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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에 옮겨진 나무
다까하시 ·사부로
[高 橋 三 郞 (고교삼랑)]

2003. 4. 6




1


복되도다, 악한 자의 모략에 가담하지 않으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조소하는 자와 자리를 함께하지 않는 사람은!"
(시편 1:1)
(다까하시 사역, 이하 같음)


아까 읽어주신 신공동역에는 이의가 있으므로 저의 번역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제1절입니다만, 여기서 "복되도다"라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요? 이것이 하나의 제기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제사적인 존재인 것이며, 그는 이스라엘 종교 공동체의 지도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됩니다(이 존재가 그 후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모해 가며 어떤 문제가 거기서 발생하느냐 하는 사정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이 "복되도다"라는 말은 의인의 복됨을 축하하며 기뻐함과 동시에 그렇게 될지어다 하고 바라는 취지도 함께 있다고 생각됩니다만, 그 의인의 모습이 부정의 측면에서 세 가지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악한 자의 모략"이라는 말은 악인이 도당을 만들고 지혜를 짜내어 음모를 꾀하는 그러한 모습이 여기에 제기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악한 자"는 원어에서는 복수형으로 되어 있으므로 그들은 하나의 사회적인 세력이 되어 그 모략에 가담하지 않는 의인(단수형)은 단독자로서 이 세력에 맞서서 서게 됩니다.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복되다고 시인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죄인의 길"이란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들이 악한 일을 반복하는 동안에 같은 짓거리가 스스로 하나의 '길'이 되어 거기에 정착하고 관습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인은 이 악한 관습에 항거하여 이러한 "죄인의 길"에 서는 일은 없습니다. 마지막에 조소란 하나님께 대한 조소의 뜻일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필연적으로 일체의 거룩한 것을 흙발로 짓이기는 불손한 태도가 생겨납니다. 그리고 인간의 존엄은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서 만들어진 데에 유래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대한 모독행위는 필연적으로 인격의 존엄을 짓밟은 것이 됩니다. 거기서부터 온갖 이 세상의 황폐가 유래하는 것이며, 의인은 그와 같은 "조소하는 자"와 자리를 같이하기를 거절합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서 우러러 받드는 신앙의 길, '삼가는 몸가짐'을 끝까지 지켜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악한 자의 모략에 가담하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조소하는 자와 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다"라는 세 가지 항목은 주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사람의 모습을 적확(的確)하고도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야말로 하나님의 축복이 부어진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근간이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이어서 이번에는 이 의인의 모습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다음에 서술됩니다.
참으로 그 사람은 야웨의 가르침을 기쁨으로 여기며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읊조린다. (1:2)
여기에 "가르침"이라고 번역한 원어는 "토오라"이므로 "율법"이라고 옮길 수도 있습니다. 모세 5서(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가 '토오라'라고 총칭되고 있었습니다만 후에는 구약성경 전체가 '토오라'라고 불리게도 되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인격의지(人格意志)를 나타내는 '가르침'이라는 뜻으로 이 말이 쓰이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읊조리며 마음가운데 새기는 신도의 모습이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것이며, 거기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거듭 이렇게 부연됩니다.
그 사람은 시냇가에 옮겨진 나무와도 같다.
때가 이르면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는 마르는 법이 없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번영한다.
(1:3)

