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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았다. 루터의 편지들은 이러한 루터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170)
이러한 인식과 아울러 루터는 자신의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뢰베니히가 지적하듯이, 루터는 "총명한 신학자, 언어의 창시자, 예술가, 영웅, 주목할 설교자이자 목회자"이지만, 멜랑히톤이 장례 예배에서 말한 것처럼, 무엇보다도 "예언자"였다. 루터는 이 칭호를 겸손하게 사양했지만 항상 예언자의 사명을 의식하고 있었다. 뢰베니히는 "예언자란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사자(herald)가 된 사람"이라고 하면서, 루터는 "성서의 선생"으로서 소명을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서 선택하신" 예언자의 사명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했다.171) 루터는 자신이 활동했던 독일에 대해서 특별한 의무감을 느끼고 자신을 "독일인의 예언자"172)라고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루터는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독일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173)
별들을 보고 독일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에 근거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매일 하나님을 격노시켜 하나님께서 우리를 멸망시키도록 해서, 독일이 큰 곤경을 겪지 않고는 유지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174)

170) Preserved Smith and Charles M. Jacobs, eds. Luther's Correspondence and Other Contemporary Letters (Philadelphia: The Lutheran Publication Society, 1918), II, 125,318,432,470,512. [LW 46,18.n.3.]
171) Loewenich, op. cit., pp.385-6.
172) LW 47,29. WA 30III,290. 이것은 요나스(Justus Jonas)가 루터에게 편지를 보낼 때, 루터는 논쟁에서 확고하다고 찬사를 보내며 쓴 표현이라고 한다. Cf. Julius Kostlin, Martin Luther: Sein Leben und seine Schriften, (2 vols. Berlin, 1903), II,215,625-6. LW 47,29,n.33.
173) Loewenich, op. cit., p.386.
174) WATr 3,no.3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