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Social Fairness

그외 글들
2007.09.08 00:47

찌든 빨래의 눈물과 은혜의 길

조회 수 854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찌든 빨래의 눈물과 은혜의 길

김애은 의사의 고난과 승리의 신앙생애

장 문 강


출처=성서신애 이진구 편집 제 277호 2004년 10월 성서신애사 (02)2617-4337


[목 차]

1. 여는 말: 찌든 빨래의 자각과 눈물
2. 의사 김애은의 생애: 엘리트 여성의사에서 무의촌 수레 속으로
3. 하나님의 김애은에 대한 은혜의 섭리: "교회 다니는 사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4. 그리스도인 김애은의 신앙세계: 고난을 넘어 이미 하늘나라로
(1)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늘나라
(2) 철저한 자기 부정과 순종
(3) 병고 속의 감사
(4) 원수까지 사랑하는 믿음
(5) 육체의 한계를 넘어 죽음을 이긴 삶
5. 맺는말



1. 여는 말: 찌든 빨래의 자각과 눈물


[이 글은 "김애은 선생님 19주기 기념예배" (2004. 8. 22)에서 발표한 내용을 중심으로 김애은을 만나지 못했던 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고자 하였다. 김애은의 글을 모은 〈은혜의 길: 김애은 선생 유고 기념문집〉(서울: 성서신애사, 1990; 이하 〈은혜의 길〉로 줄임)이 한정된 비매품으로 출판된 지도 10여년이 경과하여, 오류문고 등을 이용하지 않으면 찾아 읽기 어렵기 때문에, 김애은이나 관련된 사람들의 글을 충분히 인용하고자 노력하였다. 일반 독자의 편의의사이자 신앙의 언니가 되는 김애은 의사 선생님에 대해 경칭을 쓰는 것이 도리이나, 기독교 역사상 공적인 인물에 대한 객관적인 글로 쓰고자 하여 존경을 생략하였다.]

김애은(金愛恩, 1921-1985)은 일제하 서울에서 출생하여 덕수초등학교와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인천에서 소아과의원을 개업(1943년)하고 서해 덕적도 보건소장을 지냈으며, 다시 인천에서 향일(向一)의원을 개업(1956년)하는 등 의사로서 지내다가 10여년의 병상생활 끝에 1985년 세상을 떠났다. 오래 전 부산 피난 시절 의학공로 표창을 받은 것 외에는 의사로서 크게 뚜렷한 업적을 남긴 것[김은우, "내가 본 의사 편모." 〈은혜의 길〉 507쪽.]도 아니고 출세한 사람도 아니었기에 세상에서 유명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동족상잔과 대립의 와중에서 남편과 헤어져야 했고 남겨진 삼남매와 함께 항상 가난 속에 살며 여러 차례 큰 수술을 받고 참기 어려운 통증이 반복되는 기나긴 병상생활을 하다가 갔다면, 세상에선 당연히 실패한 자요 불행한 자이고, 기복신앙의 차원에서 보면 잘못 믿어 하늘의 저주를 받은 자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김애은을 아는 사람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가족과 친지들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신앙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김애은을 실패자나 저주받은 자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성공한 자요 축복받은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으로 보고, 김애은의 고난 속의 믿음과 사랑의 생애를 눈물로 기리며 그의 부활과 승천을 기념하고 있다.

