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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교회 신자의 비사회성에 대한 비난에 대해 <노평구전집>

  

근래 우리의 저명한 어느 신학자는 수차 무교회 신자의 비사회성을 지적하여,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분히 사회성을 띄게 된 기독교에 대해 충실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아가 비기독교적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이 ''사회적''이란 용어의 의미가 명확치 못한 점이 있다. 나 자신 무교회 신자의 말석에 처하는 사람이지만, 역시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밥보다 신문 보는 것이 일과로 되어 있다. 도무지 애국심이 부족한 자이나 그래도 사회가 걱정되어 입맛을 잃을 때도 있다.

 

과거 소위 조선 교회에서 무교회 신자의 두목으로 지목 받은 고 김교신 선생은 일생을 교육 사업에 바쳤다. 함석헌, 송두용 두 선생 역시 같은 방면에서 진력했다.

 

해방 전의 이른바 ''성서조선사건''이란 것도 저들 무교회 신자가 민족주의자나 사회주의자 이상으로, 아니 더욱 근본적인 의미에서 민족주의자라는 것이 그 발단이 되었다. 현재 나의 친구 가운데도 양심적인 교사, 학생, 의사, 관리, 기술자 등 사회 각 방면에 많은 사람들이 있다. 교육 방면에서는 모두 학교의 비양심적인 처사에 대해 방부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많은 인물을 기용했으나 실패로 끝난 어느 관청의 관리부서의 회계를 신앙으로 끌고 나가는 청년 관리도 있다. 따라서 이 점에서 무교회 신자가 비사회적이라는 비난을 받을 아무 근거도 없다.

 

그러면 제도 교회의 설립이나 참가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인가? 그러나 교회가 사교 기관이나 소위 인간적인 협동기관은 아닐 것이다. 교회는 신자들이 진리를 배우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신앙의 코이노니아를 행하는 집회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현재의 제도 교회에는 천박한 수양담이나 불순한 정치담, 그리고 미처 소화되지 못한 구미 신학의 소란한 논쟁이 아니면, 교회 유지를 위한 호소와 불건전한 조선 재래의 민간 신앙 이상이 못되는 미신이 횡행할 뿐 복음은 없다.

 

그들의 기도란 진실한 생활이 없는 한갓 입술의 진동이며, 히스테릭한 자기 도취에 불과하다. 그들의 찬미란 거리의 악단과 별로 다를 것 없는 한 주일의 연습으로 부르는 찬양대의 음악이다. 어느 교회 행정 책임자는 이 찬양대야말로 현대 교회의 커다란 암 덩어리라고까지 말한다.

 

코이노니아 즉 성도의 교제라고? 교회 신자여, 이것이 현대 교회에 정말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종교가의 질투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는 말도 있지만, 금일 조선 교회의 분열과 분쟁은, 역사상에 그 예가 드물다는 조선 정계를 뺨치는 수준 아닌가?

 

놀라지 말라. 이성적이어야 할 신학자들의 분쟁 때문에 손바닥만한 서울 시내에만 10여 개의 신학교를 분립시키고 있다. 확실히 이는 악마의 장난이다.

 

이에 대하여 다만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항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인의 정치적 분열과 상쟁이 조선인의 성격적인 결함인 것처럼, 조선 교회의 이 죄악상은 실로 제도 교회 자체의 성격에 따르는 병폐로서, 육지에서 공기를 호흡치 않고 견딜 수 있는 동물이 없는 것처럼, 누구든지 이 교회 제도라는 병폐에 붙잡히게 되면 정체 모를 이 교회 근성의 열병에 걸리게 마련이다.

