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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2 21:17

새 무교회주의-무우일랑(다케유 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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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이 전] [다 음]


새 무교회주의

武祐一郞[무우일랑(다케유 이치로)]           

1. 머리말

먼저 몇 가지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그 첫째는 '새 무교회주의'라는 연제를 내걸었기 때문에, 여기 모이신 여러분 중에는 아마도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시는 분이 계실 줄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 몇 달 동안 여러 가지 조사해 보니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선배의 어느 분인가가 말씀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소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지는 모르나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둘째는 개인의 이름을 들어 비판도 하겠습니다만, 이것은 저의 52년간의 신앙생활의 반성을 겸해서 말씀드릴 생각입니다.

셋째는 '새 무교회주의'라는 연제를 내걸었지만, 잘 생각해보니 '주의'를 빼고 '새 무교회'라고 하는 것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넷째는 오늘 말씀드리려고 생각하는 내용은 대단히 광범위한 것이어서, 예정시간 내에는 도저히 다 말할 수 없겠습니다. 오늘은 그 일부분으로 하고, 후일 어딘가에서 이 계속을 말씀드리려고 생각합니다.

다섯째는 여기에 '교회·무교회=교회의 본질'이라는 작은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만, 이것은 마치다[町田(정전)]시에서 하고 있는 제2 토요회에서 1년 반쯤 전에 말씀한 기록입니다. 이것을 어떤 분에게 드렸더니 한 가지 요망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이 기록 마지막에 "오는 조금이라도 그리스도의 몸에 합당한 교회나 집회의 형성에 노력해 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커다란 과제가 아닐까요?"라는 말로 매듭을 지었기 때문에, 이에 대하여 "이 과제를 달성하는 방법론을 5월 2일에는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라는 편지를 받아습니다. 그래서 이 기록에 계속되는 내용으로 준비를 했습니다.



2. 말의 정의(定議) : 혼란을 피하기 위하여

조금 지나친 표현이 됩니다만, "무교회론은 자칭 무교회인의 수만큼 있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 여러 가지 논쟁이 있었습니다. 다만,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공전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원인의 하나는 말의 정의가 분명치 않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오늘 이제부터 자주 쓰게 될 3 개의 말의 정의를 내리고 말씀을 진행할까 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무교회연구소'에서 발행하고 있는 '무교회'라는 잡지 제2호에 '무교회 사상의 성립'이란 다카기[高木謙次(고목겸차)] 씨의 문장이 있고, 그 안에 말의 정의를 내리고 있어서, 그것을 빌어 거기에 약간 저의 코멘트를 붙여서 말씀해 보려고 생각합니다. 다카기 씨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1) 무교회 : 집회, 집단, 신단(信團) ☞ 에클레시아 개념
(2) 무교회주의 : 이론, 주장 이념 ☞ 이데올로기 개념
(3) 무교회정신 : 에토스와 파토스의 복합개념

이 정의에 덧붙일 필요는 없을지 모르겠으나 '무교회'에 대하여 저는 '모임'이라는 말을 썼으면 생각합니다. 그것은 전에 에밀 브룬너가 일본에 계실 때 무교회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그 후 무교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하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무교회 모임'이라는 말을 쓰고 있어서 그것을 빌리려 합니다.

다음에, '무교회주의'라는 말입니다만, 다카기 씨의 정의에 '이상'이란 개념도 더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무교회주의'는 말로 표현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다음, '무교회정신'을 다카기 씨는 "에토스와 파토스의 복합 개념"이라는 적절한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토스'는 분위기 또는 정신, '파토스'는 '정렬'이라고 번역하고 잇는데, '에토스'는 '향기'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지요? 그리고 '무교회 정신'이란 것은 말로는 완전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향기는 어느 정도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만 맡아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제가 주로 '무교회' 즉 '무교회 모임'의 문제점을 지적하려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 중에는 그 모임을 지도하는 사람의 이념으로서의 '무교회주의'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모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와, 지도자가 표현하고 있는 '주의'는 훌륭하더라도 현실의 '모임'에 문제가 있는, 다시 말해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차이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 독립학원 고등학교를 창립 초기부터 알고 있으며, 창립자 스즈키[鈴木弼美(영목필미)] 선생의 교육이념에 공명했기 때문에 자식들 넷을 전부 거기에 보냈습니다. 자식들이 재학 중에 아내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독립학원은 그 이상이 이상적이다."라는 것입니다. 스즈키 선생의 이념은 훌륭해서 이상적이지만, 현실의 학원은 인간의 집단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념을 향해 노력해 온 것은 확실하지만 언제나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교회의 경우도 이상이 훌륭하더라도 현실의 '모임'에 문제가 있는 케이스도 있을 것입니다.