믿는다는 나(글 쓰는 이)에게도 김애은은 큰 의미를 갖지 못했었다. 어렸을 때 병원 등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고, 그의 세상 마지막 무렵 병문안을 가니, "참기 어려운 큰 고통이 있지만, 하나님의 품 안에 안기면 고통도 없고 참으로 포근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 정도이다. 김애은 자신의 일기 등과 함께 그를 추모하는 글들을 담아 비매품으로 출판한 〈은혜의 길: 김애은 선생 유고 기념문집〉을 얻게 되었지만, 언젠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하고 부분적으로만 읽고 두었었다.
어찌 된 일일까? 이런 부족한 사람에게 "김애은 선생님 19주기 기념예배"에서 말해 달라고 한다. 예전 같으면 거절하거나 사양했을 것이다. 책임지고 완벽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면 나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무엇보다 강했었기 때문이다. 나의 실력, 자료, 시간 등을 검토해서 나름대로 제대로 할 수 있는 일만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부족한 대로 조금이라도 다른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하나님의 뜻이라면, 있는 그 자리에서 부족한 그대로 받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고 있다. 나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세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현재 상황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 하라고 하시는 것이니, 그저 순종하는 것이 내 의무라고 생각되어, 발표를 승낙하게 되었다(마태복음 10:30).[이러한 무교회 신앙모임의 성격을 잘 알지 못해 일어날 수 있는 오해를 막기 위해 덧붙인다면, 무교회 모임에는 교회에서 요구하는 것 같은 헌금이 없다. 모임의 성격에 따라 장소를 빌리기 위한 비용을 나누기 위해 약간의 자유 청강료를 스스로 조금씩 부담하거나 해서 필요한 비용을 충당한다. 따라서 무교회 예배와 같은 신앙모임에 참석하는 사람은 헌금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발표자나 강사도 강사료 같은 것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교회 신앙모임 밖에서 강사를 초빙할 경우에는 강사료를 지급하고, 먼 곳에서 강의 때문에 온, 대체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강사에 대해서는 청강료에서 얼마를 교통비 등에 충당하도록 지급하기도 한다. 이 기념예배에서는 청강료를 받지 않았고 강사료도 지급하지 않았다.]
발표를 위해 작은 도서관에서 〈은혜의 길〉을 다시 읽기 시작한 나는, 내가 바로, 하나님이 김애은을 규정한 "찌들고 찌든 빨래" 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자각이 들었다.
"이런 답답한 심정에서, 하루는 빨래를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 맑은 냇물에 빨래를 하다 '하나님 저는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하고 기도를 하는데, '너는 찌든 빨래다.' 하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너는 찌든 빨래다. 주무르고 비비고 방망이질함으로 땟국이 빠져 나오고 깨끗해지는 것을 보아라. 아주 찌든 빨래는 이것으로도 때가 다 빠지지 않아, 뜨거운 가마솥에 양잿물 넣고 삶아야 돼. 더욱 찌든 것은 몇 번씩 다시 삶아내야지. 빨래 자신은 아프고 뜨겁고 죽을 것만 같아도 주인이 쓰실 만한 깨끗한 옷이 되기 위해서는 가만히 그 손에 맡기고 있어야 돼. 만일 빨래가 주인의 손에서 싫다고 벗어난다면 그 빨래는 걸렛감으로 쓰레기통에 던져질 수밖에 없다. 너는 찌들고 찌든 빨래니 가만히만 있어. 가만히 참고 있기만 하면 돼!'"
[김애은, "은혜의 길", 〈은혜의 길〉 347쪽.]
김애은이 수십 년에 걸쳐 신앙의 스승 송두용을 통해 신앙을 배우고 단련 받는 과정의 초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들은 이 말씀을 비롯하여 많은 글들이 나의 영혼을 흔들었다. 김애은이 누구에게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신과 하나님의 대화로 써 내려간 일기는 거의 모두 밑줄을 쳐야 할 정도로 공감을 일으키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감동을 넘어 둔한 내 영혼의 밑바닥까지 흔들었기 때문일까. 눈물을 훔치고 코를 풀며 세수를 해도 읽을 때마다 계속 흘러 나오는 눈물을 억제하기 힘들었다. 하늘의 뜻을 안다(지천명, 知天命)는 오십 줄에 당당히 들어선 사람이 젊은 사람들 앞에서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웬 주책인가?
며칠 동안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고 나서야, 못난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은혜의 길〉을 눈물로 읽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사람은 자신이 서러워서 울고 남이 불쌍해서 운다는데 그런 걸까? 1960년대 상영되어 많은 사람들을 울렸던 "미워도 다시 한 번" 같은 영화의 관객들은 자신도 겪었던 비슷한 서러운 일에 울었고, 불쌍한 이웃의 슬픈 사연에 울었다. 영화관에서 나이든 점잖은 신사들도 훌쩍였고 목 놓아 운 사람들까지 있었다는 이야기를 그저 흘려들은 나도 텔레비전에서 재방영되는 영화를 보고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영화들은 사실상 대단히 중요한 사회적, 개인적 문제들을 단순히 감정적으로 처리하며 눈물샘을 자극한 데 불과할 수 있다. 그저 울기만 하고 끝낸다면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아무 잘못 없이 올바르게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이유 없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화가 난다. 분해서 눈물도 난다. 하나님 앞에 잘 믿고 살았다고 생각되는데 하나님께서 고난을 주신다면, 화도 나고, 믿는 분한테 버림받은 것 같아 서럽다. 눈물이 난다. 나는 죄인이니까 그렇다 치고, 저 사람은 그래도 천사처럼 선하게 산 것 같은데, 올바르게 믿고 살았는데 크나큰 고난을 겪고 있다! 도대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냐? 신은 있는 것이냐? 정의는 있느냐? 의인은 누구고 왜 인생에 고난이 있느냐? 더구나 의인에게 고난은 왜 있느냐? 여러 가지 의문이 일어나고, 불쌍하기도 하지만,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기막혀 눈물이 난다. 이것은 인생의 근본 문제와 연결된 눈물이다.

여러 가지 깊고 진실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김애은의 고난과 참된 신앙세계를 보며 "우리의 거짓 인간의 한낱 우상적인 믿음"[노평구, "김애은 여사 고별식에서", 〈은혜의 길〉 10쪽.]을 회개하는 눈물이 흐를 수 있다.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이미 죽음을 비롯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은혜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감사의 눈물이 솟을 수 있다. 이 세상 현실을 살아가며 흘리는 눈물을 주님이 닦아 주시고 눈물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에 기쁨과 소망의 눈물을 쏟을 수 있다(요한계시록 21:1-4).


