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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강제로 잡고 있는 농민들을] 찌르고 치고 죽여라.[밑줄: 글쓴이]129)
루터는 이러한 참담한 유혈 사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반란의 비극을 경고하며, 이러한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이라도 바치고 싶은 심정을 몇 일 전 "평화 권고"에서 토로한 바 있다.
이 참담하게 불행한 일에서 가장 나븐 것은 양쪽이 모두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를 맞으리라는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내가 막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내 목숨을 내 놓고 죽을 수도 있으련만.130)
처음에는 아무것도 농민들의 반란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고, 제후들은 손도 못 대고 있어, 아무도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던 상황에서 루터는 "다른 농민폭도들에 대한 반대"로써 단호한 조치를 제후들에게 권고한 것인ㄴㄴ나, 이 글이 제후나 농민들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프랑켄하우젠의 유혈사태가 벌어졌다.131)
헤센의 필립(Philipp von Hessen), 작센의 게오르크(Georg von Sachsen), 브라운슈바이크의 하인리히(Heinrich von Brauschweig), 만스펠트의 알브레히트 백작과 에른스트(Grafen Albrecht und Ernst von Mansfeld) 등 제후들은 5월 15일 프랑켄하우젠 전투에서 뮌쩌가 이끌던 농민들을 참패시켜, 농민들 수천 명이 죽었고, 뮌쩌는 체포되었으며, 제후들의 농민들에 대한 잔인한 재판이 시작되고 있었다. 만스펠트의 뤼엘은 이 소식을 루터에게 5월 21일자 편지로 전했다.
이에 대해 루터는, "불쌍한 사람들[농민들]이 그토록 끔찍하게 다뤄지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132)이지만, 달리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이러한 사태를

129) LW 46,54. WA 18,361.
130) LW 46,42. WA 18,331.
131) Bornkamm, op. cit., p.374. Aland, Die Reformatoren, p.355.
132) WABr 3,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