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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2 21:46

15. 나의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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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이 전] [다 음]


15. 나의 자전거

자전거를 잃고 나니 자전거가 나의 팔다리의 한 부분이었던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별안간에 다리를 찍힌 자의 불편을 참으면서 통학하려니 자전거가 있었을 때에 그가 나에게 준 바 모든 영향이 실마리처럼 풀려 나온다.

두어 차례 교통순사(交通巡査)에게 괄세 받았음으로 인하여, 네거리의 교통신호를 판독할 줄 알게 된 것도 자전거의 혜택이다. 신호 중의 행(行)과 지(止)는 문제될 것 없지마는 〈회(廻)〉의 이해가 어렵고, 종로와 광화문통 같은 십자로는 쉬우나 남대문과 경성역전 같은 사행로가 어렵다.

무릇 경쟁에 졸렬한 나로 하여금 매일 버스 전차를 타는 경쟁을 피하여 마음의 고통을 면케 한 것도 나의 자전거의 덕이었다. 전차와 버스 안에서 교만한 부녀와 무례한 남자와 눈허리가 신 모던 남녀 청소년들을 보고 참을 필요 없은 것도 물론 나의 자전거의 공이었다.

자전거를 타면 떠날 때에 우리집이 있음을 알 뿐이요, 도착한 데가 울리 학교인 것을 알았을 뿐이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대경성의 〈도심〉을 통과하나 서울 장안은 나에게 있어서 일대 터널에 불과한 존재였다. 서울을 상징하는 온갖 인물과 건축과 상품들이 좌우에 성처럼 우거져 있었어도 내가 좌우를 돌아 살필 필요도 없고 또 할 수도 없었다. 자전거 위에서는 오직 앞길을 직시하는 수밖에 별도가 없다. 눈이 단순하므로 생각도 따라서 단순하다. 혹시 변화가 있다면 질주하는 자전거 앞길을 교통신호가 가로막는 일이 있으나 이때는 전주의력이 더욱 한점으로 집중된다.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의 모든 추잡한 것, 악착스러운 것, 부허(浮虛)한 것, 괴이한 것들을 보지 않을 뿐더러, 〈실망〉이 아니면 〈취생(醉生)〉이라는 낙인을 이마에 찍어 붙인 노인과 청년들의 면상을 바라볼 여유없이 한 줄기 〈터널〉 속으로 왕복하게 하였으니 자전거가 고마웠다.

도보--버스--전차의 연락으로 1시간 10분을 요하는 길을 35분에 닿게 하여 하루 왕복에 1시간 넘는 시간을 나에게 보조하여 준 것은 오직 나의 자전거만이 능히 할 수 있은 일이요, 잘 하여 준 일이다.

자전거는 현대의 노마(노馬)다. 경성부(京城府) 내의 교통정리 정책으로 보아도, 전차에 궤도가 있고 자동차에 지정 노폭이 있고 짐마차[하마차:荷馬車]가 또한 지정 노상을 행하되 오직 자전거만은 이쪽저쪽으로 여지에 몰리우는 무시를 당하고 있다. 또한 자전거꾼의 대다순느 사회에 봉사하는 계급의 미천한 사람들이다. 타는 것 중에 가장 겸비한 것을 타고, 심부름꾼, 배달부들과 반열(班列)을 같이 하여 달음질하려면 노마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주 그리스도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나의 자전거는 나로 하여금 한층 더 넓은 사회에 호흡하게 하였다.

(193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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