2. 의사 김애은의 생애: 엘리트 여성의사에서 무의촌 수레 속으로

김애은은 유명한 부흥목사이자 감리교회 제2대 감독이었던 김종우 목사의 막내딸로 태어나, 주위의 사랑을 받으며 공주처럼 "세상이 모두 자신을 위해 봉사하는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이진구, "김애은 선생 부르심을 받음", 〈은혜의 길〉 16쪽.] 공부도 기가 막힐 정도로 잘하여, 서울의 덕수초등학교부터 내내 수석을 했고, 이화여고 졸업성적은 평균 98점, 전무후무한 성적이었다.[송문희, "자랑스러운 사람", 〈은혜의 길〉 516쪽.] 이러한 수재가 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도쿄 제국의학전문학교를 졸업(1942년)하고 돌아와 세브란스 병원에서 인턴 과정을 밟았다. 그해 가을 김애은은 도쿄 유학 중 알게 된 작은오빠의 후배와 결혼하였다.
"정거장에 마중나갔던 나는, 뒤를 치켜 깎은 단발머리에 타이트한 스커트의 양장차림 뱀가죽 모양의 뒷굽 높은 은회색 구두, 가히 동경 유학생다운 신여성 차림이, 당시만 해도 양장이 흔치 않은 데다 늘 수수한 분위기에만 젖어 있던 내 눈에는 그저 경이로움과 함께, 행여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일행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사뭇 걱정스럽기까지 했다."[송문희, "자랑스러운 사람", 〈은혜의 길〉 517쪽.]
김애은의 시누이가 전하는 당시의 "당혹스러운" 첫인상이었다. 이어서 김애은은 1943년 인천에서 애은소아과의원을 개업하였다. 김애은은 당시 최고의 엘리트 과정을 밟은 지식인이었고, 인천에 단 둘밖에 없는 여의사였으며, 언론계에 종사하는 남편과 함께 3남매의 단란한 가정을 이룬 어머니로서, 바쁘긴 해도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김애은은 시내 중심가로 병원을 옮겼고,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고 많은 환자들이 찾아왔다.[송문호, "고난과 은총의 생애: 1주기 추도 예배 말씀", 〈은혜의 길〉 22쪽.] 좋은 집안에서 출생하여 공부하고 결혼하고 의사로서 성공하기까지 김애은의 인생에서 행복을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김애은은 행복하게 되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스스로 세상적으로 행복해 지려고 하지 않았다. 1950년 동족상잔의 남북전쟁(6·25)에서 김애은은 남편과 병원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잃었다. 삼십대 초반의 그에게 남겨진 것은 어린 삼남매와 생활이 어려워진 시집식구들뿐이었다. 뜻밖의 민족적 비극에 하늘을 원망하고 불행을 벗어날 길을 모색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다시 행복해 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국회의원이었던 큰오빠와 교수였던 작은오빠가 미국 유학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러나 김애은은 오빠들의 간곡한 권유를 거절하고 삼남매와 시집식구들을 돌보는 길을 선택했다. 전쟁 중 군산, 김해를 거쳐 그가 간 곳은 서해 무의촌인 덕적도, 2년을 보건소장으로 있으면서 이렇다 할 교통수단도 없는 섬에서 환자들을 위해 한밤중에도 산을 넘어 왕진하는 등 인술을 베풀었다.[송문희, "자랑스러운 사람", 〈은혜의 길〉 519쪽.] 김애은은 유명해지려고도 하지 않았고 행복해 지려고도 하지 않았다.
다시 인천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어린 삼남매도 훌륭히 성장하여 아들 둘이 서울대학교 의대와 상대를 나와 소아과 의사와 사업가가 되고 딸은 미술을 전공하고 가정을 이루어 다소 형편이 나아졌으나, 김애은은 심장과 혈압 관련 여러 병들과 함께 뼈가 삭는, 당시로서는 희귀병에 시달리며 여러 차례 큰 수술을 받고 두 무릎에 관절 대신 쇠를 끼워 넣었다. 두 다리를 제대로 못 쓰는 김애은이 친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간 곳은 서해 무의촌인 장봉도, 여기서도 그는 손수레를 타고 왕진을 하면서도 웃는 낯을 잃지 않았고, 실비로 또는 무료로 인술을 베풀었다. 닭 한 마리, 보리쌀 한 되를 들고 김애은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김은우, "내가 본 의사 편모," 〈은혜의 길〉 507쪽.] 거룻배 사고로 한 쪽 팔마저 부러지는 부상을 겪고 팔마저 두 다리와 같이 뼈가 삭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없이 장봉을 떠나야 했던 김애은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반복되는 병석에서도 장봉의 하늘을 그렸다.[김애은, 일기 1976. 1. 28.: 1976. 2. 26. 〈은혜의 길〉 77, 96쪽.] 10여년의 병고를 끝내고 세상을 떠난 것은 1985년, 김애은의 나이 64세였다.
"결혼 직전 나를 놀라게 했던 초현대식 모습과는 딴판으로 이제는 병들어 초췌한 모습과 수수한 매무새여서 아무도 그녀를 역량 있는 여의사의 모습으로 가늠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그 초췌한 모습에선 정신적인 강인함이 내비쳐지는 저력과 더없이 은은한 빛이 발하여지고 있음을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시로 엄습하는 통증을 애써 참아가며 사람을 대할 때면 미소를 잃지 않았으며 늘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1985년 8월 21일 그의 임종이 알려지면서 모여든 사람들은 누구나 없이 허탈한 마음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동안 병원에서 데리고 있던 간호원들. 심지어 허드렛일을 도와주던 사람들까지 먼 길을 찾아와 뜨거운 눈물을 뿌리며 그녀의 떠나감을 아쉬워했다."
[송문희, "자랑스러운 사람", 〈은혜의 길〉 519-20쪽.]
김애은의 시누이는 엘리트 여성의사에서 딴판으로 변한 그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돈이나 명성을 구하지 않고 무의촌 등에서 희생적인 인술을 베풀고 봉사한 김애은은 일방적인 사회의 가치관으로도 충분히 존경과 감동의 대상이 된다. 그러기에 한 때 정부의 상도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더 깊이 들어가 "고난을 통하여 얻은" "한없이 귀한" 김애은의 신앙[유희세, "김애은 선생!", 〈은혜의 길〉 15쪽.] 세계를 고찰해 봄으로써 우리 자신도 그처럼 현실의 고난과 죽음을 이기고 하늘나라로 개선할 수 있는 은혜의 길을 함께 가자고 한다.


3. 하나님의 김애은에 대한 은혜의 섭리: "교회 다니는 사람"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겉모양이나 보는 관찰 또는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필요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보고 싶은 면만을 보는 시각과 달리, 사물의 내면을 보아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는 시각으로 김애은의 일생을 보면, 겉으로 나타난 의사 김애은의 모습보다 깊은 영혼의 문제를 볼 수 있다. 김애은 자신의 고백을 들어 본다.
"저는, 후에 감리교단의 감독까지 지내신 목사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주위 환경에 따라 기도하고 찬송하며 예배보는 일을 어김없이 하였지만, 참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 자극도 괴로움도 없는 평온한 생활을 하여 왔습니다."[김애은, "은혜의 길", 〈은혜의 길〉 341쪽.]


