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행동의 일관성

4. 농민전쟁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1)

by scomsa posted Sep 26, 200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전]        [다음]

한 바젤(Basel)의 사건을 예로 들었다. 반란으로 유혈사태가 계속될 경우는, 살인을 계속하는 폭도들에 대한 무력이 확실히 필요했지만, "이제 그들은 패배했고, 다른 사람들이므로 처벌과 함께 자비를 받아 마땅하다"고 루터는 주장했다. 1525년 7월 21일에는 아이슬레벤 출신의 농민전쟁 가담자를 위해 마인쯔의 알브레히트(Albrecht von Mainz)에게 중재해 주는 등, 수년 동안 루터는 뮐하우젠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도왔다.147)
농민전쟁 후 새로 구성된 에어푸르트 의회가 루터와 멜랑히톤에게 자문을 위해 방문을 요청했으나 두 사람 모두 갈 수가 없어, 9월에 서면으로 의견을 물어 왔는데, 루터는 의회의 권위를 강화하고 농민전쟁 참가 혐의자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도록 하는 한편, 대학을 지워나는 것을 칭찬하였다.148)
이상으로써 우리는, 일부 농민들의 약탈과 살인 등으로 유혈사태가 더욱 확대될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루터가 계속 반란을 반대하며 유혈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사실을, 무고한 희생자들의 유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조치가 불가피하다며 제후들에게 촉구한 것, "다른 농민폭도들에 대한 반대", 뮌쩌에 관한 하나님의 심판 주장, 패배한 농민들에 대한 자비 호소 등으로써 입증하였다.


4. 농민전쟁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


농민전쟁에 동조적인 사람들의 불만이 가득한 오해, 제후들의 자기 합리화를 위한 루터의 글 이용, 코흘레우스 등 카톨릭 측의 비난 등이 쏟아졌지만, 심지어 루터에 호의적이었던 사람들 중에서도 루터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도 들어왔지만, 루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루터는 양심상 부끄러운

147) Brecht, op. cit., S.187.
148) WABr 3,491-2,570-1. WA 18,531-40.

[이전]        [다음]


Articles

5 6 7 8 9 10 11 12 1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