다카기 씨는 '무교회 사상'과 '무교회 기독교'에 대해서도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만, 여기에서는 생략합니다. 오늘은 몇 분인가가 말씀하신 '무교회주의'와 많은 무교회 모임에 공통된다고 생각되는 문제를 지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무교회(모임) 문제를 중심으로 들기 때문에, 앞서 연제에서 주의를 빼고 '새 무교회'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린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3. 무교회주의·무교회정신

다음에 저는 무교회주의나 무교회정신이라는 것을 좀 정리해 보았습니다. 레주메에는 우치무라[內村鑑三(내촌감삼)], 아제가미[畔上賢造(반상현조)], 후지이[藤井 武(등정 무)], 구로사키[黑岐幸吉(흑기행길)], 가네자와[金澤常雄(금택상웅)], 야나이하라[失內原忠雄(실내원충웅)], 이시하라[石原兵永(석원병영)], 쓰카모토[塚本虎二(총본호이)], 마사이케[政池 仁(정지 인)], 이와쿠마[岩? 直(암? 직)], 세키네[關根正雄(관근정웅)], 쓰즈미[提道 雄(제도 웅)], 다카하시[高橋三郞(고교삼랑)], 하카리[量義治(양의치)] 등 열네 분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이외의 분이 쓰신 것도 좀 읽었기에, 20명쯤 되는 분의 무교회주의에 대하여 조사했습니다. 이것을 대강 정리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1) 공통된다고 생각되는 주장

① 신앙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구원의 길은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② 그러므로 새크라멘트나 기존교회 소속 여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③ 더욱 하나님 앞에서의 평등, 즉 가톨릭과 같은 계층은 합당치 않다는 주장입니다.

④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클레시아)는 본래는 제도나 조직이 아니라는 주장, 다시 말해서 교회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교회주의(교회근성이라고 해야 할 것)의 부정이라는 것입니다.

⑤ 종교개혁에 철저하고, 그래서 성서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이상 다섯 항목은 20여 명 되는 분들의 공통된 이념이라고  말해도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2) 거의 공통된다고 생각되는 주장

① 그것은 정신의 강조입니다. "무교회 또는 무교회주의는 조문화된 이론으로서는 있을 수 없다, 주체적인 자기의 생명을 건 신앙고백으로서만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분, "산 신앙이기 때문에 접촉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꽃의 향기와 같은 것이다." 혹은 "하나님 앞에서의 한 삶의 모습이다."라는 것 같은 무교회 정신을 특히 강조하시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또 "교파가 아니고 하나의 운동이다."라고 말하는 분도 있습니다.

② 일본적 기독교라고 주장하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③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분도 있습니다.

2와 3은 비교적 옛날 분들이 강조하셨습니다. 2와 3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거론할 것입니다.



(3) 개인에 따라 틀리는 주장

① 무교회주의는 제1의적인 것이냐, 제2의적인 것이냐에 대해서는 개인에 따라 상당히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만년의 우치무라 간조는 쓰카모토 선생이 선예적(先銳的)인 무교회론을 전개했기 때문에인지 "십자가가 제1의이고, 무교회주의는 제2 또는 제3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쓰카모토 선생은 만년에 "루터로 끝난 프로테스탄트나 우치무라 간조로 끝난 무교회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카리 씨는 그 저서 '무교회의 논리'에서 "우치무라의 무교회는 상대적 무교회, 그에 대해 쓰카모토의 무교회는 절대적 무교회다. 그리고 상대적 무교회에서 절대적 무교회로 발전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다데 요시히코[小館美彦(소관미언)] 씨가 '무교회주의의 신격화와 그 원천을 더듬는다'라는 흥미있는 글을 제게 보내주셨기 때문에 그 일부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나만이 그리스도에게 이를 수 있는 길이라고 하는 그리스도와 거의 같은 뜻을 지닌 배타적인 무교회주의를 절대적 무교회주의라고 부르고, 교회와 대등한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에 이르는 수단의 하나로서의 무교회주의를 상대적 무교회주의라고 부르자."
이와 같이 절대적 무교회주의냐 상대적 무교회주의냐 또는 무교회주의는 1의적인 것이냐 아니면 2의적 이하의 것이냐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선생님들 사이에 상당한 의견차이가 있습니다.