그러나 하나님은 김애은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결혼 후 세 아이를 갖고 해방후 경제적인 어려움과 함께 남편과 갈등, 시어머니와 시동생의 오랜 병 등, "세상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겹쳐지는 역경"이 닥쳐왔다.[김애은, "은혜의 길", 〈은혜의 길〉 341쪽.] 이 역경을 벗어나기 위해 김애은은 많은 교회에서 권하고 수많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따르는 방법을 썼지만 절망밖에 없었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연보도 더 많이 내고 목사님의 얼굴을 쳐다보며 설교 말씀에 귀를 기울였지만 마음에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하였고, 모든 것이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의 것처럼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으며, 절망 속에서 오직 죽음만이 자신의 안식처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심정이니 저에게는 온 식구가 다 나를 이용하려는 존재로만 보였고, 가족들만이 아니라 오고 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싫고 다 밉고 귀찮은 짐으로만 느껴졌습니다."[[김애은, "은혜의 길", 〈은혜의 길〉 341-2쪽.]
이렇듯 "속이 곪고 곪아 썩어"[김애은, "은혜의 길", 〈은혜의 길〉 343쪽.] 절망이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렸지만, 김애은은 하나님께 돌아가 병을 고치기보다는 인간의 눈을 의식하며 사는 위선과 죽음의 유혹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도 겉생활과 표정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자는 그런 생활을 하면서, 그것이 죄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언제 어느 장소에서 죽을까 하는 생각을 남 몰래 하고 있었습니다."[김애은, "은혜의 길, 〈은혜의 길〉 342쪽.]
이러한 김애은에게 하나님은 송두용(1904-1986)을 보냈다.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만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섭리의 역사를 본격화하신 것이다. 김애은은 송두용이 반가워하지도 않는 집에 와서 사흘씩이나 머물면서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제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듯한 "타산과 체면을 초월한 어떤 힘"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그에 대한 질문으로 송두용과 대화를 시작한 김애은은, "내가 오로지 살 길은 이 길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예배 장소를 송두용의 무교회 모임으로 옮겼다.[김애은, "은혜의 길", 〈은혜의 길〉 343쪽.]
일생일대의 결단이었다. 더구나 감리교회 감독의 딸이,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이단으로 몰아치기까지 하는 무교회로 간 것이다. 교회에 다니면 그리스도교 신자(그리스도인)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무교회 모임에 나가면 무교회주의자요 참 그리스도교 신자(그리스도인)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김애은은, 신앙을 머리로만 이해하려는 잘못을 거듭하였으며, "무교회로 예배 장소를 옮기고 겉으로 흉내만 내는 것이 믿는 것이 아니건만, 믿지 못하면서 믿는 줄 아는 더욱 더 큰 교만"에 빠졌었음을 고백하고 있다.[김애은, "은혜의 길, 〈은혜의 길〉 344쪽.] 이러한 김애은을 "그리스도인"으로 바꾸시려는 하나님의 역사는 송두용을 통하여 고난과 함께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송두용은 의사 김애은이 경제적 도움을 드리며 잘 섬기려 인간적인 노력을 하는 것을 보고, "의사[김애은]보고 도둑질 거지질 해서 나 먹여 살리라고 하나님은 하시지 않아, 걱정 말아!" 하고 펄펄 뛰며 거부하였고, 서울로 다시 따라온 김애은을 덕적도로 보내 버렸다. 신앙적 연단이 시작된 지 15년이 되던 해에는 송두용이 김애은에게 절교장을 보내기까지 하였다. 하나님의 섭리로 두 사람이 다시 만난 후에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섭리의 손길"을 뻗치시어 김애은을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꼼짝 못하게 몰아" 넣으셨다.[김애은, "은혜의 길", 〈은혜의 길〉 344-52쪽.]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는 어떠한 결실을 맺었는가. 김애은은 무교회를 통하여 어떠한 신앙세계에 도달하였는가는 다음의 추모사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장에서 좀더 상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김애은은] 흠모할 만한 풍채도 없었고 사람을 매혹시킬 만한 언변도 없었으나 그는 주변의 많은 형제자매들에게 생명의 힘을 나눠 주었습니다. 목발지팡이에 의지한 10여 년 몸져누워 요양 중에도 위문 간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돌아가는 사실은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셨음을 증명합니다." [이진구, "김애은 선생 부르심을 받음", 〈은혜의 길〉 17쪽.]

4. 그리스도인 김애은의 신앙세계: 고난을 넘어 이미 하늘나라로


같은 인물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이 보이기 마련이다. 상대가 큰 인물일수록, 보는 사람이 작을수록 큰 인물에 대한 묘사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 되기 쉬운 위험이 크다는 점을 유의하면서, 김애은의 신앙세계를 다섯 가지 특징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늘나라


