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Social Fairness

조회 수 708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차 례] [이 전] [다 음]


무교회에서의 공동체 형성

이와쿠마 나오시           

표제와 같은 테마로 지난 2월('75) 무교회 전도자 2명과 교회 목사 1명을 중심으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우리 모임에서 3명이 출석하여, 그 한 명에게서 당일 3인의 발언 요지를 듣고 볼 수 있어서 그것을 염두에 두고 이 문제에 관한 나의 생각을 말하려 한다.

바르트가 '기독자 공동체'락 할 때, 그것은 교회를 뜻하는 것이지만, 기성 교회 밖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무교회에서 공동체의 형성이라고 할 때에 그것은 무교회를 교회화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현재와 같이 무교회의 작은 모임이나 그룹이 전국에 산재해 있는 상태에서는 그 신앙이 독선적, 폐쇄적으로 될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위험에서 무교회 집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찌하면 좋을 것인가. 하나님의 교회(에클레시아)를 어떻게 이해하고, 또 그것이 무교회에 있어서 실현되기 위해서 어찌하면 좋을까 라는 문제 의식에서, 무교회에 있어서의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모양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관한 나의 근본적인 생각은 이미 본 지의 '성서적인 에클레시아의 모습'이라는 글에서 말했다. 그러나 그 후 10수년을 지내는 동안에 나의 생각에도 다소 중점의 변화도 생겨서, 지금의 나의 생각을 간단히 말하려고 한다.

우선 제 1로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클레시아)관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신앙에 의해서 그리스도에 연결된 자 총체로, 그 주(主)는 그리스도, 따라서 그리스도의 신부라고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도 말하고 있다. 이것을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그리스도의 영, 성령이고,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다만 그 말씀에 의한 증거나 인쇄물 등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함으로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일 뿐이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하나님의 교회, 신자의 무리가 지상에서 어떠한 조직을 갖는가, 또는 아무 조직도 없는가 하는 것은 2차적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 세계에 많은 신조와 조직을 가진 소위 교회가 있지만, 그것이 그대로 하나님의 교회는 아니고, 그 밖에 있으면서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자(예를 들면 무교회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조직을 만드느냐 하는 것은 지상에 있어서 신앙생활이나 전도를 위한 편의상의 문제로 하나님 앞에는 본질적인 의미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곳, 거기에 보편적인 교회가 있다"(이르나치오스). 이것이 에클레시아의 본질적 규정이다.

이상의 규정을 종래 무교회는 교회측에 대해서 자기들의 입장을 변호한다는 소극적인 면에서 사용해 왔다. 그러나 현재는 교회측도 대체로 무교회를 하나님의 교회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 단계에 있어서는 우리는 에클레시아의 규정의 적극적인 면을 강하게 제시하여 그 자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즉 우리들 무교회도, 무교회 전체뿐 아니라, 그 하나 하나의 모임이나 그룹도 전 세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의 일부며, 신자 각자는 그 일원이라고 하는 자각, 또 하나는 전 세계의 교회에 속하는 신자들도 같은 주님께 연결된 형제 자매이고, 서로가 주님의 몸의 지체라는 자각, 이러한 자각을 확실히 가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전도자에게 특히 요구되는 바이고, 무교회 전도자는 처음에 말한 에클레시아의 본질적 규정을 언제까지나 변호적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그 적극적인 면을 주장함에 소홀하지 말아야 한다.

첫 번째에 든 자각에서 아무리 작은 무교회 모임이나 그룹이라도 세계 대의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자라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잇어서 고독감이나 고고함(혼자만 좋아함)에 빠지는 것을 면할 수 있다. 또 제2의 자각에서 무교회의 각 집회에 대한 연대감 뿐 아니라 온 땅에 하나님의 교회와의 연대감을 가질 수가 있고, 그리하여 폐쇄적이고 독선적이 됨을 면할 수 잇다.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적어도 다른 무교회 전도자나 모임을 위해서, 나아가서 온 땅에 있는 형제 자매를 위해서 또 전 세계에 복음을 위하여 애쓰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고 또 기도하게 된다. 무교회가 하고 있는 전도의 범위는 참으로 좁고, 그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도 소수이다. 우리는 교회의 전도, 특히 무교회 사람들이 거의 하지 않는 빈민가의 전도, 또 차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전도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들은 그런 사람들에 대하여 감사하고 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다음은 무교회에 있어서의 공동체 형성이라는 구체적인 문제에 관한 나의 생각이다. 그것에는 먼저 말한 신앙적 자각이 선결 요건으로 그것 없이는 이 문제를 논할 수 없다. 그러한 자각이 있다는 전제하에 다음에 그것만으로 좋은가 아니면 그 이상 무엇인가를 해야 할 일이 없는가가 문제가 된다. 신앙적 자각만으로 좋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그 이외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간단한 것이라 하더라도 무교회 전체에 통하는 신조를 정한다든지, 아무리 느슨한 조직이라도 무교회 전체를 하나로 묶는 조직을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만일 그런 것을 만든다면 그것은 벌써 무교회가 아니고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방법을 쓰지 말고 무교회의 일체성의 자각을 굳게 할 방법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선 매년 행해지고 있는 우치무라 간조 기념 강연회는 무교회가 어떤 공통된 신앙에 서 있는 자의 동아리라는 자각을 촉진시키고 있다. 또 아쉽게도 금년('75년) 폐지된 '기독교 야간강좌'도 무교회의 연대 의식을 강화하는데 공헌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이마이캉 전도 성서집회'도 마찬가지다.

