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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2 22:06

52. 다복[多福]한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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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이 전] [다 음]


52. 다복[多福]한 베드로



마가복음 제 16장 1 - 8절의 독해

참조
마태 제28장 1-8절
누가 제24장 1-12절
요한 제20장 1-18절

성서 본문을 일독(一讀)하면 오른쪽[옮긴이주: 위] 4복음서에 공통한 대의(大意)는 누구에게든지 있었다.
베드로 여짜오대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게 않겠삽나이다. ······베드로가 간절히 말하대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모른다 하지 않겠나이다······(마가 14:29~31)
라고. 베드로는 자신의 진심을 토로하는 동시에 모든 제자들의 본심을 표시한 것이며 또한 2천년 후 오늘까지의 온 신도들의 적성(赤誠)을 대언하여 준 것이었다. 기독신자로서 누가 베드로를 경애하지 않으리이까.

그런데 통분한 일이 아닌가. 베드로에게 대한 예수의 예고는 너무도 속하게 적중하여 버렸다. 우선 베드로는 스승이요, 주이신 예수의 일생 최대 위기인 겟세마네의 기도에 「땀 흐르는 것이 큰 피방울이 흘러 땅에 떨어지는 것 같을 때」(누가 22:44)에도 일시(一時)를 깨어있지 못하고 육축과 같은 본능이 지배하는 대로 잠에 빠져 있어 나중 예수께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동정의 말씀을 감수하지 아니치 못하였다.

다음에 베드로는 제사장의 앞마당에서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하여 버렸다. 이 1절을 읽을 때는 독자 자신의 명의를 베드로에 바꿔 놓고 읽음이 제일 유효한 독법의 하나일까 한다.
1, 베드로는 아랫마당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베드로가 불쏘임을 보고 말하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한 자로다」하거늘, 베드로가 아니라 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하며, 앞마당으로 나가니 닭이 우는지라.
2, 여종이 또 보고 곁에 섰는 사람에게 다시 말하되 「이 사람도 저 무리라」하되, 또 아니라 하더니,
3, 조금 있다가 곁에 섰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분명히 저 무리로다」하거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말하되, 「너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거늘 베드로가 예수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 하리라」하심을 기억하여 생각하고 울더라(마가 14:66 이하).
이 미말(尾末)의 일구(一句) 「생각하고 울더라」의 원문은 매우 강한 의미인데, 역문(譯文)에는 그것이 나타니지 못하였다. kai epibalon eklaien의 원의(原意)는 「몸을 땅에 던져 울었다」, 또는 「머리를 가리우고 울었다」는 뜻이므로 이것을 누가 22장 62절의 「곧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니라」는 기술과 종합하여 「전력을 다하여 몸부림치면서 방성 통곡하니라」고 읽으면 당시의 베드로를 생각함에 유조(有助)할까 한다.

한번 입 밖에 나온 허언(虛言)을 고집한 것이 순간에 저를 악에서 더 악한 데로 떨어지게 한(A lie once told was persisted in, and he quickly went from bad to worse.) 결과의 자아를 발견할 때에 아아 동정할 베드로는 처음으로 전율한 것이었다. 발분하고 또 통회한 것이었다. 오호라, 이를 갈고 혓줄기를 끊어버린들 쾌할손가, 두발(頭髮)을 뽑고 근골(筋骨)을 마구 찢은 들 미칠손가. 저는 오직 「하늘이여, 무너지라. 땅이여, 비산(飛散)하라」하고 성량(聲量)을 다하여 호읍(呼泣)하는 외에 능사(能事)가 없어진 것이었다. 베드로가 「생각하고 울더라」하여 이 1구를 무심히 독과(讀過)하여내는 개인과 민족과 시대는 모두 그 순경(順境)에 처하였음을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그 통곡이 얼마나 중대한 의미의 것이었던 것은 은혜로 말미암아 아는 이만이 알 것이다. 세례 요한이 여인의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이었음은 전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의 독생자를 증거함에 있었다 할진대, 시몬 베드로의 3차 부정도 전인류를 대표하고 또 나를 대신한 점에서 통탄스러운 것이다. 만일 위름스회의에서 루터가 굴복하였다고 가상하라. 이때에 우리 인류는 광부의 자식의 포효하는 음성으로써 〈베드로의 통곡〉을 다시 한 번 더 들었을 것이었다. 그후의 세계사를 상상하기만 하여도 몸서리치지 않는가? 루터여, 장하도다. 베드로여, 분하고 아프도다.

베드로는 요한, 그밖의 제자들과 같이 주의 십자가 사건으로써 실망과 비애에 떨어졌을 뿐더러 그 위에 3차나 주를 모른다고 하여 자기의 비겁과 불신에 각성했을 때 다시는 주 예수께 뵈올 면목이 없음을 알고, 가능하면 주를 떠나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은 오인(吾人)의 일상 경험으로도 용이히 추측할 수 있다. 시몬 베드로가 그물로써 의외의 대어(大漁)를 획득하였을 때에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누가 5:8) 한 것도 동일한 심사였고, 시조(始祖) 아담이 악선과(惡善果)를 먹은 후에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내가 동산에서 주의 소리를 듣고 나의 몸이 벗었음을 두려워 숨었나이다」(창세기 3:8~10) 함도 또한 같은 이유인 것이었다.이런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대로 우리를 대접치 아니하시고, 우리의 불의대로 우리에게 갚지 아니하실」뿐더러(시편 103:10) 주 에수는 7을 70배 하여서 용서하시고 자기를 3차 부정하던 베드로를 우선 찾아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셨다. 하나님 편에는 그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복음 24장 34절과 고린도 전서 15장 4, 5절의 기사와 병독(竝讀)할 때에 예수가 부활 후에 각별히 베드로를 만나신 것과 또 그 필요했음을 추찰(推察)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한 복음 21장 15절 이하에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내 어린양을 먹이라······」고 3차나 부탁하시고 새로이 신임하심을 보면 베드로의 다복을 부러워 안할 수 없다.

그러나 〈베드로의 통곡〉이 전인류와 또 나 자신의 통곡이었던 것처럼 나도 또한 다복한 베드로인 것을 깨달을 것이고 감사할 것이며, 부러워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사실이다. ■ (193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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