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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이 전] [다 음]


무교회주의란 무엇이냐?

[矢內原忠雄(시내원충웅)(야나이하라 다다오)]             

제1절 종교개혁사적으로 본 무교회주의


(1) 예레미야

오늘은 우치무라 선생을 기념해서 '무교회주의란 무엇이냐?'라는 말씀을 하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제까지 몇 번이나 말씀한 것이지만 우리들 신앙적 입장을 언제나 되새겨보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역사적이라고 말할까요, 종교개혁의 역사로써 무교회주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은 너무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구약성서의 예레미야는 아무래도 빠질 수 없는 인물입니다.

레위기나 출애굽기를 보면 예배의 의식제도나 사회생활상의 율법 규칙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이들 율법의 해석 및 이행이 형식화했고 생명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한편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한군데가 아니고 국내 여러 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예배와 지방의 우상신 예배가 뒤섞이면서 유대인의 종교는 생명의 순수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와 같은 상태를 숙청해서 지방적인 우상예배 풍습을 없애기 위해서 예배장소를 예루살렘 성전에 국한시키고 지방에 있는 제단을 없앨 것을 요시야 왕이 명령한 것입니다.

요시야 왕의 개혁사업에 예레미야도 찬성하고 개혁의 취지를 국민 사이에 보급시키는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각지를 돌며 이야기했습니다만, 그런 활동의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사업은 흐지부지 끝나고 국민의 암적인 인습과 우상숭배적 요소를 뿌리뽑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실망 중에 그의 마음속에 새로운 영적 계시가 점점 강하게 나타났는데, 예를 들면 예레미야 4장 1절부터,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중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렘 4:1~3)
율법과 전통의 형식적인 해석과 우상예배의 잡다한 가시덤불 속에 신앙의 씨를 뿌려도 자라지 못하니까 새 땅을 일구라는 것입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
할례를 행하는 것은 여호와에 속한 백성이 되는 데 필요한 의식인데, 예레미야가 말하기를 "마음에 할례를 받아라. 육체의 할례를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그것보다도 자기 마음의 가죽을 베는 것이 중요하다." 즉 마음의 개혁을 주장한 것입니다.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써 여호와는 살아계시다고 맹세하라."(4:2)고 말했습니다. 진실과 공평과 정의에서 나온 맹세가 아니고 다만 습관적으로 "여호와는 살아계시다." 하는 것은 소용이 없고, 후에 예수께서 요한복음 4장에서 말씀하신 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신 것이 역시 예레미야의 신앙태도 근본에 있었던 것입니다. "마음의 가죽을 베라", "새 밭을 갈라", "진실한 마음으로 여호와는 살아계신다고 맹세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형식과 습관에 대한 영과 진실을 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예레미야 31장 31절, 이것도 유명한 곳입니다만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 31:31~34)
이것은 실로 격렬한 혁명적인 말씀으로,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던"이란 말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나오던 때로,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이 이상의 국민적 대 사건은 없습니다. 그 날에 세운 계약이므로 이것은 이스라엘 건국의 근본이 된 대단히 중요한 신성한 율법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가 말하는 새 계약은 "모세에 의해서 세워진 율법과 같은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니, 보수적인 사람이 들으면 "참으로 돼먹지 않은 말을 예레미야는 하고 있다. 모세의 율법보다 새로운 계약을 세운다는 것은 율법을 무시하는 대담한 말이다."라고 비난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예레미야를 미워하고 그를 박해해서 그의 생명을 몇 번이나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그다지 심하지 않은 경우라도, 평소의 교제에 있어서 예레미야를 상대하지 않아 외톨이가 되게 했습니다.

과거의 전통적 권위를 부정하고, 새로운 계약에 의하지 않으면 국민은 구원받지 못하며, 그 새로운 계약이라는 것은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지 돌에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문자는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영이 아니면 사람을 살릴 생명은 없다. 의문이 아니고 영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신앙이고 동질의 선언입니다. "마음의 가죽을 베라." 또는 "새 밭을 갈아라." 하는 말과 같으며, 혁명적인 종교진리를 가르친 것입니다.

또 하나, 예레미야 22장을 펼쳐보면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왕의 집에 내려가 거기서 이를 선언하여 이르기를, 다웃의 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위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마는,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로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무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2:1~5)
이것은 예레미야의 예언 중 중요한 중심문제의 하나입니다. "정치나 사회생활이나 실제로 인간이 살고 있는 관계에 있어서 정의와 공도를 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의와 공도를 행한다는 것은 이방인과 고아 과부 기타 사회적으로 권리를 존중하라. 그리하면 유다의 왕위는 보전되며, 그렇지 않으면 황폐하고 망해버린다."는 멸망의 예언입니다.

예레미아의 예언의 특색은, 지금 말씀드린 대로 마음에 여호와의 율법을 새기는 일입니다. 마음의 가죽을 벤다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진실한 태도로 여호와께 맹세하는 것이며, 사람에 대하여 공도를 행하여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으로, 어느 것이나 당시의 지배계급, 권력계급과의 충돌을 면할 수 없으며, 그 충돌이 사상적 방면, 종교적인 예배방식, 그리고 정치와 사회 생활면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세상에서 박해를 받았습니다만, 그는 박해 중에서 신앙의 순수한진리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예레미야는 종교개혁자가 되고, 새로운 진리를 후세에 전한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위대한 예언자였다는 것 즉, 예언자로서의 그의 진가는 오랫동안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습니다. 그의 예언의 진가가 인정된 것은 기독교시대가 되고서도 비교적 근대에 이르러서의 일이고, 종교개혁 정신에 의하지 않고서는 예레미야는 알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모세의 율법을 부정하는 사람이되었는데, 그로 인해서 오히려 율법의 길을 완성했습니다. 율법을 완성하는 길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대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잡념 없이 마음을 다하여, 생각을 다하여, 정신을 다하여 하나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다입니다. 그와 같이 순수한 사랑을, 신부가 신랑에 대하여 주는 것 같은 사랑을 여호와께 바치고, 또 약자인 이웃사람에게 주는 것, 그로 인해서 율법은 완성됩니다.

율법을 전해 내려오는 문자로, 형식으로 지켜나가려는 사람은 율법의 정신을 죽여버립니다. 그와 같이 율법을 형식적으로 지키는 방법을 파괴해버림으로써, 비로소 율법의 바른 가치가 인정되고 또 이것이 바르게 행해지게 됩니다. 형식이 아니고 마음입니다. 유전이 아니고 새 계약입니다.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고 마음의 진실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사회의 악에 대하여서는 이 세상의 현상을 유지하는것이 하나님의 질서라는 보수적·도리적·방관자적인 태도가 아니라, 사회의 악과 불의를 지적하고 이것을 책망하고, 사회에 공도와 정의가 행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혁신적이고 현실적인, 따라서 세상과의 충돌을 자기 일신상에 자초하게 되는 성질의 사회비판, 이들이 예레미야의 종교개혁 정신이었습니다.



