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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이 전] [다 음]


무교회란 무엇인가?

高橋三郞(고교삼랑: 다카하시 사부로)           

'89년 10월 29일 오후 무교회 전국집회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무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있었으며, 세키네 마사오[關根正雄(관근정웅)] 선생과 내가 발제(發題)를 하였습니다. 그 때에 말씀드린 것을 여기 싣습니다.



지금 세키네 선생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는 실로 위기적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라고 하면, 실은 무교회 자체도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21세기가 되면 무교회는 소멸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우리는 공식석상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할 때 이는 중대한 발언이 아닐 수 없으며, 일본의 기독교 전도(傳道)가 아무리 핍색 상태에 빠졌다 하더라도 21세기가 되면 교회가 소멸될 것이란 말은 절대로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교회는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그 어떤 근거 있는 경고라고 하면 우리의 삶의 자세 가운데 무엇인가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배후에 깔고 있는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무교회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문제로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만, 나는 '무교회는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역사적 운동의 면에서 이 문제에 다가 가고자 합니다. 나의 탐구의 한 작은 보고로서 들어주시기를 바랍니다.

1


'어디서부터'라는 출발점은 역시 종교개혁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이라고 하면 예수도 바울도 종교개혁자였습니다. 그리고 "종교개혁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지금 세키네 선생의 말씀에도 있었듯이 "하나님 이외의 무엇도 신(神)으로 받들지 않는다는 정신의 관철"이라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16세기의 종교개혁의 경우에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교황을 정점으로 하는 제도 교회 안에 이를 가두어 놓고, 거기에다 이 조직체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절대적 권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 부패한 참상은 새삼 말할 것이 없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자로서 세워졌을 때, 그는 '믿음만'이라는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구원은 로마 교황청에 의하지 않는 오직 믿음만에 의하여 각자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을 수 있다."

이 주장이 얼마나 중대한 진리의 선언이었는지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입니다. 그리고 또 교황무류설이 주창되고 여러 종교회의에서의 결의사항이 성서보다 더 중요시되고 있던 그 시대에 '성서만'을 신앙의 전거(典據)로서 저 개혁운동이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교회 속에서는 루터의 종교개혁은 불철저하게 끝났다는 비판이 널리 행해지고 있습니다. 구체적 문제점으로 가톨릭 교회에 일곱 가지가 있던 새크라멘트 중에서 세례와 성찬 둘을 남겨둔 것이 불철저하다고 하여서, 무교회는 새크라멘트가 없는 집단으로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깊이 파고들어 생각해 보면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신앙만으로 구원받는다는 교의(敎義)를 절대화하고, 그리고 그것은 올바른 신앙이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올바른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를 규정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경우 당연한 일로 견해의 차이가 나타나고, 의견이 다극화되는 것은 불가피하였습니다.