 

그 결과 그들이 사회적이라고 말하는 교회가 도리어 사회의 비난거리가 되고, 양적으로 교세를 확장하면 할수록 사회의 해독이 될 수밖에 없다. 아마 이는 교회 전반의 일시적인 현상일 뿐 그 속에 있는 개개의 신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 될 말이다. 해방 후 소위 신앙 양심으로 사회를 위한다 하여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조선 교회가 길러낸 신앙의 ''챔피언들''의 그 후 행적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진정 기독교는 양심의 종교이다. 이를 부정하려는 기독교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심의 꽃이 일정한 제도 속에서만 피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그 일정한 제도 속에서 더욱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무교회 신자는 교회에 속하는 것, 즉 교회 가입, 교리를 통한 구원, 교회 헌법의 준수를 거부하고, 이에서 더 나아가 영적인 법인(法人)이 되고 만 제도교회 자체를 부정한다. 그리고 저들은 다만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실에서, 건물의 귀퉁이 방에서, 몇 사람이, 몇 가족이, 혹은 단독으로라도 성서 자체를 배움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온힘을 다 기울인다. 아! 이렇듯 하나님 앞에서는 추호의 불순한 심정도, 진리를 굽히는 불성실도 개입할 수 없다.

 

그들의 수에 대한 관념이 교회 신자와 정반대인 것은 일종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집단화하고 수가 늘어날수록 그들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는 인간적인 욕구로 말미암아 불순하게 될 가능성이 커질 수 있고, 이것은 영과 진리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소규모의 단순한 집회로 만족하는 것은 이러한 부패의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점을 교회 신자는 비사회적이라 하여 저들을 책망한다. 여기에 대하여 무교회주의는 이렇게 답한다. 진리야말로 사회를 위하는 것이며, 순수하고 절대적인 신앙이야말로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라고. 불순한 신앙은 아무리 외형이 거창하고 그럴듯해도 결국은 사회를 망치고 스스로 넘어지는 법이라고. 이리하여 저들에게는 절대적인 신앙과 진실한 자세만이 모든 것에 우선하며, 다른 것은 단지 그 부산물일 뿐이다.

 

그러면 여기에서 제도 교회의 신학자가 신앙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근본 동기를 (그들이 의식하건 못하건) 규명해보기로 하겠다. 이 점이 사실상 교회 신자와 무교회 신자가 갈라지는 중요한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카톨릭이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듯이, 현대 교회가 우상적인 교회 제도에 사로잡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소위 ''신앙 생활''과 ''사회 생활''을 구분하여 생각하는 그 카톨릭적인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교회 출석을 하기만 하면 적당히 부도덕과 비양심적인 처사를 해도 무방하다는 식의 교묘한 논리는 바로 여기에서 파생된 것이다. 한편 그들의 깨어진 신앙은 필경 반동적으로 그들을 인간적인 사업열로 사로잡아 가고야 만다.

 

그러나 무교회 신자는 신앙생활과 사회생활의 구분을 모른다. 저들에게 있어서는 신앙생활이 곧 사회생활, 사회생활이 곧 신앙생활로서, 둘 사이에 가볍고 무거움이 없다. 저들에게는 특정한 예배 시간이 따로 없다. 일요 집회는 저들에게 있어서 성서 연구일 뿐 예배가 아니다.

 

그러면 저들에게는 예배가 없는가? 아니다. 하루 24시간 생활 전체가,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이 예배의 연속으로, 그 자체가 신앙 생활이다. 그렇다. 순종의 생활인 것이다.

 

저들은 "아무리 신자라 하나, 목사라 하나 이런 현실에서야" 하는 식의 도덕적 에누리를 모르며, 사회라, 사업이라 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연극도 모른다. 저들은 언뜻 보기에 우둔하고 불쌍한 자 같다.

 

그러나 이는 기우(杞憂)일 뿐이다. 그들의 이 절대적인 신앙과 생활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은혜와 축복과 능력이 모든 것을 차고 넘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절대적인 신앙생활을 사수하는 것이다. 결국 무교회 신자의 소위 비사회성이야말로 진실한 의미에서 사회적이고, 교회 신자의 사회성이야말로 도리어 비사회적인 것이 되고 만다. 도덕과 신앙의 관계도,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관계도, 교회와 무교회의 관계도 이런 맥락에서 고찰해야 할 것이다. 

 

(<성서연구> 제9호, 1948년 8월)

 

 

 

 

***<중앙일보> 2000년 1월 8일자(인터넷은 1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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