(2) 예 수

예레미야의 정신을 가장 잘 이어받은 분이 예수입니다. 예레미야와 예수 사이에 600년쯤 시가적 공간이 있습니다만, 예레미야의 종교개혁정신이 지하수가 되어 예수에 와서 또 분출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로서의 예수를 보는 것은 4복음서를 배우는 데 대단히 필요합니다. 예수의 적이 되고 예수를 잡아죽이려고 한 사람들은 학자, 바리새인, 제사장들, 즉 당시의 대표적 종교가였습니다. 이들은 모세 이래의 전통을 지키고, 예배의식을 유지하고, 유대인의 종교생활을 지배해 온 사람들입니다. 그에 대하여 정면에서 종교개혁자로서 맞서 나간 분이 예수였습니다.

예수의 선구자가 있었는데, 그 사람은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예수에 대한 위치는 예레미야에 대한 요시야 왕의 신명기 개혁과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 자신이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선구자임을 자인하고, 예수도 요한을 그와 같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유대인의 전통을 형식적으로 유지하는 바리새적인 율법주의를 비판하고,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죄의 회개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됨을 설파하였습니다.

죄의 회개를 상징하기 위하여 그는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로 죄를 회개하고 신생하는 것을 상징했습니다. 그는 현실사회를 예리한 비판의 눈으로 보고, 국왕 헤롯 안티파스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악행을 지적했기 때문에 결국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와 세례 요한의 상이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떠한 의미에서 요한이선구자이고 예수가 뒤따르는 진짜 그리스도일까요? 이것은 요컨대 세례 요한은 죄에 대한 회개의 필요를 주장한 사람이고, 예수는 죄에 대한 용서를 실행한 사람입니다.

요한은 헤롯 안티파스의 악핵을 지적하고 목을 잘렸습니다만, 예수는 세상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죄의 용서의 필요를 가르친 사람과 죄를 용서한 사람과의 차이가 양자간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부터 읽어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 3:3~8)


또 15절에,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5).

그를 위해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은, 새 계약이 여호와로부터 주어진다고 예언한 예레미야의 말과 같은 진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영으로 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예레미야가 '마음에 율법을 새긴다' 또는 '새 밭을 간다'든지 '마음의 가죽을 자른다'든지 하는 말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바람은 임의로 분다'고 말한 것은 성령의 활동은 자유롭다는 말씀이고, 제도나 규칙이나 그런 것은 고정적인데 성령은 형체를 가지고 고정되는 일이 없이 자유롭게 활동한다. 즉 율법의 형식적인 속박에 대하여 성령의 자유로운 활동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4장 21절부터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어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성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1~24)


예레미야의 신앙의 흐름이 여기에 분출하고 있습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예수는 당연히 율법의 전통을 파괴하는 자로 바리새인과 학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예수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등 고의로 율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해서 바리새인들의 증오를 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또 다른 곳에서 "나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다. 율법의 일점일획도 폐하지 않고 율법을 완성시키려고 왔다."고도 말씀하십니다. 즉 율법을 파괴함으로써 율법을 성취시킴이 예수의 개혁이었습니다. 파괴되는 율법은 형식적인 율법이고, 완성되는 율법은 영적 의미입니다.

간단하게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예수는 사랑의 율법을 성취시키는 분이었습니다. 그럴 때에 특히 예수의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은 죄인, 맹인, 절뚝발이, 병든 자, 고아, 과부 등이었고, 이들은 예수가 특히 관심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사랑하는 나머지 예수는 형식적인 율법의 파괴자가 되는 것도 사양치 않고, 그 때문에 이 세상 학자, 부자, 권력자들로부터 모세의 율법을 파괴하는 자라고 비난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는 율법을 파괴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했다."라고 말할 때에 거기에서는 율법을 두 개의 시각에서 본 것입니다. 율법을 파괴했다는 것은 율법의 껍데기를 파괴하는 것이고, 완성했다고 말하는 것은 율법의 진짜 정신을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껍데기가 속 생명을 질식시켜버리려는 때에 껍데기를 파괴함으로써 속 생명이 구출됩니다. 예수는 그런 의미에서 위대한 종교개혁을 이룩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먼저 예언한 개혁이 전망을 예수께서 성취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뿐만 아니라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나타난 종교개혁 정신과 사업의 흐름은 예수에 있어서 최정상에 달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이후 신약시대에 차례차례 나타난 종교개혁자들의 정신과 사업은 모두 거슬러 올라가 예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구약의 종교개혁은 예수를 지목한 것이고, 신약의 종교개혁은 예수에게서 나온 것으로 예수께서 종교개혁사의 정점에 서있습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예수는 죄의 용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고, 죄의 용서를 선언한 사람입니다. 예수께서는 부활의 행복을 주장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고 스스로 부활하고 또 그로 인해 사람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가 그리스도 즉 구세주이십니다. 따라서 또 모든 시대의 종교개혁의 중심점이고 근원입니다.



(3) 바 울

예수 다음에 사도시대에 와서는, 말할 것도 없이 바울이 최대의 종교개혁자였습니다. 로마서 3장 28절에,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이것이 바울의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입니다. 바울이 주창하고 있는 것도 예레미야가 예언한 바요, 또 예수가 가르치신 선에서 지나지 않는 것으로, 율법의 전통이 고정된 형식의 껍데기가 되어 그 껍데기 속에서 영적 생명을 질식시키고 있었습니다. 예수 시대의 바리새인이 그러했고, 예수의 승천 후 초대교회 냅의 유대주의자가 그러했습니다.

종교개혁자로서의 예수의 싸움이 구체적으로는 주로 안식일의 율법에 관한 바리새인과의 충돌에서 일어났던 것같이, 바울은 주로 할례문제와 관련하여 교회 내부의 유대주의자와 충돌한 것입니다.

유대주의자는 말합니다. "이방인은 우성 율법상 유대인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필요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교회원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라고. 이러한 할례주의자가 초대교회 안에 세력을 잡고 있었습니다.
"할례는 모세가 정한 신성한 율법으로,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간에 할례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사람은 여호와의 백성이 될 수 있으며, 여호와 앞에 나아가 예배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도 할례를 받고 여호와에 속한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공인받지 않으면 여호와 앞에 설 수 없다. 즉 에클레시아의 일원이 될 수 없다. 할례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구원받기 위한 예비적 필요조건이다."
이것이 유대주의자라고 하느느 바 초대교회 내의 보수적인 사람들의 주장이었습니다.