식물이 자라는 데 있어서 물의 소중함은 세삼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지만 가뭄에 시달리는 일이 많은 팔레스티나에서는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거치른 땅에서 시냇가로 나무를 옮겨심어 주신다면 그 나무는 항상 푸르게 잎이 무성하고 때가 오면 축복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그가 하는 일은 모두 번영한다"고 시인은 단언한 것입니다. 그 단정의 강함에 우리는 일순간 멈칫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시인이 말하는 바와 같이 의의 길을 걷는 신앙의 사람이 풍성하게 축복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반대로 신앙으로 인하여 고난 가운데로 굴러떨어지고 좌절 가운데서 이것을 견뎌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한 시이느이 단정은 사실인 것일까요? 이같은 물음을 마음 속에 간직하면서 이사야서 53장이 말하는 '고난의 종'에 대한 서술을 음미해 보기로 하십시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부르심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일본 성서협회역으로 읽습니다. (이하 같음)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에게 버림받았으며,
슬픔의 사람으로, 병고를 앓고 있었다.
또한 얼굴을 가리고 고개돌림을 당하는 사람처럼,
그는 멸시를 받았다. 우리도 그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참으로 그는 우리의 병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감당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하였다.
그는 채찍을 맞고 하나님께 매를 맞았으며 고통을 당한 것이라고.
(이사야 53:3~4)
번영하기는커녕 여기에 '하나님의 종'의 아픈 수난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수난이 놀라운 완성과 성취에 이르는 과정이 이렇게 이야기됩니다.
그가 자기를 허물에 대한 제물로 삼을 때,
그의 자손을 볼 수 있으며,
그 목숨을 오래 연장할 수 있다.
또한 주의 뜻이 그의 손에 의하여 번영한다그는 자기 영혼의 고통에 의하여 빛을 보고 만족한다.
의로운 나의 종은 그의 지식에 의하여,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고, 또한 그들의 불의를 짊어진다.
(이사야 53:10~11)
여기에는 분명히 구주 예수의 수난을 예표(豫表)하는 말씀이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정적인 패배와 좌절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사명을 달성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관철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난의 종'의 노래는
"보라 나의 종은 번연한다.
저 높이 올려지고, 숭앙받는다" (이사야 52:13) (신공동역)
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시편 제1편에 있는"그의 하는 일은 모두 번영한다"
는 단정을 이렇게 이사야서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허락된다고 한다면, 도중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다고 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의인에게 부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관철되어 영광의 완성에 이르는 것을 담대하게 선언하는 취지가 될 것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이 단정의 강함이야말로 이 시의 생명입니다. 이와 비슷한 말씀을 잠언에서 구한다면,
"의로운 자의 길은 새벽 미명의 빛과 같다. 이제 점점 더 빛을 더하여 대낮이 된다"
는 단정이 (4:18) 같은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2


여기서 방향을 돌려, 4절 이하에 악인의 길의 결말이 묘사됩니다.
악한 자는 그렇지 않다.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다.
(1:40)
곡식의 수확이 끝나면 낱알과 겨를 분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키를 가지고 키질을 하면 즉 이것을 공중에 던져 올리면 겨는 바람에 날려가고 무거운 곡식 낱알만이 키 위로 돌아와 남게 됩니다. 이 선별은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비유로서 때때로 사용되었습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은혜에 힘입어 주의 뜻을 따라서 구원을 받게 되는 데 반하여, 이 은혜를 배반하고 떠남으로써 축복의 자리에서 굴러 떨어진 "악한 자"는(일시적으로는 번영할 지 모르지만 최종적으로는) 공허하고 소외된 존재로서 날려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는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은 의인의 모임에 설 수가 없다.
참으로 야웨는 의인의 길을 알고 계신다.
그러나 악한 자의 길은 멸먕한다.
(1:5~6)
(다까하시 역)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은 "바라멩 날리는 겨와 같다"는 말을 부연하고 설명하는 취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땅 위의 살멩 있어서도 착착 진행되어 알곡의 낱알과 겨를 바람에 불리어 선별하듯이 사실을 통한 선별이 진행됩니다만, 마지막 날에는 그 총결산이 행해져서 악한 자는 그 심판의 자리에 설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뿐이 아니라 죄인은 땅위에서의 의인의 모임에도 이제 더 이상 참가할 수가 없습니다. 암흑은 빛을 두려워하며 빛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웨는 의인의 길을 알고 계시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희랍어로 '안다'고 하면 그것은 인식 또는 체험의 영역에 속하지만 히브리어의 '안다'는 동사는 그것과는 취지를 달리하며, 어떤 대상을 긍정하고 승인하는 것, 따라서 이것을 존중하고 중히 여긴다는 함축을 함께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배려하고 돌본다는 뜻으로도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을 총괄해서 하나님의 선택까지도 "안다"는 동사에 표현되게 되었습니다 (졸저 『다윗의 노래』 16쪽 참조).
이상의 어법을 총괄하면 "야웨는 의인의 길을 아신다"는 것도 단순한 인식상의 일이 아니라 의인을 긍정하고 존중하며 돌보신다는 것이며,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사태까지도 전제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악한 자의 길은 멸망한다"(다까하시 역)라는 말은 악인의 길은 그리로 가면 결국 사람을 파멸시킨다는 뜻 뿐 아니라 악인의 길 그 자체가 멸망하여 없어진다고 단언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유의 어법을 신약성경에서 찾으면 마지막 심판날에,