② 무교회는 교파(sect)냐 아니냐에 대해서도 의견 차이를 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시간이 있으면 후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③ 교회(특히 가톨릭)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도 사람에 따라 상당히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가톨릭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생각고, 마사이케 선생과 같이 무경계주의를 주장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④ 다음은 예언자적 정신 또는 그런 생활방식을 무교회의 특징으로 하는 분과,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상 대강입니다만, 우치무라 간조로 시작되어 주된 일본 무교회 지도자들의 무교회론(무교회주의 또는 무교회 정신)을 정리해서 말씀드렸습니다.



4. 무교회(모임)의 문제점

실은 여기서부터 오늘 강연의 본론입니다.



(1)혁신성을 잃은 무교회

라인홀트 니이버의 기도로 알려진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들에게 주소서. 바꿀 수 없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냉정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것이 어느 편인지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아멘!"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교회와 무교회 이 셋을 비교해서 이 니이버의 말에 가장 인연이 없는 것은 무교회가 아닌가, 현실의 변화에 대해 너무나 둔감한 무교회가 아닌가? 최근 저는 이와 같이 보고 있습니다.

① 우선 가톨릭교회에 대해서 보면 아시다시피 1962년부터 1965년까지 3년에 걸쳐 제2바티칸공의회가 열렸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해서 가톨릭도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 두 세 가지 예를 소개합니다.

교황서간 '기원 2000년의 도래'라는 것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 일부분밖에 보지 못했습니다만, 획기적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 형제자매의 수세기에 걸쳐 행해진 폭력행위에 대하여 무어라 사과해야 좋을지······."라고 교황이 공공연히 과거 긴 세월 동안 가톨릭교회가 가담해 온 '노예, 식민지 정책'에 대해서 사과하고 있습니다.

'제2바티칸공의회와 우리들이 걷는 길'이라는 강연집이 작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이것은 4인의 사제가 말한 것인데, 아메미야[雨宮 彗(우궁 혜)] 사제는 '교회는 성서를 필요로 하고 있는가?'라는 문장 중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로마교황청 성서연구소라는 곳에서 공부했습니다. 이 연구소는 예수회가 운영하고 있으며 20세기초에 설립되었습니다. 어떠한 동기로 설립되었는가 하면 프로테스탄트가 성서를 토대로 가톨릭의 교리를 비판하기 때문에 '성서를 토대로 가톨릭의 교리를 변명하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서를 철저히 읽어 나가다 보니 교회가 그때까지 전통적으로 가르쳐 온 것과 꼭 맞지 않는 것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dogma(교리)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성서연구자를 방치할 수 없다 하여 연구소에서 추방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그러나 일단 쫓겨난 선생들도 다시 교단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경위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교리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성서를 이용했습니다. 다만, 그러한 방법으로는 종종 무리가 생기고, 성서를 솔직하게 읽은 결과와 상반되는 일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성서에 묻는다.'라는 태도를 중요시하려는 자세가 전후에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제2바티캄공의회는 그와 같은 흐름과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스다니[粕谷甲一(박곡갑일)] 사제는 '제2바티칸공의회와 세계교에의 길'이라는 글에 "아편 전쟁 후에 중국이 굴복해서 홍콩에서 조약을 맺을 때에 북경에서 폭동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진압한 것이 프랑스 군대이고, 진압한 후에 프랑스의 선교단이 '승리의 성모'라는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를 중국 사람들이 어떠한 눈으로 보았겠는가 그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반성의 고백을 솔직히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극히 일부분이고, 더 엄격한 비판과 반성이 내부에서 최근 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② 다음은 프로테스탄트교회입니다. 일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변하고 있습니다. 제가 전도에 전념하게 된 후부터 4년 가까이 됩니다만, 교회의 예배설교를 1년에 두세 번 받습니다.