문제는 할례만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일반적인 모든 율법에 관한 일로,바울은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 율법을 지킬 필요도 없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으로 좋다."락 강력히 주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주의자들이 노한 것도 이해할 만합니다. 그들은 "바울은, 도덕도 필요 없고 유전도 지킬 필요 없다고 하는 등 무율법 무도덕을 주장한다."고 비난한 것입니다. 또 바울주의의 아류(亞流) 중에는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악을 행함도 좋지 않겠느냐?"라는 사람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며 바울을 비난했습니다.

이와 같은 오해와 비난과 박해 중에 있으면서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에 의한다."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바울의 편지를 읽으면 잘 알 수 있습니다만, 구원은 영적인 것이고 그에 대해 필요한 마음의 태도는 진실입니다. 영과 진실이 구원의 근본이고, 형식적인 제도나 습관에 집착하는 것은 모든 영의 자유를 질식시키는 속박입니다. 우치무라 간조 선생은 로마서 3장 28절을 대단히 중요시하시고 이것이 종교개혁의 근본적 원치기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역설하였습니다.

바울이 이 원칙을 응용해서 특히 역설한 것은 이방인의 구원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나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이방인의 구원문제가 있습니다만, 특히 바울은 이방인의 구원문제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방인을 기독교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할례가 필요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큰 문제여서 주장이 둘로 나뉘게 되었습니다. 할례가 필요 없다는 것이 바울이고,필요하다는 것이 유대주의자들입니다. 바울이 상당히 애먹은 문제입니다.

할례 받을 필요가 없다는 바울의 주장에 의하여 복음의 전파 범위가 상당히 넓어졌고 세계적으로 퍼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선 할례를 받고 제도적으로 유대인이 되어야 교회에서 받아들인다면, 그것 자체가 걸림돌이 되어서 복음이 이방세계에 퍼지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종이나 민족의 구별은 구원과는 무관하다는 원칙을 분명하게 바울이 유지했기 때문에 복음의 전파범위가 세계적으로 넓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 파괴자로 몰렸습니다만, 그는 결코 무도덕주의나 무율법주의를 제창한 것이 아니고, 일단 율법을 부정함으로써 오히려 율법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율법을 '사랑'이라는 한 점에 요약해서 환원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서 13장 8절 이하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마음의 문제이므로 진실한 마음이 아니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형식이나 타성으로는 참사랑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사랑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영적인 자유가 없이는 안 됩니다. 그 자유는 율법으로는 줄 수 없습니다. 신앙에 의해서가 아니면 줄 수 없습니다. 참사랑은 영의 구원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지, 규칙이나 제도나 의논에 의해서는 절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에 의한다."라고 말함으로써 율법을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정의 기초 위에 그는 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율법을 완성하는 길을 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편지를 보면 어느 편지에도 처음 부분은 율법을 부정하는 부분이 있고 신앙에 의한 자유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후반에는 그 자융 의해서 사람을 사랑한다는 도덕적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다.

건설에 앞서 파괴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파괴는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고 참으로 새로운 것을 건설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위대한 개혁자의 일입니다. 바울은 위대한 종교개혁자였습니다. 그에 의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범위가 획기적으로 넓어지고 그리고 깊이 뿌리박게 되었습니다.



(4) 루 터

종교개혁의 역사에서는 근대에 와서 루터를 생각하게 됩니다. 15,16세기에 걸쳐서 루터, 칼뱅, 쯔빙글리 3인의 위대한 종교개혁자가 동시에 나왔는데 말하자면 루터가 대표격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바울의 종교개혁과 같은 정신이, 시대를 달리해서 분출한 것이지요. 루터의 종교개혁은 로마서 3장 28절을 근거로 한 것으로,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신앙'만'으로 주어지는 의임을 주장한 것입니다. 즉 구원은 영과 진실에 의한 것이며, 제도적 예배나 율법적 행위를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사라을 진짜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는 사탄의 짓이라고 로마 교황과 격돌했으며, 이로 인해 가톨릭교회와 분리된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특색은 만인사제론(萬人司祭論)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특별한 승직(僧職)이 필요치 않은, 모든 사람이 사제(司祭)라는 사상입니다. 바울은 구원의 문을 이방인에 향해 크게 열어놓았는데, 루터는 사제라는 역할을 모든 사람에게 개방했습니다.

가톨릭교회에는 가장 위에 교황이 있고, 다음에 대주교가 있고, 그 밑에 주교가 있고, 신부가 있고, 그리고 일반 신도가 있고, 그 밑에 구도자가 있어서, 이러한 계급제도에 의해서 예배가 행해집니다.

루터는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어떠한 시골 농부라도, 병자라도, 신자라면 누구나 하나님과의 사이에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서 중개의 필요는 없다. 신앙에 의한다면 아무라도 무조건으로 구원받는다. 구원받기 위해 교황의 허가도 인가도 찬성도 동의도 필요치 않다. 비록 교황이 파문장을 내서 '너는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선언하더라도, 영과 진실로써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그 신앙만으로 구원받는다. 그리스도가 구원해 주시는 것이지 교황이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또 누구나 복음을 전파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럴 책임도 있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직업종교가만의 일이 아니다. 승직을 맡을 자격시험에 합격한 자만이 예배를 주관하고 설교를 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인이 사제가 될 자격이 있다. 또 책임도 있다.
그러한 만인사제 사상을 루터가 주장한 것은 대단히 큰 개혁적 사업이었습니다. 신앙만으로 의롭다고 인정된다는 주장은, 루터에 있어서는 상대가 가톨릭교회라는 계급제도가 엄중한 종교였기에 만인사제라는 혁명적 사상이 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 사업의 특색인 다른 하나는, 민족주의 즉 내셔널리즘의 주장이었습니다. 이것도 당시의 국제정세에서 온 것으로, 독일을 통치하는 최고의 군주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는데, 당시 스페인 국왕이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민족은 외국인 원수(元首)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신성로마 황제와 로마 교황이 제휴하여 정치 및 종교적 권력으로 독일 국민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고 있었으며, 거기에서 생긴 현실적인 정치적·사회적 부패에 대해서 루터는 신앙적 견지에서 예리한 비판의 소리를 올렸습니다. 그것이 당시 발흥의 기운에 있었던 독일민족의 내셔널리즘 즉, 국민주의에 유력한 자극이 되어 정신적 추진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가장 현저한 것으로 교육상의 개혁이 있었습니다.