첫째, 김애은은 이 현실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미 하늘나라를 살고 있었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이성과 양심으로, 천국을 다녀왔다는 종교사기꾼들에 속지 않을 정도는 된다. 그들은 결국 자신들이 돈과 같은 현실적 욕심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거나 자신을 신비하게 하여 어리석은 신도들을 끌어 모아 헌금이나 갈취하려는 자들이다. 경건하다는 신비주의자들은 종교사기꾼들과 같이 사적인 욕심은 없는지 모르나, 그들이 주장하는 신비적인 체험 없이도 얼마든지 기독교 복음은 서는 것이므로, 별로 신뢰하지도 않고 가치를 두지도 않는다.
그러나 성서에서 말하는 것은 믿고 있다. 예를 들어 창세기는 에녹과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음을 기술하고 있다(창세기 5:21-24; 6:9). 하나님은 에녹을 데려가셔서 에녹은 죽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고, 노아는 방주에서 구원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실로 믿고는 있었으나, 나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애은의 신앙생애에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예를 볼 수 있어서 놀랐다. 김애은은 항상 하나님과 기도를 대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촉감"을 느끼며 고통을 견디어냈다. 예를 들어 그가 1975년 장봉 섬에서 거룻배 사고로 팔이 부러질 때의 이야기를 본다.
"조금 있다가 '쾅'하고 객선에 거룻배가 부딪쳤다. 공교롭게 내가 맨 앞에 있었기 때문에 빽빽이 내 뒤에 섰던 사람들이 일제히, 뱃전을 붙잡고 앉으력 하는 내 팔 위에 덮쳤다. 나는 맨 밑에 깔린 것이다. 팔이 뚝 부러져 허전해지며, 일어설 수가 없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 하고 부르짖었다. 그 순간 '이 현실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엄위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크게 내 귀를 울린다.
그때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내 부러진 팔을 힘껏 잡아당기며, '일어나세요. 왜 그러십니까?' 하다가, 내가 '아야!' 하고 소리를 지르니 그분은 손을 탁 놓았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나는 나도 모르게 절대이신 하나님 아버지에게 내 모든 것을 다 내어던져 의탁하게 되었고, 내 마음도 무로 돌아가 아주 평안해졌다. 내 몸은 배에다 기대고 있었으나 살아계신 아버지에게 포근히 안겨 있는 촉감조차 느끼며, 아픔도 왜인지 잘 견딜 수 있었다.
[김애은, "이 현실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은혜의 길〉 356쪽.]
팔뼈가 부러진 채로 세 시간 이상 인천을 향해 객선을 타고 가니, 팔이 부러진 사람이 저렇게 가만히 갈 수 없다는 말까지 있게 되었고, 김애은 자신도 의심스러울 정도였으나,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보니 팔이 부러졌으나 기적적으로 잘 맞추어져 있었고 그의 뼈가 삭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사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 마음은 이상하게 흔들리지 않고 평안하기만 했다. 뼈가 삭아 간다는 심각한 상태에 대해 웃음을 띤 얼굴로 듣고 있노라니 레지던트들이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나 스스로도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로 평안하다. 나는 물었다. '내 혼아, 이런 말을 듣고, 이런 현실에서 어찌 너는 불안하지 않느냐?' 하고. 그 대답이 '이 현실 속에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이다. [김애은, "이 현실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은혜의 길〉 358쪽.]
바로, 이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믿는 김애은은 사고를 일으킨 거룻배 임자를 파출소에서 석방시키도록 조치하고 서울로 돌아온다. 김애은은 자식들도 피해보상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을 보며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며 눈물이 나도록 기뻐한다.[김애은, "이 현실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은혜의 길〉 359쪽.] 김애은은 계속 하나님과 함께 하는 체험을 증언한다.
"한여름 복중, 7월 8월 근 2개월 동안을 붙을지 어쩔지 모르는 팔을 깁스를 하고 있는데, 때때로 시험이 들면 '이 팔이 붙지 않는다면 내내 이렇게 고정 결박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아이 더워' 하고 금세 땀이 비 오듯 하며, 숨이 막히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게 되려 한다. 그러나 다시 '이 현실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는 우리 주님의 음성이 크게 내 귀를 울리면, 곧 숨 막히는 더위도 땀도 어디로 나도 모르게 사라지고, 팔이 붙거나 안 붙거나 관계없이 시원한 콧노래가 나오는, 꿈만 같은 기적 속에 기쁨과 감사로 지내게 된다. 이렇게 2개월을 지낸 후 사진을 찍으니 또한 기적적으로 다 삭은 뼈가 붙어 있었다. 병원 의사들도 모두 기적이라고 했다." [김애은, "이 현실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은혜의 길〉 359쪽.]
기적으로 병을 고친다느니 기도로 병이 나았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우리 교계에 유난히 많다. 그래서 유능한 종교가는 조직폭력배까지 동원해 가며 돈 관리도 하고 신도 관리도 한다. 그러나 김애은을 동행한 하나님은, 거저 병 낫고 돈 벌며 출세하게 해 주는 동시에 천국까지 보장해 준다는 기복신앙의 거짓 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고 순종하게 하시며 원수사랑에까지 이르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이다. [갈라디아서 522-23.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개정판〉(서울 대한성서공회, 2001) 신약 293쪽.]
"지금도 주님 자신이 해 주마고, '이 현실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너는 나를 믿어라. 나만을 바라라. 부르짖어라. 내가 이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있으리라.' 고 지금도 나의 귀에 크게 울리신다.
믿기만 하고 가만히 있어 주님이 들어오시면, 그 현실 속에 보여지고 들려지며, 닥치는 모든 일과 대하는 모든 사람들의 역사와 그 깊은 속의 하나님의 역사를, 당신의 품에 꼭 안고 속삭여 깨닫게 하신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 놓아 두신 나의 위치를 새롭게 느끼게 하시어 나의 책임의 한계도 할 일도 가르쳐 주시며, 나도 모르게 그 일을 하고 싶은 의욕과 소망을 주시고, 대인 관계에서는 나를 용서해 주신 당신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며, 아무 죄인을 대할 때라도 나도 똑같은 죄가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내 생활 속에서 생각나게 하시며 또 드러내면서, 내가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또 교만할 수 없게 해 주시며, 용서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해 주신다."
[김애은, "이 현실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은혜의 길〉 362쪽.]
하늘나라로 개선하는 해(1985년)에 김애은이 남긴 기도문에는 감사, 기쁨, 평안, 평화, 사랑, 순종 등 성령의 열매가 무르익어 있다.
"}'너희는 나를 바라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음성에 따라 맡기고 감사와 기쁨과 평안을 살며 참 평화를 창조하심에 동참하여야 하겠다...
'주여, 원수를 진정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믿음을 주소서. 내가 당신의 원수일 때 먼저 사랑하셨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음성 따라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모든 것 다 바쳐 순종할 수 있게 하소서.'"
[김애은, "이 현실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은혜의 길〉 362쪽.]
동시에 김애은의 하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현실 속에 실현시키시는 하나님이다(마태복음 11:28-30). [김애은 자신이 이 성서구절을 1980년 8월 2일 일기에서 쓰고 있다. 〈은혜의 길〉 192쪽.]
"이번에도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들린 '이 현실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하신 그 음성은 나를 요즘 살려 주시고 있다. 어느 때, 어디서, 무슨 일에나, 누구를 대할 때나 이 음성만 들으면 그 순간 내가 지려는 무거운 내 어깨의 짐은 다 떨어져 버리고, 내 마음과 어깨는 가볍고 평안하며, 성령이 시키시는 기도를 나도 모르게 그 일과 그 사람을 위해 하게 되며, 모든 일에 누구에게나 소망을 저 세상까지 갖게 된다." [김애은, "이 현실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은혜의 길〉 361쪽.]
(2) 철저한 자기 부정과 순종