금년에도 벌써 두 교회로부터 부탁을 받았습니다. 보통 전도 강연회가 아니고 예배설교입니다. 안수례는 물론 세례도 받지 않은 사람인 줄 알면서 예배설교를 부탁한다는 것은, 새크라멘트[聖禮典(성례전)]을 경시하는 데 연결되는 것이니, 대단한 결단이라고 생각됩니다. 거의 다 일본 그리스도교단의 교회에서의 부탁입니다. 동경의 무교회 집회에서 교회의 목사를 초빙해서 일요집회(예배)에 성서강의를 들었다는 말을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③ 다음은 무교회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최근의 무교회는 가장 보수적이고 혁신성이 없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실례를 들어 설명하는 대신 오다데[小館(소관)] 씨의 글에 적절한 내용의 것을 소개합니다. 좀 격렬한 표현도 있어서 귀에 거슬릴 분도 있을 것입니다만, 내용은, 경청할 만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전에 무교회의 소수의 젊은이들이 주최하는 심포지엄에서 어떤 젊은이가 말한 적이 있다. '무교회의 본질을 바꾸지 않고 그것을 시청각으로 표현해 나가는 것에 좀더 노력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면 좀더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이 있지 않을까요? 현재의 무교회는 이론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좋아할지는 몰라도 그렇지 않은 젊은이는 들어설 데가 못 됩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진심으로 수긍했다. 암흑 중에 한줄기 빛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참석했던 나이 드신 분은 '그런 것은 두려워서 할 수 없다. 한발 타협하면 그대로 질질 끌려가서 타락하고 만다.'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나이 드신 분은 '수단을 이것저것 생각하며 고민하는 것은 본말전도다. 자기의 일상 생활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선교가 되느냐 안되느냐는 부수적인 결과밖에 안된다.'라고 반론했다. 감각이나 수단의 추구는 타파해야 할, 속물이나 할 짓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이래서는 무교회가 후계자 교육에 실패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들 무교회주의 어른들의 발언은 그 자체는 옳을지 모르지만, 인간의 마음의 귀함과 그 교육, 그 성장과정의 중요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진리만에 의하여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속물성과의 갈등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이다. 속물성을 거부하는 것은 속물성과 싸우는 것이 아니고 속물성에서 도피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길이 아니고 무(無)를 목적으로 하는 선승(禪僧)의 길이다."


그러면 왜 무교회가 혁신성을 잃고 보수적이 되어 버렸는가 하는 것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최대의 원인은 그리스도의 자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기독자의 자유'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독자의 자유'라는 것은 그리스도에게만 매달리고 철저하게 그리스도만의 노예가 된다. 그리스도에게만 속박된다. 그로 인해서 다른 일체의 것에 대해 자유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또 한 곳에 속박되어 있지 않고 전혀 자유로우면 실족해 버립니다.

그런데 무교회 중에는 아직도 인물 숭배가 남아있고, 그리스도에게 붙어있기는 하지만 그뿐만 아니고 때로는 우치무라에게, 때로는 야나이하라에게, 때로는 마사이케에게 연결된다고 한다면 진짜 '기독자의 자유'는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은 본래 보수적인 것이어서 경험하지 못한 것은 두려워합니다. 그것이 일반적으로는 나이를 먹을수록 두려워하게 됩니다.



(2) 바리새적 누룩이 들어있는 무교회

주 예수께서는 왜 그다지도 바리새인을 공격하셨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종교적 엘리트 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오만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2,3년 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어느 교회원으로 W씨라는 분이 계십니다. 저보다 약간 젊어서 70세쯤 되는데, 젊었을 때 센다이[仙山(선산)]에서 대학생활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센다이 학생 YMCA 활동 중에 체험한 일이겠지요. "우리들 교회인에 대하여 무교회 친구들은 언제나 '너희들 신앙은 틀렸다.'라는 눈초리로 보고 있었다."라는 말을 그 사람에게서 들었을 때에 저는 가슴이 찔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대학시절의 저 자신이 날카롭게 지적 당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젊었을 때의 저는 종교적 엘리트 의식의 덩어리 같은 인간이었습니다. 아직도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유명한 누가복음의 18장 9~14절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입니다. 처음에, 이것은 "자기는 옳은 인간이라고 자만하여 남을 얕보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신 이야기라고 써 있습니다. '남을 얕본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프로테스탄트교회나 가톨릭교회 사람들을 얕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 종교적 엘리트 의식이 무교회 속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 분의 글을 읽었습니다만, 종교적 엘리트 의식의 냄새가 '풍풍'나는 것 같은 문장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톨릭은 기독교가 아니다."라는 말을 무교회 사람들에게서 몇 번이고 들었습니다. 또 이와쿠마[岩? 直(암? 직)] 씨 책 중에, 이와쿠마 씨를 무교회로 인도하신 분이 "천국에서도 교회와 무교회와 가톨릭은 따로따로다."라고 말하였다고 해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참으로 엘리트 의식이 강한 것을 느낍니다.

