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 상징적 표출입니다. 즉 골로새서가 말한 바와 같이 아들 예수님이야말로 만물 위에 선 '제1위의 존재'로서 추앙받으시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황제의 정치권력과 교황의 종교적 권위가 어떠한 관계 위에 서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그 후의 역사의 중심문제로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가 그것입니다.


3


이 문제에 대한 역사적 과정을 자세하게 추적해 볼 여유는 없으므로 여기서는 독일에서 나치즘이 일어남으로써 어떠하 ㄴ사태가 발생하였는가 하는 사정을 거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대단히 민족주의적이었던 독일적 기독자의 신앙운동은 교회를 국가의 지배하에 자리매김하였으므로, 히틀러도 이것을 이용하여 제국교회라는 것을 창설하여 그 심복인 루드빗히·뮬러가 제국교회의 감독에 취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정치적 독재권력교회 위에 서는 그러한 사태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또한 게다가 히틀러는 유대인을 교회안에서도 철저하게 배제하려고 했으므로 그리스도교회로서는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야말로 신앙고백적 결단을 요구하는 사태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고백교회'로서 결집한 사람들이 '바르멘 선언'을 공표함으로써 저항의 거점을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유명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도 그 당시에 마찬가지의 사태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그러나 일본교회는 독일의 경우처럼 신앙고백적 대결을 하는 일은 없었고 제국주의적 국가사상 속에 삼키운 바 되고 말았습니다. 대동아전쟁 수행을 위하여 모든 계층의 총의를 집결할 필요에 직면한 일본 정부는 종교단체법을 제정하여 종교계에도 언론통제의 손을 뻗쳤습니다. 그 결과 1941년에는 일본기독교단이 결성되었으며 이것은 천황제 국가의 한 기관으로서 자리매김 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문서에 명기되어 있습니다. 히틀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교회위에 패권(覇權)을 미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에 이 상황을 신앙적 위기로서 자각하는 일조차 거의 없었던 것은 특필할만한 우리나라(일본)의 오점입니다. 이것은 개신교회 뿐이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도 "교단의 총력을 집결하여 대동아전쟁의 목적 완수에 매진할지어다"라는 활동방침을 세워 같은 길을 걸어 갔습니다.
이같은 상황하에서 야나이하라·다다오(矢內原 忠雄[시내원 충웅])가 1937년에, '하나님의 나라'라는 제목의 후지이·다께시(藤井武[등정무]) 기념 강연회를 열었다는 사실을 특필해 두어야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지향한다는 것이 그 강연의 핵심 주장이었습니다만, 이 진리에 비추어 볼 때 이 거짓에 찬 일본국은 일단 장사지낼 수 밖에 없다고 야나이하라는 결론지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으신다면 바라건대 이 나라를 일단 장사지내 주세요!" 이런 말로 이 강연은 끝맺고 있는 것입니다.
이 규탄의 말은 아프도록 정부를 자극하여 야나이하라는 대학에서 추방당해 야인이 되었으며 거기서 진리의 싸움을 계속하게 됩니다만 그 후 8년이 경과되었을 때, 옛 일본은 문자 그대로 장사지낸 바 되고 진리의 증언은 관철되었던 것입니다. 불과 8년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강연에서 야나이하라는 일본의 현실을 준엄하게 비판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구경의 목표를 하늘을 우러르며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그리하여 그의 전도활동은 전란의 폭풍우를 꿰뚫고 계속되었으며, 장차 올 새로운 싹틈의 때를 위한 귀중한 준비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땅 위에서 싸움을 계속하는 소수의 신도들 사이에 성육신되어 정치권력의 지배에 굴하지 않고 살아 남았던 것입니다.
끝으로, 전후의 일본문제를 거론해야겠습니다만, 그에 앞서서 한국에서 태어난 민중신학에 대하여 짤막하게 언급해두고자 합니다. 이것은 1970년의 박정희 정권하에서 학대받고 있던 민중편에 몸을 두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수에 의한 해방사건으로서 파악한 사상입니다. 이 신학은 그 전모를 여기서 이야기할 여유는 없습니다만 일본에서도 매우 주목되어 나도 여러번 반복하여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면적으로 찬성할 수는 없는 점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조금만 언급해 두고 싶습니다. 이 신학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두 개의 국가를 어떻게 하면 통일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신학적 과제로서 받아들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대한 문제입니다. 민중신학의 창시자인 안병무는 민족통일에 대한 전망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분은 제가 마인츠에 있을 때 하이데르베르그에 있던 분입니다. 대단히 독창적인 사상을 전개하신 분입니다. 민족통일에 관해서 그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짓밟히고 착취당한 민중의 힘을 살려내고(한국에 대한 것),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이름 아래 일부 엘리트에 의하여 조종되고 있는 민중의 힘이 소생하여(북한에 대한 것), 남북민중의 힘이 하나로 규합되었을 때 이 민중이 주체가 되어 민족통일을 성취시킬 수가 있다."(『민중신학을 말한다』, 일역서 53쪽)
이것이 안병무씨의 결론입니다. 이렇게까지 커다란 기대를 그가 민중에게 건 이유는 민중에게는 '자기 초월'을 할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초월'이란 자기의 껍질을 깨뜨려버리고 전체(公[공])에 봉사흔 일, 즉 공적 과제에 대한 자기버림(自己投棄[자기투기])이라는 뜻입니다. 민중에게는 자기초월의 능력이 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체제 사이에 '민중의 자리(座[좌])'가 있으며, 이에 의하여 통일을 성취할 수 있다고 기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구상은 하나의 꿈으로 끝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봅니다. 이것이 나의 코멘트입니다. 여기에는 "하늘에 국적을 둔다"는 사상이 결락되어 있다는 것을 특별히 지적해 두고 싶습니다.
한편, 독일에서도 전후 분단국가로서의 발걸음을 시작했으며, 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민중은 재통일에 대한 강한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전후 정권의 자리에 있던 아데나워도 동서 독일의 통합을 정책으로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동서로 분단된 베를린을 무대로 하여 소련과 서독과의 긴장은 극점으로까지 고조되어, 새로운 전쟁이 여기서 일어날 위기적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북한 사태와 비슷하다 하겠습니다. 만일 재통일을 강행하려고 한다면 다시 전쟁을 시작할 수 밖에 도리가 없게 된 이같은 고경(苦境)을 극복하고자, 당시 아카데미 운동을 추진하고 있던 뮬러·강그로프는 평화를 지키기 위하여는 분단 상태를 받아들일 수 밖에 도리가 없다는 제언을 가지고 일어섰습니다. 다만 그것은 단순한 현상(現狀) 긍정이 아니라 그 배후에는 "유럽은 하나"라는 광대(廣大)한 이념이 있었습니다. 설혹 정치적으로는 분단이 고정되더라도 큰 의미에서는 분열 국가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이미 EEC(유럽 경제공동체)가 발족되어 있었습니다만 그가 말하는 유럽은 그것보다도 훨씬 더 광대한 영역이었으며, 소련·폴랜드·체코·항가리·루마니아 등 모든 나라를 포함하고 멀리 우랄 산맥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그 안에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정신적 통합을 창출하기 위하여 그는 동쪽의 공산권 국가들에 대한 대화를 강하게 추진했던 것입니다.
뮬러·강그로프가 일본에 와서 앞서 말한 구상을 이야기한 것은 1967년의 일이었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 분단 고정의 제창에는 강한 반대가 있었지만 당시 서독 수상 자리에 있던 브란트가 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뿐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서도 점차로 이해자들이 늘어나, 1972년에는 수상 자리에 있던 브란트의 손으로 '동방조약'이 조인되어 뮬러·강그로프의 제안은 정치적으로도 실현의 제1보를 내디뎠던 것입니다.(동방조약이란 분단의 고정을 승인한다는 조약입니다. 그래서 브란트는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이윽고 베를린의 벽이 붕괴되고 동서 독일의 통일이 실현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EEC(유럽 경제 공동체)는 지금은 EU(유럽 연합)로 발전하여 이제는 4억5천만의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통합을 실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세계 제1의 통합체입니다. 뿐만 아니라 "유럽은 하나"라는 뮬러·강그로프의 이념의 배후에는 "하늘에 국적을 둔 자"로서의 신앙적 자기이해가 숨어있었다는 사실을 특히 강조해 두고 싶습니다. 그는 경거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성경의 사상은 정치적 세계 안에서도 놀라운 현실을 낳는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4


