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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3 04:42

9. 불초 [不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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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불초 [不肖]

효도로써 백행(百行)의 본(本)을 삼는 조선에 있어서 불초(不肖)라는 구(句)는 일상 듣고 보고 쓰는 문구다. 자식된 자가 그 어버이를 향하여 〈불초자〉로 자칭할 때는 가장 겸비한 것을 표시하는 뜻이 되었고, 따라서 자식된 자의 평생 소원은 모든 성격과 범백사(凡百事)에 그 자신의 부형과 흡사하게 되는 일이다. 정(情)으로 보아서 아름다운 일이요, 이지(理智)로 판단하여도 부당함이 없는 일이다. 「원컨대 조선의 자녀들이 흘러오는 시대의 새로운 풍조에 물들기에 급하지 말고 지나간 조상들의 건실한 기품에 닮아지이다」 하는 것이 우리의 공통한 소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초〉하라고, 일부러라도 조상을 닮지 말라고 부르짖고자 한다. 특히 생과 사에 관한 중대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조상들의 관념 그대로 본받을 것이 아니다. 예외와 특수 이론을 차치하고 대다수의 우리 살림에는 일평생을 산다는 것은 곧 몇 가지 〈대사(大事)〉를 치르는 일이다. 될 수만 있으면 아들딸을 미성년기에 결혼 성례하는 것이 부모의 일대사(一大事)요, 명산대지(名山大地)에 조상유해(祖上遺骸)를 안장(安葬)하고 3년 복상(服爽)하는 일이 자녀로서의 〈일대사〉요, 조숙(早熟)하여 천명(天命)을 알 때도 못 되어서 벌써 가사상태의 은퇴생활을 하면서 자식의 효도를 받는 기생생활을 하다가 기어코 고향산천에 매장될 자리까지 마련하여 놓고, 그리고 객사나 면하면 자기를 위하여 〈일대사〉를 치른 것이다. 만일 분묘를 위하여 소송이나 일게 되면 이는 저들의 초대사(超大事)이었다. 지진학(地震學)으로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나라가 있다면 조선은 과연 분묘학(墳墓學)(?)으로써 세계에 관절(冠絶)할 것이다. 잡아 뜯고 싸울 만한 분토(墳土)가 없을 때에는 비할 데 없이 완비한 족보학(?)으로써 효성의 싸움을 연장하지 않고는 조상 전래의 〈효심〉과 대사열(大事熱)이 만족하지 못하였다. 오호라, 대소를 분별 못하는 살림이여!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죽은 자로써 죽은 자를 감사하게 하라」(누가 9:60)고. 주검과 분토를 숭상하는 조상을 본받을 것이 아니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하신 이를 닮을 것이며, 땅엣것을 닮지 말고 하늘엣것을 닮아야 하겠고, 효도의 소학(小學)을 넘어서 충성(특히 하나님께 대한)의 대학(大學)으로 나가야 하겠다. 「나보다 부모처자를 더 중하게 여기는 자는 제자 될 수 없느니라」고 선언하신 그리스도는 애초부터 자신의 부모를 닮지 말고 영(靈)의 아버지 하나님을 닮으라고 하셨다. 지금 불초하라고 외친대도 결코 신기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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