이와 같이 엘리트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무교회의 '모임'은 선남선녀만의 모임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지요. 어떤 교회원이 무교회에 대단히 호의를 가지고 계신 분인데, 무교회의 문제점을 하나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무교회 모임에는 약자가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고다데[小館(소관)] 씨는 적절한 글을 쓰셨기에 그것을 읽어보겠습니다.
"무교회 신도의 면모를 살펴보면 거기에 젊은이가 없는 것은 이미 여러분이 아실 것이다. 그것은 그것으로 확실히 걱정스러운 일이고 여기에 더 무서운 치명적인 사실이 존재한다. 무교회에는 약자가 없는 것이다. 분명히 노인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이미 공을 세우고 이름이 난 지적 엘리트이고, 내가 말하는 약자와는 다르다. 내가 말하는 약자란 어리석은 자를 말한다. 속물을 말한다. 가난한 자, 탈락자, 교양 없는 자, 불량소년, 범죄자, 장애자, 연소자다. 그러한 약자를 나는 무교회 내에서 보지 못한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무교회 활동의 핵이 되는 것이 철학적 설교이고 고도의 성서연구(대부분 희랍어 히브리어의 지식을 필요로 함)이기 때문에 그것도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나는 이 현상을 역시 무교회주의의 신격화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약한 분은 무교회 안에도 있습니다만, 신앙적으로 약한 사람은 어느 틈에 떨려 나가고 만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정말 사랑하신 것은 누구일까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교회(에클레시아)에는 신앙적 약자는 못 들어가는 것일까요? 저는 이 점에서도 많은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서 살고 있는 자인데, 정말 복음적으로 살고 있는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사랑이란 모순을 포용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기 위해서, 포용할 수 없는 자를 포용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고 아픔을 지신 것입니다.

이 복음에 살고 있어야 할 우리들은 실은 복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기독교독립학원의 7년간의 교장시절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배웠습니다. 무교회 사람은 복음을 믿으면서 복음에 살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닌가 라고 말입니다.



(3) 머리만의 신앙이 되어가는 무교회

국제기독교대학(ICU)의 교수 겸 목사였던 후루야[古屋安雄(고옥안웅)] 씨, 이분은 다카하시[高橋三郞(고교삼랑)] 선생과도 교우관계에 있고 무교회에도 관심이 있는 분입니다.

이분의 강연을 두 번 들은 일이 있는데, 처음 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듣는 사람은 저 이외에는 전부 교회분들이고, 또 기독교주의 중고교에서 성서를 가르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강연 중에서 "일본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은 귀에서부터 귀의 신앙이다. 거기에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후루야 씨 뿐 아니라 다른 분으로부터도 들은 적이 있는, 비교적 자주 들어 온 말입니다. 그것은 "한국교회는 기도하는 교회, 대만교회는 찬송하는 교회, 일본교회는 논의하는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것을 들으면서 논의하는 교회의 첫째는 무교회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후루야 씨는 '일본 전도론'이란 책을 쓰셨는데, 그 중에 일본 기독교단 교회의 예배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배 전체로서 하나님을 찬송한다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배운다, 이해한다는 자세가 강하다. 기쁨에 넘친다기보다는 조용히 듣는 예배이다. 그 점에서는 가장 토착화한 기독교라는 무교회의 성서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모임에 가깝다. 같이 성서를 읽고 배우고 이해한다는 지적인 측면이 중시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기쁨에 넘치는 정적인 측면은 경시되기 쉽다.

그래서 기쁨으로 예배에 참석한다기보다는 의무적으로 학교에 가는 것같이 교회에 나가는 면이 있다. 이 점 다음에 말하려는 소위 복음파와는 대조적이다.
복음파의 예배가 모두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조용히 성서를 배우는 모임(예배)쪽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지적 욕구의 만족이 대부분이고, 영적인 것이 적고, 기쁨과 찬송이 적은 무교회의 집회(예배)는 반성해야 하지 않을지요.

