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행동의 일관성

1. 농민전쟁의 발발 방지를 위한 노력(14)

by scomsa posted Sep 26,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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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허락하고자 한다. 그러나 주먹을 쓰지는 말아라. 그러면 우리의 일이 된다. 그렇지 않으려거든 나라에서 나가라."61)

루터는 종교상의 토론과 자유는 보장되고 중시되어야 하지만,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또한 종교상의 일이라는 명목하에 정부가 폭력이 행사되는 것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고 하고 있다. 통치자가 무력과 폭력을 막아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은 중대한 책임이라고 본 것이다. 폭력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는 루터는 이 편지의 마지막 부분을, 뮌쩌가 성서를 이용하여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을 성서에 근거해 비판하였다. 뮌쩌는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나안 사람들의 우상을 부수라고 명하신 것 등62) 을 들어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려 하지만, 루터는 아브라함의 이삭 제사, 할례, 금지의 예 등으로 반박했다. 구약 시대의 신자들의 행위를 본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을 신약 시대에 맞게 본받는 것이 올바른 신앙인 것이었다. 오늘날은 아무도 아브라함처럼 장남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으며, 남자 어린아이는 반드시 할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으며, 가나안 사람들을 죽였던 것처럼 적들을 다 죽여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루터는 뮌쩌의 이러한 잘못된 종교관이 결국은 더 큰 유혈사태를 불러올 것을 알고 단호한 비판과 경고를 한 것이다.63)
루터의 이 공개서한은 1524년 8월 3일 알슈테트에 알려졌다.64) 뮌쩌는 8월 1일 바이마르의 청문회에 갔다가 알슈테트로 돌아온 지 며칠 뒤인 8월 7일 밤중 몰래 알슈테트의 성벽을 타고 넘어 튀링엔의 자유 제국도시인 뮐하우젠으로 갔다.65)

61) LW 40,51.
62) 출애급기 23:24, 34:13. 민수기 33:52. 신명기 7:5, 12:3 등.
63) Stauffer, op. cit., pp.116-7.
64) WA 15,203.
65) Loewenich, op. cit.,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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