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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루터를 비방하는 주장과는 달리, 농민전쟁이 발발한 것은 루터의 복음 때문이 아니라, 당시 지배 계급으로서 세속 권력가지 장악하고 종교의 이름 아래 착취를 하던 카톨릭 교회에 대한 불만이 큰 요인이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에텐하임뮌스터(Ettenheimmunster)의 한 농민은 슈트라스부르크 시의회에 농민들의 의도를 증언했다.
우리들은 제후, 영주, 도시, 마을, 또는 귀족의 신민들을 해칠 생각이 없다. 우리의 공격 대상은 오직 수년 동안 우리를 학대해 온 수도원과 수도사들이다.17)
비텐베르크 북쪽의 한 농민들은 엘방엔(Ellwanger) 대성당에 예속되어 있던 이웃 농민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성직자들의 지배에서 벗어나 다른 영주들 밑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한다.18)
농민전쟁 당시 "마치 중앙 뉴스 데스크에 앉아 있는 것 같았던"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는 농민전쟁을 본질적으로 "성직자 나부랭이들에 대한 전생"(Pfaffenkrieg)이라고 하였다. 에라스무스는 농민전쟁이 제후들에 대항한 폭동이 아니라, 농민들을 착취하던 카톨릭 수도원에 대한 저항이며, 농민들의 불만은 정당하다고 하였다. 에라스무스는 농민전쟁이란, 법의 통제를 받지 않고 "특권 가

17) Henry F. Cohn, "Anticlericalism in the German Peasants' War 1525," Past and Present, 83(1979), 28.
18) Ibid., pp.1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