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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2 21:37

2.심봉사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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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이 전] [다 음]


2. 심봉사의 소원[所願]

하절(夏節)도 거의 다 가는 8월 그믐 가까운 어느날 저녁 라디오 드라마 《심청전》에 우리는 크게 감격함을 마지 못하였다. 정렬(貞烈)의 표지(標識)인 심청의 이름만 들어도 조선심(朝鮮心)의 장부(臟腑)가 몹시 울렁거리거니와 우리가 참회의 눈물을 제지치 못한 것은 특히 심청의 부친 심봉사의 심사(心事)에 대해서였다.
공양미 3백 석을 바치고자 함은 맹인(盲人)의 눈을 뜨게 한다는 몽운사(夢雲寺) 부처님의 영능(靈能)을 신봉(信奉)한 까닭이었다. 눈뜬 후에 소원이 무엇이냐? 세상을 남과 같이 보고자 함일 것이나, 심봉사의 심지(心地)를 작자로서 말하라면 그렇게 막연하고 희미한 소원이 아니었다. 눈을 뜨면 서울 종로통 구경 온다는 것도 아니요, 창경원 벚꽃 구경은 물론 꿈꾸지도 못하였을 것이요, 천하의 기관절승(奇觀絶勝)을 유람하자는 것도 아니요, 다만 일일일시각(一日一時刻)이라도 가하니 광명을 볼 수만 있다면 「내 딸 청의 얼굴을 보리라」는 것이 최대 유일의 소원이었다고 한다. 오직 「내 딸 청의 얼굴을!」
세상에 가인(佳人)이 많다 한들 맹부(盲夫)의 전폭적(全幅的) 신뢰를 받을 만한 정렬의 처보다 더 아룸다운 것이 타(他)에 어디 있으며 인간에 기관(奇觀)이 많다 하기로 지아비를 닮은 아들과 지어미에 방불한 딸이 출생하여 한 살 두 살씩 자라갈수록 한 껍질 두 껍질씩 가리운 막(幕)이 벗겨져서 아들의 음성은 곧 그 아버지의 음성이요, 딸의 자태는 곧 그 어머니의 자태로 변화하는 일처럼 신기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청(淸)의 음성이 온아함과 그 성격이 예민함과 그 효성이 극진한 것 등의 무릇 아름다운 소질(素質)은 하나 예외없이 그 모(母)에게서 유전된 것임이 의심없으니, 그 처가 그리울수록 심봉사에게는 그 딸이 사랑스러워지는 것이요, 그 딸이 고맙고 놀라울수록 일 순간이라도 가하니 그 자태를 일별(一瞥)하고 싶었다. 그 딸에 비할진대 금강산 단풍도 원(願)이 아니요, 일월성신(日月星辰)도 보나마나, 오직 「내 딸 청의 얼굴」을 일견(一見)하고 싶은 데에 맹인의 소원은 집결되었다. 이 때문에 적수공권(赤手空拳)에도 오히려 공양미 3백 석을 획책(劃策)하였다.
할 일이 많다는 것은 아직까지 평생의 사명을 발견하지 못한 증거이요, 소원이 많다함은 진정한 소원이 없는 까닭이다. 보라, 맹인이 아닌 우리에게 각자의 소원이 얼마나 많은가, 손을 가슴에 얹고 내찰(內察)하라. 단일(單一)치 못한 우리의 소원을 발견한 것이 참회의 시작이요, 성취된 소원이 허다한 것을 감사할 줄 모르는 자아(自我)를 발견한 것이 심봉사의 영전에 통탄을 제지치 못하는 까닭이다. 우리의 딸과 아들의 얼굴에서 천하의 기관을 발견치 못하면 우리의 안구(眼球)는 없어도 가한 기관이 아니며, 우리 자녀의 용모에서 여호와 신(神)의 무한한 은총을 읽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봉사가 되어 마땅한 자들이 아니냐. 이제 나의 심령(心靈)에 일변(一變)함이 없을진대 큰 화가 내 몸에 미칠 줄 알아 나는 라디오 앞에서 울었노라.

(193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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