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Social Fairness

조회 수 471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차 례] [이 전] [다 음]


무교회주의의 장래
(가루이자와 강연 요약)

塚本虎二[(총본호이) 쓰카이모토 도라지]           

무교회주의의 장래를 아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뿐이다. 또 예언자가 아닌 나로서는 이것을 예언할 수도 없다. 그러나 무교회주의의 성격으로 미루어보아 약간 그 장래를 예측하려고 한다.

무교회주의의 장래를 아는 데는 그 현재를 알고 과거를 알고 '무교회란 무엇이냐?'라는 문제를 풀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러나 이것을 정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는 오늘날까지 종종 이것을 정의하고 기초를 세우려 아마도 일본에서 처음으로 시도해 보았지만 지금까지 결코 성공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것이 조직이 아니고 정신이고, 형식이 아니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정의한다면 무교회주의란 "사람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의하지 않고 신앙에 의한다."라는 바울의 고백, 루터의 소위 "신앙만에 의하여"라는 신앙에 철저히 살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크리스첨으로서의 필요한 유일하고 충분한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그렇지만, 무교회주의는 주의가 아니다. 또 무주의(無主義)를 주의로 삼는 것도 아니다. 교회원 되는 것을 구원의 필요 조건으로 삼지 않음과 동시에, 교회원 되지 않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례, 성찬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따라서 교회원 중에 무교회 신자가 있고, 무교회주의자로 자칭하는 사람 중에 교회주의자가 있다. 무교회적 교회주의, 반교회적 교회주의라고나 이름 붙여야 하리라.

무교회주의는 기독교와 더불어 오래다. 그리스도가 최대의무교회주의자이셨다. "살리는 것은 영이다. 육은 무익하다."라고 말씀하신 그는 무교회주의의 주동자이시다(요 6:63). 이 예수의 생명을 산 바울이 무교회주의이고, 바울의 정신을 이어받은 루터가 무교회주의이다.

그러나 무교회주의라는 명칭은 일본에서 우치무라 선생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1901, 1902년경으로 생각된다. 신앙자체는 물론 선생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다. 다소에 꽃피고, 비텐베르크에 꽃핀, 갈릴리 호반의 꽃씨가 야마토의 섬에 뿌리를 내리고 꽃피었을 뿐이다. 다만 풍토와 기후가 다른 탓으로 다소, 비텐베르크와 그 색깔, 향기의 다른 데가 있을 뿐이다.

선생의 50년으 전도에 의해 무교회주의는 널리 일본에 씨뿌려졌다. 그리고 선생의 죽음으로써 그것이 강하게 뿌리를 뻗고 이미 싹트기 시작했다. 무교회주의는 은연(隱然)히 또, 현연(顯然)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무교회주의는 이미 어제의 그것과는 다르다. 곳곳에서 교회와의 사이에 알력의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교회도 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은 회원에게 금독령(禁讀令), 금족령(禁足令)을 펴 회원의 무교회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법석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시베리아 벌판에 철조망을 치고 공산주의를 막으려는 것만큼 무효한 지시리라. 이제 무교회주의는 마른 벌판에 불을 지른 것같이 훨훨 타 번지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에 있어서 무교회주의의 장래는 어떠할까? 어떤 사람들은 이제 일본교회는 무교회주의에 점령되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화 있을진저"이다. 이것은 무교회주의가 마침내 교회주의로 타락했을 때이기 때문이다. 마치 반 유대교인 기독교가 가톨릭주의로 타락하고, 반 가톨릭주의인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다시 가톨릭주의로 타락한 것같이.

무교회주의가 무교회주의인 한은 절대로 다수가 될 수는 없다. 무교회주의가 다수당이 되는 것은 그것은 관념자체의 모순이고 무교회주의의 자살이다. 기독교은 항상 소수자의 종교이지 그것이 다수가 되었을 때에는 이미 참 기독교는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참 모습은 모든 제자에게 버림을 받고 다만 혼자서 십자가에서 죽어갈 때의 예수에게 있다고 항상 나는 생각한다.

하나님이 호렙산에서 엘리야에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7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19)라고 말씀하신 것같이 7천 명이 무교회 신자의 수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 기독교는 참으로 미약하지 않은가? 그래도 전도의 열심이 식어버리지 않겠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움직이지 않는다. 사실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을 의심하는 자는 자기 자신 속에 과연 얼마만큼이나 순진한 '신앙만의 신앙'이 있는가를 보아라! 사람은 나면서부터 가톨릭이다. 자기의 대부분은 가톨릭이고, 현재의 무교회는 다음 순간에 있어서 이미 가톨릭이 아닌가.

어떤 자매가 "무교회주의는 하나의 생명이어서 이것을 유지하는 자는 정해진 사람들이 아니고, 항상 순간 순간 변하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말했는데, 참으로 그대로이다. 우치무라 선생이 항상 무교회주의가 아니고, 선생의 고제(高弟)가 반드시 무교회주의는 아니다. 우리들은 가톨릭 신자 중에 교회원 중에 오히려 훌륭한 무교회주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누가 진짜 무교회자인지 다만 하나님만이 아신다.

7천 명 혹은 7천만 명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어느 때는 단지 한 사람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괜찮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하나님이 그 영을 넣어주셨을 때 그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하여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상 2천 년의 교회역사에 있어서 몇 번이나 숨은 어느 한 사람의 힘에 의하여, 기독교가 그 명맥을 이어왔으리라.

무교회의 장래 -- 참 기독교의 장래는 위에 말한 바오 같이 인간적 타산으로 하면 아주 마음이 약해진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 나라 건설의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숫자계산으로 신자가 늘어서 마지막에 저 세계가 전부 크리스천이 되게 하여 하나님 나라를 만든다는 생각이나 방법은 인간적 얕은 꾀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고 하신 예수님의 두려운 예언을 생각해 보라. 무교회주의는 영원한 소수당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 순진함이 있고 전투력이 있고 진지함이 있다.

('32. 10. 성서지식 34호)           


[차 례] [이 전] [다 음]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수
10 각 필자 글들 나의 무교회주의-총본호이(쓰카모토 도라지) 2007.09.22 4977
» 각 필자 글들 무교회주의의 당래-총본호이(쓰카이모토 도라지) 2007.09.22 4718
8 각 필자 글들 우치무라 선생-무교회주의-나 - 총본호이(쓰카모토 도라지) 2007.09.22 5381
7 각 필자 글들 무교회주의란 무엇이냐?-시내원충웅(야나이하라 다다오) 2007.09.22 5270
6 각 필자 글들 무교회주의의 전선통일-정지인 (마사이케 징) 2007.09.22 5243
5 각 필자 글들 무교회주의의 사명-정지인(마사이케 징) 2007.09.22 4934
4 각 필자 글들 무교회에서의 공동체 형성-이와쿠마 나오시 2007.09.22 7089
3 각 필자 글들 무교회란 무엇인가?-고교삼랑(다카하시 사브로) 2007.09.22 5322
2 각 필자 글들 새 무교회주의-무우일랑(다케유 이치로) 2007.09.22 10328
1 필자 소개 2007.09.22 7180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Next
/ 2

allbaro.net since 2007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Sketchbook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