그런데 '신앙만'이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생명선이었으므로 각각의 신도집단이 자기 교파의 신앙고백을 제정하고 이에 합치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배타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즉 '신앙만'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은혜의 논리였던 것인데, 이것이 어느 사이에 격렬한 차별의 논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우치무라 간조가 교파주의의 폐해를 심하게 비판했을 때, 그는 이 사태를 응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종교개혁 시대에 보였던 이러한 상황이 우치무라의 시대에도 아직 잔존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크라멘트는 하나님의 구원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징표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니, 신앙이 구원의 조건이 된 것과 마찬가지로 새크라멘트의 참여도 구원의 조건으로서 도그마화하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한 예로, 재세례파로 불리는 사람들은 주체적 신앙 없이 받는 세례는 무효라고 생각하고 유아세례에 반대하여 어른이 된 후에 다시 한번 세례를 받는 것을 자신들의 기본방침으로 하였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때 당연한 주장으로 생각됩니다만, 이 재세례파 사람들은 이단으로 낙인찍히어 잇달아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구원의 틀을 새크라멘트라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식으로 고수하려고 하는 교회의 집념은 격렬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무교회는 신앙만의 신앙이라는 종교개혁의 기치를 이어받아 견지하면서 이를 그 본래의 바른 모습으로 철저하게 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떠한 일인가 하면, 우치무라 간조에 있어서는 "사람은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라는 루터적 복음 이해와 아울러 "믿음은 구원의 결과다.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다. 사람은 구원을 받음으로 하여 믿는 자가 된다."는 아주 주목해야 할 발언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치무라 자신이 그 중요성을 어디까지 자각하고 있었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시점에 서서 보면, 실로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 중대한 선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부터 세속 세계에 대한 따뜻한 동정과 관심이 흘러나왔으며, 신앙의 유무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려는 기독교 세계의 옹졸함을 결연히 넘어서 나아간 우치무라 간조의 신앙의 특질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리고 또 세례와 성찬을 베풀기 위해 특히 목사라는 성직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거부한 것이니, 만인사제주의는 그 필연적 귀결로서, 무교회 전도의 정신을 표명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저는 우치무라의 이 신앙 이해를 새로운 하나님 발견이라는 말로 고쳐 서술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 내용을 내 나름으로 정리하여서 참조가 되게 하고자 합니다만, 복음서가 말하는 바에 의하면 예수의 공생애는 병자의 치유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나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혈루병 여자를 고치고, 세리의 소명, 죽은 자의 소생, 또 집단으로는 5천명의 큰 군중에게 빵을 먹이신 일, 이러한 일련의 사건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한없는 긍휼의 도래를 봅니다. 그것은 단적으로 인간 존재를 사랑하는 긍휼이며, 신앙의 유무라든지 온갖 이 세상적 차별을 넘어선 범인류적 은혜의 도래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나의 염두에 떠오르는 것은, 니도베 이나조[新渡戶稻造(신도호도조)]는 깊은 슲므의 문을 통하여 신앙에 인도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의 사랑을 바로 정면으로 마주쳐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만년, 동경여대의 학장이었을 당시 "여러분, 크리스천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그리스도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하여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학생들을 타일렀던 것입니다. 나는 여기에 니도베 이나조의 입신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흘러나오는 권면의 말을 봅니다.

또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우치무라 간조의 만인 구제론을 주창한 일입니다. 이것은 '85년에 있었던 나고야에서의 우치무라 간조 기념강연회에서 다나카 오사무[田中收(전중수)] 씨가 지적한 것입니다. 만인구제설을 하나의 교리로 내세운다면 신학적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신앙이 있는가 없는가에 의해 인류를 둘로 나누는 사고방식에 대한 반대로써 이를 본다면, 만인구제설은 실로 깊은 복음 이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음, 그리스도를 경유하여 땅 위에 임한 하나님의 긍휼의 제2의 나타남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운 의의 생명이며, 산상수훈이 그 내용을 집대성하고 있습니다. 정욕을 품고 여인을 보는 자는 이미 간음한 자라거나, 네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왼쪽 뺨도 내밀라는 전혀 인간의 상식을 넘어서고 있는 이 교훈은 현실로 실행할 수 있는가 아닌가를 사람들은 먼저 문제 삼지만, 나는 이 또한 하나님의 긍휼의 나타남이라고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듯이, 산상수훈은 "복이 있다."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일견, 실행 불가능한 윤리체계의 제시라는 느낌을 주는 산상수훈은 실은 긍휼의 부름으로부터 시자가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치무라 간조 이래 우리의 여러 선배는 이 계명을 바로 정면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전쟁 때, 초미의 급(急)을 알리는 전쟁문제에 대해 절대 비전(非戰)을 주장하여 물러서지 않았던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살인하지 말라."는 저 산상수훈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세키네 선생께서 방금 힘주어 말씀해 주신 계명의 수령이라는 것, 이 계명을 매일 매일 살아가는 자로서 나아가라고 하신 말씀 속에 나는 같은 긍휼에 의하여 살아가는 이의 고백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의 제3의 발현형태는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삼는 자에 대한 싸움의 선언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율법학자와 바리새인의 위선적 종교성에 대한 싸움이요, 이것은 종국에 가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 극에 달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 그리스도의 죽음에 합해져, 이 속죄의 죽음에 힘입어서 죄 사함 받은 자로서 마지막 날의 구원의 완성을 우러러 바라도록 허락되었다는 것이며, 지금 세키네 선생이 무신앙의 신앙이라는 말로 표명한 내용을 나는 마음으로부터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우치무라 간조의 제일 고등학교 불경(不敬) 사건은 하나님 아닌 것 앞에 엎드려 절함을 거부한 행위로서 역사가들 사이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입니다. 또 내년에 거행되는 오나메사이[大?祭]에 대하여 세키네 선생으로부터 특히 발언이 있었음을 나는 마음으로부터 감사하며, 그에 찬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오나메사이란 천왕이 이 나라를 지배하는 신(神)이 되는 의식이므로, 전후(戰後)에 있었던 천왕의 인간선언의 폐기며, 우리는 그리스도 신앙의 필연적 귀결로서 이를 묵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상 세 가지 국면으로 나누어 하나님의 긍휼의 도래로서 나는 복음의 내용을 총괄하였습니다. 앓는 사람들의 치유, 의의 생명의 도래, 십자가의 속죄와 부활, 이것이 복음의 전체상(全體像)이라고 말씀을 드렸다고 하여 별로 새로운 것을 여기서 제창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를 전체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법 이론만으로 복음을 이해하려고 하는 신학적 활동은 결국에는 반드시 사람을 심판하고, 철의 지배를 사람들 위에 미치게 하여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치무라 간조는 그 깊은 속죄 신앙에 서 있으면서 복음의 전체를 전체로서 받아들였습니다. 거기서부터 필연적으로 복음 신앙은 세속 세계를 향하여 전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키네 선생의 저작 중에도 '세속의 복음'이라고 묶어 정리한 책이 있으며 나 자신도 '복음 신앙의 세속성'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신앙의 간증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가를 나 자신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2