둘째, 김애은은 이미 자신이 죽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며 여줘보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 하고 있었다.
김애은에게 세상사람들의 자랑거리는 이미 없었다. 그는 공부 잘 하고 능력 있는 의사가 된 것 등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무조건 은혜로 준 선물" 이라는 것을 고난 속에서 깨닫고 있었다. [김애은, "은혜의 길", 〈은혜의 길〉 353쪽.] 나아가 김애은은 도덕적, 양심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바리세인의 교만, 즉 하나님 앞에 자신의 선과 의를 주장하는 교만이 철저히 무너지는 것을 신앙적 고난 속에 체험하였다.
"그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하여 저와 제 가정 위에 섭리의 손길을 뻗치시었으며, 육체적인 병고와 경제적인 어려움, 아이들에게 나타난 뜻밖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들을 체험하게 하시며, 꼼짝 못하게 몰아 넣으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은 최선이시라는데···.' 하고 당신망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는 저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렇다. 내가 너의 최선이다. 그러나 나의 선은 너의 선과는 다르다. 네가 이제껏 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너는 너의 인간 도덕적인 선을 가지고 나에게 반발과 반역을 했으며, 나의 하는 일을 방해하고 순종치 않았다. 너의 선은 이렇게 허물어져 버려야 할 바벨탑이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제껏 자신이 쌓아올린 삶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저 자신 지금까지 믿는다고 하면서 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나 자신을 섬기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김애은, "은혜의 길", 〈은혜의 길〉 352-3쪽.]
모든 근심 걱정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와 함께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체험을 하는 기쁨을 누렸지만, 김애은은 이른바 믿는다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죄악의 하나인, 자신의 신앙적 체험을 자랑하며 다른 사람의 신앙을 비판하는 죄를 수술대 위에서 깨달았다.
"그런데 제 속의 깊은 죄의 뿌리는 저를 그대로 두지를 않았습니다. 뼛골까지 스며들어 있는 저의 교만은 이런 체험의 은혜까지도 제 것 제 자랑으로 생각하게 되어, 다른 사람의 신앙에 대해서 헤아리는 마음이 굳어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또한 이러한 저를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제 환도뼈를 꺾으셨습니다. 저의 교만의 뿌리를 끝까지 뽑으시기 위해, 두 다리가 다 상하여 뼈를 자르고 쇠를 끼워 넣는 대수술을 세 번이나 받게 하시었으며, 죽을지도 모를 그 수술대 위에서 저의 영혼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네가 잘나서 건강했고 네가 잘하여 아이들이 잘 자란 것이 아니다. 네가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된 것이나 지금까지 네가 살아올 수 있었던 모든 것이, 다 네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너에게 무조건 은혜로 준 선물이다. 네 생명과 네 모든 것, 그리고 네 신앙 체험도 내가 너에게 준 것이다.'"
[김애은, "은혜의 길", 〈은혜의 길〉 353쪽.]
김애은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너무나 철부지, 자신을 모르는 위선자, 교만하고 오만한 살림, 남을 헤아리고, 함부로 응석부린 나" 였음을 회개하고 있다. [김애은, 일기 1980. 10. 18 〈은혜의 길〉 203쪽.] 나아가, 제 것이 없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것이 최선임을 인식하고 있다.
"내 몸도 내 몸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 나도, 남도, 일체가 하나님의 소유를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내 몸이라고, 내 집이라고, 내 돈이라고, 내 마음이라고, 내 기도라고 할 것이 하나도 없다. 주인은 언제나 하나님. 그 하나님 우리의 주인에게 여쭈어 그 뜻에 따라 순종하는 일이 우리 위치에서 우리의 할 일이요, 우리의 목적이 되는 가치관이어야 한다." [김애은, 일기 1978. 5. 19 〈은혜의 길〉 174-5쪽.]
결국 내가 죽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다. 내가 완전히 없어진 상태에서만 주님이 내게 들어오시고, 성령이 인도하셔서, 소금이 되어 자신의 사명을 이룰 수 있다(마태복음 5:13).
"죽는 것이 사는 것
소금, 소금이 그 맛을 내려면 반드시 자기가 녹아 없어져야 한다. 완전히 자기가 죽어 형태가 없어져야 제 맛, 제 사명을 이룰 수 있다.
이제, 지금 곧 주님께 나의 모든 것 내어던져 맡기고 완전히 없어진 자리에만 주님 들어오셔서, 성령께서 주장하시고 명령하시고 써 주심에 나는 순종하게 된다."
[김애은, 일기 1984. 2. 17 〈은혜의 길〉 334쪽.]
이러한 철저한 자기 부정을 통해서 인간은 고난을 이기고 넘어서서 새로운 세계를 살 수 있음을 김애은은 자신의 고난의 생애를 통해서 증언하고 있다.
"자기 부정을 하면 아픔과 고난의 프리즘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보일 것이며, 더 넓은 세계와 아름다운 세계를 만나게 될 때 아픔과 고난은 생각할 사이도 없고 문제도 안 되며, 더 크고 넓고 깊고 높은 세계를 살게 되는 신기함과 기쁨이 있다." [김애은, 일기 1984. 3. 14. 〈은혜의 길〉 336-7쪽.]
(3) 병고 속의 감사


셋째, 김애은은 길고 고통스러운 병고 속에 오히려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김애은은 병의 의미를 기복주의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자신이 병석에 눕게 된 것은 주님이 그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치셨기 때문이다.
"조용하던 연못이 휘몰아치는 바람에 연못 밑에 가라앉아 있어 남에게나 자기에게 보이지 않았던 더러운 것들이 솟구쳐 오르듯, 악령의 소용돌이에 완전히 미친 상태에서 멋대로 나설 때 주님은 나를 쳐서 병석에 누이셨다.
'왜 나를 이렇게 하시죠? 나는 그래도 당신을 위한다는 것이었는데.'
'다 필요 없다. 내가 너를 쳤다. 내거 너와 함께 조용히 대화를 하고 싶구나. 내 사랑의 품 안에 있으라.'
주님의 음성이 직접 들릴 때에 비로소 건강할 때보다 더 평안해 졌고 주님께서 나를 꼭 안고 계시는 촉감까지 느껴지며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주님과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김애은, "내가 만난 권정님", 〈은혜의 길〉 367쪽.]
이렇게 김애은과 대화를 시작하신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가 무엇인가를 해서 그 공로로 인정받아 구원받는 줄 아는 것이 불신에서 오는 인간본위의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아프지 않으면 자신을 버리지 못하니, 병과 같은 고난을 통해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역사가 계속되어야 한다.
"야곱은 환도뼈를 한 번 부러뜨리셨는데 나는 두 다리, 한 팔 다 부러뜨려도 그래도 나를 버리지 못하니 계속 내 몸에는 아픔이 불가피한가 보다. 아플 때에만 주님을 찾아 뵈옵게 되니 병이 나에게는 은혜와 사랑의 밧줄인가 보다." [김애은, "내가 만난 권정님", 〈은혜의 길〉 367쪽.]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아픔과 고난 속에서 김애은은 건강할 때에는 몰랐던 감사를 배웠다. 인간은 고난을 비롯한 모든 것을 감사로 받으며 순종해야 영생과 부활에 이를 수 있다.
"이제 나는 몸으로 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손으로 글을 쓸 수 없었다. 완전히 식물인간으로 되었다가 다시 손으로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셨고 편지도 쓸 수 있게 해 주셨다. 나의 건강할 때에, 불만 불평 더 큰 욕심이 불탔을 때에 나는 감사를 몰랐었다. 지금은 앉았다 일어설 수 있는 것,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것 모두모두 너무 감사할 일이 많아 만 입이 있어도 그 입 다 가지고 다 못할 만큼 많다...
진실로 인생에 있어 모든 것을 믿고 감사히 받으며 순종할 때에, 믿음에서 믿음으로 나를 이끌어 영원한 생명과 부활과 재림의 확신까지 주신다고 믿는다."
[김애은, "내가 만난 권정님", 〈은혜의 길〉 368쪽.]

