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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이 전] [다 음]


우치무라 선생·무교회주의·나

塚本虎二(총본호이: 쓰카모토 도라지)           

교회주의자 쪽에서는 우치무라 선생이 "나는 오늘날 유행하는 무교회주의가 아니다."('30년 1월)라고 말씀하신 것을 찾아내고 귀신의 목이라도 발견한 듯이 기뻐했지만, 선생님과 같이 다각형으로 말씀하신 것을 어느 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 확인하지도 않고 막연하게 인용하는 것은 난폭한 일이고, 우스운 일이다.

첫째, 그 말씀을 하실 무렵에는 아직 오늘날 같이 무교회주의가 유행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이가 너무 극단적으로 무교회주의를 주장하므로 싫증이 나서 하신 말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이'가 누구인지는 나도 모른다.

그러나 유행하는 무교회주의가 선생의 그것과 트린다는 것은 분명히 반면의 진리가 있다. 다른 무교회주의자의 일은 모르지만, 적어도 나 자신에 관한 한 교회사람들로부터 선생님의 것과 같다고 하거나 틀리다고 하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선생님도 종종 말씀하셨고, 나 자신도 역시 그것을 인정한다.

"자네는 교회 안에 들어간 일이 없으니까 마음껏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교회 일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네같이 철저할 수가 없다."라는 등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또 어떤 점에서 하면, 선생은 교회의 내정에 정통하셨기 때문에 -- 선생께 교회의 안 좋은 면의 뉴스를 알려드리는 것을 좋아하는 목사, 전도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 교회 공격에 있어서 그 준엄함은 도저히 나 같은 것은 비교가 안 된다. 언제였던가 자신이 전에 썼던 것을 보시고 "이런 것을 썼으니 아무리 교회로부터 막아도 할 수 없다."라고 하신 적이 있다.

좌우간 만년에는 교회 공격을 좀 늦추신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나의 무교회론이 너무 극렬하다고 "지금은 30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이끌어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라고 나의 논문에 부전을 부치신 것처럼(성서지식 5호 P25). 그리고, 그 무렵 언제나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의 교회가 너무나 무력해서 "약한 오늘날의 교회를 공격할 용기가 없다."라고 여기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 기독교계의 원로인 선생의 입장에서라면 당연하지만, 나와 같은 젊은 층은 아무래도 그런 기분이 되지 않아 더더욱 부르짖었기 때문에 선생님도 참을 수 없어 부전을 부치신 것 같다.

어느 날 밤, 선생님 서재를 방문하니 "자네 한번 '무교회'라는 잡지를 발행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씀이 있었다. 그 때 "호넹[法然:법연]에게는 호넹의 일이 있고, 신랑[親蠻(?)친만(?)]의 일은 할 수 없다. 나는 호넹으로 만족할 것이니, 지네는 신랑을 하게."라고도 말씀하셨다.

'무교회' 발행은 나의 숙원이기도 해서 바로 준비를 해서 출간하려 했으나, 막상 때가 되자 선생이 반대하셔서 중지하고 말았다. 그 때 "자네가 독립적으로 잡지를 내더라도 그 뒤끝은 내게 온다. 그러면 내가 나서서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독자들은 오히려 기뻐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 나이가 나이이니 흥분해서 혈압을 올리고 싶지 않다."라는 뜻으로 말씀하셔서, 그리고 그 무렵 에하라[江原萬里(강원만리)] 군이 "선생의 만년은 교회에서도 무교회에서도 좋아하는 분이 되도록 하고 싶으니 선생을 싸움에 끌어들이는 것은 좋지 않다. 미움받는 역할은 자네나 하게나."라고 말한 것을 그대로 선생께 전했더니 대단히 기뻐하시며 "자네가 아사셀의 양이 되어주게."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선생은 투지만만하셔서 선생의 '성서지연구'에 싣는내 논문이 과격하다고 하시면서 때로는 자신의 마음대로 내 원고에 교회의 욕을 써넣기도 하시고, 요소 요소에 ○표나 △표를 붙이기도 하셨다. 무엇인가 무교회론을 썼을 때에도 그것을 읽으시면서 느끼신 바가 큰 듯 빈정 섞인 말로 "자네의 의견이 정말일지도 몰라. 나도 자네와 같이 교회공격을 해볼까?"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

'성서지연구'에 기고한 나의 최후의 논문 '굳은 음식'을 보고 "이것은 자네가 나의 잡지에 해준 'grandest contribution'(지대한 공헌)이다. 제목은 온건하나 이 이상 격렬한 무교회론은 없다."라고 말씀하시며 연구지에 실어주셨다.