'무교회 기독교 전국집회'라는 것이 이미 11회 열렸습니다. 저는 개근상은 아니지만 정근상을 받을 정도로 참가했습니다. '우치무라 기념강연회'에도 최근 몇 번 출석했습니다. 그리고 학문적으로는 훌륭한 내용의 강연일지 모르나 영적 충만의 욕구불만을 느끼며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휴식시간이나 돌아오는 길에 "오늘 ○○ 선생의 말씀은 참으로 성서를 깊이 파헤쳐 주는 좋은 말씀이었습니다."라는 담화를 때로 듣습니다. 저는 그 말씀에 영적 욕구불만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약간 놀랐습니다. 좀 과격한 말씀이 되겠습니다만, 분명히 학문적으로는 훌륭할지 모릅니다만 찬합의 구석구석까지 후비는 것 같은(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파고드는) 강연에 만족한다는 것은 무교회가 지적 집단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에 강하게 문제로 느끼고 있는 것은 세키네[關根正雄(관근정웅)] 선생과 하카리[量義治(양의치)] 씨가 '무신앙의 신앙'이라는 것과 "이제 예언시대는 지나가고 묵시의 시대다."라는 말을 자주 하시는 일입니다. 오늘의 강연준비로 많은 책을 읽었습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시간을 들여 읽은 것은 하카리 씨의 '무교회 논리'와 '무신앙의 신앙'이라는 책입니다. 좀 이해되는 것도 있었습니다만 몇 번 읽어도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알 수 없었습니다.

"무신앙의 신앙이란, 신앙파악은 의인(義認)의 신앙의 전혀 새로운 파악이다. 나는 기독교사상 무교회의 획기적인 의의는 무교회가 '무신앙의 신앙'이라는 신앙의 전혀 새로운 파악에 도달한 점에 있다고 확신한다."라고 말합니다. 거기다가 "무신앙의 신앙은 우리들의 신앙이 아니고 십자가상에서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다."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신앙의 신앙' 설명에 있어서는 "신앙 즉 무신앙, 무신앙 즉 신앙이다. '무신앙의 신앙'이란 절대 모순적 자기동일이라는 영적 근원적 사태를 표현하는 근원어이다. 그리고 더욱 무신앙의 신앙의 논리는 절대 모순적 자기동일의 논리 또는 절대 변증법 또는 즉비(卽非)의 논리, 또는 반대의 일치의 논리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 글의 앞뒤도 정말 끙긍대며 읽었습니다만, 몇 번 읽어도 잘 알 수 없었습니다. 젊었을 때에 니시다 철학책도 몇 권 읽었습니다만, 그것을 읽었을 때와 같은 느낌입니다.

"예언의 시대는 지나가고, 묵시의 시대다."라는 것도 종종 나옵니다. 이에 대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조금 짐작은 갑니다. 그러나 다음 말씀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무교회는 본래 묵시적 존재인 것이다. 교회는 묵시적 존재일 수 없다. 그것은, 교회는 이 세상 세력으로서 너무나 역사에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무신앙의 신앙' 혹은 "예언의 시대는 지나가고 묵시의 시대다."라는 주장을 비판할 시간의 여유가 없어서, 그것은 달리 기회를 얻어 공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세키네 선생이나 하카리 씨가 철학자나 신학자가 모이는 신학연구회 같은 데서 이같은 어려운 표현을 하시고, 그렇지 않으면 자기 신앙을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특별히 흠잡아서 비판하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서민에게는 지극히 어려운 말을, 대중집회에서 되풀이하고, 그것도 해설도 없이 강조하는 까닭입니다. 나는 거기에 커다란 문제를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학자의 자기 만족과 무책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무교회의 전국집회 같은 데서도 청중이 알 만한 해설도 없이 말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을 향해 말할 때에는 되도록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하려고 마음을 써야 하지 않을는지요.



(4) 예언자 정신이 희박해져 가는 무교회

이것과, 제5로 다음에 말하려는 '전도의욕이 희박한 것'에 대하여는 쓰즈미[堤(제)] 선생이 종종 말해오셨기 때문에 간단히 언급합니다.