(4) 원수까지 사랑하는 믿음


넷째, 김애은은 자신의 이웃뿐만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믿음을 추구하였다.
김애은이 무의촌의 의사로서 헌신적인 인술을 베풀었고, 주위 이웃들에게도 신앙적인 사랑을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는 것이다. 수십년 의사생활로 빌딩을 몇 채 갖고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의사가 20년 전 덕적도 보건소장 할 때 입던 치마를 입고 "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가정과 병원을 버리고 비싼 주사약을 꾸려 들고 무료진료"를 다녔으니, [성명주, "김애은 선생을 사모함", 〈은혜의 길〉 444쪽.] 사람들이 놀랄 만도 하고 김애은 자신이 자랑할 만도 할 것이다. 그러나 김애은은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지 않았다. 자랑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믿음으로 인간은 "주님의 사랑의 도구"가 되어 참된 행복을 누리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깨어라. 책임과 의무를 무거운 짐으로만 여기는 자여, 믿어라. 사랑이 용솟음쳐 행해 질 때, 인간의 노력 다하고 힘쓰고, 참고 의무와 책임을 다하려는 자에 비할 수 없는 더 큰 책임을, 더 큰 일을 힘드는 줄 모르게 해치우리라. 사랑에 이끌리어, 사랑의 속삭임에 도취되어, 희생과 고난의 아픔을 전혀 느끼지 않거나 느껴도 이기고 남는 힘과 소망과 생명과 활력이 넘치리라. 저 세상 하늘나라를 늘 바라보며, 주님과 그 곳 가 계신 여러 분들과 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쁨에 빠져 버려, 주님의 사랑의 도구로서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장 큰 행복을 이미 이 땅에서 누리리라." [김애은, 일기 1982. 7. 15. 〈은혜의 길〉 310쪽.]
근본적으로 율법, 윤리 도덕의 실천과 함께 사랑의 실천이란 인간의 노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고 순전히 하늘의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점을 잘못하면 하나님의 적이 된다는 점을 김애은은 경고하고 있다.
"윤리 도덕을,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요, 그 분의 속죄의 은혜에 감사하여, 윤리나 도덕 이상의 절대의 원수 사랑, 순수한 사랑을 행할 수 있게 되는 것. 이 일은 순전히 하늘의 일. 어느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는 절대 안 되는 일. 이것을 율법으로 행할 수 있는 줄 알고 이론에 치우칠 때, 하나님의 일과 정반대가 되는 적이 되는 것." [김애은, 일기 1981. 12. 11. 〈은혜의 길〉 281-2쪽.]
김애은도 자신이 노력해서 이웃을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고 맡기면 어떠한 죄인도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또 교만할 수 없게 해 주시며, 용서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해 주신다."는 것이 김애은의 고백이었다. [김애은, "이 현실 속에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은혜의 길〉 362쪽.]
"주여, 원수를 진정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믿음을 주소서. 내가 당신의 원수일 때 먼저 사랑하셨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음성 따라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모든 것 다 바쳐 순종할 수 있게 하소서." [김애은, "내가 만난 권정님", 〈은혜의 길〉 370쪽.]
(5) 육체의 한계를 넘어 죽음을 이긴 삶