또 수년 전, 무교회 사람도 동참하여 만든 '제암교회사건 사죄 위원회'나 주로 후지사와[藤澤武義(등택무의)] 씨에 의해 제창된 '풀무학원 전등가설 모금운동'의 권유가 있었다. 이들 운동이 무교회 집회나 그룹에서 얼마나 이루어졌고 얼마나 호응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운동이 있음으로 해서 전국의 무교회 집회간에 연대 의식이 강화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집회에서도 참가했는데 이것은 집회 사람들의 안목을 넓히고, 전 일본의 무교회 중 일부로서의 자각을 깊게 한 듯 하다. 또 후지사와 씨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네팔의료전도를 하고 있는 이와무라[岩忖(암촌)] 붑를 지원하는 모임, 마사이케 씨 등이 중심이 된 이토[伊藤(이등)]회 등의 운동이 널리 무교회에서 이루어진 것도 좋은 일이었다. 우리도 이에 참가함으로 신앙적으로 유익함이 컸다.

또 최근 무교회의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결성된 '야스꾸니 문제 기독자의 모임'에 의한 운동도 마찬가지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이 모임 자체에 대해서는 교회측에 비해서 너무나 늦은 감이 있으나 그래도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편이 좋아서 참가하고 또 그 성명서 발표도 했다. 그에 대하여 주최측 한 분에게서 온 인사장 중에 "예상외로 무관심한 것을 알았습니다. 무교회의 문제가 생각지 않게 이런 데서 노출된 것으로 느꼈습니다. 순복음에서는 기독자로서의 신앙생활이 형식화되는 것같이 생각되었습니다."라고 썼다.

분명히 여기에 참가한 무교회 집회 수는 그 전부에 비해서 너무나 적었다. 그러나 이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 전부가 무관심해서 그랬다고 보는 것은 좋지 않다. 그 중에는 이미 독자적으로 혹은 교회측의 모임과 협력해서(우리 모임에서도 그랬음) 운동하고 있던 사람들은 '무엇을 이제서야'라는 기분으로 참가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더 단호한 반체제적 자세를 취할 것이지 이런 정도의 운동으로 무엇이 되는가 하는 생각으로 참가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무관심한 것은 아니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믿고, 혹은 다른 운동에 참가하고 있어서 이 운동에는 참가 못한 사람도 있으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이 분이 지적한 대로 무관심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참가하지 않은 집회나 그룹을 결코 잘라버릴 생각을 해서는 아니 된다. 고린도전서 12장에 있는 것같이, 어떠한 생각을 가졌거나 어떠한 은사를 받은 사람도 가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다. 서로 보완해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이와 같은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그 때마다 전부에게 아려주기 바란다. 그러는 중에 그 사람들의 관심의 눈이 뜨여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 중에 있는 무교회 집회나 그룹을 전부 알아야 할 것이나, 그 때문에 그런 표를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거의 모든 집회가 누군가의 잡지를 보고 있을 것이니까 잡지를 내고 있는 사람이나 알고 있는 범위내의 집회 책임자에게 알리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요는 무교회 전체에 관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모든 무교회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알리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교제에 구체적인 호소를 계속하는 것이 무교회에 있어서의 공동체 형성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75. 2. 전집 8)           


[차 례] [이 전] [다 음]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수
10 각 필자 글들 나의 무교회주의-총본호이(쓰카모토 도라지) 2007.09.22 4967
9 각 필자 글들 무교회주의의 당래-총본호이(쓰카이모토 도라지) 2007.09.22 4700
8 각 필자 글들 우치무라 선생-무교회주의-나 - 총본호이(쓰카모토 도라지) 2007.09.22 5366
7 각 필자 글들 무교회주의란 무엇이냐?-시내원충웅(야나이하라 다다오) 2007.09.22 5258
6 각 필자 글들 무교회주의의 전선통일-정지인 (마사이케 징) 2007.09.22 5232
5 각 필자 글들 무교회주의의 사명-정지인(마사이케 징) 2007.09.22 4923
» 각 필자 글들 무교회에서의 공동체 형성-이와쿠마 나오시 2007.09.22 7082
3 각 필자 글들 무교회란 무엇인가?-고교삼랑(다카하시 사브로) 2007.09.22 5311
2 각 필자 글들 새 무교회주의-무우일랑(다케유 이치로) 2007.09.22 10309
1 필자 소개 2007.09.22 716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allbaro.net since 2007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