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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이 전] [다 음]


나의 무교회주의

塚本虎二(총본호이: 쓰카모토 도라지)           

최근 어느 기독교 잡지에 '요즘 유행하는 무교회주의'라고 쓴 것을 보았다. 과연 무교회주의가 요즘 기독교계에 유행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나는 모른다. 그러나 무교회주의라는 말이 어느 잡지에, 혹은 강단에서 논의, 비판, 찬성, 공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 사람들은 정부가 무정부주의나 공산주의를 무서워 떨고 있는 것같이 이것을 무서워하고, 무작정 이것을 억압, 박멸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욕하고 때리기전에 적의 정체를 잘 살펴보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것이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의 의무일뿐더러, 만일 그렇지 않을 때에는 자기 마음대로 만든 지푸라기 인형과 씨름하는 꼴이 될 것이다.

나는 오늘날까지 종종 무교회주의를 주창했다. 어떤 사람들은 낵 무교회주의의 첨단을 가는 것같이 말한다. 좌우간 나는 오늘날에 이르도록 여전히 무교회주의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아마도 영원히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무교회주의자가 되게 하실 것 같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나는 내가 말하는 무교회주의가 세상의 소위 무교회주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은 나의 신앙에 '무교회주의'라는 이름을 붙이는것이 타당치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름이야 아무래도 좋다. 이르이 타당치 않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이 이름을 버리겠다. 요는 내가 의미하는 무교회적 신앙의 내용, 소위 무교회주의와의 같고 다름[異同(이동)]을 명백히 하는 일이다.

나의 주장하는 무교회주의란 '순복음주의'라는 뜻이다. 철저한 신교주의, '신앙만'의 신앙을 뜻하는 거이지, 교회문제가 아니다. 교회 회원이 되느냐 아니냐, 세례를 받느냐, 성찬식에 참여하느냐 않느냐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은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다. 성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무슨 교회의 회원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우연한 일, 혹은 부득이해서 된 이이지 나의 무교회적 신앙의 당연한 귀결은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일 어떤 교회에도 입회하지 않는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령 내일 어느 교회에 들어갔다고 해서 나의 무교회주의가 변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나는 무교회주의를 말할 것이다.그것이 나의 유일한 복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무교회주의라는 말이 전혀 생소하지 않다. 혹은 '복음제일주의', '신앙만의 주의', '교회 또는 교회제일주의에 대한 반대주의'라고나 말해야 할지, 요는 신앙만, 그밖의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주의이다. 순 신교주의, 반 가톨릭주의이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서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무교회주의' 같은, 교회가 싫어하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오해하게 할 말을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단순하게 '순복음주의'라고 말하면 되지 않겠나?"라고.

타당한 비난이다. 그런데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 신교 교회는 너무나도 순복음으로, 완전히 가톨릭적인 신앙 -- 교회중심, 형식본위의 신앙이 아름답게 순복음 간판을 달고 주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만일 내가 나의 전하려는 복음을 단순히 '순복음'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교회의 소위 사이비 순복음으로 오해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 개신교회의 신앙을 나는 대체로 퇴화한 가톨릭주의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 있어서, 내가 믿는 '신앙만' '그리스도만' '하나님만'의 신앙과 맞지 않는다. 그러한 교회 중심의 시니교적 교회주의에 참 신교적 순신앙주의는 반항한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 무교회주의는 이것을 적극적인 면에서 말한다면 순복음주의 '신앙만'의 신앙주의이고, 이것을 소극적인 면에서 말한다면 가톨릭교회의 교회주의 및 현대 개신교회의 교회주의에의 반항이다. 따라서, 세상의 소위 많은 무교회주의와는 다르다.


1.극단걱인 무교회주의
기독교는 본래 교회 같은 제도가 없는 순 영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제도와 형식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우리는 보이는 교회를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나는 그것과는 다르다.

그리스도께서 제도나 형식에 흥미를 갖지 않으시고, 그의 종교가 극단으로 순 영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형식을 배제해야 된다는 결론을 낳지 않는다. 우리들은 인간이기에 육에 쓰고 사는 한, 그 사상 감정이 어떠한 물적인 발표의 형식을 취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자신도 결코 그런 뜻에서 순 영적이 아니고, 절대 형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셨다. 또 그럴 리가 없다.


2. 교회 개조주의
현대교회의 부패와 타락과 무력에 분개해서 이것을 파ㅚ하고, 달리 참된 그리스도의 이름에 걸맞는 순정한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이상적인 원시교회로 되돌리려는 운동이다. 나는 이에 찬동하지 않는다.