이상 나는 무교회는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문제 가운데 전반(前半)에 대한 말씀을 일단 마쳤습니다. 무교회는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하여 이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걸어왔다는 것이 그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목표로 어디를 향하여 가는 것인가? 이 후반에 대한 해답은 아주 명백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재림 신앙이란 무엇인가? 이미 세키네 선생으로부터도 말씀이 있었습니다만 나는 바로 같은 진리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재림 신앙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초대 신도들이 집횔르 시작한 당초부터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에 먼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주의 부활을 기념하는 성일(聖日)마다 그들은 모였는데, 부활하신 주님의 임재를 거기에 믿고, 그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으로서 지난날 생전에 들었던 말씀을 서로 주고받으며 주의하신 일을 다시금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일마다 행하여 온 일의 기록이 모태가 되어 복음서가 형성되어 갔습니다. 즉 성일의 예배는 부활의 주를 맞이하는 일이었으므로, 그것은 당연히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기도 없이는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일요일마다 "주여 오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며, 주 예수께서 거기에 임재하심을 영적 현실로 체험하여 온 그들은 마지막 날에 주께서 다시 오신다고 믿은 것은 필연적 결과였습니다. 부활 신앙의 리얼리티는 재림 신앙의 리얼리티와 일치한다고 하신 세키네 선생의 말씀에 나는 마음으로부터 동감합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우리들을 향한 물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나는 무교회의 전도를 생각할 때 최종적으로 문제의 초점이 되는 것은 성일마다의 예배가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가 하는 한 점에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일의 예배는 부활의 주님을 맞이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무교회의 걸어오는 과정에서 우리는 신학교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일요 예배는 동시에 성서 강의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각자가 신앙의 훈련을 받아 이윽고 독립 전도자로서 설 수 있도록 성장해 가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런 전통 위에 서 있는 것이었으며, 그 성서 강의는 당연히 얼마간 평론을 지닌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적 연구의 성과를 논하고 사회의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나의 작은 경험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호소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들의 집회가 부활의 주님을 맞이한다는 것보다도 하나의 평론의 장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우려합니다. 이것은 전에 이미 말씀드린 것이지만, 평론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비판의 주체로 형성되게 기능합니다. 평론의 결과 사람은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행동의 주체로 성장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를 회개로 이끕니다. 회개란 옛 자신이 무너지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생명이 새로운 주인으로서 우리에게 임하는 것, 즉 회개란 자신에 있어서의 주권의 교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평론은 이와 같은 주권의 교체를 낳지 않습니다. 평론은 인간을 이지의 사람이 되게 하지만, 신앙의 순종에는 이끌지 못합니다. 이 문제를 우리는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반성이 나의 마음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무교회의 전도는 만인사제주의의 구체화로서 행해져 왔습니다. 그런데 10월 15일 크리스천 신문에 '제2의 종교개혁의 때'라는 제목의 논설이 실려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놀랐습니다. 우리들은 '제2의 종교개혁'이란 무교회의 기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교회 사람이 이를 창도하기 시작했고, 더구나 그것을 읽어보니 만인사제주의의 실현을 지향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놀라움과 동시에 무교회의 주장이 이제 이렇게 교회 전체의 공통 견해로서 정착되어 가고 있는 것을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3


