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행동의 일관성

3. 농민전쟁의 유혈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9)

by scomsa posted Sep 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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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반란을 단념해서 목숨을 보존할 많은 영혼들에게는 축복"일 것이므로, "비극 하나가 다른 것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133) 또한 뮌쩌의 실패는 그를 따르던 추종자들이 광신주의에서 돌아서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랬다.134) 루터는, "다른 농민폭도들에 대한 반대"에서 표명한 생각과 마찬가지로, 반란에 참가한 일부 농민폭도들이 약탈과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는, 바인가르텐 협약과 같이 협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조속히 반란을 일으킨 일부 농민폭도들만을 처벌해서 반란과 유혈사태가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계속 내리고 있는 것이다.135)
따라서, "살인의 영"136)인 뮌쩌에 대해 경고하고, 농민들이 더 이상 반란에 참여하지 않게 하며, 제후들이 승리했다고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 하며 농민들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하기 위해 루터는, 뮌쩌의 4개의 편지에 자신의 의견을 쓴 소책자 "토마스 뮌쩌에 관한 끔찍한 이야기아 하나님의 심판"(Eine schreckliche Geschichte und ein Gericht Gottes uber Thomas Munzer)137)을 발행

133) WABr 3,508.
134) 실제로 루터는 신앙 지도자로서, 아이슬레벤 출신의 크리스토프 마인하르트(Christoph Meinhart aus Einsleben)를 돕고자 했다. Brecht, op. cit., S.183.
135) 이러한 루터의 견해는 1525년 5월 23일과 5월 30일에 루터가 뤼엘에게 보낸 편지 등에 잘 나타나 있다. WABr 3,504-13.
136) "mordgeyster" WA 18,367,11.
137) WA 18,367-74. 루터가 뮐러(Kaspar Muller)가 보내준 것으로 만든 이 소책자에는, 뮌쩌가 1525. 4.26,7 경 알슈테트(Allstedt) 시민들에게 보낸 편지와 만스펠트의 에른스트 백작(Ernst von Mansfeld)에게 보낸 1525년 5월 12일자 편지, 만스펠트의 알브레히트 백작(Albrecht von Mansfeld)에게 보낸 1525년 5월 12일자 편지, 그리고 "프랑켄하우젠의 그리스도인 모임"(Christliche versamlunge zu Franckenhausen)의 명의로 알브레히트 백작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뮌쩌는 에른스트를 "비참하고 초라한 구더기 껍데기"(eiender, dursstiger maden fack)라고 부르며, 프랑켄하우젠으로 와서 공개적으로 죄의 용서를 받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다. Max Steinmetz, Das Muntzerbild von Martin Luther bis Friedrich Engels(Berlin, 1971), 20. Stauffer, op. cit., p.124. WA 18,3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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