당시 독일에는 대단히 많은 수도원이 있어서, 국민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금전상의 부담을 지고 있었습니다. 국민의 교육은 오로지 수도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만, 그 내용은 독일 사람의 생활을 위해서는 부적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많은 수도원을 폐쇄하고 오히려 읍이나 면 같은 데에 공공 비용으로 초등학교를 세우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수도원학교에서는 라틴어만 사용하고 있었으나, 초등학교에서는 독일어를 쓰고 교과목도 독일국민의 실제생활에 필요한 것을 골라서 가르치도록 주장함으로써 교육의 국민화와 보급을 기했습니다. 이것이 독일에서의 초등학교의 기원입니다.

이와 같이 독일 종교개혁의 특색의 하나는 민족주의였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특히 이방인의 구원을 역설한 주장의 응용으로써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이방인이 이방인인 그대로 구원받을 수 있다면 이방인의 생활을 유대인화할 필요가 없는 것같이, 가톨릭교회화할 필요도 없고, 외국풍을 강요당함 없이 각 민족의 자유와 자주를 존중한다는 원칙이 성립된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이 루터의 내셔널리즘이 된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중심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사람이 하나님에게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신앙에 의한 것이지 율법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다.

둘째, 그것을 바탕으로 성직(聖職)에 있든지 평시도이든지 불문하고 모든 신자에게 전도의 자격과 책임이 있다는 만인사제론.

셋째, 독일민족은 독일민족으로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며, 자유롭고 또한 자주적인 민족생활과 정치적 지위를 확립해야 한다는 민족주의.

이 셋이 루터의 종교개혁의 주된 점이었습니다.

루터의 사업은 종교개혁상의 대 사업을 성취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불철저한 점이 남았습니다. 그는 카톨릭교회와 분리하고 또 만인사제의 원칙을 주창했습니다만, 교회라는 제도를 부정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독일민족의 교회로서 '탄데스 키루에' 즉 국립교회제도를 만들고, 성직제도를 남기고, 성직자에 의해서만 행해지는 예전(禮典) 즉 새크라멘트도 유지시켰습니다.

다만 가톨릭교회에서는 성직단계제도의 최고 지위에 로마교황이 앉고 교황은 교권의 수장(首長), 국왕은 세속적 권력의 수장이라는 원칙이었던 데에 대하여, 루터가 세운 교회에서는 국왕이 교권의 수장을 임명한다는 제도로 바꾼 것뿐이고, 감독, 목사 등의 성직의 단계제도를 남겨놓은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전통인 새크라멘트(성례전)도 그 어떤 것은 폐지했으나 어떤 것은 이어갔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새크라멘트는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만, 루터는 그 중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 남기고 나머지 다섯 가지는 폐지했습니다. 그러나 역시 새크라멘트라는 것을 남겨놓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직과 새크라멘트 제도가 있는 교회라는 단체조직을 남긴 점에 있어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철저하게 예수와 바울로 돌아간 것이 아니고, 가톨릭교회의 제도와 전통을 어느 정도 보존한 것이었습니다. 즉 영적인 종교개혁으로서는 불철저하게 끝난 것이었습니다.



(5) 우치무라 간조

루터로부터 약 400년후 우치무라 간조가 나타났습니다.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는 종교개혁사업입니다. 종교개혁의 역사의 흐름을 우리가 본다면, 예레미야예수-바울-루터-우치무라 이렇게 계속됩니다.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가 깨끗한 지하수의 수맥과 같이 흘러서, 시대를 따라서 다른 나라에 용출하는 것입니다. 하나의 종교개혁사업이 이룩된 것은 그 시대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데,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그 사업이 형식화 해서 생명을 잃게 되면, 하나님은 또 시기와 국민을 택해서 영원한 진리의 새로운 분출을 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20세기 초에 일본을 선택하여, 그 중에서 우치무라 간조라는 인물을 붙잡아 새로운 종교개혁사업을 하게 하시고, 구원의 진리를 세계를 향해 새로운 힘과 생명을 가지고 전파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교회주의입니다. 저는 그와 같이 보고자 합니다.

우치무라의 종교개혁의 특색은

첫째로, "사람이 의로 인정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의함이 아니요 신앙에 의한다."라는 로마서 3장 28절의 원리를 강하고 분명하게 밝힌 점에 있습니다. 우치무라는 자기 개인적인 신앙체험을 통해서 이 죄 용서의 복음을 알게 되었고, 이 복음을 증거하는 것으로 성서연구를 하였고, 그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우치무라 선생 자신의 죄의식의 실체는 무엇이었는지, 왜 선생은 그다지고 강하게 죄으식을 가지고 그로부터의 구원을 열망했는지 그것은 저는 모릅니다.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좌우간 깊은 죄의 자각을 가지고, 죄에서 오는 마음의 불안에 고통을 받으며, 영혼의 평안을 얻으려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고통 속에서 아마스트 대학 씨리 학장이 말해 주신 간단한 말씀 즉, "우치무라 군, 군의 속에서는 구원이 나오지 않아요."라는 말씀에 의해서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으며,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의하지 않고 신앙에 의하는 것이다. 자선사업도 학문도 사회적 사업도 모두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줄 수 없다, 죄를 용서할 수는 없다, 다만 그리스도가 내 죄를 지시고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써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우치무라의 종교개혁사업의 근본이 된 신앙이며, 선생의 명저 '구안록(求安錄)'에 쓰여있는 바입니다.

이것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만, 후지이 다케시[藤井武(등정무)]가 우치무라 선생 밑에서 전도를 시작했을 때에 로마서 연속연구를 '성서지연구(聖書之硏究)'에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 첫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나타남이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벌로 대신 죽은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구식 사고방식"이라는 취지의 문장을 후지이가 썼습니다. 그런데 우치무라 선생은 약속대로 그 문장은 그대로 잡지에 실었습니다만, 그것에 선생의 말씀을 덧붙였습니다.
"후지이 군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은 나 자신도 찬성하지만, 죄의 대속이라는 대벌의 사상을 구식 사고방식이라는 점은 동의할 수 없다. 자기가 자신의 죄에 대해 벌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 자기를 대신해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다는 신앙은 복음의 근본이므로, 이것은 양보할 수 없다."
후에 후지이도 자기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만, 이 문제는 여러분이 이해를 하시는지 어떤지, 왜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 모르시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자신이 희생이 되어 죽기까지 고통하며 사랑한다는 것고, 받아야만 할 죄의 벌을 대신 받아 자기가 그 대신 벌받아 죽는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죽음의 희생까지 치르며 사랑한다고 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치무라 선생도 인정하였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죄를 벌하지 않고는 안 되는 정의의 요구가 있다. 그 하나님의 정의의 요구에 비추어, 자신이 자기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죽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아 벌하셨다. 그 십자가에 의한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자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에 의해 죄를 용서받는다. 그렇게 믿는 이외에 나의 양심은 평안을 얻을 길이 없다. 그러나 이 신앙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하나님에게 의로 인정받는 것이어서, 달리 아무런 조건도 필요치 않다."
이것이 우치무라 선생의 입장이며, 그 순복음의 근본에서 출발해서 무교회주의가 제창된 것입니다. 우치무라 간조가 무교회주의를 제창하게 된 데에는 이 외에 부차적으로 두셋의 실제적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교육문제에 관해서 선교사와 의견충돌이 일어난 사실입니다.