무교회는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향해 나아간다고 하는 대체적인 서술로써, 무교회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그 어떤 해답을 찾아보려고 하는 나의 보고는 이상으로 끝마쳤습니다. 다음 각론적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이제 시간이 다 되었으므로 나의 얘기는 여기서 끝내야 하겠으나, 다만 한 가지만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교회사에의 접속이란 것을 일관되게 추적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많은 이들에게 공통되는 관심사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왜 교회사에의 접속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 이유는 지금 세키네 선생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무교회는 단지 하나의 교파(sect)가 아니라 우주적, 세계적 기독교회 전체의 공유물이고, 모든 신도에게 타당한 진리의 제시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교회사에의 접속을 탐구하는 나의 눈으로 보면, 2천 년에 걸친 싸움을 짊어져 온 사람들에 대한 깊은 감사, 그에 힘입은 바 큰 존재로서의 자신의 위치 인식, 이 감사와 유대의 자각을 잃는다면 무교회의 앞날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무교회가 전 세계의 공동적 교회 속에 확고하게 자리잡는 진리를 제시할 수 있다면 종교 개혁사에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결락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탐구에 일단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작은 보고를 드렸습니다.

이 이야기의 모두에서, 21세기가 되면 무교회는 소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에 언급을 했습니다만 나는 이 경고에 대하여 응답하고자 합니다. 이런 경고가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심판하는 자는 심판 받는다는 진리를 나는 거기에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지배의 철칙입니다.

우리들은 심판하는 자로서 걸어온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여기서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죽어야 할 죄인이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에 의하여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깊은 감사가 우리들의 삶의 밑바탕을 받쳐주고 있다면 똑같이 주의 용서하심을 받고 있는 모든 신도들을 향해 열린 자세가 나오게 될 것이며, 우치무라 간조가 말한 것처럼, 그리고 또 부름 할트도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의 구원에 부르심을 받은 자로서 보는 겸허한 사랑의 눈길이 새롭게 우리의 앞날을 열어줄 것이 아니겠는지요?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각론적으로 아직 좀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만 이상으로 나의 발제를 마칩니다.

〈끝맺는 말〉


글자 그대로 세키네 선생의 뛰어나신 그 뒤를 따라 나도 감히 이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만, 우리들 사이에 주님 안에서의 일치가 선명하게 확인되었음을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유희세(劉熙世) 선생께서 지금 말씀하신 우치무라 간조의 신앙은 김교신에 의하여 한국이라는 장소에서 실험되었다는 발언에 나는 가슴이 뜨거워짐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일이 대만에서도 진행되었다는 것을 한 마디 덧붙이고자 합니다. 대만의 경우에는, 김교신 선생 같은 강렬한 개성이 무교회 전도자로서 독립하여 전진한 것과 같은 형태는 취하지 않았습니다만, 무교회적 신앙을 받아들여 분명하게 무교회를 표방한 사람들뿐 아니라, 그 주변에 이에 공감하고 협력한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대만은 격동의 이십 수년을 걸어왔습니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영의 축복은 거기서 하나의 결실을 이루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도 우리의 기억에 남겨 두어야 할, 감사에 넘치는 은사였다고 압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장로교회의 총 간사였던 고준명 선생은 우리들과 신앙의 근본을 하나로 하는 분이시며, 산지(山地) 전도에 종사하는 옥산 신학원 중에도 우리들은 신앙의 친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교회가 참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집단이라고 한다면 거기서 체험된 진리는 일본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물론 한국·대만으로 이미 퍼져 넘쳐나간 것이지만), 역시 중국 전도를 우리의 과제로서 잠시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단 어떠한 길이 다음의 한 걸음이 될 것인지, 지금의 나로서는 구체적인 것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기도 가운데 아시아는 하나라고 하는, 세계에 열려진 에클레시아의 초석으로서, 무교회에게 주어진 이 은혜는 범인류적 의미를 가집니다. 이를 실천의 장에서도, 학문의 장에서도, 전도의 장에서도 짊어지도록 우리들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이 심포지엄의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음은 크나큰 기쁨이라 하겠습니다.