저는 젊었을 때 종종 마사이케 선생에게서 '타원의 진리'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원은 초점(중심)이 하나밖에 없지만, 타원은 초점이 둘 있습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하나의 초점은 복음이요, 또 하나는 예언입니다. 마사이케 선생은 "예언이란 사회적 정의실현을 위한 신앙자의 투쟁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언이란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 아니고, 기독자의 땅의 소금 또는 세상의 빛으로서의 신앙 싸움인 것입니다.



(5) 서민에 대한 전도의욕이 희박한 무교회

이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상 현재의 무교회 모임의 문제점을 다섯 가지 들었습니다.



좀 시간을 내어서 무교회는 '섹트'(sect, 이하 '교파')냐 아니냐에 대하여 언급하려 합니다. 이것도 '교파'라는 말의 정의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논의가 공전합니다. 'sect'에 대해서는 사전을 보면 '종파, 교파, 분파, 분파적 종교집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교파'라고 해석하고 있고 어떤 분은 '분파'라는 등 해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카자와[中澤治樹(중택치수)] 씨는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라는 것은 교파적 운동에 대한 저항의 극단적인 표현이며 반(反) 교회가 아닌 반 교회주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경우 무교회주의는 교파가 아닌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또 야나이하라 선생은 "무교회는 하나의 운동이다. 그리고 운동의 역학이 끝나면 무교회라는 것은 없어져도 좋다."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도 무교회주의자는 있다."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교파가 아닙니다.

무교회주의에 대한 글들 중에 분명히 교파라고 생각되는 주장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대개는 교파가 아닌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제3자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여러 가지 국어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만, 대체로 같은 내용으로 광사원(廣謝苑)에도 "우치무라 간조를 조(祖)로 하는 일본 독자의 기독교의 일파, 교회적인 모든 제도를 무시하고 성서연구와 전도를 중시한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제3자에게는 무교회는 기독교의 일파로 보이는 것입니다. 교회 사람들도 역시 하나의 교파로 보고 있을 것입니다.

먼저 말한 종교적 엘리트주의와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만, 어떤 분이 "우리들이 지향하고 있는 것은 교파가 아니기 때문에 즉, 우리들의 무교회주의(이념) 속에는 교파적인 것은 조금도 없으니까 우리들의 집회는 교파가 아니다."라는 의미의 말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분의 글을 읽으면 종교적 엘리트 의식의 냄새가 짙게 납니다.

우리들은 좀더 겸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목표하는 방향 즉 이상으로 하는 데는 마사이케 선생이 말하신 '무경계주의'이지만, 현실의 모임은 이상과는 달리 하나의 교파적인 걸음을 걷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자신들의 무교회주의(이념)는 반교파이지만 현실의모임은 하나의 교파(섹트)라는 겸허한 생각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5. 무교회주의와 내셔널리즘(민족주의)

우치무라 간조는 아시다시피 열렬한 애국심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그 애국심과 신앙이 '두 J'라는 말을 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또 '독립'이란 말도 대단히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독립학원의 이름도 되었습니다. 외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해서 전도하고 있던 당시의 교회 지도자를 보고 우치무라는 '독립'을 강조했을 것입니디.