우치무라 선생이 미국에서 돌아와서 처음 취직한 것은 니가타[新瀉(신사)]의 호쿠에츠[北越(북월)]학관이라는 선교사 학교였습니다. 거기서 선생이 취한 교육방침에 특색이 둘 있었습니다. 하나는 교실에서 성서, 특히 예레미야를 강의했습니다. 이것을 선교사가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무사도(武士道)라든가 유교라든가, 일본 재래의 도덕이나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이것도 선교사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우치무라는 크리스천이지만 목사자격이 없다. 목사자격도 없는 사람이 성서를 강의하는 것은 좋지 않다. 그리고 기독교정신을 가르쳐야 할 학교에서 일본 재래의 사상과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이교도적이다." 이와 같이 선교사들은 우치무라의 행동을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선생은 재임 겨우 4개월에 호쿠에츠 학관을 사직하고 동경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적 기독교'라든가 '일본인의 기독교'라는 것이 선생이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루터의 민족주의 사상과 곤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민족은 일본민족의 역사와 문학과 도덕사사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이 미족적 기반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목함으로써 기독교는 정말 일본국민의 신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기독교의 가르침에 의해서 일본의 민족성의 단점을 고치고 장점ㅇ르 발휘해 나갈 수 있다. 미국이나 영국 기타 외국화된 기독교가 아니고, 성서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를 직접 일본사람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우치무라 간조의 일본적 기독교 주장이었습니다. 이것은 내셔널리즘에 의한 우치무라 간조의 독립성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교회에서 인정한 목사자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성서를 가르칠 수 없다든지 세례를 줄 수 없다든지, 또 그 유자격자인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은 자가 아니면 교회원이 될 수 없으며, 교회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자는 기독신자로서 공인되지 않는다든가 하는, 모든 교회의 제도와 전통에 대하여 비판적인 것이 무교회주의의 주장입니다.

우치무라 간조는 본래 미국 선교사 하리스에게서 세례를 받고 감리교 교회에 속한 사람입니다. 후에 삿포로 독립교회를 만들었습니다만 역시 교회 관계자였습니다. 그러한 선생이 무교회주의를 주창한 것은 결코 교회를 부정하는 파괴자로 나타난 것이 아니고,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신앙만에 의한다."라는 순복음의 입장에 철저하지 못한 선교사나 교회 쪽의 하는 일에 대해 비평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은 세례를 받고 교회원이 되지 않더라도 신앙만 있으면 크리스천일 수 있다. 일본에는 교회에 갈 수 없는 사람, 또 교회에 가기 싫은 사람이 많이 있다. 집 없는 아이는 불쌍하지 않은가? 나는 교회라는 집 없는 불쌍한 어린이들에게 복음을 전한다.
이러한 선언 하에 우치무라 선생은 무교회주의 전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교회 쪽은 그에 대해 "우치무라의 무교회주의는 고아의 기독교, 룸펜의 기독교"라고 냉소했습니다. 그러한 냉소를 받으면 받을수록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 신앙은 강하고 적극적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선생의 입장은 루터의 만인사제설과 같은 것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에 의해 직접 구원받으며, 그리스도에 의해 직접 하나님께 연결되고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책임과 의무가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정한 자격이 무엇인가? 우치무라는 교회가 인정한 전도자자격이 없다는 것을 선교사나 교회측으로부터 지적 받았습니다만, 그에 대하여 선생은 역으로 "나는 Rev.(Reverend, 성직자에 대한 경칭)가 아니다."라며 뽐냈습니다. 목사자격을 가진 사람은 보통사람과 구별해서 '미스터'로 부르지 않고 '레브런드'라는 특별한 칭호로 부릅니다. 그것으로 성직자임을 표시하는 관례가 되었습니다. 선교사나 교회 쪽은 우치무라는 레브런드가 아니라고 트집을 잡았지만 선생은 오히려 평신도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입니다.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의 요점을 열거해 본다면, 첫째로 이방인 구원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아무라도 크리스천이 되기 위하여 미국인이나 영국인 그 외 외국인의 생활이나 사상을 따를 필요는 없다. 일본사람의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으면 좋은 것이다."

둘째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율법이나 제도나 전통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거듭남에 있으며, 제도나 전통에 의하지 않고 영과 진실로써 하나님께 예배해야 한다는 점, 따라서 사람은 그리스도의 구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고 교회원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고 또 성찬식에 참여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며, 세례를 주고 혹은 성찬을 실행하더라도 교회에서 안수 받은 유자격자에 의할 필요가 없고 누구나 이것을 수여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우치무라 선생의 무교회주의는 제도와 전통을 중시하는 교회주의와는 심하게 대립하여, 에수가 바리새인을 공격하고 바울이 유대주의자를 공격하고 루터가 가톨릭을 공격한 것과 같은 격렬함으로 우치무라는 교회의 부패를 공격했습니다.