마지막에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앞에서 신앙에 의해 구원받는다는 논리를 우치무라 간조는 구원받음으로서 믿는다는 것으로 바꾸어 놓은 거기에 하나의 교의적(敎義的) 발전이 있다고 나는 말씀을 드렸는데, 물론 이것만으로 무교회의 신앙이 다 서술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하나의 확인의 표시를 말씀드린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녀 결국에 "교회와 무교회는 어떻게 다른가?"라고 되묻는다면 실은 대답에 궁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무교회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가지고, '86년, '87년, '89년 이렇게 되풀이하여 심포지엄을 가져왔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교회의 진리가 알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은 사도신경 속에 '거룩한 공회를 믿고'라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는 신앙의 비의(秘義)에 속해 있기 때문이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는 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되풀이하여 묻는 일은 없는 듯한데, 무교회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되풀이되어 나오는 것에 나는 오히려 적극적인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그저 같은 물음을 언제까지나 되뇌이고 있는 것은 아니며,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는 논리의 장에서 다 파악할 수 없는 하나의 대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지요. 이것을 저 사도신경의 고백 자체가 언외(言外)에 표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논리로써 다 파악할 수 없는 현상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 중 하나를 여기 들고자 합니다. 우치무라 간조는 교회가 숫자를 따지는 것에 강하게 반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전도의 핍색 상태를 보며, 아니 수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신자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교회에 있습니다.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 또한 많습니다. 나는 이 점에 초점을 맞추어 교회와 무교회의 삶의 자세가 다름을, 거기에 나타나는 정신적 본질의 다름을 다시 파악해 보고자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무교회에 있어서의 복음 선교는 죄 사함의 복음에 의해 사람이 회심으로 인도되는 것을 중심과제로 하여 왔습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옛 자기가 어디까지나 자신의 주권을 주장하여 하나님의 지배를 거부하고 이에 반항하는 현실을 바로 보면서, 말씀에 의하여 이 옛 자기가 무너지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소중하게 여겨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로는 옛 아담이 그대로 눌러 앉아서, 형식상으로만 성서의 논리를 속에 지니고 있는 현상이 언제나 따라 다녔습니다. 이것은 나 자신에 대한 충격적 발견으로서 자기 자신 속에 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자로서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영혼을 지켜보는 일을 다소나마 해 오면서 알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인간이 회심에 이르기까지에 얼마만큼 긴 과정이 필요한가 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순간적 입신이라는 것도 있습니다만, 옛 아담과의 싸움은 계속 끊이지 않고 이어질 것입니다. 임종의 자리에서도, 신앙적 개인, 자신의 죄에 대한 깊은 회한과 회개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앞에서 세키네 선생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신앙이란 항상 새롭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를 따지는 전도에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가장 단순한 방법은 우선 세례를 받게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등록하게 되면, 이것으로서 신자가 한 사람 생긴 것이 됩니다. 요즘에도 이런 일을 하는 교회는 별로 없으리라고 압니다만, 이런 정신이 있는 곳에 어떠한 현상이 발생하는가? 우리들은 일본 기독교단에서 교단 총회가 (비방과 고함으로) 개최불능이 된 사건이나, 신학대학에 기동대를 진입시키지 않을 수 없게 된 사건을 듣고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이름 아래서, 인간의 자기 주장이 맞서 부딪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이 교회의 전부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하나의 문제제기로 이를 들어주기 바랍니다.