좌우간 내 기운에 넘쳐 심하게 쓰니까 여기저기서 불평이 나오고 구독을 중지하는 사람이 생기고 해서 선생님도 대단히 괴로움을 받았다고 한다(이것은 나중에 안 일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선생께서는 잘도 참고 묵묵히 그런 것을 자신의 잡지에 실으셨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선생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선생은 시인적인데 나는 법률가여서 이치에 철저하여 상대에게 심하게 느껴진 듯하다. 그리고 선생은 극단을 피하고 모든 것에 절도를 갖게 함을 잊지 않는 상식가임에 반해, 나는 무슨 일이든 이치를 따지고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이어서 나의 무교회론은 선생의 그것보다 철저하다. 아니, 선생에게는 아직 무교회론이라는 형식적 이론은 없었다.

선생은 그 유고 중에 자기의 무교회주의는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그 행위에 의하지 앟고 신앙에 의하다는 신앙의 귀결"이라고 쓰셨는데, 그것은 선생으로서는 오히려 예외적이고, 선생은 신앙과 무교회주의를 이론으로 결부시키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나의 논문을 읽고 "자네처럼 말하면 과연 무교회주의도 신앙의 'one piece'(한 부류)로군." 하셨다. 나로서는 뜻밖의 말씀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는 선생에게서 "신앙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신교 신앙을 배웠다. 또 한편 무교회주의(나는 그것을 '교회에 속하지 않아도 구원받는다'라는 뜻으로 해석했다)를 선생에게서 배웠다. 그런데 무슨 일이고 이론을 붙이지 않고는 못 견디는 나의 머리는 어느 틈에 이 두 가지를 결부시켜서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신앙만으로' 좋다고 여겼다. 따라서 가려 교회에 속하지 않아도 '신앙만의 신앙'만 있으면 우리들은 완전히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를 세웠다. 그리고 그것이 내 나름의 무교회론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 논리는 선생에게서 배운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후에 생각하니 선생은 이런 논리로 나에게 신앙이나 무교회주의를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나의 머릿속에서 두 가지가 제 멋대로 결부되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거의 10년간 미친 듯이 무교회론을 주장해 온 것은 요컨대 무교회주의를 이론적으로 신앙적 기초를 세우려고 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머리가 좀 냉정해진 오늘날에 있어서도 '신앙만'의 신교주의의 이론적 결론이 무교회라는 나의 주장을 바꿀 필요성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주장하는 무교회주의란 이것이다. 그리고 이 무교회주의는 그 근본정신에 있어서는 우치무라 선생에게서 배운 것과 거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나의 이론적 해설에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나의 신앙 그 자체(그것을 무교회적 신앙이라고 나는 이름붙인다)는 거의 선생의 것과 같고, 루터의 것과 같고, 바울, 요한의 것과 동일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만 동일하면 무교회주의의 이론을 세우는 것은 아무래도 좋다.

근래 무교회주의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 "교회주의와 무교회주의의 문제는 작은 문제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무교회주의가 교회에 가느냐 안 가느냐만의 문제라면 -- 선생이 이미 "나의 무교회주의는 어떤 사람은 성공회에 어떤 사람은 장로교회에 가는 것같이 다만 나는 교회에 가지 않는다는 것뿐이다."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 그런 의미로서의 무교회주의라면 아침밥을 두 공기 먹느냐 세 공기 먹느냐 쯤의 작은 문제이다.

그러나 만일 교회주의가 "교회에 가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라고 주장하는 것이고, 무교회주의가 이에 대해 "교회에 나가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교회주의와 무교회주의 싸움은 우주적인 문제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으로 완전한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무교회 문제를 작은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도 무교회주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우리들이 믿는 바로는 신앙은 한 사람 한 신앙이다. 거기에 신교주의의 철저함이 있다. 그런 뜻에서 제자인 나의 무교회주의가 선생보다 극단적이고 철저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혹은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 나는 그것을 비교 연구하는 데 흥미가 없다. 다만 선생에게서 배운 대로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우러르며 나의 달릴 길을 달리려고 한다.

('36. 12. 성서지식 84호, 저작집 속 1)           


[차 례] [이 전] [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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