다섯째, 김애은은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영적인 세계에서 죽음을 이긴 삶을 살고 있었다.
쓰라린 고난 속에서 김애은의 신앙을 이끌어 준 것은 그의 신앙의 스승인 송두용과 이화여고 2년 선배였던 권정님이었다. 권정님은 짧은 기간 애은소아과에서 간호사로서 그리고 언니로서 일해 준 후 이미 하늘나라로 간 사람. 그가 육체의 죽음을 넘어 김애은에게 나타나 "날마다 점점 뚜렷하게 그가 산 속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고" [김애은, "내가 만난 권정님", 〈은혜의 길〉369쪽.] 믿음과 하늘의 섭리를 가르쳐 주는 영적인 세계를 김애은은 살고 있었다.
"그후 온실에서만 자라 온 나의 생애에는 내가 상상도 못 했던 많은 쓰라린 일들이 계속 덮치어 왔다.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닥쳐올 때마다 주님의 사랑을 느끼도록 송두용 선생님은 이끌어 주셨다. 뒤늦게 이제 믿음으로 구원받는 체험을 할 때마다 권정님은 내 곁에 가까이 나타나 속삭여 준다. 믿음의 삶은 영원한 생명의 삶이고 주님의 성령이 살아 주신 삶이어서 평안과 기쁨과 소망이라고. 다만 주님의 성령에 순종해 살아지는 믿음의 생활만이 자신과 남을 살리는 것이라고 하늘의 섭리를 가르쳐 준다. [김애은, "내가 만난 권정님", 〈은혜의 길〉 366쪽.]
이러한 "천국의 정님 언니"가 가까이 느껴지고 자주 보인다는 김애은은, [김애은, 일기 1976. 3. 19 〈은혜의 길〉 114쪽.] "하얀 뭉게구름 타고 장봉일주, 한국 일주, 세계 일주, 우주 일주" 하는 것을 노래하고 있으며,[김애은, 일기 1976. 1. 28. 〈은혜의 길〉 77쪽.] 육체의 한계를 초월한 영혼의 세계를 증언하고 있다.
"맑고 깨끗하고 따뜻한 봄볕, 생기와 소망의 우렁찬 메아리, 만물이 소생하는 거룩한 시기, 이 봄을 가장 소중하고 기쁘게 맞이한다. 내 몸은 비록 방바닥에 못 박혔어도 내 영혼 주님과 함께 저 들과 저 산과, 저 하늘, 저 바다 훨훨 뛰고 걷고 난다. 성령이 시키시는 기도의 줄 타고 한없이 끝없이 모든 영혼들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까지. [김애은, 일기 1976. 3. 4. 〈은혜의 길〉 102쪽.]
이러한 김애은에게 죽음이란 같은 집에서 방을 바꾸는 정도의 문제였고, 예수 재림의 때에 심판 앞에서도 당당히 설 수 있는 구원의 확신이 있었다.
"죽음이란 안방에서 건넌방 가는 정도, 잠시 출근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 우리들의 이별도 이와 같은 잠시의 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별이 영원히 있을 수 없다. 너와 내가 믿는다면···. 그리워라, 영원히 아픔이 없는 그 나라여." [김애은, 일기 1976. 5. 14. 〈은혜의 길〉 142쪽.]
"내 생애 다 갔어도 이 세상에 왔다 가는 보람이 있으며, 영생을 이제부터 받아 사니 네 영의 생명은 주님과 더불어 영원하리라...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 그 심판 앞에서도, 주님의 용서와 구원의 확신으로 어엿이 그 분 앞에 서서 우러러보며, 우주의 대 평화의 대 승리를 찬양하리라."
[김애은, 일기 1983. 8. 15. 〈은혜의 길〉 326쪽.]

5. 맺는말


고난을 넘어 이미 하늘나라를 살고 있던 김애은의 신앙세계를 살펴 보았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김애은의 고난과 신앙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증거와 교훈을 예시해 본다.
첫째, 김애은의 삶은 그대로 성서가 진리임을 증거하고 있다. 성서에서 말하는 세계가 믿음 가운데 현실로 이루어 질 수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예를 들어 2천년의 십자가 구원의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나에게 이루어지는 현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오늘의 현실 속에서 읽고 믿고 살아야 한다.
둘째, 형식적인 거짓 믿음 갖고는 안 된다. 참된 믿음이어야 한다. 잘못된 믿음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죽음으로 인도한다. 단순히 "교회 다니는 사람" 이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그리스도가 자신의 주인이자 모든 것이 되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루터의 복음과 무교회 신앙에는 참 교회와 거짓 교회,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중요한 논제가 있다.
셋째, 우리의 부족한 신앙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인류적으로 반성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이름으로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우리의 신앙이 참되다면, 우리도 김애은 같은 신앙세계를 살고 있어야 한다. 김애은의 신앙세계는 우리의 모범이며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넷째, 인생은 인간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망할 것 없다., 완벽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최선이다. 오히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빌어야 한다. 내 뜻을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다섯째, 고난을 두려워할 것 없다. 피할 것 없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또한 그 고난을 이기고 남을 힘도 주신다. 고난을 포함한 모든 인생사에는 우리를 회개시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뜻이 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신의 현실적 욕심을 앞세우는 기복신앙 따위로는 구원이 아니라 멸망에 이른다.
여섯째,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만이 도덕, 윤리,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제 힘으로 실천했다고 하는 사람은 착각과 교만에 빠진 것이고, 제 힘으로 실천하려는 사람은 절망이나 위선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일곱째, 이른바 세상의 행복의 조건은 결코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돈, 학벌, 명예, 출세, 권력, 건강, 좋은 집안 배경 등등 세상 것들은 오히려 인생의 독이 될 수 있다. 올바른 진리와 생명의  길을 막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헛되고 악한 것을 추구하느라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모든 것을 맡길 때 영원한 생명을 비롯하여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도 고난과 죄악 속에 넘어지고 깨어질지라도 오직 주님의 은혜로 용서받고 일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인간에게는 하찮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귀한 존재들. "영원한 아픔이 없는 그 나라"에서 우리는 김애은과 함께 주님의 은혜를 찬양하리라.


바울과 송두용( by M. K. CHANG), 외

바울과 송두용(by M. K. CHANG)과 그외 기타 글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수
11 그외 글들 무교회 신자의 비사회성에 대한 비난에 대해-노평구 2009.01.01 7868
10 그외 글들 루터와 김교신의 "하나님"과 "신앙" - 장문강 file 2009.01.01 9429
9 그외 글들 하늘에 국적을 둔 자 - 다까하시 ·사부로[高橋三郞] 2007.09.22 8086
8 그외 글들 하나님 나라의 도래 - 다까하시 ·사부로[高橋三郞] 2007.09.22 7102
7 그외 글들 시냇가에 옮겨진 나무 - 다까하시 ·사부로[高橋三郞] 2007.09.22 7563
6 그외 글들 성례권(聖禮權)의 개방(開放)을 논(論)함 - 유 원 상(劉 源 相) 2007.09.22 6771
» 그외 글들 찌든 빨래의 눈물과 은혜의 길 2007.09.08 8545
4 관리자 추천글 하나 키에르케고르의 인생 3단계론과 우리의 신앙 1 2007.09.08 10596
3 바울과 송두용( CHANG) 바울과 송두용[3-3] - 장 문 강 2007.09.08 7637
2 바울과 송두용( CHANG) 바울과 송두용[3-2] - 장 문 강 2007.09.08 8247
1 바울과 송두용( CHANG) 바울과 송두용[3-1] - 장 문 강 2007.09.08 8640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

allbaro.net since 2007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