이상에 말씀드린 것을 저변에 놓고 볼 때, 일본이 안고 있는 문제가 더욱 선명하게 부상되어 옵니다. 2003년 초두에 미국이 이라크에 전쟁을 걸 준비를 시작하고 있던 당시 고이즈미 수상은 두 개의 원칙을 내걸고 있었습니다. 미일군사동맹을 중요시하여 미국의 국책에 따를 것과, 국제협조를 중요시하여 UN의 결의에 따른다는 두 개의 방침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UN의 결의를 기다리지 않고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에 고이즈미 수상은 이 두 가지를 지킬 수 없는 궁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하여 미군 지지를 표명하기는 했지만 이것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킬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같은 궁지에 선 고이즈미 수상에게 신랄한 비판의 화살이 쏟아지게 됐습니다. 그렇게까지 국제협조를 중요시하는 당신이 아시아 여러 나라들과의 협조관계를 어째서 승한하게 하는가라고 비판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비판이었습니다. 일본은 미국 외에는 진정으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를 가지지 못하고 아시아의 고아가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비참한 고립상태에 빠진 원인은 저 전쟁(이른바 대동아전쟁 = 역자주)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적으로 사죄하는 일을 태만하게 해 왔을뿐 아니라, 야스꾸니 신사에 대한 수상의 참배를 밀어붙여 근린 제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킨 데 있습니다. 신도적(神道的) 국가사상으로의 복귀를 전후 일본의 목표로 하는 내셔날리즘이 아시아에서 고립하지 않을 수 없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물론 "하늘에 국적을 둔다"는 사상은 존립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배타적이며 편협한 국가사상 속에 몸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 신도는 "하늘에 국적을 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양자 사이에 어떠한 사상적 대결이 행해질 것이냐 하는 문제가 앞으로의 우리의 과제로서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1937년에 야나이하라·다다오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제목으로 이야기한 강연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지향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을 내나름대로 부연한다면, 속죄신앙에 의한 개인의 구원에 머물러있어서는 안 된다, 라는 취지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과제의 제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는 이미 땅위에 성육신하여, 그 존재와 활동을 에클레시아(교회)를 통하여 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완성을 하늘을 우러르며 희망을 가지고 땅 위에서의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찬송가 제4장(우리 찬송 1장, 일본찬송가는 4절까지 있음 - 역자 주)을 부르시는 것을 들으면서 그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이 지금 여기 있다는 감동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설혹 작은 집단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땅위에 성육신하고 있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이야기는 그같은 성경적 신앙은 땅위에 구체적인 사실을 탄생시킨다는 것을 독일의 사례를 들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아시아는 어떤 상황인지요? 기쁜 보고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도쿄대 교수로서 정치학(정치사상사)을 담당하고 계시는 강상중(姜尙中)이라는 한국인 교수(재일교포 - 역자 주)가 '동북 아시아 공동의 집'이라는 주목할만한 책을 쓰셨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린 것과 동일한 구상을 그 분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그냥 추상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국회에서 행한 증언으로서, 저 국회의원들을 향하여 그 분이 그것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어디까지 그것을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간에 아시아의 한 모퉁이에 새로운 사상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보고드립니다. 이제 바야흐로 한국과 일본은 하나가 되어 아시아의 통합을 하늘을 우러러 바라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커다란 환상을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의 선물로서 받은 사실을 마음에 새기면서, 끝으로 찬송가 379장(우리 찬송 389장)으로 감사의 노래를 함께 바치기를 원합니다.