"사망과 음부(陰府)도 불못에 던지워졌다"

라는 요한계시록 20장 14절의 기사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마지막 심판날에는 죽음과 음부까지도 멸망으로 소멸된다는 이 선언은 하나님의 구제의지의 단호한 관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편 제1편의 마감 말씀도 이것과 같은 취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도 이와같은 취지의 말을,

"죽음은 승리에 삼키운 바 되고 말았다."
죽음아, 너의 승리는 어디에 있느냐.
죽음아, 너의 가시는 어디에 있느냐"

라고 말하면서(고린도전서 15:55) 죽음 자체가 하나님의 승리 가운데 삼키운 바 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최종적 승리 선언입니다.


3


이상으로 어휘상의 설명을 일단 마쳤습니다만, 이 시에서 "시냇가로 나무가 옮겨 심겨진다"라고 말하고 있는 내용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태인가, 그 소식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한 도움으로서 나 자신의 신상에 일어났던 일을 다소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나는 중학생 시대부터 물리나 수학 등에 깊은 흥미를 느끼고 고등학교·대학·대학원에 이르기까지 13년의 긴 세월 동안 오로지 이 한 길을 걸어 왔습니다. 그런데 나는 내 온 정성을 기울여 계속해 온 이 탐구의 길을 모두 내던져 버리고 성경 한 권을 손에들고 복음의 증거자로 서는 길로 잡아 끌어냄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었습니다. 저 1945년 8월 15일의 무조건 항복이 나에게 알려졌을 때 나는 마침 히메지(姬路:희로)에 귀가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때 직감적으로 마음속에 용솟음친 심정은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전후 일본의 재건에 진력하고 싶다는 결의였습니다. 그리하여, 점령군은 필시 모든 연구시설을 탄압하리라고 생각하고 소수의 동지들과 함께 산속에 숨어서 공동의 연구를 계속하리라는 생각을 다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웃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그 숨을 곳을 찾아 산을 돌아다녔으니까요. 그러나 미구넹 의한 점령정책은 예상보다 훨씬 인도적인 것이었으므로 나는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9월에는 도쿄대학 제2공학부를 졸업하고 계속 대학원에 남아 특별연구생이라는 명칭을 자동제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번에 이라크 저쟁에서 자동제어에 의한 폭탄이 마구 떨어지고 있습니다만, 그런 일을 제가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후 2년이 지난 1947년 가을에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대학을 떠나 단신 성경 공부에 몰입하는 길로 전신(轉身)하는 결의가 확정돼 있었습니다. 이 불과 2년 동안에 어떠한 내적 변화가 생겼는지, 이에 대해서는 도저히 다 이야기할 수가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따니·다까마사(三谷隆正:삼곡융정) 선생님이나 야나이하라·다다오(矢內原忠雄:시내원충웅)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지도와 우찌무라·간조(內村鑑三:내촌감삼) 전집을 접한 것이 큰 요인이 된 것입니다만,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새로운 길로 잡아 끌어냄을 당하였다고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참으로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은 전진(轉進)이었습니다. 그러나 비창(悲愴)한 각오를 굳게 다진다는 따위의 생각은 없었으며, 이 길말고는 있을 수 없다는 식의 전혀 자연스런 일의 진행으로써 나는 신변의 물건들을 배낭에 질멍지고 친구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제2공학부의 기숙사를 뒤로 했던 것입니다. 1947년 9월의 일이었습니다. 기왕에 말이 났으니 하나 더 말씀드린다면, 그때 저는 태풍을 만나 총무선 전철이 정지가 되는 바람에 도쿄로 곧장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혼란이 겹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에 도쿄 세따가야구(世田谷區:세전곡구)의 어느 댁에 입주해서 가르치는 가정교사로 받아주시는 가정이 있었으므로 우선 거기에 몸을 의탁하고,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두 팔아 생계를 꾸려가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무려벵, 재건 일본의 기초가 될 국제기독교대학(약칭으로 ICU)을 세우려는 계획이 있어서 그 첫째 착수로서 ICU연구소가 설립된다는 소식을 접했으므로 나는 신학과 연구생으로 거기에 들어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1947년 12월의 일입니다.
그러나 연구소라고는 하지만 건물도 사무소도 없이 그저 20수명의 인간 집단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후지미마찌(富士見町:부사견정)교회나 도쿄여자대학의 방 하나를 빌려 셋방 생활이 계속되었습니다만 내용적으로는 참으로 충실한 연찬의 마당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여러 분야에 걸쳐 제1급의 쟁쟁한 선생님들이 이름을 나란히 하셨습니다.