셋째로, 우치무라 선생은 정치와 사회의 부패 타락을, 신앙적 입장에서 논란 공격했습니다. 즉 예레미야는 예수나 바울이나 루터 등과 같은 형태의 신앙으로, 현실사회를 비판하고 그로 인하여 사회에서 조소와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 신앙이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교회 안에서나 즐기는 그러한 폐쇄적인 것이 아니고, 세상을 구원하고 사람을 구원한다는 산 정신에 넘쳐흐르면 아무래도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게 되고, 정의 공도를 행하게 하지 않으면 나라는 망한다는 우국개세의 예언으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치무라 간조의 생애와 사업에는, 그러한 모습의 종교개혁자로서의 성격과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의 종교개혁자였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종교개혁사의 계열에서 중요한 역사적 지위를 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와 같이 생각해야 우치무라의 사업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2절 무교회주의와 교회와의 논쟁점



(1) 교회와 구원


더 나아가 무교회주의와 교회측과의 상이점 혹은 논쟁점은 어디에 있는가? 믿음으로 의로 인정받는 구원의 원리는 교회 쪽도 인정하고 있으므로 양자간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평이 많습니다만, 실제로 논쟁이 된 점을 든다면 주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의 입장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라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가톨릭교회가 엄중히 주장하는 것입니다만, 프로테스탄트의 여러 교회도 다 그 입장에 서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무교회주의는 교회 밖에 구원이 있음을 주장합니다. 이것은 '교회'라는 말의 이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신약성서에 '교회'라고 번역된 원어는 희랍어로 '에클레시아'입니다. 이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원래 종교용어가 아니고 희랍 도시의 민회(民會)로, 그 도시의 자유민이 전부 모여서 정치상의 문제를 논의하는 시민집회입니다.

유태인에게는 '시나고그'라는 제도가 있어서, 성서에 '회당'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이 모여서 율법을 읽는 종교집회이고, 또 종교문제에 대해서 재판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크리스천이 집회를 하게 되면서 유대인의 시나고그와 구별하기 위하여 희랍인의 민회를 의미하는 에클레시아라는 말을 빌려서 자기들의 모임을 부르는 말로 썼습니다. 이것이 신약성서에서 쓰고 있는 '교회'라는 말의 근원입니다.

그러니까 성서에 쓰인 시대의 '에클레시아'는 크리스천의 모임이라는 뜻일 뿐 각별한 제도나 조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감독'이나 '장로'나 '집사'라고 번역된 말도 있지만, 이들은 어느 것이나 후세의 교회에서 정한 직책이 아니고 단순한 업무담당이라는 정도의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자유로운 에클레시아를 하고 있는 중에, 제도를 세우고 조직화하게 되어 오늘날과 같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회라는 제도, 혹은 제도로서의 교회라고 해도 좋으나, 이것은 성서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전통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해서 제도로서의 교회가 성립된 것은 기원 3세기에서 4세기에 걸친 일이라고 합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에클레시아는 신자의 자유로운 집회인데, 그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비유로 말하고 있습니다. 혹은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것은 그리스도와의 사이의 깊고 영원히 신성한 사랑의 관계를 말한 것으로, 제도적인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에 속하는 존재이고,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존재이고, 그리스도 이외의 무엇에도 마음을 붙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고 하신 것도 그리스도와 에클레시아의 관계를 말씀하신 것이며, 또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의 지체"라고 말한 바 있고, 유기체의 비유로 그리스도와 신자와의 관계, 신자 각자간의 관계, 그리고 전체로서의 신자의 생명을 말한 것도 에클레시아의 본질을 그리스도에 연결되는 자의 생명 공동체로 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적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에 연결되고 있는 사람들 전체를 에클레시아라고 말할 때에, 거기에서 떠난 사람은 생명나무에서 떨어진 가지와 같이 말라죽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와 같은 뜻에서는 "에클레시아의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성서의 에클레시아가 아니고 전통에 의해 만들어진 제도로서의 '교회'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도 영과 진실로 예배해야 할 것이며, 사람이 만든 제도나 조직 그것에 사람을 구원할 힘이 없는 것은 명백합니다. 만일 교회를 하나의 제도로 생각하고 제도적인 교회원이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다면, 무교회주의는 그에 대하여 큰소리로 "노!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외칩니다. 우치무라 간조뿐만 아니라 루터도 바울도 그리스도 자신도 예레미야도 그에 대하여 "노!"라고 말해 왔습니다. 그것이 종교개혁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교회라는 제도, 조직 속에 있는 것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는 무교회주의의 주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 '교회'라고 불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지체인 영적 생명의 공동체로서의 에클레시아가 아니고, 전통에 의해 생긴 제도적 교회입니다. 교회라는 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다."라는 말과 같은 것으로,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으로는 의로워지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는 교회라는 제도에 속해 있느냐, 아니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행위를 자랑하는 자가 마음의 평안을 갖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라는 제도 속에 있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상은 자유를 질식시키는 것이며 생명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교회주의자는 "교회 밖에 구원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교회주의라고해도 '무교회'라는 것 자체에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교회주의자도 집회를 합니다. 만일 자기들의 집회에 모인 사람(그것을 회원제도로 하건 아니건), 자기 집회의 회원이 아니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이, 같은 소속임을 중요시하게 되면 그것은 교회주의입니다.

이에 반해, 제도적인 교회에 속한 사람이라도 교회원이라는 것이 구원에는 별 의미가 없고 다만 편의상의 문제이며, 구원은 오로지 믿음에 의한 것임을 믿고 있다며,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구원은 교회원이라거나 무교회원이라거나 제도 또는 전통에 의해 구별되는 편의의 무제가 아니고, 항상 그리고 절대적으로 신앙에 의함을 주장하는 것이 무교회주의입니다.



(2) 세크라멘트

제2의 논쟁점은 새크라멘트 즉 예전(禮典)의 문제입니다.

가톨릭교회에는 결혼도 포함된 7개의 비적(秘跡)이 있습니다. 프로테스탄트교회에는 그 중에서 세례와 성찬식 2개의 예전을 남겨 놓았습니다. 무교회에는 예전이 없습니다. 예전행위를 중요시하고, 신자로서의 필요조건이라고 보느냐, 아니냐가 교회와 무교회와의 논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 또는 최후 만찬 석상에서 "떡을 떼어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다. 이 술잔을 받아라. 이것은 내 계약의 피니라."하신 것이, 교회가 실행하고 있는 것 같은 형태의 예전을 행하라는 일반적인 명령이냐 아니냐는, 그 자체가 성서학자 사이에서도 의문시되고 있는 일입니다만, 그 해석론은 별개로 하더라도 예수의 명령을 지키는 중에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 전체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으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명령 중의 명령입니다. 그 외에 예컨대 세례를 준다든지 혹은 빵을 나누고 포도주를 마시라고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랑하라는 명령에서 보면 부수적인 것입니다.

예수 자신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신 일은 없습니다. 도 제자들과 같이 빵을 나누고 포도주를 마신 일도 생애에 단 한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면, 예수 자신이 많은 사람에게 세례를 베푸셨을 것이며, 또 소위 성찬을 하신 기사도 많을 것입니다.

세례나 성찬 식전을 예수의 제자 된 자의 생활에 있어서 최대 행사로 중요시하고 이것을 행하는 것이 신자와 불신자를 구별하는 표준인 것같이 생각하는 것을 예수님은 과연 기뻐하실 것인가, 노하실 것인가?