[기도]

하늘의 아버지, 당신의 한없는 긍휼하심을 힘입어 저희는 죄와 죽음의 멸망 가운데서 건짐을 받고, 하늘의 영원하신 나라를 우러르는 자들로 삼아주심을 받았습니다. 이 은혜를 무슨 말로써 다 감사드려야 할지 저희는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뿐만아니라 이 은혜는 곤란을 극한 땅위에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가져오기 위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그 나라의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들이옵니다. 여기에 모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전존재를 당신께서 확고하게 붙드러 주시사 장차 올 주의 나라의 초석으로 서게 하여 주십시오.
아시아는 하나가 되어야 하옵니다. 그것을 기점으로 하여 세계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저희와 같이 지극히 작은 자가 이 불신의 나라 일본의 한 구석에서 확고하게 이 증거를 할 수 있도록 절실하게 바라옵니다. 이 작은 모임 가운데 그 일익으로서 하나님 아무쪼록 길이길이 당신의 영광을 이 가운데 나타내 주십시오. 아시아의 앞날에 주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환상으로서 항상 제시해 주십시오.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


옮긴이의 편지


이 힘차고 깊은 복음진리의 증거 말씀을 열 번째로 보내드리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일본 그리스도교계의 손꼽히는 영적 지도자이신 저자 다까하시·사부로 선생은 그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자리에 누우신지 9년이 되었습니다. 신체장애 1종 1급인 목밑 전신마비의 몸으로 어떻게 달마다 B5판 18쪽 전후의 빽빽한 전도 월간지(「십자가의 말씀」)를 그 지루하고 고통스런 투병생활 중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내고 계시며(통권 459호), 또 최근에는 휠체어의 몸으로 거의 정기적으로 말씀증거를 계속하시는지, 그저 놀랍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신 분의 신앙의 기적, 생명현상의 신비로 밖엔 이 초인적인 삶에 대하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다까하시 선생도 그러시지만, 그 사이 82세 고령의 전신마비 부굼을 일체 병간호 수발하는 한편, 구술 필기의 수고까지 하시다가 끝내 과로로 누으신 사모님의 건강이 다소 회복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모님이 안 계시다면 이 전도자의 문서전도의 생애도 휴식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인데, 주님께서 다시금 길을 열어주고 계심을 느낍니다.
이 독립전도자 내외분을 위한 독자 여러분의 계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리오며 힘찬 승리의 말씀이 계속되기를 빕니다.

2003년 6월, 광교산 기슭 우거에서, 조형균 드림






바울과 송두용( by M. K. CHANG), 외

바울과 송두용(by M. K. CHANG)과 그외 기타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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