하지만 무리에 무리를 더한 나의 고학생활이 체력의 한계를 넘어선 것은 당연한 귀추였습니다. 1년 반이 지난 1949년 여름, 나는 피를 토하고 병상에 눕는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병원에 갈 수도 약을 구할 수도 없이, 특히 영양을 취할 여력도 없이, 오직 조용히 누어 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습니다. 여기서 내가 시체가 되어 눕는다 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할 것은 없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었다면 다가하시(高橋:고교)라는 인간은 성경 한 권을 의지하고 서는 길로 나아갔지만 그것은 동키호테와도 같은 무모한 모험이었다는 것이 되고 말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 사람의 인간의 일로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거기에 걸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으로 인하여 나를 좌절에서부터 구원해 내시고자 손길을 펴 주셨습니다. 그렇게 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선 최초로 ICU연구소의 선생님들과 친우들이 모금을 하여 경제적으로 나를 뒷받침해 주신 일을 특필해야 하겠습니다. 그밖에 산더미같이 영양이 되는 물품들을 갖다 주신 분도 계셨고, 많은 분들의 지원을 힘입어서 나는 사선을 넘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반년이 지나 다소 체력이 회복된 1950년 봄에는 같은 ICU연구소의 학우의 주선으로 생각지도 않게 도쿄 세따가야구 미슈꾸(三宿:삼숙)에 있는 쇼와(昭和:소화)여자대학에 봉직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면접을 하러 가서 놀랐습니다. 이사장 되시는 히또미·엥끼찌(人見圓吉:인견원길)선생으로부터 영문과 선생이 돼 달라는 뜻하지 않은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공학부 출신자가 영문과 선생이 된다는 것은 상궤(常軌)를 벗어나는 일이었습니다만, 다행히 ICU연구소에서의 배움과 카나다 선교사에게서 지도를 받은 일이 도움이 되어 문부성도 인가해 주었으므로 나는 감히 이 모험에 몸을 맡기는 결의를 하였습니다. 이리하여 체력적으로나 학력면에서나 매우 어려운 나날의 생활이 계속되었습니다만, 나는 이것도 역시 하나님이 제시해 주신 길이라고 믿고 받아들여 젊은 학생들과 함께 하는 기쁨의 나날을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얼마 아니되어 하교내에서 공개 성경연구회를 시작하고 함께 기도하는 친우들이 주어진 것도 커다란 은혜였습니다. 당시에 주어진 우정이 그 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깊은 사귐이 지속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하게 부어지고 있었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제2공학부를 뒤로 한 것은 영어선생이 되기 위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쇼와여자대학에서의 5년의 재직기간은 내실있는 기쁨의 나날이었다고는 하지만 하나의 과도기적인 단계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1951년에, 또 하나의 새로운 전기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오랜 독일 유학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마에다·고로(前田護朗:전전호랑) 선생이 도쿄대학의 조교수로 봉직하는 몸이 되시어 같은 세따가야구에 살고 계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으므로, 당시 야나이하라 선생 밑에서 신앙의 지도를 받고 있던 수 명의 젊은이들이 마에다 선생님을 방문하자는 계획을 세워 나도 그 한 사람을 참가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전혀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실은 도쿄대학 총장이었던 야나이하라 선생님의 제안에 따라 교양학과라는 것이 바로 그 해에 창설되었는데, 그 독일과에 들어가 공부할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던 것입니다. 교양학과라는 것은 국제적인 시야를 가진 인재의 양성을 지향하고 있는 학과로서, 독일과에서는 독일의 언어·사상·역사·정치에서 경제에 이르기까지 독일에 관한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배우는 학과였으므로, 성경 공부에 집중하기 위한 전 단계로서 나는 여기에 몸을 던질 결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에다 선생님도 교수회와 의논하여 학사입학의 제도를 마련해 주셨으므로 1952년 4월부터 나는 10살이나 나이 아래인 젊은이들과 함께 다시 학생생활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직전 3월에는 결혼하여 아내 미사꼬(美佐子:미좌자)도 됴쿄여자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으므로 두 사람이 함께 고학생활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나는 근무를 야간부로 옮길 것을 허락받고, 밤에는 교단에 서면서 낮에는 도쿄대학을 다니는 주야 겸행의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야간부 선생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교단에만 서는 것이 아니라 학급 담임으로서 학생 전원에 대한 생활상의 책임도로 이것만으로도 전력투구를 요하는 직장이었습니다.
