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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일부 ; 머릿말 - 노평구 ☼☼ "나는 해방 후 하도 답답해서 한 두번 선생이 경인지방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면 당신은 문제 없겠기에 실례지만 이를 권한 일이 있다. 선생은 "거기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오겠느냐"하시며 한마디로 뱉듯이 거절했던 것이다. 나야말로 신앙을 생명으로 생애를 바쳤던 선생에게 이렇게 실례했던 것을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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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문으로 쉽게 가신분 [박 현 경]

송 선생님을 처음 뵈온 것은 1964년 6월이었습니다. 저의 집사람을 사귀면서 만나 뵙자고 권하기에 찾아 뵙고 오류동 모임으로 나가게 되었는데 까다로운 절차를 통하여 모임 식구가 되었으며 결혼하는 절차도 인도받았습니다.
제가 기독교를 알게 된 것은 1952년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미군 군목이 전교 학생을 모아놓고 설교하고 ''십자가의 성호를 찬송합니다.''라는 찬송가를 처음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안식일교회, 성결교회, 장로교회, 감리교회, 박태선 장로교회, 여호와의 증인 등을 번갈아 다니면서 교회마다 나를 환영하고 영접해 주기에 교회란 나를 환영하고 모셔 받들어 주는 곳인듯 했으며, 내가 무슨 지도자가 된 듯이 대표자를 찾아 만나며 활개를 치며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류동 모임은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웠는지 그 당시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송두용 선생님은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아니 선악과를 먹은 후손이 감당하기 어려운, 십자가의 재생의 말씀을 주시려는 것이었기 때무에 그렇게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이 지금도 두렵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가득차게 인도해 주신 것이 송 선생님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성서 모임의 재조직

1964년 겨울이라고 기억됩니다. 오류동 모임 식구는 겨우 20명 남짓했는데 이 식구가 많은 것인지 불현듯이 한번 걸러내려시는 듯 해산을 선언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회개의 기도를 하고 십자가의 믿음으로 각자 회개할 것이며 회개한 자만으로 1개월 후에 다시 모임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다시 나는 그분이 정말 어려운 분이라고 생각되었스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고 기도할 기회를 주셨스비다. 모임 식구들의 맹목적인 주중 행사로 참여하는 모임을 개탄한 나머지 우리에게, 아니 나에게 기독교의 참뜻을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저희 내외는 선생님께 저희들이 모임에 임하는 소신을, 저희들 자신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살려 모시고 싶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축복을 얻게 해 주시려고, 우리들의 마음을 비우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답게 살게 하시려고 하신 뜻을 새삼 느낍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임 식구를 찾아 그 사람의 깨닫지 못한 것을 지적하며 그 사람의 자만심, 필요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오물을 버리고 비워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신 채워서 뜻대로 살게 하려고 노력하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송 선생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로 사시면서 우리들도 그렇게 살도록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점찍은 사람을 재생시키기 위하여 애를 무던히 쓰셨습니다.

모두를 이웃으로제 집사람을 처음 알고 찾아갔더니 오류동 역전 ''단 팥죽''이란 조그만 간판이 붙은 집이었습니다. 팥죽 장사를 하시느냐고 물었더니 팥죽 장사를 했던 집이라고만 대답했습니다. 이곳이 바로 역전에 모이는 노무자들의 곯은 배를 보충해 주기 위하여 선생님께서 팥죽 장사를 경영시켰던 곳이었습니다. 무산자를 위하여, 아니 젊은이들을 위하여 오류학원을 경영하셨고, 또 장봉에서는 어려운 여건을 헤치고 푸른학원을 경영하셨습니다. 또 한때는 주일이면 예배 후에 교도소에 나가 재소자들을 위하여 예배보시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내 이웃이고 이웃을 내 몸과가티 사랑하셨으니 모두가 내 이웃이요 가족이었습니다. 모임 식구는 물론, 이웃 사람들의 걱정거리도 모두 같이 걱정해 주시고 해결 방법을 모색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무거운 짐 진 자는 내게로 오라."하신 것같이 이웃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기 위하여 영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의에 대해서는 추호도 용납치 못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모든 사람을 받아들였지만 모든 사람과 싸우셨습니다. 불의에 대하여는 채찍으로 경책하셨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이웃이요 아버지로 사셨습니다.
윤리와 덕망이 이 이상 더할 수 없었으나 초라하고 평범한 대인이었다고 부르고 싶습니다.

죄인의 괴수로 자처하신 선생님선생님의 기도는 항상 긴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마디마다 죄인임을 고백하셨습니다. 무슨 죄가 그다지도 많으신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기도를 못하는 사람인지 안 하는 사람인지 좌우간 고백할 죄의식이 희박한 사람이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교회에는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고 칭찬만 받았지 책망을 들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의인은 못 될망정 죄인이라고 생각지 않았는데 오류동 모임에 다니면서 차츰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치 않은 죄, 이웃을 사랑할 줄 모르는 죄, 교만한 죄, 이 모두 용서받지 못할 중한 죄임을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가 아니고는 구제받지 못할 죄인임을 알게 되어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하고 기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기도에 의하여 저의 기도의 길이 열렸고 기도로 영생의 소망을 얻었습니다.
송 선생님은 누구에게나 "예! 예!"하시며 겸손 이상으로 초라한 노인으로도 보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교만이 틈타지 않도록 무척 애쓰는 분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이 베푸는 긍휼은 자기 자랑 자기 명예를 위함이 아니고 오직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환자와도 겸상하여 잡수시고, 전과자를 가족같이 데리고 같이 사시고, 배고픈 이웃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시고, 이런 일들을 자랑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있는 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회개의 표시, 내가 가진 것이 죄스럽고, 나 혼자 여유있게 사는 것이 죄스러운 회개야말로 내 마음을 청결케 하리라. 아! 하나님의 긍휼을 얻어 언제나 우리도 새사람이 될꼬. 선생님을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직선적으로 정진하라신 말씀송 선생께서는 하나님을 향하여 믿음으로 바로 정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진하다가 그것이 잘못된 줄을 알면 또 다시 기도하여 길을 바로잡고 하나님을 향하여 직선 코스를 잡아 정진하라고 하여 불의와 타협하고 삐뚜로 가면 아니 된다고 하십니다. 핍박을 회피하는 것은 마귀와 결탁하는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송 선생님은 모임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마음 속 깊은 데까지 파헤치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참화평이 무엇인가를 가릋치시고 불의의 삯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상기케 하시고 문제가 있다고 느끼시면 몇 번이고 가정 방문을 하시면서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의의 검을 휘둘러 남의 비난을 사기도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송 선생님은 많은 재산을 흩어버리시고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전도 생애를 승리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사상범으로 감옥에 갔다 나온 사람이면 무조건 영웅시 하던 때였으므로 선생님 같은 분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이 존경받는 지도자이었으니 국회의원에 출마하면 틀림없다고 추천을 햇으나 마다하고 숨어 버리셨습니다. 이것 또한 선생님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시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선생님은 부흥 목사가 될 소질이 있다고들 했는데 그런 유혹 시험에도 잘 이기시고 끝까지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무명의 전도자로 일관하신 것은 큰 시험에 대한 승리로 믿습니다.
선생님은 넓은 길을 버리시고 좁고 험난한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좁은 길을 쉽게 달려 우리들에게 보이시고 따라오라 하시는 듯합니다. 넓은 길은 화려하나 멸망의 길이요, 좁은 길은 험하고 초라하나 영생의 길이라고 들려주시는 듯합니다.

(서울, 종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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