이것은 어느 것이나 우치무라의 주님 안에서의 내셔널리즘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내셔널리즘의 전부가 나쁜 것은 아니고, 그 시대에 있어서의 우치무라의 신앙의 싸움 중에서 '두 J'라는 말이 생기고, '독립'이 강조되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교회의 2대째 전도자들도 '애국'이란 말을 강조했습니다만, 그것도 그 시대에 있어서의 신앙싸움 속에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사이케 선생의 젊었을 때의 글에도 '애국'이란 말이 자주 나옵니다. 우치무라나 2대째 지도자가 신앙의 싸움, 특히 예언자적 싸움 중에서 말한 '애국'이나 '독립'이란 말의 무게를 높이 평가하는 데 인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기계적으로 계승하는 데 대해서 저는 오래 전부터"No!"라고 말해 왔습니다. 21년 전입니다만, 오늘과 마찬가지로 쓰즈미 선생과 같이 이 요코하마(YMCA)에서 있었던 강연회에서 저는 '우치무라 간조의 의발(衣鉢, 계승의 뜻)'이라는 연제로 이야기하고 다음과 같이 매듭을 지었습니다.
"우치무라 간조의 생활 방식 중에서 기본적인 것, 우리들이 이어받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한다면, 저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만을 경외하고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생활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치무라가 살아 있다면 과연 '두 J'라고 말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일본의 기독자는 '하나의 J'라고 말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이제 일본의 기독자는 '하나의 J'만을 강조해야 할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직접 하나님으로부터 조용하고 가는 목소리를 들으며, 혼자서 술틀을 밟는 생활방식, 굳이 말하자면 시대의 제약을 받은 우치무라 간조의 언동을 극복해서, 예수만을 따르는 생활방식을 따르는 것만이 진정한 우치무라 간조의 의발을 잇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카리 씨의 글을 읽으면, "하나님이 일본에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 그 나타남이 무교회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우치무라 간조의 존재는 참으로 기독교사에 있어서 하나의 기적이다."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만, 저로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2년쯤 전에 노르웨이의 평신도 전도자 한즈 니르센 하우게(1771~1824)라는 사람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이 사람은 노르웨이의 우치무라 간조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약 200년쯤 전에 활약한 분입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 노르웨이 국민 거의 전부가 공적으로는 루터교회의 신자이고, 목사는 국가공무원입니다. 공식으로 일반 신자가 설교하는 것은 엄히 금지되고 있었습니다.

하우게는 농부의 자식으로 빈약한 초등교육밖에 받지 않았습니다. 25세 때 소명을 받아 혼자서 전국을 돌며 목숨을 걸고 전도했습니다. 미지근한 형식적인 신앙이 아니고 진정한 회개를 권했습니다.

노르웨이라는 나라의 면적은 일본과 비슷합니다만, 거의 도보로 전국을 돌며 전도했습니다. 목사자격이 없는 사람은 설교해서는 안 된다는 법률이 있어서, 여러 가지 박해를 받고 10회 구류 당하고 최후에는 10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평신도가 복음을 전한다, 평신도가 전도한다고 하는 운동이 전국적으로 퍼져서 많은 찬동자가 생겼습니다. 지금도 그 영향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현재 세계에서 기독교의 해외전도에 가장 열심인 나라는 노르웨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인구비례로 해외에 신교사를 가장 많이 파견하고 있는 나라는 노르웨이입니다.

저는 2년 전에 우연히 이 하우게에 관한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나라에도 우리들이 말하고 있는 무교회 정신과 같은 것을 가지고, 생명을 걸고 평신도 전도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나 않을까요? 하나님은 일본에만 무교회 정신을 은혜로 주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치무라는 '독립'(independence)을 강조했습니다. 마사이케 선생은 만년에 "독립도 중요하지만 '상호협력'(interdependence) 쪽이 이제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주님 안에서의 내셔널리즘, 이것이 우치무라나 2대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시대는 변해서 이제는 내셔널리즘이 아니고 안티내셔널리즘(국제주의)을 강조해야 할 시대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6. 새 무교회가 목표로 하는 것

마지막으로 새 무교회가 목표로 하는 것으로 6항목을 들겠습니다.

(1) 변해서는 안될 것을 안에서 꼭 지키면서 변해야 할 것은 대담하게 고치는 혁신적인 모임이기를 바랍니다.

(2) 깨어진 혼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으로, 바리새적 누룩이 없는, 그것을 제거한 모임이 되기를 원합니다.

(3) 약한 자도 함께하는 모임으로, 이것이야말로 예수님의 몸에 합당한 에클레시아가 아닐는지요?

(4) 머리만이 아닌 가슴에 호소하는 쉬운 복음의 모임이기를.

(5) 2개의 초점(복음과 예언)을 갖는 타원의 진리에 사는 모임이기를.

(6) 우치무라나 2대째의 지도자들의 주 안에서의 내셔널리즘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상호협력(interdependence)과 인터내셔널리즘(국제주의)을 강조하는 모임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7. 마무리

이제까지 여러 가지 말씀드렸지만, 제가 제일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살아계신 그리스도 즉, 참 포도나무에만 연결되는 가지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만 연결되고, 다른 일체에 대해서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고, 함께 손을 잡고 현재의 모임(무교회)의 변혁, 또는 하나의 새로운 모임의 형성을 이뤄나가지 않으시렵니까?

('99. 5. 2. 요코하마 기독교독립전도회 주최 강연말씀에 가필)           


[차 례] [이 전] [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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