게다가 낮에 격렬한 면학도 추가된 과제가 되었으므로 나의 건강이 파탄된 것은 당연한 일의 추이였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나는 다시 피를 토하고 자리에 눕는 몸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증세가 가벼워 다시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다만, 졸업 때까지 지탱해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느끼고 마에다 선생께 사정을 아뢰고 퇴학을 허락해 달라고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응답은 실로 절묘했습니다.잘 들어 주십시오. "군을 위해서 학사입학의 제도를 만들었던 것이네. 책임을 지게!" 라고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책임을 지라"는 말씀에 나의 결심은 굳어졌습니다. 힘이 다해 쓰러지고 마느냐 아니면 졸업 때까지 지탱해 내느냐, 둘 중 하나라고 마음을 정하고 그 이후로 나의 마음이 동요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 각오가 섬과 함께 건강도 이상하게 지탱되어 그럭저럭 순조롭게 매일 매일의 사이클이 회전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또 하나의 새로운 만남이 주어졌습니다. 1952년 초여름 무렵이었다고 기억합니다만, 독일에서 멜러 선생이라는 분이 내일하여 도쿄대학에서 하나의 강연을 하셨습니다. 전후의 독일사람들이 소련군의 점령 하에서 어떻게 그 비참한 고난을 견뎌내어 살아남았는가라는 생생한 보고 말씀이었습니다. 참으로 감명깊은 말씀이었으므로 나는 한 말씀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생각에, 방금 그곳을 떠나시는 선생 뒤를 좇았습니다. 정문앞에서 겨우 따라잡고 감사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감사를 표한 나를 향해 하나의 제안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중앙선 전차 속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으려니까 오차노미즈 역 밑을 흐르고 있는 간다가와(神田川:신전천) 기슭에 조그마한 판자집이 있는데 그 지붕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분이 말씀하기를 거기에 가보고 싶은데 통역으로 동행해 주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기쁘게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날짜오 시간을 협의하고 그 후 오차노미즈 역에서 만나 다리밑 강가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에는 작은 오두막집이 있는데 다까하시·레이지(高橋玲二:고교령이) 라는 청년이 밤에는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낮에는 전재(戰災) 고아들의 뒷바라지를 거기서 하고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후에 목사가 되어 유력한 전도자로서 활동하게 됩니다만 이것이 그와의 최초의 만남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멜러 선생으로서도 이 일은 잊을 수 없는 만남이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것이 기연이 되어 나와의 교분도 두터워져서 한 번은 나의 집을 방문해 주시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제 교양학부의 제2년째 접어들었을 때 나는 졸업 논문을 쓰게 되어 이것도 마에다 선생님의 조언으로 "그리스도교적 저작가로서의 칼·힐티"라는 제목의 논문을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드렸 듯이 밤에는 교단에 서면서 하는 작업이었으므로 나는 문자 그대로 격투를 했었다는 느낌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1954년 1월에 필사적인 심정으로 이것을 완성하였는데, 나는 멜러 선생에게도 감사의 보고삼아 이 논문의 사본을 독일에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뜻하지 않은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멜러 선생이 이 논문을 마인츠 대학의 홀스텐 교수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없겠는가라고 물어 주셨던 것입니다.
홀스턴 교수는 그 논문을 읽은 다음 이 제안에 동의해 주시고, 뜻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나는 1955년 5월에 독일 유학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1947년 가을, 내가 성경 한 권을 들고 세상에 서기로 결의하고 제2공학부를 뒤로했을 때로부터 8년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 8년 동안 나는 어디로 인도되는지 갈 곳을 모르는 모색의 나그네길을 계속하면서 그 때 그 때의 인도하심에 따라 믿고 따르는 한 줄기 길을 걸어 왔습니다. 그 도상에서, 이제는 이것으로 끝장이라고 생각할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만 하나님의 진실하심은 흔들림이 없이 나의 저존재를 떠메어 여기까지 와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나를 불러내시어 생명의 강가로 옮겨 심어 주셨다는 말로 나는 이 8년 동안을 이 시편 말씀의 실현으로서 총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후에 계속된 50년을 회고할 때,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만,