무교회는 재산을 갖지 않으므로, 그 소유권을 둘러싸고 경찰을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는 싸움은 사실상 발생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교회 안에서도 견해의 서로 다름은 있는 것이므로, 인간적 갈등이나 대립이 일어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 앞에 머리를 숙여, 한 발 물러서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중심에 두고, 다시 시작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무교회의 그러한 전도상의 자세는 하나의 정신적 에토스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이것은 교의로는 다 서술할 수 없는 소중한 보배입니다.

나는 수를 문제 삼는 전동 이의를 제기합니다. 아사미 센사쿠[淺見仙作(천견선작)] 옹이 참으로 적절하게 말씀하신 대로, 대 집회보다는 작은 집회를, 소집회보다는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거기에 무교회의 전도 정신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나는 교회 무교회의 문제, 또는 신앙의 문제를 생각하는 경우, 최종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시고 계신다는 것이 정말로 영적 현실이 되고 있는가 어떤가 하는 것이며, 이것이 언제나 우리를 향해 되풀이 묻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권의 교체입니다.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들은 나아가려고 합니다.

거기에 아울러 문제가 되는 것은, 교육은 전도와는 달라 어디까지나 개성을 존중하고, 그 주권을 존중하고, 독립의 자유인으로서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이끌어 주는 것이지만, 전도는 그 주권을 내어줌을 지향한다는 것입니다. 교육과 전도와는 서로 깊이 관련을 가지면서도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기독교 아이싱[愛眞(애진)] 고등학교는 성서에 의한 인간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크리스천을 만들기 위한 학교는 아닌 것을 명언하여 왔습니다. 여기에 전도와 교육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으면서도 본질이 같지 않은, 이 두 개의 과제를 어떻게 짊어지고 가는가 하는 것이 실천적 문제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자리에 서실 것을 여러분에게도 권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신앙자의 가정에 있어서, 아이들의 교육이 반드시 잘 되고 있지는 않다는 문제에도 관련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권을 내어준다는 것은 교육 문제를 생각하는 경우에도 전도의 문제를 생각하는 경우에도 눈을 떼어서는 아니 될 중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주권을 내어 드린다는 것은 어떻게 하여서 행해지는가, 그것은 깊은 뉘우침과 아우러 한없는 감사, 감사야말로 겸손의 구체적 표명일 것입니다. 무교회의 전도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낮게 머리를 숙여 감사한다는 정신적 자세는 굳건히 정착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또한 동시에 일본의 과거의 전통에 대한 경건한 태도와 더불어 나타났다고 봅니다. 무조건 과걸르 부정해 버리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베풀어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마음, 이것이 우치무라 간조로 하여금 '대표적 일본인'을 쓰게 하고, 니도베 이나조로 하여금 '무사도'를 쓰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어느 신도(神道) 가정에서 태어났던 분으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지금 목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 분이 말하기를 "무조건 신도를 부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나는 신도 가정에서 거룩한 것 앞에 두려워하고 삼가는 마음을 부모에게서 배웠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에의 길잡이로서 얼마나 귀한 유산이었는가를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다."는 취지였습니다.

또 오늘 사회자의 한 사람으로 수고하신 사토 마사히로[佐藤全弘(좌등전홍)] 씨도 신도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게이센 여학원[惠泉(혜천)女學圓(여학원)]의 창립자이신 가와이 미치코[河井道子(하정도자)] 선생은 이세신궁(伊勢神宮)의 간누시[神主(신주)]의 집에서 태어났던 분입니다. 그 어머님의 마음에 어떠한 사람이 흘러 넘쳤는가를 그의 자전적 저작 '나의 랜턴'속에 누누이 적고 있습니다.

무교회는 이와 같은 유산에 대한 겸허한 감사를 소중하게 여겨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우치무라 간조가 미국의 선교사와 심하게 다툰 배후에는 교회주의의 폐해도 그렇지만, 일본의 전통을 때려부수지 않는다면 전도를 할 수 없다는 사고 방식에 강하게 반발하였다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착안이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러한 에토스를 우리의 신앙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결실로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도 매우 소중하지 않을까요? 이것도 여러분의 마음에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세키네 선생과 함께 이 심포지엄에 참가할 수 잇게 해 주신데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사랑으로 수고해 주시고 또한 원근에서 기도로써 모든 것을 지켜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89. 11. 십지가 말씀, 전집)           


[차 례] [이 전] [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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