형식에 매여 영혼의 자유를 질식시키면 안 됩니다. 안식일을 위하여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때로는 고의로 안식일의 율법을 범하신 예수님이 교회의 전통으로 만들어진 예전을 중요시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세례나 성찬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해도 좋지만, 그 경우 교회가 정한 안수 받은 자격 있는 목사가 베푸는 것이 아니면 세례의 효과가 없으며 성찬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교회의 주장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장례식, 결혼식도 예전의 하나이기 때문에 교회의 유자격자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무교회주의에서는 세례나 성찬을 하고 싶으면 해도 좋으나, 거기에 무슨 자격을 찾지 않습니다. 신앙으로 한다면 누가 베풀든지 좋으며, 결혼식도 장례식도 친구가 신앙과 사랑으로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안수례를 받고 목사의 자격을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이 정한 전통적인 제도에 의해서 하나님의 일을 횡령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무교회의 주장입니다.



제3절 무교회주의의 원리와 실제



(1)


그러니까 무교회의 원리라는 것은,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다. 제도를 지키는 것도 아니다. 믿음에 의하는 것이다. 참 예배는 영과 진실로 할 것이지 예배의 장소나 방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원리를 주장하는 것으로 무교회주의의 본질은 순복음주의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의로 인정받는 것은 믿음에 의한다고 하면서, 교회에 속해야 한다든지 예전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은 순수한 복음이 아닙니다. 일체 그러한 제도가 구원에는 필요치 않다는 것이 순복음입니다. 무교회의 원리는 순복음입니다

그 원리에서 생긴 무교회의 실제방법이 있습니다. 무교회의 아주 큰 역사적인 공적은 복음을 교회라는 틀 밖으로 해방시켰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유대주의의 제한에서 해방시켜 널리 이방인에게 미치게 한 것 같이, 무교회주의는 복음을 교회라는 제도에서 해방시켜서 교회원이 되지 않아도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것은 실로 커다란 해방입니다.

그 전에는 구원은 교회 안에 갇혀있었고, 세례를 받고 교회원이 되지 않으면 에클레시아의 일원이 아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에클레시아에 참여하기 위해 제도적인 교회원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니까, 이것은 바울이 유대주의자와 싸우면서 "그리스도의 에클레시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고 유대인이 되지 않아도 좋다."고 주장한 것과 같은 대 개혁이며, 복음이 미치는 범위를 실로 넓은 세계를 향해 해방시킨 것입니다.



(2)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자의 범위가 교회 밖으로 확대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전도의 일도 교회가 정한 자격제한을 벗어나 모든 신자에 대해서 확대되었습니다. 우리는 만인사제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만인이 복음의 전도자입니다. 즉, 철저한 평신도 전도입니다.

무교회도 실제로는 일요일마다 같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말씀을 배웁니다만, 그 집회에는 정해진 제도나 영속적인 조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집회로서는 언제든지 해산할 수 있는 태세에 있습니다. 전도 장소나 시간에도 제한이 없고, 각자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각 사람의 주위에서 복음을 말할 기회가 있으면 복음을 말합니다. 가정전도, 직장전도는 무교회에서 가장 귀중한 전도입니다. 무교회는 소위 대중전도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3인 혹은 5인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같이 성서를 배우는 사람이 생기고, 그것이 세포와 같이 사회에 퍼지는 그런 방법으로 복음이 사회 속에 침투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교회에 의한 복음전파 방법입니다.

무교회에는 감독이나 목사는 없습니다만, '선생'이 있습니다. "무교회는 선생중심"이라는 비평도 있습니다. 즉 선생의 위치가 너무 중하다는 것입니다. 이 비평은 분명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문제를 지니고 있습니다. 좌우간 '선생'이 집회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무교회의 한 특징입니다.

무교회의 실천에서는 선생에 대한 인격적 진실을 중요시합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목사의 지위와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목사는 월급으로 고용합니다. 교회의 형편으로 목사를 면직할 수도 있고 전근도 있으며, 목사의 능력이나 근태에 대한 비평과 감독이 교회 속에 있습니다. 목사도 그것을 염두에 두고 교회원이 기뻐하도록 마음을 씁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권위에 대한 인격적인 존경과 진실이 결핍될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격적 진실 즉, 인간 대 인간의 진실한 관계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로서 근본적으로 필요한 태도입니다. "영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예수께서 가르치셨는데, '영'만이 아니고 '진정'을 특히 더한 것은, 인격적인 진실한 태도를 중요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인격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는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진실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생에 대해서 인격적으로 진실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시는 선생에대해서 인격적으로 진실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하여 인격적인 진실한 태도를 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생을 속으로는 멸시하고 혹은 비판하면서 집회에 나오는 것이라면, 무교회 집회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물론 선생은 하나님이 아니니 선생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은 아니고, 또 선생의 인물이 완전하다는 것도 아닙니다. 선생이 자기에게 적합치 않으면 다른 선생에게 가도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진정으로 대하는 사람은 사람에 대해서도 진정을 중요시합니다. 무교회에서 선생에 대한 진정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중요시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사람에 대해서 진정한 것과는 인격적으로 구별할 수 없습니다. 선생이 그리스도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한, 그 선생에 대해 마음으로부터의 진정으로 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교회주의의 방법이 선생중심인 것은 교회가 제도중심인 것과는 현저한 대조를 보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당대뿐이고 후계자를 만들지 않습니다. 무교회 모임은 단체가 아니므로 선생의 뒤를 이어 단체를 유지할 문제도 없습니다. 선생이 돌아가시면 그와 함께 선생의 집회도 해산되고 잡지도 폐간됩니다.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자 중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가 또 자기 집회를 시작합니다.

우치무라 간조 선생이 살아계실 때부터, 선교사나 교회 쪽 사람들은 후계자를 어떻게 하시는지 몇 번이고 선생께 질문했습니다. 선생은 "무교회가 진리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후계잘르 세워 주실 것이다. 나는 후계자를 만들지 않는다.'고 하셨고, 눈에 보이는 선생의 사업인 성서연구회도 '성서지연구' 잡지도 모두 선생 당대로 끝내 버렸습니다. 이것이 우치무라 선생의 참으로 훌륭한 점입니다.

선생의 제자들도 이 점에 있어서는 절대로 잘못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집회의 뒤를 특정 제자에게 맡긴다든가, 자기 잡지를 누군가에게 뒤를 잇게 한다든가, 그런 것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단체가 생기고, 단체가 생기면 벌써 무교회주의는 아닙니다. 무교회주의의 타락이 거기에서 생길 것입니다.