교회가 사람의 집단인 한, 영원히 이상적인 교회의 출현은 없을 것이다. 원시교회라 하더라도 많은 병폐가 있었다. 아마도 그런 무교회주의자들의 생각하는 이상적 교회도('교회'라는 이름을 안 부인다 하더라도) 얼마 못 가서 같은 병폐에 빠질 것이다.


3. '교회에 가지 않는'주의
이것이소위 무교회주의자 대다수가 신봉하는 바이다. 이유는 어쨌든 기성교회의 회원이 되지 안호 이와는 떨어져서 신앙생활을 하려는 주의이다. '교회없이'주의이다. 무교회주의라는 명칭은 가장 잘 그들에게 들어맞는다. 그들은 말한다. 그리스도는 과연 교회를 세우려 했는가, 아닌가를 우리는 모른다. 또 어떠한 형식으로 교회를 세우려 하셨는지를 우리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좌우간 우리들은 교회에 들어가지 않는다. 교회 신자가 혹은 가톨릭교회에 혹은 성공회에 혹은 장로 교회원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교회에 들어가지 않는다라고, 즉 유(有) 교회주의에 대해서 '교회없는 주의'이다. '현재의 소위 교회에 속하지 않는'주의이다. 따라서 이런 무교회주의 중에는 ①전혀 단체생활을 하지 않고, 개인적 신앙생활에 만족하는 자. ②또 '교회'라는 이름은 쓰지 않더라도 형식상 소위 교회와 별 차이 없는 단체생활을 하는 자가 있다.

나는 그들이 기성교회의 진영에서 나온 것 또는 거기에 들어가지 않는 데 동정하는 자이다(나도 그런 사람의 하나이다). '신앙만'의 신앙으로 기성교회 내에 생활하는 것은 물고기가 육지에 사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 만일 개인적, 혹은 고립적 신앙생활을 이상이라고 한다면 나는 찬동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어디까지나 협동적이지 않으면 아니 된다(반드시 단체줜이 되라는 말은 아니다). 무교회자 중에 종종 극단적인 고립적 독존적인 이를 볼 수 있는 것은 현대교회의 집다적인 너무나 집단적인 데 대한 반동이라고 할 수 있으나, 큰 잘못이다.

2. 무교회의 사람들이 단체생활을 하는 것은 좋다. 교회사람들이 이것을 비난해서 무교회라면서 자기들도 마찬가지로 교회를 만들고 있지 않느냐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 다만 이러한 무교회의 단체가 '교회'라는 이름을 쓰지 않는 것만 교회와 다를 뿐, 그 신앙생활의 내용에 있어서 소위 교회와 다를 것이 없는 아니 혹은 그 이상으로 가톨릭적인 '무교회 교회'가 적지 않다. 그리고 교회에 속하지 않는 그 자체가 무슨 좋은 일이나 되는 듯이 생각한다. 나는 그러한 무교회주의자를 미워한다. 교회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는 아무런 좋은 것이 나올 수 없다. 이상 모두가 교회를 대상으로 한다. 이를 부정하고 이를 개조 개혁하고 혹은 이에 들어가지 않는 것을 주의 또는 주장, 또는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만일 '교회부정(敎會否定)' '교회불속(敎會不屬)'으로써 하나의 주의, 또는 신앙으로 한다면 그것은 이미 '무교회적' 교회주의이니우리들의 적이다. 요컨대 문제는 교회에 가느냐 안 가느냐가 아니다. 가고 싶은 사람은 가라. 가기 싫은 사람은 갈 필요 없다.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말이다. 이것을 아무래도 좋지 않다라는 사람이(교회사람과 병적인 무교회자는 그렇게 말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교회주의자라고 말하고, 가톨릭주의자라고 말한다. 나는 생명을 걸고 그들과 싸우나. 신교주의의 적이 곧 복음의 적이기 때문이다.

위에 적은 의미에 있어서 나는 무교회주의자다.그리고 이것으로써 루터의 신교주의, 바울의 '신앙만'의 신앙주의, 그리스도의 생명인 복음의 정신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러한 순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무교회주의가(명칭은 극히 타당치 못하지만) 해 돋는 제국에서 크게 발육 성장하여 순복음주의를 위해서 공헌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자이다. 또 그를 위해 많은 순교적 투사의 배출을 기원하는 자이다.

사랑하는 젊은 벗들이여, 우리들의 애인 신교주의를 위하여 크게 싸우지 않으려는가? 보라, 그녀는 '밤새도록 슬피 울어' 어룰에 눈물이 흐르고 있지 않을까!(애 1:2)

('30. 4. 성서지식 4호, 전집속 1)           


[차 례] [이 전] [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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