"그의 하는 일은 모두 번영한다"

고 잘라 말한 시인의 말이 바로 나의 신상에 현실이 되었다는 감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많은 과오와 좌절을 거듭해 왔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는 하나님의 구제의지가 관철된다는 이 시의 증언을 나는 몸으로써 체험할 수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어찌 감사한 일인지, 오로지 영광이 주의 이름 위에 있을지어다 하고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4


아까, 이 시의 머리 부분에 "복되도다"라고 말을 걸어 온 것은 누구인가 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제사적 존재일 것이라는 추측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만, 이 제사적 존재는 후에 예루살렘 신전에 군림하는 대제사장으로서 제도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밑에는 사두개인으로 구성되는 제사집단이 있어서 성대하게 제의(祭儀)를 영위하고 있으며, 평신도 사이에서는 바리새인이 "주야로 말씀을 읊조리며 성경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저 시편 제1편에 쓰어 있는 의인의 모습은 실제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하여 대표되고 있으며 이 두 집단에 의하여 유대교 사회는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열심 있는 종교성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목자없는 양들과 같이 그 틀 밖으로 내팽겨쳐져 곤궁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오기 위해서 사랑의 손길을 펴신 것이었습니다. 시편 제1편이 말하는 "복된 사람들"의 틀 밖으로 방치되어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예수님의 구원의 대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구원이,
복되도다, 당신들 가난한 사람들,
천국은 당신들의 것이다.
(누가복음 6:20)
라는 선언을 통하여 전달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기서 말을 걸어오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란 경제적으로 가난할 분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멸시당하고 열등감에 괴로워하며, 종교적으로도 단죄되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요한복음서 7장 49절의 말씀에 의하면 그 당시 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모르는 이 군중들의 저주받은 존재들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죄되고 있는 이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는 당신들의 것이다"

라고 예수께서는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적인 단죄사상을 뿌리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받아들인다는 의인(義認)의 표명이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단순한 축복의 표명이 아니라 의인의 표명이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서의 병행기사에는,

복되도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천국은 저들의 것이다
(5:3)

