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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타서 몰면, 그 말은 사탄이 원하는 대로 원하고 간다. 말이 자신을 모는 두 존재에게 달려가는 것을 선택할 수 있거나 그 존재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을 모는 두 존재 자신들이 그 말을 소유하고 통제하고자 투쟁하는 것이다.133)
또한, 루터는, 하나님은 역사 안에 어디서나 활동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전장(戰場)인 동시에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의 전쟁으로 보았다.134) 그러나 이 하나님은 사탄과 대등한 존재가 아니었다.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은 사탄이 유혹자가 되게도 할 수 있고, 동시에 사탄이 정복되게 할 수도 있다.135) 루터에게 악마란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 또는 하나님의 진노 자체로 인식되었다. 틸리히는 루터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인지, 악마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인지 분명치 않을 때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136)
루터는 악마가 루터의 복음의 재발견을 "참아 내지" 못할 것이며, 다시 한 번 무서운 힘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복음에 대항하여 모든 세력을 결집시킬 것이라고 보았다. 루터는 하나님의 종교개혁보다는 반동 종교개혁이 먼저 일어날 것이며, 악마의 "진보"는 종말의 표시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役事)하는 곳 - 인간들 안과 인간의 역사 - 에는 부정(否定)하는 자 즉 악마

133) LW 33,65-6.
134) WA 18,656.
135) Tillich, op. cit., p.249.
136) 이러한 루터의 악마관은, 악마의 실체를 부정한다 할지라도, 악마로 상징되는 "죄"에 대한 루터의 인식의 깊이와 그 해결 방법을 보여준다. 이 점을 틸리히는 "모든 사람은 죄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루터보다 더 개인과 집단에 있는 악의 구조적 힘을 잘 알지 못했다"면서, 루터는 "은혜의 구조"(a structure of grace)에 대립되어, "은혜의 구조"만이 해결할 수 있는 "악마의 구조"(a demonic structure)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Ibid., p.2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