(3)


무교회주의는 종교적 세력이 아닙니다. 단체도 아니며, 세력도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 수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곧잘 질문합니다만, 무교회 인원이 몇천 명인지 몇만 명인지 알 방법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소속회원이란 것도 없습니다. 건물도 없습니다. 기금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다만 신앙에 의한 우인(友人)관계뿐입니다. 따라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 무교회 신자에게 금전적 부담을 끼칠 것도 없습니다.

교회가 타락하는 것은 그것이 재산이 있고 세력 있는 단체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교회 재산을 유지하는가, 세력을 확대하는가, 회원수를 늘리는가, 그러한 세상적이고 사업가적인 고려가 들어오기 때문에 복음의 순수성을 잃어버립니다. 예언자적인 정신을 잃고, 이 세상의 세력자인 지배계급에 영합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종교적 단체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무교회주의의 실제방법, 즉 프랙티스(practice, 실행방법)로서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무교회 전도자는 대체로 자신의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책을 쓴다든지, 잡지를 발행하고 가격을 매겨 팝니다. 즉, 저술업에 의해 생계를 꾸려 나갑니다. 회원의 기부금이나 회비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선생의 생활유지를 회원의 부담에 의존한다면, 거기에 경제적인 관계가 생겨서 무교회의 생명을 잃어버릴 염려가 있습니다.



(4)


그리고 무교회주의에는 사회의 실제문제에 대한 민감한 비판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나 이사야나 예수께서 한 것 같은 예언자적인 사회비판 정신이 무교회에서는 항상 신선합니다. 그렇다고 하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어서, '무교회는 순수입장을 취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도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무교회의 순복음은 이 세상적인 종교가 아니고, 사회적 종교도 아닙니다. 그것은 영적 종교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신앙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사회의 현실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언자적 정신, 즉 신앙에 의한 사회비판의 눈이 없으면 신앙의 생명 자체가 희박해져서, 개혁자가 되지 못하고 보수적인 현상시인론자가 되고 맙니다. 무교회주의는 하나님의 나라를 영적으로 대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혁신적, 개혁적 편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아니하면, 신앙 때문에 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을 일도 없습니다. 박해가 없는 곳에 진정한 신앙은 자라지 못합니다. 역으로 말해 진정한 신앙이라면 반드시 박해가 있습니다. 사회의 현실상태에 대하여 초월적 태도를 취하고 있으면, 모르는 사이에 보수적인 사상경향을 가지게 되고, 사회에서 박해받을 일도 없습니다.

무교회가 생명을 가지는 것은 전시 중에 전쟁정책과 천황숭배의 국가주의에대한 최대의 저항을 나타냈고, 그 때문에 박해를 받은 자가 무교회 아에서 여럿이 나온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무교회의 신앙태도가 거기에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무교회도 짠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말씀해 두고 싶은 것은 에밀 브룬너 박사가 일본에 와서 무교회를 자세히 관찰하고, "세계 기독교의 장래는 무교회 하기에 달렸다."고 강하게 말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미국에 강연을 갔을 때에 일본의 무교회주의를 소개하고 유럽에 돌아간 후에도 전문잡지에 일본의 무교회를 소개했습니다. 브룬너 박사의 소개에 의해 무교회가 세계적인 흥미와 주의를 끌게 되었으니, 무교회의 세계적 사명이라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브룬너 박사의 주의를 끌게 된 점 하나는 무교회의 전도방법에 있습니다. 즉 교회적 방법이 아니고, 평신도가 삼삼오오 작은 클럽을 만들어 직장전도를 한다는 방법입니다. 교회의 벽 안에 갇혀 있는 가운데 이미 기독교의 전도는 한계에 부딪혀 있습니다. 평신도에 의해서 실제 사회의 생활 속에 들어가는 방법이 아니고는 그 막다른 것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이 브룬너 박사의 견해입니다.

우리들로서는 전도방법이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무교회주의의 특색으로 이제까지 말한 것을 결론적으로 열거하겠습니다.

첫재는,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신앙에 의한 것이니 율법의 행위나 제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순복음의 입장입니다. 사람은 무교회주의라는 주의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무교회주의라는 주의로 구원받는다면 교회주의에 의해서 구원받는다는 것과 오십보 백보의 주장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영과 진정으로 믿는 믿음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 원리가, 복음 전도를 위한 특별한 성직자가 필요치 않고 평신도의 활동으로 충분하다는 실천적 행동에 나타납니다.

둘째는, 좋은 뜻의 민족주의가 무교회주의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모든 민족의 독립정신으로 나타나 민족부흥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렇지만 무교회주의는 어느 국민만의 종교는 아닙니다. 우치무라 선생은 '일본적 기독교'라고 말했습니다만, 그것은 결코 일본에만 통용되는 기독교라는 의미가 아니고, 세계 어느 민족에게도 자주 독립성을 부여하는 복음입니다. 어느 민족인지 상관 없이 하나님의 구원을 알게 하는 힘이므로, 그런 의미에 있어서 보편적, 인류적, 세계적인 가르침입니다.

넷째는, 무교회주의에는 예언자적 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서 본 세계 인류의 운명과 국민의 장래에 대한 예언과 경고가 영적 신앙의 불가분의 것으로서 무교회 안에 있습니다. 사회의 실제문제에 대해서 허공에 떠 있지 않고 땅의 소금, 세상의 빛으로서 빛난다면, 무교회의 종교개혁적 의의는 참으로 큰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단지 일본의 무교회로 그치지 않고, 세계 평화를 위해, 세계에 하나님의 정의와 정도가 행해지기 위해, 또 세계의 모든 국민, 민족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는 것으로서 세계적 사명을 가지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조직에 의해 한정되는 좁은 생각이 되지 말고, 정신 활발한 예수님의 생명 그 자체가 발로되는 복음이 무교회에 의해서 세계적으로 펼쳐저 나갈 것입니다. 무교회의 역사적인 의의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무교회의 장래가 일종의 교회주의로서 형식적으로 고정되어 버리는가, 혹은 무교회는 영원히 젊은 생명을 갖는 신앙의 힘인가? 현재 우리는 그 위기에 서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 무교회가 보수적으로 조그맣게 굳어 버리지 말고, 크게, 넉넉하고 자유롭게 세계적으로, 세계의 구원을 위해 활동하는 영적인 힘이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여러분 중 특히 젊은 분들이 잘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56. 6, 7, 8. 嘉信(가신))             


[차 례] [이 전] [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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