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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이 전] [다 음]


8. 무표정[無表情]과 위표정[僞表情]

「말하기 싫은지라 두 입술은 붙었고, 눈이 무거운지라 대개는 감은 채로 누웠는데, 희노애락에 대한 반응도 빠르지 못합니다. 물론 한창 괴로왔을 때엔 신음하는 소리와 고뇌의 빛을 드러내지 않은 바 아니나, 그 후 웬만큼 견디게 된 다음부터는 만사에 무표정하여 대하는 이로 하여금 본의 아닌 미안을 가지게 합니다.」 운운. 이는 3년 이상 폐환(肺患)으로 투병하고 있는 한 형제(兄弟)의 실기(實記)이다. 이처럼 무표정한 고로 저의 친절한 구우(舊友) 한 분은 주사약을 10여원(편집자주=1936년) 어치나 사 들고 찾아왔다가 일거(一去)에 무소식이 되어버렸고, 또한 병실의 벽에다 「볼 일이 없이 오지 마시오. 병에 대해 묻지 말고 말하지 마시오. 볼일 끝나면 곧 가시오. 오고가는 데 인사 마시오」라고 써 붙이고 대개는 창 앞에서 면회사절하여 보내는 고로 불원천리하고 찾아왔던 구우(舊友)도 그 번이 막걸음이 되고 만다고 한다. 이 형제의 무표정은 단지 선천적 기질뿐도 아닐 터이요, 또한 후천적 수양의 결과뿐도 아닐 것이다. 실로 장세월(長歲月)의 투균(鬪菌)에 지친 원기가 한 마디 말 한 찌푸림 한 웃음도 등한히 할 수 없는, 허튼 수작은 일절 불허하는 생리적 필요와 심령적 세련이 자연히 이까지에 도달하였을 것이다. 과연 심한 병고는 인생의 모든 불필요한 〈허튼 수작〉을 박탈하여 버리고 무표정한 엄숙한 인간의 실질적 부분만을 남겨 준다.

생물학자 다윈은 동물과 인간의 제반 표정을 비교 연구하여 방대한 저술을 발표하였거니와 소위 고등동물에 이를수록 표정이 다종다양하고 능란하며, 만물의 영장인 인류에 이르러 표정의 절정에 달하였음은 물론이다. 특히 현대 사람은 표정이 곧 생활이다. 군자지교담여수(君子之交淡如水)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경애하는 우인(友人)에게 무표정 이외에 어찌 표정할 것인지를 우리는 모르건마는 현대인들은 표정으로 벗을 사고 표정으로 벗을 판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처자(妻子)에게는 무표정 이외에 표정하는 방도가 없는 줄로 우리는 알았건마는 현대인들은 활동사진에나 볼 수 있는 사탕같은 달콤한 표정이 없으면 고통이 생겨난다. 평생에 사모하는 선생과 동자(瞳子)같이 귀여워하는 제자에게 대하여 무표정 이외에 그 정을 실을 그릇이 없는 줄로만 우리는 알았더니 현대의 사제(師弟)들은 표정으로 제자를 매수하고 안색(顔色)으로 은사(恩師)를 배반함이 다반사로다. 심지어는 기독교회 내에까지 표정은 가장 큰 정책(政策)이요, 상략(商略)으로 통용되었다.

이, 화(禍) 있을진저! 무교회(無敎會) 신자의 일대 결함은 저들에게 친절미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다정한 표정이 없을 뿐인가, 항상 항의적(프로테스트)이요, 쟁탈적 불손한 태도가 보임은 사실이다. 무교회 신자는 활동사진 같은 농후한 구미식(歐美式) 표정보다 유교(儒敎)전래의 담박미를 좋아하며 기독교회 내의 현금거래식 표정보다 불교도(佛敎徒)의 목석 같은 무표정을 존숭(尊崇)하나 그보다도 간사한 현세(現世)에 처하여는 위표정(僞表情)의 필요를 느낌이 심대(甚大)한 자이다. 신뢰치 않는 척, 애지중지 않능 척, 경모하지 않는 척, 미워하는 척, 효도하지 않는 척, 애국심이 없는 척 하지 않고는 내심(內心)의 울분을 처치하지 못한다.

(193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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