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이 마태적 표현은 누가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존재를 말하는 말로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의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고 인격적 존엄을 박탈당하여 정신적인 허탈의 깊은 늪 속으로 떠밀려 버리고 맙니다. 그 결과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씀드립니다만, 재일 한국인·조선인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국적을 박탈당하고 일본사회에서 차별당하며 '범죄 예비군'이라고까지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 그것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당신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절망적인 곤궁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 앞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천래의 축복을 선언하시는 분으로 서셨습니다. 이 "복되도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축복을 현실로서 수여하는 힘있는 말로서 저들에게 임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현실로서 수여하신다는 것이 내가 중요시하는 점입니다. 현실적으로 축복을 전달하는 말씀, 즉 축복 그 자체로서 사람들에게 주셨다, 새로운 생명의 창조가 여기서 행해졌다고 나는 믿는 것입니다. 복음선교란 예수님의 말씀이 가지고 있는 이 창조적인 영의 힘을 기도로써 전달하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그 현저한 실례 하나를 도쿄의 상야(山谷:산곡)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모리모또·하루꼬(森本春子:삼본춘자) 목사에 의한 선교활동 중에서 볼 수 있습니다. 상야라면 악마의 소굴과도 같이 인식되며 많은 실업자들의 빈곤과 병사, 동사(凍死), 아사(餓死) 등의 비참이 소용돌이치는 지역입니다만, 거기에 거점을 둔 모리모또 목사의 전도 활동에 의해 놀라운 사태가 거기서 발생하였습니다. 도덕적으로도 파탄된 상태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놀라운 사태가 거기서 발생하였습니다. 도덕적으로도 파탄된 상태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재기하는 힘이 주어지고, 경찰서장이나 동회장까지 경탄해 맞이않게 되는 성령의 역사가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전도자를 지망하여 신학교에서 공부중인 사람들이 열 사람 가까이나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도쿄의 상야에서 말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 것과 마찬가지의 사태가 이미 여기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과 아울러서 나 자신의 조그마한 체험도 아울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심각한 인생의 좌절에 의해 비탄의 저 밑바닥에 빠져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분에게 하나의 위로를 드리고 싶어서 짧은 편지를 드렸는데 그는 그 편지를 읽고 눈물이 마구 쏟아져서 30분 동안이나 계속 울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예수님의 자비하심이 그의 영혼에 전달되어 그의 전조재가 주님의 팔에 안겨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틀림없이 재기하여 새로운 길을 씩씩하게 걸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깃들어 있는 창조적인 구원의 힘이 여기서도 나타난 것으로 나는 실감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간추림을 하십시다. 시편 제1편에서 "복되도다"하고 말을 걸어온 것은 제사적 존재였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에서는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자신이 축복을 선언하셨다는 저멩 결정적인 다름이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복음은 모든 종교적 틀을 넘어서 전인류에게 파급해 갔던 것입니다. 우찌무라·간조의 뒤를 좇은 무교회 집단이 짊어지고자 하는 사명은 이것입니다. 모든 종교적인 틀을 넘어서서 인류에게 파급하는 축복을 짊어지는 인재가 요망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라크 전쟁이 우리에게 들이대고 있는 중대한 물음은 결국 무엇이겠습니까? 결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이 지배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의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느냐 하는 물음입니다. 시편 제1편은 여기에 대답하고 있습니다. 악인의 길은 멸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온몸을 바쳐 증거하는 인재(人材)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끝으로 부를 찬송가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부르심을 확고하게 우리의 영혼에 받아들이십시다! (한국 찬송가 398장)


(기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 당신의 긍휼하심을 힘입어 주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과 더부어 진심으로 주의 성호를 찬양하오며, 당신의 역사가 반드시 관철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시편 제1편과 산상수훈이 참으로 현대를 향해 말씀하시는 말씀으로 부활하여, 새로운 힘의 빛에 저희들은 찬송하며 감동할 뿐이옵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든 간에 십자가의 죽음이야말로 결국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유일한 주님이 되시오며, 저희는 주의 부르심에 의하여 거친 땅에서 시냇가로 옮겨 심어주신 나무들의 모임이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를 하나님 아무쪼록 축복하시고 성별해 주시사 다음 시대를 짊어지는 진리의 증인으로 서게 하여 수시옵소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 멘




옮긴이의 편지


이 힘있는 복음진리의 증거 말씀을 아홉 번째로 보내드리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일본 그리스도교계의 손꼽히는 영적 지도자이신 저자 다까하시·사부로 선생은 그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자리에 누우신지 9년 째로 접어듭니다. 신체장애 1종 1급인 목밑 전신마비의 몸으로 어떻게 달마다 B5판 18쪽 전후의 빽빽한 전도월간지(「십자가의 말씀」)를 한 호도 거르지 않고 내고 계시며(통권 457호), 또 최근에는 휠체어의 몸으로 거의 정기적으로 말씀 증거를 계속하시는지, 그저 놀랍고 감사할 따름이며,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신 분의 신앙의 가적, 생명현상의 신비로 밖엔 이 초인적인 삶에 대하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다까하시 선생도 그러하시지만, 그 사이 82세 고령의 전신마비 부군을 일체 병간호, 수발하며, 구술 필기의 수고가지 하는 소식을 접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모님이 안 계시다면 이 전도자의 문서활동의 생애도 휴식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인데, 주님께서 다시금 길을 열어주고 계심을 느낍니다.
이 독립 전도자 내외분을 위한 독자 여러분의 계속적인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003년 4월, 광교산 기슭 우거에서, 조형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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